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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36화 (36/250)

36화

36화

“뭣?”

뭐라고라고라? 이런 썅! 쌰앙!

탈락한 사람들은 불이 켜지지도 전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우르르 발표장을 떠났다. 직원이 ‘아직 나가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질서정연한 선진국의 자세, 그 자체다.

“그나저나 추가시험이라니…….”

필기와 면접, 그다음이라면……혹시?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실기?”

그냥 추가 필기시험이나 면접을 본다고 말해 줘.

제발, 실기만은…….

스크린 아래 불빛이 켜지며 무대 위에 오른 직원을 비췄다. 직원은 손에 든 마이크를 켠 후 남은 10명을 향해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원래라면 지금 이 순간 합격자를 축하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추가시험이 결정되었습니다. 본래 합격자는 한 자릿수로 하는 것이 원칙! 올해는 정말 쟁쟁한 지원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가급적 모두 합격하시길 바랍니다.”

우와. 무슨 저런 촌철살인적인 덕담이야.

진짜로 다 합격하면 또 ‘한 자릿수로 하는 것이 원칙!’ 하면서 추가시험 볼 거면서…….

발표장 불이 켜지고 날 포함한 10명의 모습이 드러났다.

고개를 돌려 나머지 9명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폈다.

“어?”

맨 뒷자리의 두 사람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분명 면접 참가자가 아닌데, 뭐지?

“수상한데?”

“그러게 말이다.”

누군가가 맞장구를 쳤다. 나도 모르게 대화가 이어졌다.

“협회가 좀 허술한가 봐요.”

“그러게 말이다. 어린놈의 자식들이……!”

응? 방금 ‘어린놈의’라고……?

“끌끌끌!”

이 비계진 웃음소리. 그리고 노린내 같은 체취.

깨달은 순간 목 뒤가 쭈뼛 섰다.

“설마…….”

공포영화 속 주인공처럼, 스릴러영화 속 피해자처럼 천천히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봤다. 그리고 떡하니 내 옆에 앉아 있는 한돈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어머나, 시발!”

나도 모르게 손을 휘둘러 갑자기 나타난 얼굴을 때렸다. 달덩이 같은 아저씨의 얼굴이 꼭 도깨비처럼 보인 탓이었다.

허공에 수영하듯 날아간 손바닥이 아저씨의 뺨과 부딪혔다.

“아, 따거!”

따거는 중국어로 형님이란 뜻……이 아니라 그런데 아저씨가 여길 어떻게? 내가 헛걸 보고 있는 건가? 하지만 분명 내가 아저씨를 때렸는데?

“아저씨?”

“그래. 나다!”

아저씨는 엄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크게 웃었다.

세상에!

멀리 있는 불청객에게 신경 쓰느라 가까이에 있는 불한당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언제 오셨어요? 어떻게 들어오셨어요? 왜 오셨어요? 어디서 오셨어요?”

이제 여기에 ‘누가’, ‘무엇을’만 있으면 완벽한 육하원칙.

아저씨는 배를 쓰다듬으며 내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했다.

“좀 전에. 그냥. 너 보러. 길바닥.”

“어…….”

일단 가장 궁금한 것부터 차근차근 물어보자.

“그냥 들어오셨어요? 순순히 들여보내 줘요?”

“그래. 정식 헌터 자격이 있으면 협회를 출입하는 데 제한이 없거든. 저기 뒷자리에도 나처럼 그냥 들어온 놈들이 있잖아?”

그럼 저 사람들이 그냥 구경꾼?

“왜 절 보러 오셨어요?”

“왜긴 왜야? 응원하러 왔지! 공짜 도시락도 좀 먹고, 끌끌끌!”

아저씨가 앉은 좌석 아래엔 언제나 메고 다니는 커다란 배낭과 함께 협회에서 제공한 도시락의 빈 용기가 10여 개 정도 쌓여 있었다.

세상에, 저건 또 언제 챙기셨지?

“참 장하구나.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어. 최종 합격에 이렇게 가깝다니…….”

“그러면 뭣해요. 합격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는 거잖아요?”

“그건 그렇지.”

아저씨는 트림을 하면서 정면의 스크린을 응시했다. 그리고 손으로 스크린에 뜬 이름을 하나씩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참고해라. 저기 있는 10명 중 몇몇은 향후 크게 이름을 떨칠 게다. 친분을 쌓아도 좋고, 원한을 맺어도 좋아. 어떻게든 다시 만날 테니까…….”

이게 웬 뜬금없이 장엄한 복선?

정말일까? 그럼 그 10명 중 한 명인 나도?

“아저씨 말을 어떻게 믿어요?”

“끌끌끌! 속으로는 벌써 기대하고 있으면서, 아닌 척하기는…….”

뜨끔.

이럴 때 보면 확실히 아저씨가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아저씨는 이름을 하나씩 짚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끌끌끌! 1등, 나존귀. 겉만 번지르르한 놈이지. 애초에 자기 자식 이름을 ‘존귀’라고 짓는 부모가 어디 있냐?”

왜요? 별명이 ‘밥상 위의 국가대표’인 분도 계시는데?

“존귀가 무슨 뜻이냐? ‘존나 귀하다!’의 약자 아니냐? 세상에, 이렇게 오만한 이름이 어디 있어?”

존귀는 한자어지, 줄임말이 아니에요.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제 이름은 엄청나게 천한 겁니까?

“놈은 재벌 3세야. 우리나라 4대 그룹 중 하나인 KK 쪽 사람이지.”

뒤에 K하나가 더 붙었다면 절대 글로벌 진출을 할 수 없었을 그룹. ‘코리아 킹덤’의 약자인 굴지의 대기업이다. 주로 IT, 통신 등 첨단기기를 이용한 사업으로 돈을 벌고 있다.

“보통 헌터는 3부류로 나뉘지. 첫째는 이름 그대로 사냥꾼이란 직업에 충실한 사람. 둘째는 살육에 미친 광인. 그리고 셋째는 바로 가장 밥맛없는 부류인 ‘취미 활동’ 하는 연놈들!”

취미 활동, 들어 본 적이 있는 부류다.

5만 원 지폐로 뒤를 닦을 정도로 돈이 썩어 나는 부자들 중 목숨을 건 스릴과 우월감을 뽐내기 위해 사냥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천덕꾸러기, 혹은 필요악의 취급을 받고 있는 중이다. 사냥 시 실력 있는 전문 헌터를 고용해 괴물들을 몰아넣게 한 뒤, 마무리만 하는 스포츠 사냥꾼. 그게 바로 ‘취미 활동’ 부류다. 이미 재벌들 사이에서 괴물 사냥은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왜 특별 전형으로 지원하지 않았는지 좀 의외긴 하지만, 별로 염려할 건 없어. 면접관들이 놈을 1위로 보내 준 건 놈이 정말 대단해서가 아니라 놈의 집안 때문이거든. 즉, 요놈은 논외라는 거지! 괜히 이놈 때문에 떨어진 11등만 불쌍하게 됐구먼!”

특별…… 전형? 처음 들어 보는데? 헌터 자격시험에도 그런 게 있어?

“특별 전형이란 건 뭐죠?”

“헌터 자격을 돈 주고 사는 거지. ‘기부’란 명목으로 말이야. 협회 입장에선 크게 손해 볼 것 없어.”

하긴……. 돈도 받고, 대그룹과 관계도 돈독히 하고. 그야말로 일석이조. 없이 태어난 게 죄인 세상, 부모 잘 만난 것이 실력인 나라다.

아저씨는 다음으로 2등을 가리켰다.

“2위부터 진정한 순위 경쟁이라 볼 수 있지. 2위, 장혁. 이 친구는 물건이야. H력이 없어서 직접적으로 사냥에 나서진 않지만, 대신 짐을 나르거나 잔심부름을 하면서 착실히 경력을 쌓았지. 싼 맛에 이용하고 수고비도 안 주는 놈들도 많지만, 어쨌든 덕분에 꽤 여러 사냥에 참가하게 되어서 나름 유명해.”

“그래요?”

엄청나게 대단한데?

“끌끌끌! 나이는 40대. 원래는 다른 일을 했다가 이쪽으로 전향한 특이 케이스지. 보통은 그 반대거든! 열정이 젊은이들 뺨친다니까! 하긴, 요즘 40대면 젊은 축이지!”

“아저씨는 몇 살이신데 그렇게 노인 같은 말씀을 하세요?”

“나? 39.”

으악!

크게 놀라면서 중심을 잃고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얼마나 소리가 큰지 발표장의 모든 이목이 순간적으로 우리에게 집중됐다.

“끌끌끌! 감동했냐?”

아니요.

“겨우 39이시라고요?”

난 낼모레 환갑이실 줄 알았는데…….

어렸을 때 보약을 잘못 드셨나? 그냥 노안이 아니라 울트라 노안이잖아?

“뭐야? 내가 너무 동안이라 놀랐냐?”

몸을 일으켜 다시 바르게 앉았다.

아이고, 역시 한돈 아저씨는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하다.

“장혁이란 사람보다도 어리시잖아요? 무슨 세상 다 산 것처럼 말씀하시더니……?”

아저씨는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누르며 웃었다.

“끌끌끌! 그래도 경력은 어디 가도 안 빠질걸? 하긴, 나랑 경력이 맞먹으려면 일단 살아 있어야 할 테니까!”

아저씨 손가락을 이마에서 떼어내며 얼른 화제를 돌렸다.

뇌가 너무 자극을 받았는지 갑자기 현기증이 느껴진다.

“그럼 다음은요?”

아저씨는 3등을 가리켰다.

“김대팔. 놈에 대해선 나도 잘 모르겠다. 애초에 인형 탈을 쓰고 시험을 보게 해 준 것만 봐도 뭔가 협회와 연결고리가 있을 거야. 어쩌면 나존귀처럼 뒤가 구린 놈일지도 모르지.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아. 온전한 자기 실력으로 시험을 보지 않는 나쁜 놈이니까!”

뜨끔.

마지막 말은 왠지 내 욕 같아서 양심에 찔린다.

“H력이라는 게 말이지. 갖고 있다고 해서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게 아니야. 사람에 따라선 다룰 수 있는 시간이나 조건 등으로 제한되어 있기도 하지. 심지어 어떤 사람은 H력에 알러지가 있어서 능력을 쓰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다더구나.”

자연스럽게 루호가 떠올랐다.

아, 루호 보고 싶다. 루호가 있었다면 아저씨와 함께 음양의 조화를 맞춰 줬을 텐데…….

대화는 4등에게로 이어졌다.

“4등, 이이. 이 녀석은 가족 전체가 헌터일로 생계를 꾸리고 있지. 형제 모두가 정식 헌터인데, 아마 첫째 이름이…….”

“이일은 아니죠?”

자녀가 많은 가족 중 아주 가끔 이름을 숫자로 짓는 경우가 있긴 한데…….

그래도 이일만은 안 돼! 그 카리 강간범 이일만은…….

“맞아.”

내 바람은 보기 좋게 깨졌다.

젠장! 저 이이란 사람은 정말 조심해야겠다. 여차하면 공격당할지도 모른다.

“이일이 빠르게 퇴물이 된 후 이씨 형제들 중 이이가 가장 기대를 받고 있지. 형과는 달리 착실하고 겸손해서 평판도 좋아. 동생들과의 우애도 좋지. 형제들이 뭉치기만 해도 웬만한 헌터 팀 부럽지 않은 전력이 되니까, 절대 만만히 봐선 안 돼.”

그건 좀 부럽네. 난 외동이라 형제가 없는데…….

다음으로 5등, 유정. 그러나 유정에 대해선 넘어가 달라고 부탁했다.

유정은 사실 나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꽃미남 헌터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남성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시 시험을 치러 온 것을 보면…… 사연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정식 자격만 없다뿐이지, 실력도 확실하고 경력도 다양하다. 아마 마지막 남은 10명 중 가장 확실하게 합격할 사람일 것이다.

다음은 차세대 사이비 교주를 꿈꾸는 구지태.

“좋아. 다음, 6등 구지태. 예전부터 사냥 관련 업계 이곳저곳에서 알바를 하던 놈이야. 무슨 명문대를 나왔다고 하는데, 머리가 살짝 맛이 간 건지 은근 쓸데없는 짓을 자주 벌여서 나쁜 쪽으로 유명하지.”

음, 그건 참 잘 알 것 같다. 아까 직접 눈으로 보기도 했으니까…….

“새로운 사냥 용품이라면서 사제폭탄을 특허 신청하려고 하질 않나, 새로운 마케팅 용법이라면서 가게에 들어온 헌터들을 공격하질 않나, 쉽게 말하면 그냥 또라이야. H력을 좀 다룰 줄 아는 모양이지만, 실전 경험은 미지수야.”

실전 경험이 미지수라면 전혀 걱정할 필요 없겠네? 덕 좀 볼 수 있으려나?

다음으로 7등, 갈리.

아저씨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미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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