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화
003화
5분도 안 되어 차려진 초라한 만찬.
컵에 따라진 맥주는 거품이, 흰색 플라스틱 그릇에는 퉁퉁 불은 면발이 가득하다.
일단 젓가락으로 오통통한 면발을 집어 입에다 쑤셔 넣었다.
우동 면발은 입천장이 까질 만큼 뜨겁진 않다. 하지만 목구멍으로 넘겼을 때 온기를 느낄 정도는 된다.
좋다. 딱 이 정도면 생각 없이 먹기에 딱 좋은 온도다.
면발로 입안을 채운 후 이번에는 맥주를 들이켰다.
그 어느 때보다 알코올이 필요한 지금, 맥주가 입안을 씻어 내며 아까의 굴욕을 배 속으로 휘감았다.
“캬아!”
한숨 돌리고 나니 포장마차 안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원래 장사가 안 되는 곳인지, 아니면 오늘만 이유가 있는 것인지 가게 안은 썰렁했다.
날 제외하고, 다른 손님은 웬 뚱땡이 아저씨뿐.
뚱땡이 아저씨의 식탁에는 빈 음식 그릇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거지?
뭔가에 홀린 듯 그 아저씨를 관찰했다.
머리는 헝클어져서 부스스하다.
꼭 버려진 삽살개 같다. 만약 내 손에 이발 도구가 있었다면 당장 밀어 버리고 싶을 정도.
큰 코와 콧수염이 꼭 파티용 분장 도구처럼 보인다. 볼은 음식 탓인지 터지기 일보 직전.
뭔가 심술보가 잔뜩 들은 얼굴이다.
몸매는 고도비만 뺨치게 둥글둥글해서 왠지 구슬치기하고 싶어지는 형태. 100원짜리 뽑기 중 물에 넣으면 엄청나게 커지는 불량 장난감 같다.
눈대중으로 봐도 키는 작다. 하지만 팔다리는 길다.
“되게 신기하게 생겼네.”
밤무대에서 쇼하시는 분?
딱 그런 느낌이다. 그런데 복장은 의외로 말끔하다. 어쩌면 그냥 못생긴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외모 비하를 한 건가?
“여기! 한 그릇 더!”
아저씨가 주인아줌마에게 빈 그릇을 보이며 소리쳤다.
“그만 먹어요. 그러다 죽어요!”
주인아줌마는 퉁명스럽게 음식을 담은 그릇을 아저씨에게 가져다줬다.
“내가 내 돈 내고 먹는데 뭐 어때?”
“무슨 겨울잠 자려고 그래요?”
“봄에 겨울잠은 무슨……!”
아저씨는 새로 받은 볶음밥을 마구잡이로 퍼먹었다. 사방으로 밥풀이 튀는데도 숟가락질은 조금도 느려지지 않았다.
완전 식충이급이네.
아저씨를 보고 있자니, 왠지 식욕이 사라진다. 먹방을 라이브로 보면 이런 기분일까? 보통은 식욕이 생겨야 하잖아?
우동 국물을 그릇째 들어서 마신다. 짭짤한 국물 맛에 속이 좀 진정되는 것 같다.
그때 새로운 손님이 장막을 걷고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고, 우리 사장님. 장사 잘 되시네?”
사투리. 대머리. 그리고 꽃무늬 셔츠. 거기에 선글라스까지.
주인아줌마는 사색이 되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우리 장사도 안 돼서 돈 없어. 먹고 죽으려고 해도 돈이 없어!”
건달.
정말 딱 스테레오 타입의 건달이다. 근데 요즘엔 저렇게 입고 다니는 건달 없을 텐데?
시공간을 넘어서 온 건가.
나도 모르게 건달을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뭘 꼬라 보노? 뒤질라고? 확!”
건달이 손을 올려 때리는 동작을 취했다. 딱 봐도 시늉이었지만, 반사적으로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려졌다.
따뜻하게만 느껴지던 가게 안이 순식간에 살얼음판으로 바뀌었다.
“확, 마! 가게 엎을까? 앙? 가게 엎을까, 사장님요?”
이 와중에 뚱땡이 아저씨는 꿋꿋이 식사 중이었다.
저 아저씨 혹시 사람의 탈을 쓴 돼지 아닐까?
“와, 이건 또 뭐꼬?”
건달도 아저씨가 신기한가 보다.
건달은 건들거리며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이거 마, 사람이 아니라 돼지 새끼네. 꿀꿀해 봐라, 꿀꿀?”
건달은 자기 혼자 배꼽을 잡으며 웃었다.
내 키는 고작 169.
열심히 굴러서 근육은 좀 붙은 편이다.
보조 헌터를 하면서 나름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능한 보조일 뿐.
실질적인 전투능력은 일반인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반면에 건달의 키는 어림잡아도 180 이상.
어깨가 딱 벌어진 체격에 살집이 두툼하게 붙어 있다. 뱃살이 제법 나와 좀 둔해 보이지만, 힘깨나 쓸 법한 체형. 일단 잡히면 끝장이다.
“‘꿀꿀꿀’ 안 하나? 지금 나 쌩 까나? 확!”
건달이 버럭 화를 내며 뚱땡이 아저씨의 탁자를 엎었다. 아저씨는 멍한 얼굴로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보았다.
주인아줌마는 구석에 숨어 신고를 하지도, 건달을 말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건달은 아저씨에게서 고개를 돌려 주인아줌마를 바라봤다.
“이 돼지 새끼 많이 처묵읏네? 그럼 그 돈이라도 내놓으소. 어머니뻘 되시는 분 싸대기 때리기 싫으니까.”
참아야 한다.
어차피 싸워도 진다.
아까랑은 다르다. 아깐 정말 내가 미쳤던 거고, 지금은 지극히 정상이다.
참아야 한다. 김상팔!
건달은 주인아줌마의 멱살을 잡아 저금통처럼 흔들었다.
오만과 비겁.
두 가지 모두 가진 자의 얼굴, 참으로 역겹다.
주인아줌마는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숨을 헐떡였다.
제길!
솟아라, 용기야. 아직도 내 안에 있다면 어디 한번 솟아 봐. 내가 아직 패배자가 아니란 걸 증명해 달라고!
마음속으로 아무리 외쳐도 소용없다. 고요한 외침은 결코 메아리치지 않는다.
“좋게 말하니까, 내가 우습지? 내가 우습지? 안 되겠다, 오늘 내한테 좀 맞자. 원래 맞아야 사람 된…….”
뭔가가 날아와 건달의 머리에 씌워졌다.
그것은 포장마차의 플라스틱 그릇이었다.
건달의 움직임이 한순간에 멈췄다. 그리고 건달에게 잡힌 아줌마의 입이 쩍 벌어졌다.
나도 내 눈으로 본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릇을 던진 사람은 바로 뚱땡이 아저씨였다.
가만히 앉아 있던 아저씨가 갑자기 날렵한 동작으로 떨어진 그릇을 주워 건달의 머리에 던진 것이었다.
저런 몸매에서 어떻게 그런 잽싼 움직임이 가능한 것인지 불가사의다.
건달은 어이 상실을 뛰어넘어 폭소를 터뜨렸다. 그리고 머리에 씌워진 그릇을 치우며 주인아줌마를 내려놨다.
“이런 개 같은……!”
건달은 뒤로 돌아서서 나와 뚱땡이 아저씨를 번갈아 봤다.
난 얼른 양손을 들어 흔들려고 했다. 그러나 아저씨의 날렵함은 그릇을 던진 것에서 끝이 아니었다.
“쟤가 그랬대요!”
엥?
초등학생이 선생님한테 고자질하는 거냐?
아저씨는 두꺼운 낯짝으로 뻔뻔스럽게 날 가리켰다.
이런 제기랄!
멍청한 건달은 아저씨의 말을 찰떡처럼 믿는 눈치다.
“와, 대단하네. 쥐똥만 한 아가 어디서 나대노?”
건달이 씩씩거리며 걸어왔다.
오늘이 내 제삿날인가?
건달의 콧구멍 벌렁거리는 게 저번에 잡은 네팔구미호가 생각난다.
물론 외모만 놓고 보자면, 네팔구미호 쪽이 더 훌륭하지만…….
일단 살고 보자.
“잠깐만요!”
“뭐꼬?”
건달은 바로 앞까지 다가와 날 내려다봤다. 간신히 멈춰 세운 건달은 가까이서 보니 더 위협적이었다.
건달은 내 멱살을 잡으며 한 번 더 물었다.
“뭐꼬? 확 마 죽여줄까? 네, 나가 누군 줄 알고 시비 거는 기가?”
건달의 손이 올가미처럼 숨통을 조였다. 난 건달의 팔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항복 의사를 표했다.
“케, 켁! 수, 숨…… 숨……!”
건달은 내 고통스러운 모습을 즐기며 말했다.
“마 걱정 마라. 사람 그렇게 잘 안 죽는다, 안 하나? 낄낄낄!”
에라, 모르겠다. 진짜로 죽는 것보단 맞아서 병원 환자 되는 게 낫겠지.
양손의 엄지에 내 모든 힘을 담았다. 이 두 개의 엄지에 내 목숨이 달려 있다.
일단 건달의 눈을 콱 눌렀다.
“끄아아악!”
덩치고, 지방이고 눈알은 차원이 다른 문제.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여기는 답이 없다.
엄지에 눈이 찔리자 건달이 고함을 지르며 날 집어 던졌다. 참고로 말하자면 내 엄지손톱이 건달의 눈알에 닿는 감촉이 느껴졌다.
“이 쥐새끼가……!”
건달이 눈을 문지르며 비틀거렸다.
이제 시작이다. 여기서 밀리면 난 끝장이다.
일단 몸을 낮춰 건달의 하반신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건달의 사타구니 중심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눈알과 고환.
여긴 전 세계 남성, 더 나아가 전 생물적 수컷들의 공통된 약점이다.
체격 따위 족구하라 그래!
거대한 몸집이 쓰러져 바닥을 굴렀다.
더 이상은 때려 봤자 헛수고다.
애초에 체급의 차원이 다르니, 내 주먹 따윈 지방이나 근육에 막혀 아무런 소용이 없을 터였다.
머리나 목을 걷어찰 수 있었지만, 그랬다가 잘못 차면…… 살인이 될 수 있다.
일단 도망치자.
그래, 이게 정답이다. 일단 집으로 도망가서 이불 뒤집어쓰고 푹 자자. 그리고 내일 아침에 걱정하자. 일단 오늘 밤은 넘기자.
생각을 정리하고, 포장마차를 나서려고 했다. 그러나 어느새 건달이 바닥에 엎드린 채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눈알과 고환의 고통은 이미 진작 극복한 것으로 보였다.
“넌 뒤졌어!”
건달은 내 발목을 잡아당겨 날 넘어뜨렸다. 뒤통수부터 바닥에 닿으니 포장마차의 빨간 천막 아래로 별이 보였다.
건달은 벌떡 일어나 발로 내 배를 밟았다.
배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홀쭉하게 들어갔다.
아까 먹은 우동과 맥주가 압력으로 인해 튀어나오기 직전. 멀미처럼 속이 더부룩하다.
건달이 내 얼굴을 향해 침을 뱉었다.
“버러지 새끼!”
건달은 전 체중을 발에 실어 내 배를 눌렀다.
배가 터질 것 같다.
차라리 그냥 때려라. 내가 무슨 풍선이냐? 터뜨리게!
“뒈져라!”
혈압이 높아져서 그런지 온 세상이 붉게 보였다.
눈이 충혈된 건가?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건달의 발을 잡았다. 그러나 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제길, 아라보다 내가 먼저 아홉 시 뉴스에 나오는 거 아니야?
“이봐, 자네. 그쯤 하지 그러나?”
점잖은 목소리.
분명 뚱땡이 아저씨의 것이다.
바닥에 드러누웠기에 제대로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아저씨가 건달을 말리고 있음이 확실.
의외로 순순히 내 배에서 건달의 발이 떨어졌다.
“이건 또 뭐꼬? 돼지 새끼가 뒈질라고?”
건달이 무거운 걸음으로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아저씨는 자신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상대를 보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 너 인마, 몇 살이야?”
여기서 나이가 왜 나와요? 지금이 무슨 조선 시댄 줄 알아요? 저러다가 진짜 사람 하나 죽는 거 아니야?
걱정스러운 눈길로 아저씨와 건달을 바라봤다.
건달은 히죽 웃으며 아저씨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탁탁 때렸다.
저거 딱 삥 뜯는 자센데?
저건 건달도 아니네. 그냥 양아치였어!
아저씨는 자신의 머리를 때리는 건달의 손짓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건달은 아예 아저씨를 능욕할 생각인 것 같다. 대놓고 먼저 때리라고 자기 얼굴을 아저씨의 키 높이에 맞춰서 낮춰 준다.
“사나이답게 함 쳐보소. 마 내가 대 줄게. 캬, 내 참 성격 좋지?”
“진짜?”
“하모.”
“리얼리?”
“하모, 하모.”
“아 유 시리어스?”
아저씨, 왜 시간을 끄는 거예요? 그냥 도망쳐요!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아저씨는 내 생각과는 반대로 주먹을 쥐어 들었다.
정말로 건달의 얼굴을 때리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