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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12화 (12/250)

012화

012화

캠코더를 통해 본 대략적인 숫자는 일곱.

단 한 번의 공격으로 헌터가 7명이나 당하고 말았다.

드래건은 헌터들을 깔아뭉갠 후, 옆을 향한 채 통로 쪽으로 움직였다.

직접적으로 몸을 움직이지 않으며 비늘의 일괄적인 회전만을 이용한 이동.

캠코더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드래건의 이동 방향은 통로에 쳐 둔 방벽 쪽. 당연 나 같은 보조 헌터는 주변에서 벗어나는 게 정석이었다.

H세포로 몸을 강화한 정식 헌터가 갈려 나갈 정도라면 나 같은 건…… 흔적도 안 남을 게 뻔하다.

다행히 거리가 멀어 드래건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서둘러 부상자들에게로 향했다.

아직 숨만 붙어 있다면 H세포의 힘으로 어떻게든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제길…….”

보조 헌터를 하면서 여러 참상을 봤지만, 사람이 곤죽이 된 건 처음 봤다.

정육점에서 파는 다진 고기에 누리끼리한 이물질이 섞여 있는 광경. 중간중간 옷가지나 금속 조각 같은 것도 보였다.

역겨움과 스트레스에 의한 구토감은 없지만, 처음 보조 헌터 일을 했을 때가 떠오른다.

정말로 죽는단 공포감.

구토를 하면 1차적인 충격은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2차적으로 밀려드는 거부감.

악몽이나 트라우마란 이름으로 벗어날 수 없는 족쇄가 채워진다. 그리고 생계를 위해 사냥을 나가야 할 때마다 발목을 붙잡힌다.

시간이 흘러 족쇄가 닳아서 가벼워지면 어느 순간 족쇄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발목을 확인할 때마다 깨닫는다.

과거는 결코 떨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제길!”

눈은 침착하게 생존자를 찾지만 마음이 요동쳤다.

생각보다 피해가 심각했다.

최초 꼬리에 찔린 한 명을 제외하고 하이퍼맨의 숫자는 11명.

그중 4명이 드래건의 비늘 톱날에 즉사, 2명이 중상, 1명이 경상.

빙신연맹은 하이퍼맨의 앞선 충돌 덕에 1명 사망, 3명 중상, 2명 경상.

서두르지 않으면 희생자가 늘어날 게 뻔하다.

“어서 부상자를 방벽으로 옮겨!”

하이퍼맨의 팀장인 노구도 부상을 입어, 양 팀의 지휘는 빙신연맹의 팀장인 오시오가 맡고 있었다.

지금만큼은 나도 캠코더를 내리고 부상자를 옮기는 일을 거들었다.

살리려는 고함과 살아남으려는 비명.

양쪽 모두 고통에 신음했다.

나보다 훨씬 덩치가 큰 노구를 옮기는 와중에 가장 심각한 문제를 깨달았다.

“아까 드래건이 방벽으로 갔는데…….”

방벽 뒤엔 치료 전문인 최고의 최고 팀과 일행의 모든 물품이 있다.

만약 드래건에게 방벽이 무너졌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최악의 상황이 펼쳐진다!

“너, H세포가 없는 거냐?”

혼잣말을 들었는지 노구가 말을 걸어왔다.

내장이 튀어나올 만큼 심각한 부상을 입은 노구는 잔뜩 찡그린 얼굴로 방벽 쪽을 살폈다.

“드래건 녀석의 접근은 아까부터 막혔어. 박유화란 꼬맹이가 잘 방어하고 있어.”

역시 H세포는 굉장하구나.

나 같은 일반인은 캠코더의 적외선 촬영 기능을 이용하지 않으면 가시거리가 2m 미만이다. 덕분에 박유화가 뭘 하고 있는지 조금도 알 방법이 없다.

“박유화가요? 아깐 한 방에 나가떨어졌잖아요?”

“지금은 검은 과부들 셋이 합동으로 싸우…….”

노구가 피를 토하며 말을 멈췄다.

어쨌든 드래건이 방벽에 접근하지 못했다면 아직 희망은 있었다.

“쓸데없는 걸 물어봐서 죄송합니다. 어서 빨리 옮겨 드릴게요.”

노구는 입술을 꼭 다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헌터들도 저마다 한 사람씩 부상자를 부축, 우리는 검은 과부들이 드래건을 상대하는 틈을 타 방벽으로 다가갔다.

드래건과 방벽 사이의 거리는 불과 5m 내외.

최대한 벽에 붙어 드래건의 눈에 띄지 않게 움직였다.

방벽에 들어오자 통로를 따라 길게 펼쳐진 침구류가 눈에 들어왔다.

맨 앞에는 처음으로 다친 하이퍼맨 헌터가 누워 있었다.

그 헌터 옆에 노구를 내려놓자 최고의 최고 헌터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동시에 치료를 시작했다.

치료술사의 손바닥에서 뿜어진 흰색 빛에 닿자, 뱃가죽이 사라진 노구의 복부가 점차 아물어 갔다.

노구를 시작으로 부상자가 속속들이 도착해 자리를 채웠다.

최고의 최고 헌터들이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프로들인 게 행운. 치료 속도가 빠른 만큼 다시 사냥에 재투입될 여지도 있었다.

“부상자는 전부 데려온 거야? 혹시 밖에 버려두고 온 건 아니겠지?”

최고의 최고 팀장인 모배구의 물음에 황급히 부상자 수를 셌다.

하이퍼맨의 팀원 12명 중 4명 사망, 팀장 노구를 포함해 3명 중상, 2명 경상, 3명 무사.

빙신연맹의 팀원 9명 중 1명 사망, 3명 중상, 2명 경상, 3명 무사.

경상인 부상자가 전원 자기 발로 걸어서 방벽에 들어온 것으로 볼 때 오차는 없었다.

“다 왔어요! 빨리 치료해 주세요.”

“좋아. 여기는 우리에게 맡기고 멀쩡한 놈들은 밖에 나가서 검은 과부들 지원해! 아직 사냥은 끝나지 않았어.”

모배구의 말이 옳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전투가 가능한 하이퍼맨 3명, 빙신연맹 3명이 먼저 방벽을 나갔다.

나도 서둘러…….

“잠깐!”

치료 중인 노구가 나에게 뭔가를 던졌다.

“이건……?”

“가져가라! 이젠 너도 싸워야지?”

산탄총. 그리고 총알이 든 종이 상자.

“잠시 빌릴게요.”

“오냐.”

총을 들고 서둘러 방벽을 나왔다.

먼저 나온 헌터들이 가만히 서서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대단하군, 역시 검은 곰이야.”

“저 녀석들에 비하면 우린 명함도 못 내밀겠어.”

캠코더를 통해 다시 어둠 속을 봤다. 그리고 왜 다른 사람들이 감탄한 것인지 이해했다.

검은 과부들은 다른 팀들과 개개인의 전투능력 면에서 그 실력이 월등했다.

“대단하다.”

나도 모르게 나온 감탄.

서둘러 캠코더의 녹화를 재개했다.

검은 과부들의 전투 방식은 하이퍼맨과 정반대.

질서정연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방법이다.

“하압!”

박유화는 양손으로 무려 드래건의 비늘 톱날을 잡았다.

전기톱으로도 막을 수 없던 비늘의 회전을 막으려는 장갑의 손바닥에서 마찰로 인해 불꽃이 일었다.

겉보기에는 가죽이지만, 실제 방어력은 강철 이상.

비늘 톱날의 회전력에 의해 박유화의 몸 전체가 떨리면서도 결코 잘리지는 않았다.

박유화가 비늘 톱날의 회전을 최소화시키면 다음은 최향자의 차례.

최향자는 톱날의 측면을 노려 과감히 대검을 내려찍었다.

아무리 고속으로 회전하는 비늘이라도 강력한 근육의 도움이 없으면 무용지물.

완전히 토막 나진 않아도 대검에 의해 반쯤 베인 상태로는 비늘을 회전시킬 수 없었다.

두 사람이 함께 싸우는 동안 장마리는 홀로 드래건의 주의를 끌고 있었다.

머리가 밝게 불타는 장마리는 단연 최고의 유인책. 깜깜한 어둠 속에서 머리칼이 휘날리는 게 꼭 도깨비불 같았다.

드래건은 머리를 휘둘러 장마리를 찍으려고 했지만 바람처럼 움직이는 장마리의 속도를 따라가진 못했다.

세 사람의 활약으로 드래건의 몸통 중 3분의 1, 꼬리 위쪽 비늘 대부분이 내려앉았다.

비늘 톱날로 고속 이동하는 것은 더 이상 힘들 것이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검은 과부들만으로도 충분히 사냥이 가능할 것같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의 기우일 뿐이었다.

“앗!”

장마리를 쳐다보던 드래건의 눈들이 박유화에게로 쏠렸다.

단순한 변덕? 아니면 냉정한 판단?

그건 드래건만이 안다.

드래건은 박유화가 비늘을 잡은 지점을 튕겨 박유화를 공격했다.

육중한 몸통에 의해 박유화는 쏜살같이 날려져 벽에 처박혔다.

박유화의 방어력으로 보면 저 정도 공격에 당하진 않겠지만 충격은 상당할 것이었다.

박유화와 협동하던 최향자도 박유화의 이탈에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이렇게 되면 가장 위험해지는 건 장마리다!

“마리야, 물러서!”

최향자의 외침. 하지만 장마리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시간을 벌겠어요.”

장마리의 머리카락이 허공에 춤췄다.

장마리 한 사람만을 상대하게 된 드래건은 박치기와 비늘 톱날로 이중 공격.

장마리를 정신없게 만들어 점점 궁지로 몰아넣었다.

드래건의 머리가 바닥에 충돌!

동굴 안이 심하게 흔들렸다.

지면이 흔들리면 원활히 걸을 수 없는 법.

당연히 장마리의 질주가 주춤한다.

드래건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아래쪽 몸을 굽혀 꼬리 대신 장마리에게 휘둘렀다.

장마리는 다시 다리를 움직이려 했지만, 드래건의 야생적인 움직임이 한 수 위.

가볍게 툭 하고 내려찍는 몸통에 장마리가 휘말렸다.

“마리야!”

“마리 언니!”

최향자와 박유화가 무작정 장마리에게 달려갔다.

다행히 이번엔 두 사람 뒤에 하이퍼맨 3명과 빙신연맹 3명이 따라가고 있었다.

하이퍼맨은 아까처럼 드래건의 눈을 향해 사격, 빙신연맹은 드래건의 몸을 직접 얼리려 빛을 쐈다.

“시간을 벌어! 동료들이 회복할 시간이 필요해! 화력만 제대로 갖춰지면 못 이길 상대가 아니야!”

오시오의 말에 모두가 이를 악물었다.

지금은 나도 힘을 보태야 할 때.

캠코더를 조준경처럼 총에 매단다. 산탄의 사정거리를 고려할 때 미친 짓이 분명하지만 지금은 이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산탄총의 특성상 양손으로 다뤄야 하고……!

“혹시…….”

종이 상자를 열어 안에 든 총알을 확인했다.

오오. 두 가지 다른 띠가 둘러진 총알이 들어 있다.

빨간 띠가 8개. 녹색 띠가 2개.

분명 헌터용으로 제작된 총알 중 빨간색은 산탄, 녹색은 슬러그 탄이다.

작은 쇠구슬을 넓게 퍼지게 하는 게 산탄의 주목적이라면, 슬러그 탄은 정반대다.

하나의 거대한 탄환을 멀리 쏘기 위한 총알.

이거라면 지금 내 상황에 딱 알맞은 무기다.

총열을 젖혀 장정한 산탄을 빼고 딱 두 개뿐인 슬러그 탄을 장전.

캠코더를 통해 드래건의 눈을 노렸다.

산탄의 쇠구슬로는 눈알에 생채기조차 내지 못하지만, 슬러그 탄이라면 가능하다.

슬러그 탄과 산탄의 위력은 하늘과 땅 차이.

이거라면 분명 드래건의 눈에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준비를 끝낸 동안 다른 헌터들도 전열을 재정비했다.

부상에서 회복된 노구가 합류, 하이퍼맨을 이끌며 다시 전방에 섰다.

오시오와 빙신연맹은 하이퍼맨의 양 날개에 나뉘어서 빙결술로 지원.

검은 과부들은 하이퍼맨의 뒤에 바짝 붙었다.

배에 붕대를 감은 노구는 방어구도 없이 맨몸으로 외쳤다.

“잘 들어! 우리 임무는 여전히 놈의 주의를 끄는 거다. 검은 과부들이 치명상을 먹일 때까진 버텨야 해! 빙신연맹과 호흡을 맞추는 걸 잊지 마. 이번엔 일일이 내 지시를 기다릴 것 없이 다들 알아서 싸워라. 단, 전열은 유지해!”

“네!”

하이퍼맨의 호탕한 대답.

역시 팀장의 존재는 중요하다.

방금 전까지 제대로 싸우지 못하던 하이퍼맨 헌터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저마다 전기톱 혹은 산탄총을 꺼내 들곤 마구잡이로 공격할 것처럼 보이지만, 팀장의 지시대로 전열은 1열 횡대에서 변하지 않는다.

“전진!”

거리를 벌린 채 나도 헌터들의 뒤를 따랐다.

드래건은 이제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상황은 우리에게 불리하지만, 놈도 지쳤긴 마찬가지.

비록 신체 능력에서 압도적이라도 우리가 계속 물고 늘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드래건은 남은 비늘 톱날을 힘차게 돌리며 다가오는 헌터들을 위협했다. 그러나 헌터들이 멈출 일은 없었다.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상황.

우린 목숨을 걸고 여기에 왔다.

또 한 번 날아오는 드래건의 박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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