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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26화 (26/250)

26화

26화

루호는 뿔을 가시거머리의 입안에 쑤셔 넣었다.

가시거머리의 톱니 같은 이빨들이 뿔을 갈아 버리려 했지만, 역부족. 차원이 다른 강도에 오히려 이빨이 부러졌다.

“좋았어! 호규 씨, 뒤로 물러나 있어요!”

호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완전히 목이 잠긴 모양이다.

가시거머리는 가시 촉수를 뻗어 다가오는 날 노렸다.

오른쪽에서 다가오는 촉수 두 개를 피하기 위해 달리는 방향을 꺾어서 회피, 스쳐 간 검치삵의 엄니에 바지가 찢어졌다.

왼쪽에서 휘갈긴 촉수는 점프로 회피.

뿔멧돼지의 뿔에 신발 바닥이 찔려 발밑이 허했지만, 일단 무시했다.

전방에서 다가오는 촉수는 허리를 굽혀 피했다. 그렇게 간신히 가시거머리의 입가에 다다랐다.

“받아라!”

주머니에서 남은 조명탄을 꺼내 가시거머리의 입안에 던져 넣었다. 가시거머리는 자기가 뭘 먹는지도 모르면서 일단 입안으로 들어온 것을 꿀꺽 삼켰다.

“잘 가라.”

가시거머리의 입속에 발사기를 넣어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루호야, 튀어!”

루호와 난 잽싸게 가시거머리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직후, 가시거머리의 몸속에서 두 개의 불꽃이 폭발했다.

이번엔 몸부림조차 치지 못하는 녀석의 모습에 안도감을 느꼈다.

가시거머리는 하늘을 향해 입을 활짝 벌렸다. 그리고 그 상태로 굳어서 천천히 타올랐다.

삼국지에 보면 동탁 배꼽에 심지를 꽂아 인간 양초로 태웠단 구절이 있는데, 우린 그거랑 비슷하게 가시거머리로 모닥불을 만든 것이다.

불꽃은 형광이 아닌 우리가 흔히 아는 붉은색과 주황색이 뒤섞여 있다. 아른아른 피어오르는 연기에서 지방질과 노린내가 심하게 났다.

“어지간히 처먹었나 보군.”

아저씨는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 우리를 치료했다.

물론 치료라기보다는 근육 이완이나, 마사지에 가깝다.

가시거머리와 싸우는 동안 누구도 다치지 않았단 사실이 내심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야, 근데 이거 너무 잘 타는 거 아니냐?”

아저씨가 다급히 내 팔을 잡아당겼다.

아저씨답지 않게 당황한 모습.

아, 혹시 산불을 염려하시는 건가?

참고로 사냥 구역에서 허가받지 않고 불 피우는 것은 범죄에 해당한다. 물론 사냥 구역이 아니라 그냥 보통 산에서도 함부로 불을 피우면 안 된다.

“괜찮아요. 이 정도로는 크게 안 번질…….”

아저씨가 대뜸 내 따귀를 때렸다.

“야, 이 멍청아! 그딴 산불이 중요한 게 아니야! 저놈이 이 산에 사는 다른 괴물들을 잡아먹었으면 저놈 배 속에 어마어마한 부산물이 있을 거 아니야? 아까 보니까, 막 촉수 끝으로 뽑아서 쓰던데……. 그런 게 다 저 속에 있을 거 아니야! 지금 얼마가 타고 있는 건지 알아?”

처, 천재다!

“어, 어떻게 하죠?”

조명탄으로 붙은 불이라 다 타기 전에는 안 꺼질 텐데…… 그래도 거북악어의 등 껍데기가 있으니까, 본전은…….

“응?”

없다.

거북악어의 등 껍데기가 없다!

“아, 아저씨! 루호! 호규 씨! 다들, 등 껍데기 좀 찾아봐요!”

아저씨는 내 말의 뜻을 바로 이해.

다른 두 사람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만 쳐다본다.

“거, 거북악어 등 껍데기가 없어졌다고! 등 껍데기가 없어졌어!”

우리는 불타는 가시거머리 주변을 서성이며 거대한 등 껍데기를 찾았다.

무슨 조약돌처럼 굴러갔을 리도 없고, 그렇다면?

아저씨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제기랄! 이 상도덕도 없는 새끼들! 감히 거지 똥구멍에서 콩나물을 빼먹어?”

저런 표현은 어디서 배우는 거지?

아저씨는 씩씩거리며 땅바닥 한 곳을 가리켰다.

“스캐빈저야! 이건 스캐빈저 짓이라고!”

등 껍데기가 있던 자리.

거기서부터 그 뒤 수풀까지 뭔가가 땅에 쓸린 자국이 보인다. 크기로 보아 등 껍데기가 확실.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도 있다.

“조직적이네요. 발자국 형태를 보면 여러 명인 것 같아요.”

루호가 발자국 하나하나를 자세히 보며 말했다.

호규는 입을 다문 채 루호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라도 쫓아갈까?”

“그건 안 돼.”

아저씨는 단호히 반대했다.

“우린 더 이상 전투가 힘든 상태야. 저쪽이 비록 남의 사냥감을 훔쳐가는 좀도둑이라도 어느 정도의 전투 능력을 가졌을지 모르는 이상, 함부로 경거망동해선 안 돼.”

옳은 말씀이다.

조명탄은 전부 소모.

루호는 제한 시간 임박.

호규는 목이 쉰 상태.

쌩쌩한 건 아저씨 혼자. 하지만 전력을 기대하긴 어렵다. 스캐빈저 쪽에도 능력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지금 쫓는다고 해도 어느 방향으로 갔을지 알기 힘들다.

3급 사냥 구역의 출입구는 모두 다 해서 5개.

우리가 들어온 정문 말고도 4개나 더 있다.

“젠장. 오늘은 정말 엿 같은 하루군.”

아저씨는 허탈한 심정에 그냥 땅바닥에 주저앉는다.

아저씨를 따라 나와 루호, 호규도 그대로 바닥에 털썩 엉덩이를 깔았다.

“손해가 막심하네. 큰 맘 먹고 새로 산 건데…….”

발사기 총구를 젖혀 빈 약실을 확인한다.

전탄 소비.

휑한 마음처럼 약실엔 아무것도 없다.

“뭐, 이런 날도 있는 거겠죠. 어쨌든 가시거머리를 해치웠단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거예요.”

루호가 애써 위로했다. 아저씨도 루호의 말에 동의하며 거들었다.

“그래.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고 원래 처음부터 너무 잘 풀리면 뒤가 구린 법이다. 오늘은 그냥 서로 호흡 맞췄단 점에 의의를 두자고.”

우리는 다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요, 호규 씨. 그래도 수고비 정도는 제가 개인적으로 드릴게요.”

호규는 손사래를 쳤다.

여전히 목이 잠겨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태.

사실 호규와는 좀 진득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여러 가지로 궁금한 점이 많고, 신경 쓰이는 것도 있다.

“상팔 형, 저게…… 뭐죠?”

루호가 가시거머리를 보며 물었다.

응?

가시거머리를 감싼 불꽃이 갑자기 번쩍이며 빛을 낸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헤집고 뿜어지는 한 줄기 빛.

섬광에 눈이 부셔 고개를 돌렸다.

“이, 이건 또 뭐야?”

모두 빛을 등지고 선 상황.

빛줄기의 폭발적인 발산과 함께 가시거머리의 몸에서 불꽃이 꺼졌다. 그리고 빛은 불꽃이 꺼지고 얼마 안 가 사라졌다.

“이거 보통 빛이 아닌데?”

아저씨는 허겁지겁 가시거머리에 다가갔다.

타다 만 가시거머리는 넝마 자루처럼 변한 상태.

너덜너덜한 살가죽이 열로 인해 녹아내렸다.

아저씨는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가시거머리의 가죽을 걷어냈다.

“흠. 이건……!”

아저씨는 열심히 가시거머리를 쑤셨다.

가시거머리는 나뭇가지의 움직임에 따라 여러 조각으로 분리.

몸체가 무너져 내리며 배 속의 내용물이 흘러나왔다. 새까맣게 탄 엄니와 뿔, 발굽, 발톱 등등. 타 버렸단 사실이 아까워 미칠 만큼 여러 가지 부산물이 보였다.

“오호!”

아저씨는 잿더미 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리고 쪼르르 달려와 우리 앞에 손을 내보였다.

“이것 봐. 끌끌끌!”

아저씨의 살찐 손 한가운데 놓인 둥그런 물체.

붉은색으로 번쩍이는 그것은 공 같기도 하고, 구슬 같기도 했다.

“무슨 알 같군요.”

루호의 손가락이 붉은 물체를 건드렸다.

손가락으로 누르는 힘을 보면 제법 딱딱한 것 같다.

“알?”

“끌끌끌! 그래. 이건 아주 귀한 거야. 돈 주고도 못 구하는 거라고!”

“도대체 뭔데요?”

너무 무게를 잡으시네.

설마 이렇게 무게 잡아놓고, 또 ‘사실 응가야!’하는 건 아니겠지?

“이건 금살모사의 알이야.”

“금살모사면……. 3급 사냥 구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괴물이잖아요?”

금살모사.

맹독을 지닌 구렁이로 3급 비명횡산의 사망률을 높이는 데 일조하는 괴물이다. 위험도도 그럭저럭, 값어치도 그럭저럭, 개체수도 그럭저럭. 한마디로 3급 사냥 구역의 전투력 측정기라 할 수 있다.

“괴물의 알은 부르는 게 값이야. 성체가 강하면 강할수록 알의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지.”

“근데 이거 불 속에 있었으니까, 완전 삶은 달걀 된 거 아니에요?”

“설사 그렇다고 해도 가치는 충분해. 이거 제대로만 팔면 짭짤할 거야.”

아저씨의 밝은 목소리.

옆에 선 루호도 빙그레 웃었다.

“전화위복이란 거군요?”

“그건 아니지! 더 벌 수 있었는데, 덜 벌게 된 것뿐이야.”

못 말려!

어쨌든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아 다행이다.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요?”

“글쎄……. 구매자만 잘 만나면 몇 억은 가볍게 받겠지. 하지만……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아마 1억 받으면 잘 판 걸 거다.”

“그럼 아저씨가 잘 팔아 주세요.”

아저씨는 내 말에 흠칫 놀랐다.

“끌끌끌! 날 믿는다는 거냐? 좋아! 내가 책임지고 팔아 주지!”

우리는 스캐빈저의 씁쓸함을 금살모사의 알로 가렸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칭찬을 하며 비명횡산을 내려왔다.

내려오는 도중에 우릴 습격했던 갱벌레 무리와 또 접촉.

한바탕 난리를 치며 산을 굴러야 했다. 그리고 만신창이가 된 채로 주차장에 도착해 서로를 끌어안으며 울었다.

이놈의 밑바닥 인생! 운도 참 지지리도 없지.

그래도 오늘 사냥에서 난 우리 팀의 희망을 보았다.

가시거머리는 3급 사냥 구역의 은둔 괴물. 웬만하면 만날 일이 없는 사냥감이다.

그런 놈이 다른 괴물을 잡아먹고 어마어마하게 비대해져선 우리 앞에 나타났다.

다른 팀이었다면 전멸했어도 이상할 게 없던 상황. 우리는 그것을 이겨 냈다.

“좋았어! 오늘은 상팔이가 쏜다!”

돌아가는 미니 밴 안.

아저씨가 대뜸 소리쳤다.

천장으로 뻗은 주먹엔 자신감이 담겼고, 소리친 얼굴에는 즐거움이 넘쳐났다.

내가? 내가 왜요? 내가 왜?

아니, 물론 회식은 해야겠지만, 아직 사냥 수익도 안 나왔는데…….

“하하하.”

루호와 호규도 아저씨에게 호응하며 웃었다.

크윽, 오늘은 철저하게 당하는 날인 건가.

뭐, 팀장으로서 한턱 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하하……하……. 근데 팀 이름은 뭐라고 짓지?

아직도 마땅한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이러다가 정말로 ‘엄마랑, 옆집 아저씨랑’ 같은 말도 안 되는 이름이 되는 건 아니겠지?

어째 불안하다.

***

대한민국 남자의 표준적인 본능 중 하나!

눈 뜨면 발가락으로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른다!

본체에 불이 들어오고,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정확히는 모터가 아니라 쿨링팬.

모니터가 ‘짠’ 하고 켜지며 정겨운 ‘위도우10’의 로고가 떴다.

트튜리팟에 접속.

내 동영상 조회 수를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6백만에 조금 못 미쳤지?

“와!”

감탄. 그리고 잠시 정신이 혼미해진다.

드래건 사냥 동영상의 조회 수는 무려 천만.

밑에 달린 댓글은 어느 나라 말인지 다 파악이 안 될 정도로 다양한 언어로 가득하다.

“음. 진지하게 인터넷 방송 쪽으로 나서 볼까?”

극소수의 인기 업로더들은 일반인 수준에서 상상도 못 할 수입을 얻고 있다.

물론 모든 업계가 그렇듯 승자 독식.

그 아래 깔린 무수한 무명 업로더들은 한 달에 단돈 만 원 벌기도 빠듯한 실정이다.

실시간 번역 서비스를 이용, 댓글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다들 글자는 다르지만, 뜻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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