39화
39화
아저씨는 혀를 쭉 내밀며 말했다.
“히말라야거북이 괴물치곤 온순한 성격임에도 3급으로 지정된 이유는 바로 무시무시한 방어력 때문이다. 녀석의 등껍데기는 3급이 아니라 4급 이상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거든.”
“네?”
소리와는 달리 등껍데기는 조금도 부서지지 않았다. 금이 가기는커녕 반짝반짝 윤기까지 흐르며 이이를 조롱하는 듯했다. 반면에 이이의 곤봉은 타격을 가한 부분이 찌그러져 있었다.
이이는 이를 가면서 바닥에 곤봉을 집어던졌다.
“제기랄! 왜 부서지질 않는 거야? 자동차도 단숨에 부술 위력이었다고!”
그건 인정. 소리와 충격만 놓고 보면 격파대까지 박살 내고도 남았어야 했다.
“그 정도 갖고는 안 돼. 끌끌끌!”
아저씨는 코를 후비면서 혼자만 즐거워했다.
“방어력뿐만 아니라 녀석의 서식지인 고산지대도 문제야. 저 녀석을 잡겠다고 거기까지 가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잡고 나서 운반하는 것이 더 큰 문제지. 그리고 이게 가장 중한 건데,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끌끌끌! 마지막은 유료다! 맨입으론 안 알려 줘!”
네. 포기하겠습니다. 즉각 아저씨에게서 신경을 끄고 이이를 바라봤다.
이이는 결국 2차 시도를 포기한 채 링에서 내려갔다. 이로써 추가시험 첫 번째 탈락자가 나오게 된 것이다. 이이가 불합격을 하고, 그 뒤 5번부터 다시 제비뽑기가 이어졌다.
“5등, 유정 씨!”
흰색 두건을 쓴 유정이 뽑은 제비는 2번 송판 20장이었다. 유정은 H력을 주먹에 담아 너무 간단히 격파에 성공했다. 나무 송판 20장이면 제법 높이가 높은데, 그걸 그냥 주먹 한 방에 박살을 내 버렸다. 역시 전 정식 헌터는 다르다. 군더더기가 없다고 할까?
“6등, 구지태 씨.”
구지태가 뽑은 번호는 9번, 대리석 30장! 좋았어. 내 차례가 되기 전에 이런 식으로 높은 숫자가 하나하나 제거되는 거야!
직원들은 대리석을 나르며 구지태를 욕했다.
“망할 구지태! 왜 응시하고 난리야?”
“예전에 저놈이 협회에다 불 지른 걸 생각하면 왜 아직 감방에 안 갔는지 의문이야!”
“저런 놈은 애초에 싹을 잘라야 하는데! 미성년자는 무조건 봐줘서 그래.”
미성년자 때 협회에다 불을 질렀구나.
아저씨가 언어로 테러를 한다면, 쟨 그냥 진짜 테러리스트네.
차곡차곡 쌓이는 대리석들의 무게에 급조로 만들어진 나무 바닥이 삐걱거리며 아래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구지태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발끝으로 살짝 바닥을 눌렀고, 바닥은 정확히 구지태가 누른 만큼 추가로 더 내려앉았다가 발을 뗌과 동시에 올라왔다.
“이거 조금 위험한 것 같은데요? 바닥 수리 좀 다시 해 주실래요?”
직원들은 처진 바닥과 격파대 위의 대리석들을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히말라야거북의 등껍데기야 격파대 위에 올릴 필요도 없이 다시 상자만 씌워 놓으면 됐지만, 대리석과 격파대는 또 일일이 손으로 날라야 했다.
대리석을 걷은 다음, 바닥을 수리하고 다시 쌓아야 한다는 계산이 자연스레 직원들의 고개를 움켜잡아 흔들었다.
그냥 솔직히 말해요. 힘들고 귀찮아서 싫다고!
“그냥 하십시오! 불평하는 건 실력 없는 놈들이나 하는 소리입니다!”
엥? 내가 보기엔 정당한 요청 같은데……. 어지간히 미운털이 박혔나 보네?
직원의 말에 구지태는 인상을 쓰면서 혼잣말로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
“두고 보자, 쓰레기들…….”
결국 구지태는 불안정한 바닥 위에서 격파를 실시했다. H력을 담은 손날치기가 대리석을 타격. 그러나 돌 자체를 부수기보단 돌들을 밀어 그 무게로 바닥을 무너뜨렸다.
우르르 쏟아진 대리석은 밑에 깔려서 떨어진 격파대의 각도와 바닥에 닿을 때의 충격으로 알아서 쪼개지며 무너졌다.
“이건…….”
직원의 얼굴은 놀라움, 혼란, 짜증, 분노를 차례대로 표현했다. 대충 어떤 기분일지 알 것 같다. 직원의 입에선 소리가 나지 않았지만, 입 모양은 벌써 ‘재시도!’를 외치고 있었다.
아마 대리석 재설치의 수고스러움이 없었다면 구지태는 꽤 불이익을 당했을 것이다.
“제기랄. 그럼 구지태 씨를 합격 처리하겠습니다. 다음은…….”
직원은 굴욕적으로 구지태의 손을 들어줬다. 구지태는 합격됐단 사실에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일반적인 격파의 원리를 이용한 겁니다. 일반적인 격파 시범에서 단단한 돌들을 부술 수 있는 이유는 육체적 단련과 함께 중력을 이용해 격파 대상의 무게 자체를 이용…….”
용납은 거기까지. 직원은 손을 저으며 구지태에게 고함을 질렀다.
“누구한테 지껄이는 거야? 빨리 안 내려가? 우리가 네놈 설교나 듣자고 여기서 이러는 줄 알아? 아무도 네놈 말하는 거 궁금하지 않으니까, 당장 내려가!”
구지태는 쫓겨나듯 링 위에서 내려왔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한쪽 구석에 외롭게 선 구지태는 이를 갈면서 주먹을 다부졌다. 방금 전 합격한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쓰레기들…… 두고 보자…….”
다음은 7등 갈리. 구지태로 인해 머리끝까지 열 받은 상태였던 직원들은 갈리의 차례란 사실에 빠르게 머리를 식히고 침착히 대응했다.
“7, 7등…… 가, 갈리 님. 부, 부디 뽑아 주십시오.”
‘씨’가 ‘님’이 됐네. 하긴, 나라도 그럴 거야. 생존 본능이란 건 똑같구나.
바바리코트 차림의 갈리가 뽑은 번호는 6번, 기왓장 30장. 곧 격파대 위로 기왓장이 높게 쌓였다.
“그럼 격파해 주십시오.”
직원은 갈리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링에서 내려갔다.
“흐흐흐. 이걸 없애면 되는 거지?”
갈리의 입이 쫙 벌어지며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직원은 식은땀을 흘리며 링 아래에서 갈리를 올려다봤다.
“그, 그렇습니다. 기, 기회는 총 3번입니다.”
“3번? 흐흐흐. 그럴 필요는 없어.”
갈리의 웃음에 아저씨는 내 옆구리를 찔렀다.
“잘 봐라. 저 여자가 왜 ‘미친년’이라고 매도당하는지 알 수 있을 게다.”
갈리는 계속 웃으며 기왓장 더미 옆면에 손을 댔다.
격파를 하는데 왜 옆면에 손을……?
일단 갈리의 행동을 지켜봤다.
“낄낄낄! 깔깔깔! 꼐꼐꼐!”
갈리는 대뜸 큰소리로 웃으며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기왓장에 댄 손에서 길게 늘어진 아지랑이가 뿜어지며 30장의 기왓장을 뒤엎었다. 아지랑이는 갈리의 손길처럼 꾸물꾸물 기왓장 한 장, 한 장에 스며들며 불길하게 꿈틀댔다.
“키얍!”
기합.
그것으로 격파는 끝이었다.
김대팔처럼 섬광파를 쏜 것도, 유정처럼 주먹으로 격파한 것도, 구지태처럼 중력을 이용한 것도 아니었다.
“저럴 수가…….”
“저게…… 능력?”
“이런 미친…….”
연습장 안 사람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흐흐흐.”
갈리가 손을 댄 기왓장 더미는 단 한 순간에 말라비틀어졌다.
단단하고 경직된 기와가 말라붙는 광경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색은 희멀건, 외관은 점토가 아닌 골판지 같았다. 마술처럼 눈 깜짝할 새에 바뀐 광경. 기왓장 더미는 더 이상 형상을 유지하지 못했고, 스르르 무너졌다. 격파대와 링 위로 점토가루가 떨어져 흩어졌다.
“하, 합격하셨습니다. 추, 축하드립니다.”
직원은 갈리를 향해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갈리는 머리칼이 흐트러뜨릴 정도로 웃어 재끼며 링에서 내려왔다.
“다음, 8등 신인성 씨! 나와서 뽑으세요.”
“넵!”
더벅머리의 청년, 신인성은 쪼르르 직원에게로 달려갔다.
뽑은 제비의 번호는 본인의 등수와 똑같은 8번. 격파대 위로 대리석 20장이 올라갔다.
아싸!
이렇게 되면 남은 번호는 3번과 5번. H력을 아주 조금만 써도 통과 가능한 범위다. 여차하면 아저씨한테서 H력을 받으면 되지만, 가급적 그러고 싶진 않다.
왠지 아저씨 H력은 좀 찝찝하다. 기억도 그렇고, 다른 사람의 것보다 좀 무거운 감이 있다. 어쩌면 그냥 아저씨 것이라서 싫은 건지도 모른다.
“그럼 격파하세요.”
“넵!”
꼬박꼬박 대답하는 것이 딱 초보의 모습이다.
신인성은 양 주먹을 꽉 주며 위로 들어 올렸다.
“아자, 아자, 아자! 할 수 있다! 합격은 나의 것. 신인성 화이팅!”
아저씨는 신인성의 구호에 혀를 내둘렀다.
“무슨 주문 외우냐? 그렇게 말만 해서 이기면 다들 힘든 훈련을 왜 하겠냐?”
이젠 말리는 것도 지쳤다.
과연 이 세상에서 아저씨 입을 다물게 만드는 방법이 존재할까?
“하앗!”
1차 시도는 그냥 맨주먹.
신인성의 주먹이 대리석의 맨 윗면을 때렸다. 그러나 들리는 소리만으로도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다.
“아이고, 저게 꽤 아프겠구먼.”
아저씨는 배를 잡고 낄낄거렸다.
‘남의 고통은 나의 행복’이란 표정.
생긴 것부터가 놀부처럼 생겼지만, 오늘은 유독 더 못생겨 보였다.
“크으으윽.”
신인성의 주먹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직원은 신인성에게 예의상 물었다.
“2차시도 가능하겠습니까? 안 되면 기권으로 간주합니다.”
‘설사 정말로 안 될 것 같은 상태더라도 우린 안 말려. 네 입으로 직접 선언해라.’란 의미가 내포된 직원의 말.
신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괜찮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아자, 아자, 화이팅!”
신인성의 구호에 아저씨가 또 한소리 덧붙였다.
“저러고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걸까? 멘탈 붕괴하나? 아니면 그냥 창피한 걸까?”
전 아저씨가 제일 창피해요.
2차 시도.
이번엔 신인성의 주먹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하아아압!”
신인성은 다친 주먹에 H력을 뿜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온 신경을 집중해 주먹으로 대리석 위를 노렸다.
“2차 시도, 격파!”
직원의 지시.
신인성은 기합을 지르며 대리석을 때렸다. H력이 실린 주먹은 둔탁한 둔기처럼 대리석과 충돌, 그러나 곧장 튕겨 나가며 몸 전체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에구구구!”
신인성은 바닥을 구르며 주먹을 부둥켜안았다.
H력을 담아서까지 때렸던 주먹은 검지와 중지가 뒤틀려 있는 상태. 누가 봐도 더 이상의 격파는 불가능했다.
“신인성 씨. 계속하시겠습니까?”
직원은 무뚝뚝하게 신인성에게 물었다.
신인성은 이를 악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 녀석, 뚝심이 있군. 호구라서 문제지만…….”
아저씨는 다시 일어선 신인성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정말로 신인성을 칭찬한 것 같다.
신인성은 손을 반대로 바꿔서 주먹을 쥐었다.
“3차 시도, 격파!”
“아자, 아자, 아자!”
신인성은 한 번 더 주먹에 H력을 담아 대리석을 때렸다. 그러나 긍정의 구호가 무색하게 촘촘히 쌓인 대리석 20장 중 깨진 것은 19장. 마지막 한 장이 깨지지 않아 불합격이 되었다.
“우와, 우와, 우와! 역시 안 될 놈은 안 돼! 끌끌끌.”
아저씨는 흐뭇하게 박수를 쳤다.
축 늘어져 링에서 내려오던 신인성은 아저씨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격려의 박수, 감사합니다.”
어…….
나도 모르게 아저씨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아저씨는 눈살을 찌푸리며 마지못해 이렇게 말했다.
“험험. 그래, 내년엔 꼭 합격해라.”
아저씨는 이를 갈면서 날 노려봤다. 그렇지만 대놓고 나에게 따지진 않았다.
“다음, 9등 김상팔 씨!”
드디어 직원이 날 불렀다.
남은 번호는 3번과 5번. 몸속에 담아 둔 H력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한 수준이다. 시험 보기 전에 H력을 잔뜩 흡수해 둬서 참 다행이다.
링 아래, 직원이 든 제비 상자에 손을 집어넣었다.
뭐가 나오든 이번 추가시험은 따 놓은 당상. 여유롭게 종이를 펼쳐 어떤 숫자가 적혀 있을지 확인했다.
헤헤……헤…… 엥?
눈을 비비고 종이에 적힌 숫자를 한 번 더 확인했다. 그러나 숫자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아, 욕하고 싶다…….
10번.
떨리는 손으로 제비를 직원에게 보여 주었다.
“왜 10번이 나온 거죠? 제비는 1번부터 10번까지 각각 한 장씩 들어 있는 거 아니었나요?”
“맞습니다.”
직원의 대답과 함께 뒤통수로 아저씨의 비웃음이 날아온다.
아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