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34화
1조 7번 김상팔.
“행운의 숫자! 하지만 왠지 불길해! 그냥 내가 불안한 건가?”
“그럼 1조! 절 따라오세요.”
무대 위로 차례차례 1조가 모여들었다.
날 시작으로 공룡 인형 옷을 입은 사람,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 남성, 구릿빛 피부를 지닌 남성, 새까만 피부를 지닌 여성, 안경을 낀 장신의 청년, 뺨에 흉터가 있는 여성, 대머리 청년, 갈리, 주아란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우리는 직원을 따라 발표장을 나갔다.
발표장을 나온 우리는 계단을 통해 4층으로 올라갔고, 거기서 면접실이라 쓰인 방에 들어갔다.
“자리에 앉으세요.”
방 안에는 의자 10개가 일렬로 나열돼 있었고, 그 앞에는 면접관 3명이 책상 뒤로 앉아 있었다.
박장, 김익조, 이서현. 세 면접관의 명찰이 눈에 들어왔다.
각자 의자에 앉은 후 방문이 닫히고, 면접이 시작되었다.
면접관들은 인적사항이 적힌 서류를 들여다보며 각 참가자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다른 참가자들은 빙그레 웃거나, 무뚝뚝하게 굳은 표정으로 면접관과 눈을 마주쳤다.
대뜸 박장이 가장 왼쪽에 앉은 사람을 가리키며 물었다.
“신정한 씨! 이쪽에 계신 분인가?”
“예!”
맨 왼쪽에 앉은 대머리 청년, 신정한이 손을 번쩍 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답만 하세요. 다시 앉으세요.”
“예!”
신정한이 다시 자리에 앉고, 상투적인 질문 몇 가지가 오갔다. 신정환은 열심히 대답했지만, 면접관들은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다.
“다음은…… 스티브 씨?”
“네!”
신정한 옆에 민소매 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구릿빛 피부의 남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걸 본 박장은 더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대답만 하라고, 대답만! 의자에서 엉덩이는 떼지 마요!”
스티브는 잠시 박장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인상을 쓰다가, 돌연 의자를 들어서 엉덩이에 붙였다.
박장은 이마로 책상에 박치기를 하며 입을 다물었다.
이번에는 중간에 앉은 김익조가 말했다.
“스티브 씨도 돈이 목적이시군요. 뭐, 사실 누구든 이게 목적이라 봐야겠죠. 그래서, 남들과 차별화된 자신만의 가엽고, 동기 부여가 확실하며 톡톡 튀는 사연이 있나요?”
“있습니다.”
스티브는 의자를 손에 든 채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희 집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가난했습니다. 부모님은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동에 시달리셨고, 저도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부모님의 일을 돕기 위해 학교도 그만둬야 했습니다.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배불리 먹어 보는 게 소원이었죠.”
“어마나…….”
이서현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스티브를 동정했다.
뭐, 확실히 인상적인 이야기다.
스티브는 더욱 구슬픈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제대로 된 옷 한 벌 없어서 늘 알몸으로 다녀야 했습니다. 어릴 땐 그게 참 부끄러웠는데, 조금 커서 보니까 나쁘지 않더라고요. 저희 동네 사람들은 모두 가난해서 벗고 다녔는데, 그중엔 예쁜 누나들도 있었거든요.”
엥?
박장의 눈물이 쏙 들어갔다. 김익조와 이서현도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지만,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에게도 한 줄기 빛이 찾아왔습니다. 우연하게 한국으로 보내 주겠단 브로커를 만나게 된 겁니다. 브로커는 밀반입할 마약을 운반해주면 함께 한국으로 보내 주겠다고 했죠. 여권과 위조 신분증, 그리고 그밖에 필요한 서류가 제 손에 들어왔습니다.”
“뭔가 이야기가 이상해지는데…….”
박장이 눈썹을 움찔거리며 다른 면접관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전 마약을 갖고 한국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한국에 도착하는 즉시 절 제거하려는 브로커의 진심을 알게 되었죠. 전 브로커를 배신하고 혼자 한국에 상륙, 마약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불법 도박장을 열어 떼돈을 벌었습니다.”
이미 눈물이 마르다 못해 얼굴을 싸늘하게 굳힌 박장과 이서현은 스티브의 서류에 빨간 펜으로 선을 슥슥 긋고 있었다.
김익조는 묵묵히 스티브의 이야기를 듣다가 물었다.
“그거 불법 아닙니까?”
“이봐!”
박장의 고함에 문을 열고 직원 둘이 들어와 스티브의 양팔을 움켜잡았다. 스티브는 직원들을 떼어내려 몸부림쳤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스티브가 나가고, 박장은 혼잣말로 일침을 가했다.
“저런 놈들 때문에 성실하게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분들이 오해받는 거야.”
애초에 위조된 것도 제대로 확인도 안 한 협회가 문제 아니야?
“다음, 구지태 씨.”
“네!”
망토를 입은 안경 청년이 양손을 들어 만세를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장은 이제 말을 하기 귀찮은지 그냥 포기한 채 질문을 했다.
“구지태 씨는 헌터가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죠?”
“당연히 돈이죠! 돈 말고 또 뭐가 있겠습니까?”
지겹다.
딱 그 말이 면접관들 얼굴에 쓰여 있었다.
“그렇긴 한데, 그거 말고 뭐 자신만의 그런 건 없습니까?”
구지태는 히쭉 웃으며 면접관들의 책상으로 다가가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다. 갑작스러운 구지태의 행동에 면접관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저기……. 왜 갑자기 기도를?”
김익조가 묻자, 구지태는 벌떡 일어서서 양손으로 책상을 탁 내려쳤다.
“바로 이겁니다! 제 계획대로만 된다면 앞으로 10년 이내에 협회 자금 규모는 열 배가 될 수 있습니다.”
“오호!”
면접관들은 자금이 열 배라는 말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눈을 번쩍였다.
“그게 뭔가?”
“그건 바로 다단계와 사이비종교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조직체입니다!”
모두 자신의 귀를 의심하면서 ‘뭐지, 이 하이브리드 돌아이는……?’이라고 생각했다.
다들 여러 가지 의미로 개성이 강하다. 나도 뭔가 미친 소리를 해야 하나?
“하이브리드? 그게 뭐죠?”
이서현은 꿋꿋이 구지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구지태는 신이 나서 떠들었다.
“혼합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어쨌든 설명해 드리죠! 여기 협회에 등록된 사냥꾼들을 교육시켜 신흥종교를 만드는 겁니다.”
그거 사이비잖아!
“믿음이란 이름하에 길거리 포교, 자택 방문 등 수단을 가리지 않고 신도를 모읍니다. 각 신도는 일정 기간 정해진 할당량의 신도 수를 채워야 되며, 달성하지 못할 시 벌금을 물게 합니다. 대신 할당량을 달성하면 지원금이란 명목으로 수고비를 지급, 거기에 자신이 전도한 사람이 할당량을 채우면 거기서 일정 부분을 떼서 얹어 주는 거죠. 이렇게 피라미드 구조를 구성하면서…….”
다단계 피라미드까지? 완전 핵 쓰레기네. 근데 저거 벌써 어디서 하고 있지 않나?
구지태의 말을 듣고 있던 김익조는 박장에게 고개를 돌리며 오늘 점심 반찬에 대한 진지한 토의를 하기 시작했다.
구지태는 오직 자신만을 바라봐주는 이서현에게 초점을 맞추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동시에 전문 양성 기관을 운영, 거기서 종교적 이론과 토론 기술을 교육시켜 다른 종교를 논리적으로 압박, 전략적으로 퇴치하는 방법까지 연구하는 겁니다. 모인 인원은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곳에는 어디든 투입, 믿음이란 이름하에 무상으로 일을 시켜서 자금을 벌어들이게 할 수 있죠. 게다가 지속적인 자원봉사로 이미지 환기는 덤! 그렇게 점차적으로 세력을 넓혀서 자금과 규모를 불린 다음에 최후에는 정치권과 결탁, 이 나라를 우리 손에…….”
결국 이서현까지 구지태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포기, 면접관들은 입을 모아 외쳤다.
“다음!”
“아니요, 잠깐만! 좀 더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이건 정말 성공할 확률이 높습니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라고요! 현 종교계의 타락과 현대인 특유의 불신감을 적절히 뒤흔들고, 거기에 한국 정치 특유의 무책임을…….”
면접관들은 동시에 손을 까딱이며 고개를 흔들었다.
“다음!”
몇 번 더 자신의 주장을 토로하던 구지태는 결국 인상을 구기며 자리에 앉았다. 그 얼굴에는 치욕과 원한이 깃들여 있었다.
“두고 보자. 이 쓰레기들……. 감히 날 무시해?”
구지태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그것을 찌그러뜨리며 분을 풀었다.
한동안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쭉 이어졌다.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 남성의 이름은 김포산. 그는 면접관들이 물은 ‘헌터 협회장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란 질문에 ‘그게 뭐죠? 먹는 건가?’라고 답했다.
“다음!”
다섯 번째인 까무잡잡한 피부의 여성, 유안나.
유안나는 ‘헌터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란 질문을 받고, ‘광기’라는 짧은 답변을 내놨다.
“다음, 김대팔!”
면접관들의 호령에 손을 든 것은 바로 공룡 인형 옷을 입은 사람이었다.
녹색에 이빨과 발톱이 달린 티라노가 손을 든 모습이 꽤 귀여움을 자아냈다.
김대팔은 티라노의 입을 통해 면접관들에게 말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탈을 벗을 수 없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떳떳이 자기 정체를 공개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자네 신상을 어떻게 파악하겠나?”
인형탈의 짧은 앞발이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티라노의 입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바로 직원의 친필 사인과 도장이 찍힌 일종의 증명서류였다.
“이미 사전에 본인 확인을 마쳤습니다. 여기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 김대팔이 맞습니다. 조금 전에 직원에게서 받은 확인 서류입니다.”
서류를 받아서 확인한 면접관들은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김대팔을 노려봤다. 입속에서 살짝 비치는 안광에서 H력이 흘러나오며 티라노의 머리를 희게 물들였다.
“오호!”
다른 지원자들까지 함께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새삼 H력의 중요성을 느껴졌다.
“뭐, 그럼 그건 그렇다고 치고……. 그럼 대팔 씨는 요즘 가장 심각한 문제인 갑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티라노는 짧은 팔로 머리를 긁으며 고민했다. 그 모습에 김대팔이 참 귀엽다고 생각했지만, 티라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그런 생각을 무참히 짓밟으며 면접실을 충격에 몰아넣었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옛말에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라는 말이 있듯이 갑질이 싫으면 떠나면 됩니다. 적은 일자리에 얽매여서 자존심을 버리는, 그런 자존심 없는 결정이 오늘날 갑질 문화를 만든 원동력이 된 겁니다. 수요가 공급을 넘어선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죠.”
김익조는 고개를 들어 허공을 응시했고, 입으로 뭔가를 웅얼웅얼 중얼거리며 김대팔의 대답을 되뇌었다.
“다음, 김상팔 씨.”
박장의 목소리.
방심하고 있다가 화들짝 놀랐다. 당연히 김대팔에게 뭔가 추가 질문이 들어갈 줄 알고 방심한 상태였다.
에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용기를 내어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목청을 짜냈다.
“넵!”
선생님의 출석체크에 답하는 모범생처럼 손을 들면서 힘차게 소리쳤다.
박장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통과!”
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