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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31화 (31/250)

31화

31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눈빛이 변했다. 특히 직원들은 방금 전 발언에 진지하게 귓속말을 속닥였다.

“저도 여자 엉덩이는 좋아하지만, 정말 끝내겠습니다. 댁하고 어울리는 건 펑키한 저에게 정말 치명적입니다!”

이, 이놈도 의심스러워! 게다가 자기 입으로 펑키와 스타일리시를 입에 담았어?

그래도 스스로 튄다는 자각은 있는 모양이네. 하긴, 대한민국에서 콧수염과 파마머리로 살아간다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지.

하불로도 아지랑이를 일으켜 자신의 몸을 감쌌다. 그러자 파마머리가 점차 자라나더니, 소위 말하는 폭탄 머리처럼 거대한 구 형태를 띠게 되었다.

“나의 펑키를 보여 주겠어! 다들 각오하라고!”

폭탄 머리는 계속해서 커졌고, 지켜보던 사람들은 직감적으로 하불로의 능력을 눈치챘다.

펑키는 그럴 때 쓰는 게 아니야! 그건 펑키가 아니라 ‘테러’라고! 이 미친 자식, 그냥 평범한 추행범이면 어디가 덧나는 거냐?

부로수도 하불로의 과감한 능력에 겁을 집어먹은 것 같다.

부로수는 천천히 몸을 띄워 링에서 벗어나려 했다.

“심판! 링을 벗어나는 건 실격 아닌가요?”

폭탄마 주제에 직원은 심판이라 불렀다. 그러나 질문 자체는 정당. 직원은 곧바로 부로수를 제재했다.

“부로수 씨. 링으로 돌아가십시오. 링에서 벗어나면 포기 의사로 간주합니다.”

직원은 부로수를 링으로 돌려보낸 후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최대한 링에서 먼 자리로 이끌었다.

하불로의 신체 능력이나, 능력 발동 시 보인 아지랑이의 크기로 볼 때 H력은 별로 강하지 않은 편.

아마 폭탄 머리가 정말로 폭발해도 그리 심각한 피해는 아닐 것이다.

아, 물론 바로 옆에서 당하는 사람에겐 예외다.

“나, 나보고 죽으란 건가? 사, 상대를 죽이면 실격이잖아?”

직원은 링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부로수의 질문에 답했다.

“그건 실격이 아니라 형사재판행입니다! 알아서 잘 살아남아 주십시오! 저희는 그저 결과만 판단할 뿐입니다. 링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저희가 알 바 아닙니다.”

역시! 역시 한국이야! 일을 이따위로 처리하는구나! 아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지부여! 암, 이런 개판이 바로 진정한 코리아. 세계 속의 한국이라고!

일종의 치킨게임 상태.

부로수는 풍선처럼 변해 하불로를 공격할 기회를 노리고, 하불로는 그냥 자폭할 심산. 서로 상대방이 기권하거나, 알아서 져 주길 바라는 눈치다.

즉, 양보는 없다!

최대한 벽에 달라붙어 링 위의 상황을 지켜봤다.

확실히 제3자 입장에선 흥미로운 구경거리다. 누가 이기든, 다음 시합은 이것보다 수준이 높을 것이다.

문제는 하불로의 폭발이 어느 정도냐는 것.

불안은 빠르게 방 안에 퍼져 합격자들 사이를 메웠다.

하불로의 자폭, 승부의 행방, 그리고 다음 시합이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긴장감.

미지란 이름의 동질감 덕에 응시자들은 서로에 대한 경계를 조금 누그러뜨렸다.

너무 위험하고, 또 너무 극단적이기에 오히려 마음을 놓은 것이었다.

본래 헌터란 직업 자체가 위험으로 가득한 일! 겨우 이런 일로 좌절해서야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게다가 여차하면 각자가 지닌 능력이나, H세포로 방어할 것이다. 그러면 뭐, 최소한 죽진 않겠지.

나만 빼고…….

“저기…….”

“응?”

앗! 주아란이 날 부른다.

뭐지, 이번엔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아깐 발차기였으니, 이번엔 주먹지르기라도 할 셈이냐?

혹시……같은 처지라서?

아란의 뒤로 아까완 다른 것이 보인다.

조금 전까지 서로 거리를 두던 응시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하는 모습.

헌터와 사냥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협동성, 그 사소한 잔뿌리를 본 것 같다.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는 단순한 건가?

일단 나도 아란과 말문을 트자.

“왜요, 아란 양?”

한참 어린 애한테 존대를 하려니 입이 가렵군. 하지만 예의란 건 지켜서 나쁠 게 없다.

“정말로 폭발할까요?”

얘도 불안한가?

아까 발차기를 날릴 때의 기세는 어디로 간 건지, 아란도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솔직한 감상으로는 하불로의 자폭보다 아란의 발차기가 더 아플 것 같다.

“차라리 그냥 터지면 좋을 텐데……. 여자를 만져도 되는 건 여자뿐이라고, 큭큭큭.”

유일하게 홀로 앉은 갈리의 웃음.

모두가 그 소리에 놀라 조금씩 갈리와 거리를 벌렸다.

이 사람도 의심스럽단 말이지.

무슨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 의심스럽냐? 그리고 여자라도 다른 여자를 함부로 만지면 안 되거든요?

무시하자.

쓴웃음을 지으며 아란에게 대답했다.

“하하하. 터지더라도 걱정 말아요. 어차피…….”

앗.

말하는 도중에 하불로의 폭탄 머리가 터졌다.

폭발하면서 일어난 열과 충격으로 링 바닥이 그슬렸고, 바로 옆에 있던 부로수는 휘리릭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위력은 고폭수류탄의 약소화 버전.

다행히 링 바깥은 피해가 거의 없었다.

부로수는 바닥에 쓰러져 기절.

하불로는 폭발 충격으로 링 위에 누워 있다.

시합은 끝난 것 같은데, 문제는 판정이다.

일단 직원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러면 어떻게 되는 거죠?”

애매하다.

누가 봐도 애매한 상황.

분명 시합 주제는 상대방을 생포하는 사냥이었는데, 이 망할 인간들이 시합을 문자 그대로 날려 버렸다.

일단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때 부로수는 장외. 하불로는 속행 불가. 거기에 둘 다 상대를 생포하는 데 실패.

생포의 의미를 어떻게 두냐가 중요할 것이다.

“두 분 다 실격입니다. 좋은 본보기가 나왔으니, 저희로선 앞으로 진행하기가 수월하겠군요.”

음, 역시 그렇게 처리하는 건가.

사냥이란 것은 어디까지나 일. 그것도 아주, 아주 위험한 일이다. 그런 일을 하는 도중에 자신의 몸을 추스르지 못한다면 당연히 자격 미달. 애초에 이런 상황은 ‘생포’라 할 수 없다.

실제 사냥이었다면 완벽한 실패, 목숨이 위험해지는 상황이다.

직원들은 빠르게 부로수와 하불로를 방 밖으로 옮겼다.

들것에 실려 나가는 두 사람은 자신들이 떨어졌단 사실도 모른 채 편안한 표정으로 자고 있었다.

“잠시만요!”

빠르게 들것에 다가가 부로수와 하불로에게 손을 댔다.

아직 희미하게 남아 있는 H력.

양손으로 각각 다른 사람을 잡으니, 두 사람의 H력이 내 몸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하하. 이렇게 H력을 모으니까 좀 거지 같네.

“흐음…….”

두 사람의 기억. 최근에 있던 사건, 그 단면적인 파편이 내 머릿속으로 흘러든다.

그렇다.

난 다른 사람의 형질, 본성, 인격, 파편 등을 받아들일 수 있다.

H력으로 신체 능력이 증가하는 건 H세포가 가진 기본적인 기능일 뿐이다.

비슷해 보여도 주아라의 능력은 그 기본 능력을 전체적으로 강화시키는 것이고, 최향자의 능력은 완력에 집중하는 것.

다른 사람들도 기본적인 신체 능력 증가와는 별도로 자신만의 특수한 능력을 갖고 있다. 문제는 그 능력이 다 제각각이란 점, 그리고 그 고유한 ‘능력 발현’에 저마다 제약이 있단 점이다.

기본 능력인 능력 발동은 손쉽지만, 능력 발현은 능숙해지는 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다행히 내가 읽은 부로수와 하불로의 기억에서 오늘 아침에 관한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내가 원하던 치한 짓에 대한 것이 없었다.

두 사람이 무고라면, 남은 건 한 사람이군.

“비키십시오! 부상자를 옮겨야 합니다.”

“죄, 죄송합니다.”

들것에서 떨어져 제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이제 내 눈은 링이 아닌 단 한 사람의 용의자, 갈리에게 꽂힌다.

무엇이 들었는지 상상이 안 되는 갈색 바바리코트.

혹시 저 안에 흉기가 들어 있는 건 아닐까?

음침한 긴 머리는 꼬불꼬불한 게 꼭 미역 줄기 같고, 가느다란 손가락은 뻣뻣하게 허공을 긁는다.

저런 사람에게 함부로 손을 댔다간…….

난 살고 싶다!

일단 기회를 노리자. 근데 내가 마음을 읽어도 그걸 어떻게 증명하지?

법적 증거로서 효력이 있을까? 어제 아저씨 덕에 알게 된 능력이지만, 이제 겨우 걸음마 수준이란 것도 감안해야 한다.

읽을 수 있는 기억은 무작위, 그것도 최대 한 시간 정도다.

앞의 두 사람은 운이 좋아 딱 그 순간의 기억이 읽혔지만, 다음에도 그러리란 법은 없다.

“다음! 주아란 대 변태남!”

와, 범인이네. 진범이네! 페이퍼타올이 요기잉네?

변태남은 이름과 달리 훤칠한 키에 선글라스를 쓴 멋쟁이.

복장은 반팔 와이셔츠에 반바지, 심지어 신발은 그냥 슬리퍼다. 부로수와 마찬가지로 휴가지 패션. 하지만 옷걸이 덕에 오히려 패션이 빛을 발한다.

머리는 시원하게 넘긴 올백.

“잘 부탁해. 꼬마 아가씨.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잘해 보자고.”

변태남은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두 사람의 신장 차이는 허리를 숙인 변태남과 꼿꼿이 선 주아란의 시선을 같은 선상에 놓았다.

건장한 청년과 왜소한 소녀의 대결.

두 사람은 링 가장자리에 서서 서로를 마주 봤다.

“규칙은 같습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생포하시면 됩니다.”

종이 울렸지만 두 사람은 제자리에서 발을 떼지 않았다.

“하하하. 무서워할 것 없어. 이 오빤 아주 부드러운 사람이거든?”

변태남은 양팔을 벌리며 한껏 여유를 부렸다. 반면에 아란은 옆으로 서서 발차기 준비 자세.

극과 극인 두 사람의 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설마 이번에도 터지는 건 아니겠지?

“안 올 거야? 그럼 이 오빠가 먼저 가 주지!”

변태남은 양손에 주먹을 쥐어 턱과 가슴 앞을 가렸다. 그리고 양다리는 보폭만큼 벌렸다.

전형적인 권투 자세.

흠, 이번엔 이종격투기인가 보네.

“시작하자고!”

변태남의 발이 빠르게 제자리를 찼다.

앞뒤로 빠르게 움직이는 제자리 뛰기는 카드를 빠르게 섞는 딜러의 손놀림과 흡사하다.

현란한 스텝, 위협적인 운동성.

변태남은 빠른 발걸음으로 리듬을 타며 아란에게 다가갔다.

“하앗!”

두 사람의 거리 약 2m.

가만히 있던 아란이 기습적으로 앞으로 튀어나가 발차기를 날렸다.

빠르게 찌르는 날아차기.

발끝이 정확히 변태남의 이마를 노렸다.

양 주먹이 상체를 방어 중인 상태에서 확실히 합리적인 선택. 하지만 명중하진 못했다.

변태남은 아란의 발끝을 뒤로 살짝 물러나 간단히 무력화시켰다.

종이 한 장이란 말이 절로 나오는 거리.

아란은 재빨리 다리를 거둬서 스텝을 뛰었다.

“제법 매서운 발차기인데? 단련을 아주 잘했어. 하지만…….”

변태남의 아지랑이가 불길하게 늘어났다.

어깨 위에서만 머물렀던 아지랑이의 범위는 전신으로 확대. 마치 증기를 뿜어내는 기관차 같았다.

“그래 봤자, 아마추어야.”

변태남은 크게 다리를 벌려 단숨에 아란과의 거리를 좁혔다.

젠장, 장마리처럼 속도가 빨라진 건가?

아란 앞에 선 변태남의 피부는 달궈진 강철처럼 빨갛게 변했다.

“하하하!”

아란이 발차기를 날리기 전, 변태남의 주먹이 아란의 턱을 위로 밀어 올렸다.

깔끔한 어퍼컷이 작렬.

아란의 고개가 무력하게 뒤로 젖힌다.

상당한 유효타. 아래턱은 제대로 맞을 경우 뇌진탕에 걸릴 수 있다.

“으으…….”

아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어지러운 것과는 별개로 엄청 아플 것이다. 아무리 신체 능력이 강화되어도 통감이 무뎌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선 오히려 더 민감해지기도 한다.

“하하하! 뭐야? 꼬마 아가씨가 아니라 그냥 꼬맹이잖아?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오지 그래?”

“힘내!”

나도 모르게 응원의 말이 튀어나왔다.

몇 마디 나눈 인연이라서 그런 걸까?

하하. 쓸데없는 오지랖이다. 젠장…….

“포기하지 마!”

머리와는 달리 주둥이는 제멋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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