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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6화 (6/250)

006화

006화

“아무 변화가 없어요. 완전 건강한데요?”

“예?”

엥?

“뭣이!”

우리 입은 쩍 벌어져 바닥에 닿았다.

난 황급히 아저씨가 보지 못하게 고개를 돌렸다.

내 몸이 건강하단 사실에 안심과 환호가 터져 나온다. 그러나 한편으론 아저씨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염려스럽다.

“이런 젠장 망할!”

아저씨는 주먹으로 의사의 진료책상을 쾅 내리쳤다.

저 주먹이 나한테 날아온다고 생각하니 간담이 서늘해진다.

그냥 일주일 전에 받은 백만 원으로 퉁 칠까?

혹시 그 돈도 토해 내라고 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원래 계약금이란 건 돌려주지 않아도 되는 돈이고, 어쨌든 난 임상 시험에 충실히 응했잖아?

백만 원쯤은 받아도 될 거야.

아저씨는 의사가 내민 검사 결과서를 꼼꼼히 살폈다.

“실패한 건가? 그럴 리가 없어. 하지만 그렇다면…….”

아저씨의 눈빛이 이상하다.

주식에 올인했다가 망했는데, 뭔가 작전의 냄새를 맡은 펀드매니저 같다고나 할까?

아저씨가 날 돌아봤다.

“너. 이것도 먹어 봐!”

아저씨는 주머니에서 또 알약 하나를 꺼냈다.

이번엔 하얀색.

매끈한 표면이 형광등에 반사되어 반짝인다. 근데 어떤 맛인지 상상하니 절대 먹고 싶지 않다!

“시, 싫어요!”

용기를 내어 아저씨의 제안을 거절했다.

임상 시험이야 갓 대학 들어갔을 때 많이 했던 알바지만, 이런 정체도 알 수 없는 사람한테 받는 건 사양이다.

“구, 구백만부터 먼저 주세요.”

그래. 어떻게 나오나 두고 보자.

어쩔 거냐, 난쟁이 똥자루!

아저씨의 미간이 아저씨를 처음 본 사람 얼굴처럼 찌그러졌다.

짜증과 귀찮음이 섞인 표정.

그냥 여기서 포기하고 제 갈 길 갑시다! 그래도 덕분에 한 고비 넘겼어요.

내심 아저씨가 그냥 화를 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저씨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의외의 것이었다.

“일주일 뒤에 다 합쳐서 천사백만 주마!”

엥?

이, 이게 아닌데…….

망했다.

이건 백 프로 망한 각이다!

거절할 수도 없고, 받아들이기도 싫어!

그야말로 명백한 모순.

근데 도대체 이게 뭐기에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지?

“크윽…….”

색깔대로 맛이 난다면, 이거 분명히 그 맛일 거야.

크윽……!

조심스럽게 알약을 집었다. 그러나 선뜻 입으로 가져가기 쉽지 않았다.

돈은 받고 싶지만 약은 먹고 싶지 않다. 정말 강렬하게 먹고 싶지 않다.

이건 단순 목숨의 차원이 아니다.

이건 남자로서…… 정말 먹고 싶지 않다.

차라리 오줌맛이랑 곰팡이맛을……!

“먹어! 그걸 먹으면 모든 게 확실해져. 한번 시작했으면 끝장을 봐야지?”

자기가 안 먹는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쇼!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역시 돈 앞에 장사 없다.

더러운 자본주의.

이번 약은 물과 함께 꿀꺽 삼켰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감촉이 흡사 갤 형태의 위장약을 먹는 것 같다. 그런데…….

뒷맛…… 젠장……!

킁킁, 목구멍에서 밤꽃 냄새가 올라온다.

왜 안 좋은 예감은 틀리질 않냐?

“좋았어! 역시 사나이군.”

아저씨가 등을 토닥이자 위장으로 내려간 약 냄새가 식도를 타고 올라와 코를 찔렀다.

기분이 이중으로 더럽다.

“돈은 꼭 주셔야 돼요?”

안 그러면 아저씨한테 오늘 제가 먹은 것과 똑같은 맛이 나는 걸 먹여 드릴 거예요!

아저씨는 내 다짐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남아일언 중천금! 사내의 약속은 천금과도 같은 법. 요즘엔 진짜배기 사내들이 없어서 문제지만, 난 다르니 걱정 마라.”

생김새를 보면 아저씨가 가장 못 미덥게 생겼거든요?

말씀은 청산유수라 혹하긴 하네.

우리는 진찰실을 나와 카운터 앞 대기실에 앉았다. 아까완 달리 손님 몇몇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손엔 의사 선생님이 쥐여 준 내 ‘능력 수치’가 적힌 종이가 있었다.

원래 능력 수치 측정은 협회에 배치된 특수기기를 이용해야 한다.

내가 알기론 그 측정기는 개인이 함부로 보유할 수 없는…….

“자, 오늘 스케줄은 끝났고……. 상팔이, 너 오늘 바쁘냐?”

대뜸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수치를 보려다가 흠칫 놀라며 종이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예? 아니요.”

아저씨는 대기실 구석으로 가더니 본인의 배낭을 갖고 돌아왔다.

우와, 저거 어디든 갖고 다니시는 거야?

나뿐만 아니라 아저씨의 배낭을 처음 본 다른 손님들도 놀라워했다.

하긴, 달걀이 달걀을 짊어지고 다니는 모양새니 당연하다.

남들 시선이 어떻든 아저씨는 배낭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어디 보자. 그게 어디 있더라?”

아저씨는 자기 몸집만 한 배낭 속에 팔을 넣었다. 그리고 몇 번 배낭을 쑤시더니 명함 두 장을 꺼냈다.

“이건……?”

아저씨는 양손에 명함을 하나씩 들어서 내밀었다.

“약효를 기다리는 동안 ‘나랑 같이 다니기’랑 ‘다른 곳에서 보조 헌터 하기’ 중에 뭐 선택할래?”

또 선택?

이 아저씨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살면서 난생처음 보는 타입이다.

설마 앞으로도 쭉 이런 식인 건가?

상대하기 피곤하네. 이 아저씨 분명 친구가 하나도 없을 거야.

눈 딱 감고 오른손에 있는 명함을 뽑았다. 그리고 눈을 부라리며 손상된 명함의 글자를 해독했다.

이름, 최향자.

직업, 헌터.

팀, 검은 과부들.

팀 이름이 참 섬뜩하다.

검은 과부들에 대해선 들어 본 적이 있는데, 상당히 악명 높은 사람들이다.

아저씨는 내가 뽑은 명함을 가리키며 웃었다.

“끌끌끌. 나랑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헌터인데, 요번에 보조 헌터를 구한다고 했거든. 가서 일 좀 해 주고 와라. 보수는 섭섭지 않게 줄 거야. 실전에서 뛰다 보면 약효가 더 잘 나올 거다. 이번 건 효과가 빨리 나타나게 만들었거든.”

설마 아저씨 정체가 인력 사무소?

일자리를 구해 준 건 참 고마운 일이지만 작은 문제가 하나 있다.

“제가 알기론 검은 과부들이란 팀은 여자끼리만 활동하는 걸로 아는데요?”

그렇다. 검은 과부들은 이상한 쪽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팀이다.

특히 팀장인 최향자는 ‘검은 곰’이라 불리며 다른 ‘남자’ 헌터와 마찰을 일으키기로 유명하다.

대부분 최향자 눈에 밟힌 남자 헌터는 반죽음, 팀 단위로도 싸움이 일어나 상대 팀을 장기 입원 환자로 만들기도 한다.

이런 팀에 보조로 들어갔다간…….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혹시 아저씨가 나한테 무슨 원한이 생기셨나?

“걱정하지 마. 내 이름 대면 그렇게까지 가혹하게 굴진 않을 거야. 향자 걔가 나한테 빚진 게 좀 있거든. 어서 전화 걸어 봐.”

아저씨의 독촉에 서둘러 명함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다.

―누구야?

대뜸 들려오는 날카로운 음성.

보이지 않는데도 상대에 대해 훤히 알 것 같은 말투다. 정말 딱 예상했던 대로다.

“예. 전 김상팔이라고 하는데요.”

―그런데?

“저…… 한손 아저씨가 그…… 보조…….”

‘한손’이란 이름에 전화가 끊겼다.

응? 이렇게 빨리?

당황해서 아저씨를 쳐다봤다.

아저씨는 씩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또 걸어 봐. 걔가 원래 그래.”

다시 전화를 건다. 그리고 다시 최향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뭐야?

“그, 그러니까…… 한손 아저…….”

또 끊겼다.

아저씨는 날 보며 배를 잡고 웃었다.

“끌끌끌. 이거 참 재미있군! 또 해 봐. 걱정하지 마, 내 말대로 하면 돼.”

세 번째로 전화를 건다. 그리고 세 번째로 최향자와 통화한다.

―왜?

말이 점점 짧아진다.

무섭다.

“보조 헌터 하려고 전화드렸는데요!”

어쩔 테냐?

끊기기 전에 얼른 본론을 털어놨다.

―여자냐?

엥?

생각지도 못한 질문.

역시 검은 ‘과부’들 팀장답다.

“아닌데요.”

―호모냐?

호모……?

아마 ‘호모’ 섹슈얼의 준말이겠지?

“아닌데요.”

―트랜스냐?

이번엔 트랜스섹슈얼?

되게 까칠하네.

어떻게든 남자의 범주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건가?

“아닌데요.”

―그 인간, 바꿔!

우렁찬 외침.

당장 수화기에서 손이 튀어나와 멱살을 잡을 기세였다.

이럴 땐 절대 복종하는 게 신상에 이롭다.

“저, 전화 받으세요!”

서둘러 휴대전화를 아저씨에게 내밀었다. 아저씨는 실실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 아오!”

아저씨가 황급히 수화기에서 귀를 뗐다. 그리고 폭죽 같은 고함 소리가 주변으로 퍼졌다.

살짝 당황한 아저씨의 얼굴.

아, 뭔지 알 것 같아.

왠지 흐뭇하게 아저씨의 통화를 보게 된다.

아저씨는 수화기의 소리가 좀 잠잠해지자 다시 대화를 시도했다.

“끌끌끌. 걱정 마! 이 녀석은 믿을 만해. ‘호구’거든.”

가슴이 쓰리다.

누군가 내 장점에 대해 말하는데 ‘그냥, 착해.’라고 하는 것. 아니면 외모 칭찬을 하는데 ‘착하게 생겼어.’라고 하는 것.

아이고, 의미 없다.

역시 대세는 ‘잘생긴’ 나쁜 남자다. 아니면 그냥 못생긴 나쁜 놈이 되든가…….

“그래, 그래. 잘못되면 내가 책임지지. 그래, 그래. 염려 마. 응, 그래. 마음에 안 들면 패도 돼.”

“패면 안 되죠!”

진심으로 버럭 화를 냈다.

내 목소리를 들은 아저씨는 흔들림 없이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며 조용하란 제스처를 취했다.

“응? 아, 별거 아니야. 옆에 있는 놈이 좀 떠들어서……. 그래, 네가 알아서 길들여. 응, 응. 죽이지만 않으면 돼.”

뭐, 뭐야?

왜 점점 수위가 높아져? 갑자기 급격하게 하기 싫어진다.

“살아만 있으면 돼. 그래, 그래. 그럼 그렇게 돌려보내 줘. 응. 그럼 부탁할게. 그래, 안녕!”

아저씨는 통화를 끊고 휴대전화를 돌려주었다.

“야! 너 오늘 당장 오라는데? 잘 됐구나. 벌써부터 예쁨을 받다니?”

방금 한 통화의 어느 부분에 예쁨이 있단 거지?

이 아저씨 날 그냥 팔아넘긴 거 아니야?

전전긍긍하는 사이 누군가 우리에게 종이컵 두 잔을 내밀었다.

종이컵 안에는 한국의 전통 음료, 신토불이 인스턴트커피가 타져 있다.

“드세요.”

무뚝뚝한 목소리에 귀여운 얼굴.

간호사복과 잘 어울리는 균형 잡힌 몸매를 한 사람이다.

단정하게 자른 단발머리가 참 인상적. 하지만 무엇보다도 남자 간호사란 점이 핵심!

공짜 커피는 거절하지 않는 법.

우리는 커피를 한 잔씩 들었다.

“잘 마실게요.”

“끌끌끌. 공짜다!”

아저씨는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입 바람으로 커피의 표면을 식힌 후 한 모금 머금었다.

음, 그래 이 맛이야!

이 화학적인 중독성. 역시 커피는 인스턴트야!

프림과 설탕의 환상적인 비율. 5성급 호텔 커피와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 맛과 향! 거기에 학살적인 가격 경쟁력까지.

남자 간호사의 가슴에는 ‘수습 간호사 노건’이란 명찰이 달려 있었다.

노……건……?

특이한 이름이다. 어릴 때 놀림 좀 받았을 것 같네. 수습이란 건 아직 인턴이란 건가?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데 참 대단하네.

더럽고(Dirty), 위험하고(Dangerous), 어려운(Difficulty) 3D 업종 중 하나인 간호사.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최악은 당연 보조 헌터다.

보조 헌터는 3D뿐만 아니라 장거리에(Distant), 꿈도 없는(Dreamless) 일. 그야말로 밑바닥 아래 밑바닥이다.

커피를 다 마시고 우리는 병원을 나왔다.

아저씨와는 병원 앞에서 헤어지며 또 일주일 뒤를 기약했다.

“이번엔 꼭 효과가 있길 바라마.”

“저도요.”

꼭 천사백만을 받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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