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화
004화
준비 동작만 봐도 어설픈 티가 철철 난다. 저거 때리는 순간 건달한테 ‘내가 먼저 때렸으니까, 나도 때려 주세요!’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지 마요.
“어여 때리소, 뒈지기 전에!”
“알았어, 인마!”
아저씨는 건달의 말에 따라 주먹을 질렀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지른 주먹은 장난과도 같은 것. 어린아이가 아버지와 놀 때 쓸 법한 지르기였다.
나도 안 아프겠는데?
이젠 정말 아저씨가 걱정된다. 그런데 그것보다 나도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니야?
아저씨의 주먹이 건달의 얼굴 정면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아저씨는 의기양양하게 주먹에 ‘호’ 하고 바람을 불었다.
“짜식, 별것도 아니네.”
건달은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뭔가가 이상하다?
작은 요동조차 없다.
뭔가 반응이라든가, 리액션 같은 게 없는 것이다.
숨도 안 쉬는 것처럼 보인다.
역시 뭔가 이상하다.
용기를 내어 건달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건달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아니?”
건달의 눈은 흰자위뿐이었다.
누가 봐도 확실한 실신, 심지어 바지에 오줌까지 지리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아저씨는 어깨와 배를 털며 목을 까딱였다. 허세를 부리는 꼴이지만 그럴 만한 자격이 있었다.
너무 놀라워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장님! 음식값은 구해 준 걸로 퉁 칩시다! 이놈은 경찰에 신고하든지 하쇼!”
아저씨는 가게 구석으로 가서 자기 몸뚱이만큼 커다란 배낭을 멨다.
구슬이 구슬을 메는 꼴이 정말 가관이다.
저러고 어떻게 돌아다니지? 대중교통은 이용 불가인데? 혹시 약장수나, 만물상인 건가?
“그럼 많이 파쇼!”
아저씨가 나가고, 나도 얼른 내가 먹은 걸 계산하며 포장마차를 나섰다. 주인아줌마는 서둘러 경찰에 신고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잘 해결돼서 다행이다.
“살다 보니 별꼴을 다 보네.”
힘없이 축 늘어져 거리를 걸었다. 겨우 먹은 음식이 방금 전 일로 인해 위장 속에서 증발한 기분이었다.
횡단보도 앞에 서니, 맞은편에 여고생 둘이 보였다.
교복.
참 좋을 때구나. 저땐 참 학교 가기가 싫었지.
그놈의 야간 자율 학습은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감금이었어. 다시 어려지면 만날 땡땡이치면서 살 텐데…….
여러 생각이 드니 자기 자신에게 동정심과 경멸심이 들었다.
난 왜 사는 건지 모르겠다.
“내일 봐!”
여고생 중 하나가 신호등을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가로질렀다. 그러나 내가 선 인도에 발을 들이기 전 옆에서 웬 헤드라이트가 다가왔다.
여고생에게 비치는 헤드라이트 빛이 점점 환해진다. 그리고 그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빠르다.
경고해 주긴 너무 늦었다.
100프로 사고 확정!
0.1초도 안 되는 찰나의 시간.
내 다리는 머리가 내린 명령을 받을 새도 없이 여고생을 향해 움직였다.
부탁한다, 내 다리!
여고생을 밀어내는 데 성공!
대신 내가 트럭에 치였다. 몸이 붕 떠서 날아가는데, 아픈 건 잘 모르겠다.
알딸딸하다. 마치 술을 진탕 마신 것 같다.
머리가 아스팔트와 충돌.
몸이 전체적으로 요동친다. 내장이 움츠러드는 것까지 느껴지니 참 희한하다.
다음으로 여고생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한쪽에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썩 반가운 말이 아니다.
“아이고, 깜빡 졸았네. 난 왜 운전대만 잡으면 졸린 거야? 젠장, 직업을 바꾸든지 해야지, 이러다가 큰일 나겠구먼. 한 명만 친 거겠지? 두 명이면 보험이 안 되는데…….”
어서 날 병원으로 옮겨 줘!
트럭에서 내리는 소리. 그다음, 여고생들과 남자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이라면 살 수 있어. 지금이라면 가능성이 있다고!
통증보단 죽음의 공포가 더 급하다. 분명 이대로라면 죽는다. 숨결, 혈압, 심장박동 등에 이상이 생긴 게 느껴진다.
여고생들의 인기척이 사라지고, 남자만 남았다.
“흠흠, 보는 사람은 없겠지?”
몸이 휴대전화 진동보다 더 빠르게 떨린다. 물론 추워서 그런 게 아니다.
괜히 나섰어. 괜히 나섰어…….
후회가 밀려온다. 가만히 있었다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그냥 가만히 있을걸. 죽고 싶지 않아. 살려 줘, 제발.
평생 패배자로 살아도 좋아. 그냥 죽지만 않게 해 줘.
제발.
떨림이 점점 줄어든다. 그리고 몸이 차가워지기 시작한다.
동상에 걸린 느낌.
몸이 망가져 간다. 이젠 정말 끝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포장마차에서 좀 비싼 걸로 먹을걸.
아! 돈이 없구나. 하하…….
“끌끌끌!”
천박한 웃음소리.
누구지?
눈알을 돌릴 힘도 없다.
지금은 그저 살아만 있는 데 모든 걸 집중하는 중.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돌며 멀미가 난다. 속이 울렁거리고, 몸이 뜨겁다. 그리고 땀에 젖은 옷이 살갗에 달라붙는 게 느껴진다.
떨림은 완전히 사라졌고, 콧구멍이 벌렁거리며 큰 숨이 들락날락거렸다.
“끌끌끌! 일어나라, 애송이.”
천박한 웃음소리가 옆구리를 톡톡 건드린다.
발길질 같은데? 미쳤어? 죽어 가는 사람한테 뭐하는 짓이야!
“1……1…….”
119에 전화 좀 해 주세요!
안간힘을 쓴 끝에 겨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119에 전화…….”
“내가 왜? 네가 네 손으로 직접 하면 되잖아? 어린놈이 버르장머리 없게……!”
아까 들어 본 목소리 같은데?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혹시나?’가 ‘역시나!’다.
뚱땡이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아까 그 배낭을 멘 채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괜찮지? 손잡아 줄까?”
손을 잡아 줘?
뚱딴지같은 말. 하지만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아저씨의 도움으로 내 몸이 벌떡 일으켜졌다.
“죽다 살아난 기분이 어떠냐?”
“네?”
어라?
아저씨는 내 등을 인도로 떠밀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인도에 선 내 눈에 도로 위의 피가 보였다. 피가 조금 난 수준이 아니라 어디가 터졌던 모양이었다. 피가 엄청난 걸 보고는 서둘러 몸 구석구석을 확인했다.
“깨끗하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끌끌끌. 신기하지?”
아저씨는 내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가리켰다.
“무서운 세상이지? 자길 구해 준 사람을 버리고 가는 녀석, 자기가 친 놈을 그냥 버리고 떠난 녀석. 오직 너만 다르구나. 너 같은 놈을 보고 두 글자로 뭐라고 하는 줄 아냐?”
“모르겠는데요?”
퉁명스럽게 말이 나온다.
젠장, 생각만 해도 섬뜩하다. 까딱했으면 정말 죽을 뻔했던 것이다.
너무하다, 정말. 정말, 너무해.
“호, 구.”
호구!
아저씨의 말이 날카롭게 가슴을 찔렀다.
그래, 난 분명 호구다.
결국 이게 내가 맞을 결말. 뭘 하든 이렇게 끝나는 것이다.
어깨가 절로 움츠러든다.
“그래도 그 호구 짓 덕에 내 눈에 띄게 됐구나. 어떠냐, 같이 한잔하지 않을래?”
“아저씨가 사는 건가요?”
“야, 인마! 내가 널 구했는데, 네가 날 사 줘야지!”
그것도 그러네.
기분이 너무 나빠서 당연한 것조차 판단이 안 섰다.
우리는 근처 편의점으로 가 캔 맥주를 하나씩 샀다.
지금 내 주머니 사정으로는 이게 최선이다.
생명의 은인한테 겨우 캔 맥주. 정말 한심한 놈이다.
“끌끌끌! 맥주 맛 좋다!”
아저씨는 단숨에 맥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빈 캔을 꽉 구겨 쓰레기통에 넣었다.
난 맥주를 홀짝이며 아저씨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절 어떻게 살려 주신 거죠?”
사실 아까 느껴 본 온기로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분명 H세포의 힘.
그 말은 이 아저씨가 헌터란 뜻이다. 그렇다면 아까 건달을 손쉽게 쓰러뜨린 것도 이해가 간다.
“혹시 헌터신가요?”
아저씨는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코를 킁킁거리며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절 직접 치료해 주신 거죠? 그 정도 실력이시면 꽤나 이름 있는 헌터신 거 같은데…….”
이것도 인연.
잘하면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단 희망이 샘솟았다.
아저씨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입을 열었다.
“헌터……였지.”
과거형?
그럼 지금은 헌터가 아니라는 건가?
“은퇴하신 건가요?”
“아니. 그냥 노는 중이야.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있는 중이지.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가고, 먹고 싶은 거 먹고……. 자유로운 나날을 즐기는 거야.”
“정식 헌터 자격증은 있으신 거죠?”
정부에서 인정한 한국 지부가 있는 만큼 지부에서 발급되는 정식 헌터 자격증이란 것이 있다.
헌터의 증표이자, 인생 승리자만 가질 수 있는 신분증.
이게 없으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헌터로서 활동할 수 없다.
개인의 DNA 정보를 새겨 넣기 때문에 위조도 불가능.
재발급하기도 어렵다. 만약 잃어버린다면 헌터 자격시험을 다시 보는 수밖에 없다.
“글쎄, 배낭 어딘가에 있긴 할걸?”
미치겠네.
누구는 그거 못 따서 이렇게 밑바닥 신세인데, 누구는 무슨 학생증처럼 취급하다니……!
세상은 정말 불공평하다.
“그건 그렇고 말이야. 아직 네 이름을 못 들은 것 같은데?”
아차!
최대한 공손한 말투로 자기소개를 했다.
“제 이름은 김상팔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29살이고요. 직업은…… 보조 헌터요.”
“보조 헌터? 그거 혹시 어설프게 헌터 흉내 내면서 진짜 헌터들 꽁무니 졸졸 쫓아다니다가 잔심부름이나 하는 애들 말하는 거냐? 듣자 하니 요즘은 그런 애들 소모품처럼 다루는 게 유행이라며?”
아픈 곳만 골라서 긁으시네.
이 아저씨 분명 일부러 이렇게 말한 거야!
애써 표정 관리를 했다.
그래도 명색이 생명의 은인인데, 겨우 말 몇 마디에 태도를 바꿀 수 없었다.
“그래. 그래서 누구랑 일해 보셨나? 보조 헌터는 사실상 떠돌이라 정해진 팀 같은 게 없지?”
이 아저씨, 날 떠보는 건가?
은근 성가신 대화법이다.
일단 대답은 솔직히 했다.
“‘반도의 자식들’이란 팀하고 1번, ‘헬조선’이란 팀하고 1번, ‘강철주먹’이란 팀하고 2번, 그리고 ‘세손가락’이란 팀하고 5번. 보조로 참가한 사냥은 이 정도예요.”
“오호, 제법이군.”
아저씨의 흡족한 얼굴.
내 입으로 말하기 뭣하지만, 내 경력이면 웬만한 초보 헌터보다 낫다. 최소한 짐이 되지 않는 방법에 대해선 빠삭하니까!
“좋아. 그럼 상팔이 너 말이야. 혹시 단기 고수입 알바 해 볼 생각 없냐?”
늘 이 소릴 들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혹하게 된다.
분명 머리로는 ‘이건 사기다!’라고 외치고 있어도 마음속에서부터 끌리게 되는 것이다.
역시 난 구제불능의 호구인 건가?
“얼만데요?”
“일주일에 오백.”
오백…… 원은 아니겠지?
젠장!
너무나 매력적인 숫자다.
일주일에 오백이면 영혼도 팔겠어!
어차피 나 같은 밑바닥한텐 더 이상 팔아 치울 개인정보도 없다.
까짓 거 한번 해 봐?
“무슨 일인데요?”
“임상 시험. 위험한 건 아니야.”
아저씨 외모부터 이미 위험이 철철 넘치는데요?
포장마차부터 뺑소니까지 봐 온 사람한테 그 말을 믿으라고?
그 전에 이렇게 생긴 아저씨가 도대체 무슨 수로 ‘임상 시험’씩이나 할 수 있는 거야?
완전 수상하잖아! 수상함이 흘러내린다고! 어쩌면 나 계획적으로 찍힌 거 아니야?
혹시 아까 포장마차에서부터 다 작전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