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화
016화
다시 찾아온 주말.
흐뭇한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사냥 방송 전문 사이트 ‘트튜리팟’에 접속, 내 계정으로 올린 영상을 확인했다.
저번 드래건 사냥 때의 영상이 인터넷에서 인기 대폭발.
인터넷 동영상 재생 횟수가 가볍게 500백만을 넘어 600백만을 향해 가고 있었다.
댓글을 보면 외국에서도 꽤나 흥미롭게 보는 것 같다.
하긴, 드래건은 동아시아에서만 서식하는 괴물로 서구권에선 희귀한 경우에 속한다.
성체가 되면 유독가스를 내뿜기에 대부분 가스를 내뿜지 못하는 유체일 때 제거하는 게 원칙.
그래서 협회에서 거금을 들여 의뢰를 낸 것이다.
댓글 반응을 보면 우리가 사냥한 드래건은 5급으로는 최상급, 일반적인 6급에는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한다.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막 H세포를 다루게 된 내 손에 죽을 리 없다.
영상은 절반 정도가 잘려 나간 수정본.
편집된 부분은 대다수 희생자가 나오는 곳이다.
죽은 이들을 존중해 영상 끝에 자막으로 희생자의 숫자만 삽입. 영상만 놓고 보면 희생자가 한 명도 없는 것 같은 착각을 느껴진다.
간혹 영상을 올리는 업로더 중 일부러 사람이 죽는 장면만 편집해 올리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암암리에 ‘블랙 업로더’라고 불리며 추앙과 경멸을 동시에 받는다.
나야 경멸하는 쪽이지만, 그런 합법적 살인 영상을 좋아하는 무리가 생각보다 많다.
다른 사람이 올린 영상을 둘러보며 참고할 만한 것은 따로 메모한다.
역시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
정말 극비의 것만 아니면 대부분 구할 수 있다.
“응?”
추천 영상 목록에서 눈에 띄는 영상 하나가 있다.
바로 일주일 전에 생방송으로 봤던 카리의 ‘코리안헌터, 24시쯤’이다.
역시 케이블 방송국과의 합작이라 그런지 조회 수가 장난 아니다.
슬쩍 클릭해 카리의 영상들을 이리저리 살폈다.
대부분 인터뷰와 잡담이 섞인 킬링타임용 영상.
‘코리안헌터, 24시쯤’을 제외하면, 그냥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여성 업로더다.
영상은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씩 올리고 있다.
“어디 보자. 최신 영상이…….”
어라?
최신 영상 업로드 날짜가 일주일 전. 그 뒤로 업로드가 되지 않고 있다.
역시 그때 이일과 함께 있다가 뭔 일을 당한 건가?
생각해 보면 이일도 꽤 부상이 심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일반인인 카리는…….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분명 잘 살고 있을 것이다. 우선 그렇게 생각하자.
슬슬 한돈 아저씨와 약속한 시간이 다가온다.
컴퓨터를 종료, 서둘러 옷을 챙겨 입었다.
아직 내 통장에 드래건의 사냥 의뢰비가 들어오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최향자에게 문자라도 보내고 싶지만, 좀 두렵다.
최향자 성격에 분명 욱하면서 ‘내가 돈 떼먹을 사람으로 보이냐?’라고 할 게 분명하다.
역시 며칠 더 기다리는 게 좋겠지?
약속 장소는 일주일 전 그 병원.
검사를 받아야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다. 나도 내 몸에 무슨 변화가 있는 건지 정확히 알고 싶다.
“어이, 김상팔!”
아저씨와 다시 만난 것은 병원 건물 앞.
아저씨는 여전히 못생겼다. 하지만 외모가 어떻든 나에겐 생명의 은인, 최대한 예의를 갖춰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세요. 한돈 아저…….”
앗!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입이 방정이다.
한돈은 어디까지나 별명, 그것도 최향자가 비아냥거리며 붙인 것이다.
최향자를 따라 속으로 한돈, 한돈 하다 보니까 완전히 입에 붙어 버렸을 줄이야.
망했다.
“흐음.”
아저씨는 어깨를 으쓱였다.
응? 뭐지? 왜 화를 안 내시는 거지?
일단 내가 먼저 용서를 구했다.
“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괜찮아. 괜찮아. 좀 시기상조긴 하지만, 원래 다들 날 그렇게 부르지. 끌끌끌!”
다들?
그럼 한돈이라 부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란 말이야?
세상에……!
아저씨는 그런 모욕적인 별명을 들어도 화가 안 나시는 건가? 어떻게 저리 태연할 수 있지?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건가?
물론 ‘한돈’이란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지만, 엄연히 사람한테 돼지라고 하는 건데…….
“괜찮아. 앞으로도 쭉 그렇게 불러. 나도 그게 편해. 알았지?”
“예? 하, 하지만…….”
“그렇게 부르라니까!”
버럭 소리를 지르는 아저씨의 얼굴에 분노보단 단호함이 드러난다. 정말 그러길 원하시는 것이다.
아이고, 아이고.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우릴 피해서 돌아간다.
그 이유는 아저씨, 그리고 아저씨가 멘 배낭 때문이다.
언제나 메고 계신 거대한 배낭.
아저씨의 허리 건강이 심히 걱정된다. 게다가 다른 행인에게 민폐.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이목이 집중된다.
키는 작아도, 옆으로 크신 분이다.
서둘러 아저씨와 일주일 전에 간 병원에 들어갔다.
올 때마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오늘도 우리 외엔 손님이 없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의사와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검사가 진행되었다.
일주일 전과 똑같이 평범한 과정. 별로 다를 게 없다.
검사 후, 나와 아저씨는 진료실에서 또 의사의 설명을 들었다.
드라마에 자주 쓰이는 재탕 장면 같다. 똑같은 진료실 형광판, 그리고 그 위에 걸린 엑스레이 사진.
오늘은 좀 다르겠지?
우리는 지난주처럼 진료용 의자에 앉아 의사를 주시했다.
의사는 지휘봉을 들어 흉부 엑스레이 사진의 여기저기를 가리킨다.
이것도 일주일 전과 똑같다.
“이곳이 하얀 게 보이죠? 그리고 이곳은 까맣습니다. 또 이곳은 거뭇거뭇하고, 이곳은 투명하고, 이곳은 꽉 찼으며, 이곳은 빈공간입니다. 그리고…….”
이거 왠지 패턴이 비슷한데?
혹 어딘가에 스킵 버튼이 나타날 것 같은 상황이다. 이러다가 또 ‘아무 변화가 없어요.’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그건 좀 곤란하다. 아주 많이, 많이 곤란해!
오늘도 설명을 하는 의사의 얼굴은 너무 진지하다.
결국 이번 주도 차마 말을 끊고 물어볼 수 없었다.
설명이 모두 끝나고 의사에 얼굴에 또 그늘이 진다.
이번엔 지난주보다 훨씬 깊고 어둡다.
나와 아저씨는 똑같이 침을 삼켰다. 잠시 진료실에 긴장감과 함께 고요함이 흘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에도 무거운 음성. 그리고 의사의 입이 열린다.
의사는 나와 아저씨에게 차례로 눈을 마주치고는 말을 맺었다.
“아무 변화가 없어요. 완전 건강한데요?”
“예?”
“뭣이!”
우리 입은 또 쩍 벌어져 바닥에 닿았다.
“아니. 시발! 그게 말이야, 방구야? 지금 나랑 장난하냐?”
아저씨는 의사의 멱살을 잡아 힘껏 흔들었다. 어휴, 내 멱살을 잡히는 줄 알고 순간 쫄았네.
의사는 흔들리면서도 태연함을 잃지 않는다.
“농담입니다.”
우와.
아저씨는 의사의 멱살을 놓고 뒷목을 잡았다.
이런 익살스러운 의사 선생님이 있다니……!
두 번만 더 익살스러웠다간 한돈 아저씨가 혈압으로 세상을 하직하겠네?
의사는 좀 더 세심하게 지휘봉으로 엑스레이 사진을 가리켰다.
“이 부분이 바로 H세포의 힘인 ‘H력’을 제어하는 ‘H조장’이란 장기예요. 잘 보이죠? 그리고 그 옆에는 일반 세포를 ‘H세포’로 변환시키는 ‘H활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의사는 입을 닫았다.
설마 또 농담? 그런 재미없는 장난을 또 치시는 건 아니겠지? 이번에 또 그랬다간 한돈 아저씨가 친히 저세상으로 보낼 텐데?
아닐 거야.
“문제는……?”
아저씨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문제는 H조장과 H활장 사이에 ‘H역장’이란 장기가 없단 겁니다. 능력자가 H세포의 힘을 쓰는 순서로 설명 드리죠. 우선 능력자의 의지에 의해 H역장이 H력을 H활장과 H조장에 공급합니다. 그러면 H활장은 전신의 세포를 H세포로 전환시키죠. 이걸 ‘능력 발동’이라 합니다. 그렇게 전신의 H세포를 활성화시키면 그다음은 H조장을 통해 H세포의 힘을 끌어내는 겁니다. 이게 최근의 연구에 의해 밝혀진 능력자의 비밀입니다. 그런데 상팔 씨는…….”
“스스로 H력을 만들지 못한다?”
아저씨가 잽싸게 의사의 말을 가로챘다.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런 경우는 저도 처음 보는군요. 분명 한돈 씨 말씀으론 상팔 씨가 H세포의 힘을 썼다고 했죠? 그렇지만 지금 몸 상태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에너지원이 없는 셈이니까요.”
“어…….”
내가 무어라 말하려는 찰나, 아저씨의 손이 내 입을 막았다. 아저씨는 천연덕스럽게 의사에게 맞장구쳤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실패군.”
의사는 별 관심 없다는 듯 서류를 탁탁 털더니, 서랍에 집어넣었다.
“그런 셈이죠. 그래도 절반 이상 성공한 셈이니까,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알았네. 그럼 다음에 또 연락하지.”
아저씨는 날 잡아끌며 병원을 나갔다. 계속 아저씨 손에 입이 막힌 난 그냥 순순히 아저씨를 따라 걸었다.
“퉤엣!”
아저씨의 손을 떨어뜨리며 길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러자 아저씨는 너털웃음을 내며 내게서 떨어졌다.
“끌끌끌! 나쁘지 않아. 안 그래?”
“뭐가요?”
아저씨는 배를 잡으며 웃었다.
“아직도 모르겠어? 이런 헛똑똑이 같으니!”
아저씨는 혼자 신이나 떠들었다.
“네 능력 말이다. 잘 생각해 봐. 이일인가 하는 놈하고 싸울 땐 채찍을 잘 휘두르게 됐지? 또 드래건과 싸울 땐 최향자를 부축한 후 최향자의 대검을 자유자재로 다뤘고 말이야.”
“그렇죠.”
아저씨는 배를 문지르며 코웃음을 쳤다.
“그럼 답은 간단하군! 넌 스스로 H력을 낼 수 없지만, 일단 H력만 공급되면 다른 능력자처럼 H세포의 힘을 쓸 수 있는 거야.”
“어떻게 공급하는데요?”
아저씨는 한 점의 망설임 없이 H세포를 발동, 그 무시무시한 힘으로 내 머리에 꿀밤을 때렸다. 그러나 꿀밤이란 건 어디까지나 아저씨 기준에서지, 내 기준에선 이건 그냥 위에서 벽돌이 떨어진 격이었다.
눈앞에 별이 보인다.
머리를 매만지며 온몸에 힘을 주었다.
“왜 때려요?”
어?
버럭 소리를 지르자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눈동자로 비치는 희미한 아지랑이. 그리고 따끔한 아픔 뒤 스르르 머리 위 혹이 사라지는 게 느껴진다.
확실히 H세포가 발동된 것이다.
“어, 어떻게……?”
“아직도 모르겠어? 너 그 눈치로 여태까지 어떻게 살아남았냐? 넌 다른 능력자가 H세포의 힘을 발동할 때 접촉하면 그 힘을 일부 나눠 받을 수 있는 거야. 다른 사람들이 자가발전이라면 넌 핸드폰 배터리 같은 거지. 과충전하면 폭발할 수도 있으니, 조심해라. 끌끌끌!”
“폭발하면 좋죠. 자폭이 필살기가 되는 거니까요.”
아저씨는 자신의 농담에 맞대응한 내 농담에 눈살을 찌푸렸다.
“넌 너무 재미없구나. 그런 센스로 어떻게 보조 짓을 한 거냐?”
우리는 병원에서 나와 근처 카페로 향했다. 계속 길거리에서 이야기하기엔 쌓인 게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