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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19화 (19/250)

019화

019화

“전 이런 분위기를 쇄신하고 싶어요. 지금은 작은 팀이지만, 멀리 나아가선 업계의 흐름을 바꿀 구심점이 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조루호 씨가 필요해요. 조루호 씨가 활동하신 기간은 짧지만, 경력은 그 누구보다 화려하신 것 잘 알아요. 그리고 그런 분을 제가 감히 영입한다는 게 얼마나 얼빠진 짓인지도 알죠.”

조루호의 기색이 다소 누그러진 모양. 하지만 여전히 눈빛이 날카롭다.

“하지만, 그렇기에 전 이 일에 목숨을 걸었어요. 조루호 씨를 얻을 수 있다면, 전 목숨도 불사할 거예요. 제가 왜 끝장을 본다고 한지 아세요? 전 포기할 수 없어요. 전 포기하지 않아요! 조루호 씨께서 허락하실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을 거예요.”

조루호는 할 말을 잃고 날 쳐다봤다.

내 말에 감동했나? 아니면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팔씨름이요? 열 번, 백 번, 천 번을 져도 전 단 한 번을 이길 때까지 계속할 거예요. 고집이라 부르셔도 좋고, 민폐라 손가락질하셔도 좋아요. 전 진심이에요. 전 고작 조루호 씨의 실력이나, 경력을 원하는 게 아니에요. 전 저와 뜻이 맞는 사람을 원해요. 그리고 조루호 씨께서 누구보다 저와 잘 맞는다는 걸 잘 알아요.”

말을 끊으면 안 된다. 이대로 쐐기를 박아야 한다.

그동안 보조 헌터로 버텨 온 내 혓바닥이여, 고지가 얼마 안 남았다!

조루호의 경력 중 유일한 오점은 마지막 사냥에서 동료 헌터 중 하나가 중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조루호가 헌터 일을 그만둔 결정적 요인이라면, 조루호는 의외로 속이 여린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떼를 쓰진 않겠어요. 그저 서로 전력을 다하길 원해요. 어느 한쪽이 나가떨어질 때까지 승부를 내는 것이죠. 전심전력, 진검승부. 그것만이 제 진심을 증명할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해요.”

그렇다.

말은 요란하지만, 결국 떼를 쓴 것이나 다름없다.

얕은 수법에 조루호는 얕은 웃음으로 반응한다. 비웃음에 가깝다. 하지만 내 태도가 너무 뻔뻔해서 그런지 그냥 고개를 끄덕인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승부를 내자는 거죠?”

왼손 검지를 세워 조루호에게 내밀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전 능력자가 아니에요. 그냥…… 보조 헌터죠. 그렇기에 조루호 씨가 절 이기는 건 아주 간단할 거예요. 반대로 제가 조루호 씨를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깝죠.”

“그러니까, 그쪽이 단 한 번이라도 이길 때까지 하자는 건가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조루호의 입에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많이 어이가 없긴 하지.

아마 속으로 ‘뭐 이런 놈이 다 있지?’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조루호의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몸을 훑는 눈동자.

조루호의 시선에 몸이 떨린다. 조루호 정도 되는 실력자라면 금세 내 몸 상태를 파악할 터. 아마 조루호가 보기에 지금의 난 그냥 보통 사람일 것이다.

조루호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수긍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내가 무례했던 만큼 녀석은 내 콧대를 꺾어 줄 심산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수락할 리가 없다.

마침내 의견이 일치한 우리는 서로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손을 잡았을 뿐이었음에도 조루호의 역량이 오감을 넘어 육감적으로 날 위협했다.

만약 조루호가 날 얕보고 H세포를 쓰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나에게도 승산이 있다.

보조 헌터로서 열심히 굴러온 탓에 일반인 치곤 근력이 되는 편. 관건은 조루호가 능력을 발동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눈치껏 조루호의 악력을 가늠해 봤다.

말라 보이는 피부 아래 꽉 찬 근육이 느껴진다. 힘줄은 탱탱하게 움찔거리고, 골격은 단단하게 중심을 지탱한다. 묵직한 압박이 꼭 사람 손이 아니라 고릴라의 손처럼 두텁다.

“시작할까요?”

조루호의 표정이 한결 밝다.

역시 손을 맞잡는 순간 내가 자신의 상대가 되지 못한단 사실을 눈치챈 것 같다.

“하하하. 그, 그럴까요? 그럼 시작 신호는 제가 해도 되죠?”

“마음대로 하시죠.”

심호흡을 하면서 준비 구호를 속으로 연습한다.

하나, 둘, 그리고 셋. 처음 숫자를 배우는 아이의 오물거림.

입속으로 수를 세고 힘줄을 움찔거려 타이밍을 잰다.

순발력! 시작과 동시에 넘겨 버린다!

내가 이길 방법은 오직 그것뿐이다.

“그럼 셋에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음대로 하시죠!”

조루호의 밝은 표정과는 반대로 난 죽을 맛이다.

“하나.”

맞잡은 양측 손이 긴장한다.

팔씨름이란 본래 ‘시작’과 동시에 힘을 주는 법.

지금 나와 조루호의 팔엔 조금도 힘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그럼에도 팔꿈치에 닿은 탁자가 부르르 떨린다.

“둘.”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조루호의 웃음엔 승리를 향한 기대와 내 실력에 대한 흥미, 내 웃음엔 패배를 바라본 불안과 계책에 대한 집착이 담겨 있다.

“셋!”

시작 신호와 함께 몸이 경직됐다. 난 앞뒤 잴 것 없이 젖 먹던 힘을 다해 팔을 넘겼고, 다행히 시작은 내 바람대로 됐다.

팔의 각도는 약 70도.

생각 이상의 청신호다. 조금만, 아주 쪼끔만 더 넘기면 조루호의 손등이 탁자에 닿는다.

조루호 녀석, 날 어지간히 얕본 모양이다. 건방지게 능력 발동도 안 하다니……!

“하하하…….”

어?

조루호가 웃는다. 우와. 이거, 이거 그거잖아!

갑자기 불안함이 밀려온다.

“이게 끝인가요?”

조루호는 짧게 한숨을 쉬더니 금세 팔을 일으켰다.

내가 저항을 한 것이 무색할 정도, 말이 안 나온다.

조루호는 여유 만만하게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리고는 왼손으로 쫙 펴서 내밀었다.

“지금 전 제 전력의 50%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능력 발동도 하지 않았는데, 겨우 이 정도도 넘어서지 못하시는군요.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입으로만 떠드시네요, 김상팔 씨.”

나와 조루호 사이엔 고작 다섯 손가락뿐이었지만, 그 뒤엔 그보다 훨씬 잔인하고 거대한 차이가 있다.

아무리 노력하고 연습해도 뛰어넘을 수 없는 것, 바로 ‘재능’이다.

조루호는 겉보기에 딱히 근육질이 아니다. 마른 체구에 평균적인 키, 얼굴은 딱 병약한 미청년이다.

그에 비해 난 보수나, 대우에 상관없이 줄곧 보조 헌터로서 일을 해 왔다.

몸은 전체적으로 다부진 체형, 근육은 딱 필요한 만큼 붙어 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선 그 모진 고난을 버텨 온 육체가 하찮게 느껴졌다.

“알려 드리죠. 프로의 세계를……!”

하하하.

프로의 세계?

그래. 열심히 노력하는 나보단 천재인 조루호 쪽이 더 프로란 말에 어울린다.

프로란 결국 결과에 얽매인 존재. 성과를 내지 못하면 그걸로 끝이다. 현업에서 열심히 뛰고 있어도 결국 내 위치는 3년 전 애송이한테도 못 미치는 것이다.

조루호는 H세포의 힘없이 타고난 완력만으로 내 손을 눌렀다.

천천히 내려가는 손을 보며 이를 악문다. 그리고 죽을힘을 다해 버틴다.

소용없단 걸 알지만, 그래도 꿈틀거리고 싶다.

“크윽…….”

노력이 무색하게 손등이 그대로 탁자를 찍었다.

탁자를 때리는 듯 ‘쾅’ 소리가 나면서 탁자와 부딪친 손등이 얼얼하다.

“1승.”

조루호는 내 손을 놓고는 가볍게 손을 털었다.

H세포 능력자는 능력 발동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일반인을 훨씬 능가한다.

이는 H세포의 힘에 의해 신체의 기본적인 힘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내 능력 발동은 고작 두 번.

그것도 둘 다 어설픈 상황에서 우연히 발동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덕에 내 감각은 예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달, 지금은 능력 발동을 하지 않아도 감지 능력에서 일반인보다 뛰어났다.

역시 조루호는 진짜배기, 진짜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다. 단순 팔씨름을 했을 뿐인데, 벌써 우리의 실력 차가 명확히 보인다.

“또 하시죠.”

자신이 정한 승부, 자신이 내건 조건이 아닌가?

더 이상 물러날 구멍은 없다.

버티자, 그리고 이기자!

다시 각오를 다졌다.

반드시 이 사람을 데리고 가겠어.

조루호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손을 내밀었다.

두 번째 승부.

이번엔 최대한 버티는 전략을 택했다.

본래 공격보단 수비가 유리한 법.

너무 무리해서 팔을 움직이기보단 처음 손을 맞잡은 자세에서 몸을 굳히는 것이다.

“하나, 둘…….”

조루호는 이번에도 능력 발동을 하지 않았다.

하긴, 그럴 필요가 없겠지.

“셋!”

조루호는 처음처럼 절반의 힘.

난 어금니를 씹으며 팔을 안쪽으로 당겼다.

버텨라, 버텨라! 1초라도, 0.1초라도 좋아.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 버텨다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빤히 보이는군요.”

우리의 팔은 시작과 똑같은 상태를 유지했다.

“시답지 않은 작전이네요. 몇 번째 판에서 기권하실지 궁금하군요.”

말을 마친 직후, 조루호는 순간적으로 전력을 냈다.

압력.

그것은 기계에 의한 압사였다. 마치 프레스기에 깔린 것처럼 내 손은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며 탁자에 부딪쳤다.

스테인리스로 만든 탁자 윗면이 살짝 찌그러진다.

“2승.”

찌릿한 오른손을 털며 조루호의 본심을 추측한다.

그래, 놈의 목적은 내 의지.

내가 포기하게 만드는 것.

조루호로선 그것밖에 없다.

즉, 내가 포기하지 않는 이상 녀석이 백 번, 천 번, 만 번을 이겨도 상관없는 것이다.

관건은 내 몸, 특히 내 손이 이런 무식한 힘에 얼마나 더 버틸지가 미지수란 점이었다.

조루호가 H력을 내지 않는 이상 나 역시 계속 이렇게 승부해야만 한다.

능력 발동만 할 수 있다면, 적어도 H세포 특유의 회복 능력으로 훨씬 길게 시간을 끌 수 있다.

“계속하시죠.”

조루호는 조금의 흥분도 없이 또 손을 내밀었다.

이런 냉혈한 자식, 내 손등이 자기 때문에 퉁퉁 부은 걸 보고도 양심의 가책이 없나?

“그래, 해보자!”

존댓말도 잊은 채 우리는 팔씨름을 속행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5승.”

다섯 번째 패배가 확정되는 순간 내 손등에서 피가 튀었다.

원인은 내 손과 부딪쳐 찌그러진 스테인리스 탁자의 표면.

움푹 파인 구덩이 모서리에 손등의 취약한 부분이 충돌, 모서리 가장자리에 제대로 찔리며 핏줄이 터진 것이다.

조루호는 물에 적신 페이퍼 타월 몇 장을 가져와 탁자를 닦았다. 그리고 내게도 한 장 내밀었다.

“계속하실 건가요?”

슬며시 기권을 권하는 질문.

하하하. 이놈이 약장수한테 약을 팔려고 하네?

조루호에게 타월을 건네받아 손등을 닦았다.

“당연하지.”

보란 듯 팔꿈치로 세게 탁자를 찍으며 손을 올려놨다.

파이프의 흠집처럼 손등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상처가 보인다.

“날 꺾으려면 전력으로 덤벼, 이 조루 자식아!”

도발이라도 좋다.

아집이라도 상관없어.

어떻게든 H력을 통하게 해야 한다.

‘조루’란 말에 조루호의 얼굴에 웃음기가 가셨다.

좋았어. 그게 바로 내가 원하던 거야. 어서 날 처참하게 깔아뭉개라고!

조루호는 묵묵히 내 손을 잡았다.

냉정하고 수동적인 태도였던 조루호의 손에서 벌써부터 힘을 준 게 느껴진다. 이번엔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하나, 둘, 셋!”

시작과 동시에 손등이 탁자에 부딪쳤다.

조루호의 순수한 완력과 H세포의 능력 발동. 내 손등이 스테인리스 탁자에 착 붙어 버렸다.

손등에서 나온 피와 살점, 그리고 찌그러진 탁자 표면이 맞아떨어지며 손등이 탁자에서 떨어지질 않는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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