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헤드헌터 김상팔-2화 (2/250)

002화

002화

네팔구미호의 꼬리 끝이 뾰족하게 섰다.

꼬리 아홉 개 전부!

네 개의 팔로 날리던 무차별 공격이 이번엔 꼬리로 바뀌었다.

4단이 아닌 9단 난타!

거의 빈틈이 없는 연속 찌르기에 다움 형의 거대 방패가 금방이라도 튕겨 나갈 듯 덜컹거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중장갑을 입은 다움 형이 체중을 실어 버티지만 역부족.

“서둘러! 이 형이 좀 불안하다!”

여자든, 남자든 다 ‘형’이라니…….

“알았어, 오빠!”

“형이야!”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아라는 재빨리 네팔구미호의 뒤로 돌아가 남은 하나의 도끼로 녀석의 목을 찍었다.

“어?”

아라가 당황한 모양이다. 두 번은 안 통하는 건가.

네팔구미호의 꼬리 하나가 아라의 도끼를 붙잡았다. 녀석에게 꼬리는 팔처럼 개별 조작이 가능한 부위란 것을 간과하고 만 것이었다.

“흥! 재미있는데?”

아라는 씩 웃으며 팔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아라의 온몸에서 아지랑이가 뿜어져 나오며 순식간에 네팔구미호의 꼬리로부터 도끼를 빼냈다.

“히히히. 그럼 잘 가라!”

아라는 네팔구미호가 대응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대로 한 번 더 목 부분을 강타.

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빠각’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것으로 네팔구미호의 숨통이 끊어졌다.

저 두꺼운 목을 잘도 부러뜨리는 걸 보면 누가 사람이고, 누가 괴물인지 헷갈린다.

거대한 몸뚱이가 앞으로 쓰러지면서 다움 형은 뒤로 물러섰다.

“굉장해!”

뒤에서 구경만 하는 자신이 꼴사납다는 것도 잊은 채 넋을 잃고 보고 있었다. 물론 그러면서도 이 모든 싸움을 카메라에 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잘만 편집한다면 시청률이 제법 나올 것이란 확신이 든다.

21세기, 헌터의 실제 사냥 장면을 담은 TV쇼!

분명 인기 절정의 오락프로그램이 될 것이다.

이제 나에게도 한 줄기 빛이 비치는 걸까?

백수의 끝자락에서 살아남게 되는 걸까?

머릿속에서 장밋빛 미래가 그려진다.

촬영 영상의 반응만 좋다면 지겨운 보조 헌터 짓도 안녕이다. 이걸 시작으로 나도 나만의 팀을 꾸릴 것이다.

보조 헌터를 하며 쌓은 사냥 경험과 괴물에 대한 지식, 그리고 결정적으로 돈! 이것들이 있다면 허황된 꿈이 아니다.

아라와 문일은 쭈그려 앉아 죽은 네팔구미호를 살폈다.

“이거 얼마 정도 나갈까? 꽤 큰 놈인데?”

“글쎄, 이것저것 제하면……. 잘하면 올해 휴가는 해외로 가도 되겠는걸?”

네팔구미호의 발톱 가루는 건강 보조제로 인기가 좋다.

조랑말 뼛가루를 뛰어넘은 인기 상품!

효능?

난 줘도 안 먹는다.

“근데 이거 어떻게 운반하지?”

아라의 질문에 모두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곳은 첩첩산중, 그것도 지형이 험난한 축에 속하는 곳이다. 이동 수단은 두 다리뿐이고, 자동차가 있는 산 입구까지는 적어도 두 시간이 걸린다.

문일이 마지못해 의견을 냈다.

“헬기를 부를까?”

“안 돼! 그러면 수익이 줄어든단 말이야!”

아라는 방방 뛰면서 반대했다. 다움 형도 거대 방패를 털면서 거들었다.

“요새 기름값 싸졌는데, 이상하게 운송 비용은 더 늘었단 말이야? 그냥 우리끼리 들고 가자. 이 형이 한 힘 하잖아!”

“그렇게 힘센 분이 얼굴은 다 죽어 가세요?”

문일의 핀잔에 다움 형은 소리를 질렀다.

“지쳐서 그런다, 왜? 셋이서 같이 들면 옮길 수 있어!”

“흠……. 이왕이면 넷이서 하죠?”

무슨 생각인지 내 입에서 이딴 말이 튀어나왔다.

“뭐?”

순간 세 사람이 날 쳐다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뻔히 보인다.

제길……!

“상팔이가? 농담하는 거지? 만날 숨어만 있는 겁쟁이잖아?”

아라의 질문에 마음속에서부터 고개를 저었다.

난 겁쟁이가 아니야! 그저 지극히 이성적인 거지.

나보고 어쩌라고? 저번에도 도우려다가 하마터면 비명횡사할 뻔했는데!

“상팔이는 약하잖아. 짐 나르는 것도 제대로 못 한다고!”

다움 형도 회의적으로 말했다.

“조금 빌려주지, 뭐.”

문일이가 지금 뭐라고 한 거지?

빌려줘?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문일이는 털털하게 말하며 나에게 다가온다. 가끔 보면 날 무슨 실험용 쥐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며 문일과 거리를 벌렸다.

“갑자기 무슨……?”

“하하하. 별거 아니에요.”

한 걸음 더 물러나려는 찰나, 문일이 갑자기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내 뒤에서 문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계세요.”

“뭐, 뭐야?”

“가, 만, 히, 계세요.”

문일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아까처럼 환한 빛 같은 것을 쐈다.

어깨로부터 묘한 활력 같은 게 느껴진다.

어깨 결림에서 해방된 기분이랄까, 다시 태어난 느낌이랄까. 처음 느껴 봐서 그런지 뭔가 다른 거랑 비교하기 어렵다.

하여튼 끝내주게 기분 좋다.

쾌감이나 황홀함과는 다른 느낌의 절정.

그것이 바로 H세포, 그리고 H세포의 힘인 ‘H력’의 존재감이었다.

책에서 읽었을 땐 그저 ‘몸이 살짝 이완되다가 단단해지는 좋은 느낌’이라고 쓰여 있지만, 이건 그저 그딴 단어 몇 개로 설명할 수 있는 느낌이 아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 보는 것이다.

“우……와…….”

“어때요? 받아 볼 만하죠?”

주입이 끝나자 더 이상 어깨에 짊어진 카메라가 무겁지 않았다. 단순 무게뿐만 아니라 아예 카메라의 존재 자체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감각이구나, 그래서 저렇게 연약해 보이는 여자애가 한 손에 도끼 하나씩을 들고 휘둘렀구나!

감탄이 절로 나온다.

카메라를 내려놓으며 진정한 자유를 만끽했다. 들이마시는 공기부터가 다르게 느껴졌다.

다시 태어난 것 같다.

“그럼 이제 옮깁시다요! 해 저물기 전에 차로 돌아가야죠?”

아라의 말에 우리는 다움 형의 거대 방패 위에 네팔구미호를 눕혔다. 그리고 각자 한쪽 모서리를 잡은 다음 번쩍 들었다.

지금 느껴지는 무게는 너무 가볍다.

감탄이 연발로 터졌다.

“와, 와, 와! 대단하다. 이게 바로 헌터구나! 존경스럽다, 이런 재능을 타고나다니…….”

H세포, 그리고 H력!

“하하하. 뭐, 덕분에 먹고사는 거죠. 형도 오늘은 한 건 하셨네요?”

문일의 칭찬이 낯설다.

사실상 이 힘은 문일의 것.

자화자찬으로 봐도 무방하다.

간신히 올라왔던 산길을 평지처럼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아까 내 피부를 긁었던 잔가지가 반대로 내 피부에 의해 부러지는 것을 보았다.

만화나 영화에 나오는 초능력자가 된 것이다.

사실 현대의 초능력자 창작물이 헌터를 기초로 해서 만들어졌단 사실을 안다면, 이건 아주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수월하게 산 입구에 세워 놓은 자동차로 돌아왔다.

세 사람은 자신들의 트럭에서 커다란 아이스 캡슐을 꺼내 네팔구미호를 통째로 넣었다.

거대한 괴물이 원통형의 냉장고 속으로 사라졌다.

이렇게 모든 사냥이 끝났다. 내가 이 팀의 보조가 되고 처음으로 쓸모가 있던 하루였다.

문일은 내게 한 번 더 주의를 주었다.

“주입된 힘은 일시적인 거니까, 곧 사라질 거예요.”

“알았어. 하지만…….”

헌터의 힘은 본래 선천적인 것.

타고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재능.

평범한 인간인 내게는 조금이나마 경험을 한 것 자체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값진 것이었다.

“그동안 수고했어. 다음에 또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젠 안녕이야!”

아라가 트럭 밖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래, 잘 가라.”

나도 아라에게 손을 흔들었다.

잘 가라. 제발 그 쌍도끼로 사람은 찍지 마.

떠나가는 트럭을 보면서 나도 내 경차에 올라탔다. 그러나 시동을 거는 순간, 나는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에 휩싸였다.

어깨가 가볍다? 지금은 H세포의 힘이 사라졌는데……?

망했다.

카메라를…….

“놓고 왔어!”

충격에 빠진 사이 해는 완전히 저버렸다. 그리고 다시 돌아본 사냥 구역은 마귀들의 소굴처럼 기묘한 울음소리를 뱉어 냈다.

혼자서 다시 저 속으로 들어갈 배짱이 없었던 난 핸들에 머리를 박으며 내가 아는 모든 욕을 내뱉었다. 썅, 썅, 썅!

허당 인생 29년. 이렇게 내 마지막 20대가 흘러가고 있었다.

***

올해로 나이 29세.

직업 백수.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거리를 걸으며 시간을 죽이는 것 정도다.

저번 주까지만 해도 방송국에서 거금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그저 카메라 보상액에 허덕이는 인생 실패자에 불과한 처지.

젠장, 방송용 카메라가 그렇게 비쌀 줄이야!

주변의 네온사인이 눈부시다.

나 같은 패배자에게는 과분하다.

네온이 달린 건물은 하나같이 인생의 승리자들이 즐기는 장소. 양복쟁이 아니면 메이커로 도배한 놈들뿐이다.

네온이 태양빛보다 더 밝다니, 말세다.

네온을 피해 고개를 올렸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별과 달이 아니라 광고용 애드벌룬이었다.

“빌어먹을!”

버려진 빈 깡통을 힘껏 걷어찼다.

학교 선배를 통해 정말 간신히 얻게 된 기회, 술자리를 통해 정말 간신히 잡을 뻔한 동아줄. 그리고 정말, 정말 간신히 맛본 진짜배기 헌터의 느낌.

모든 게 한낱 신기루였다.

“뭐야!”

누군가가 내 어깨에 일부러 어깨를 부딪쳤다. 그리고 보란 듯이 내 멱살을 잡았다.

난 모든 걸 포기한 채 씩 웃었다.

“때려 봐.”

상대는 바로 검은 양복에 머리를 깍두기로 깎은 거구.

뱃살 하나 없이 판판한 복부와 더불어 우람한 팔 근육이 소매를 뜯고 튀어나올 기세다. 하지만 지금의 난 조금도 무섭지 않다.

“뭐라고 했냐?”

“때리라고! 죽여 달라고!”

거구는 날 끌어당겨 킁킁 냄새를 맡았다.

아마 내가 술에 취했는지 확인하는 중인 것 같다.

아니면 취향이든가…….

충분히 냄새를 맡은 거구는 미간을 꿈틀거리며 그대로 냅다 날 집어 던졌다.

“미친놈, 가서 공부나 해!”

“공부? 했거든! 내가 너보다 대학도 좋을걸!”

얼마나 세게 던져졌는지 자꾸 헛기침이 나온다. 고작 던져진 것뿐인데도 이 정도라니…….

어쩌면 헌터일지도 모른다.

헌터 중엔 H세포의 힘을 악용하는 인간도 많다.

힘이란 게 그런 거니까.

행인들은 멀찍이 떨어져 날 구경했다. 누군가는 날 손가락질을 했고, 누군가는 휴대전화로 내 사진을 찍어 코미디 보듯 깔깔거렸다.

저것들 얼굴 기억해 놨다가 초상권침해로 싹 다 고소해서 보상금이나 탈까?

귀찮다. 거구도 어딘가 가 버렸고…….

드러누운 채 하늘을 올려다봤다.

초승달 혼자 외로이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

분명 저 주변엔 무수한 별이 있을 텐데, 분명 달은 혼자가 아닐 텐데…….

왜 이놈의 세상은 보여야 할 것도 제대로 안 보여 주는지 너무나 답답하다.

많은 생각이 지나갔지만, 가장 날 답답하게 하는 것은 ‘내일 뭐 하지?’였다.

고작 카메라 하나로 내 모든 재산이 날아갔다.

폐인이 된 것 같다.

쓸모없는 인간, 쓰레기, 실패자, 패배자, 호구 등의 단어가 머리를 맴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이 그 영역을 향해 나아가고 있단 사실이 조금씩 실감이 난다. 하지만 무엇보다 날 슬프게 하는 건 공복감이다.

배고프다.

울며 겨자 먹기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억지로 다리를 움직여 일단 근처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주인아줌마가 형식적으로 인사를 건넸다.

언제나 한결같은 붉은 천막.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탁자와 의자.

조잡해 보이는 음식들. 그리고 녹색의 소주병와 갈색의 맥주병, 지저분하게 코팅된 유리컵까지.

아마 우리나라 최고의 자체 프랜차이즈가 아닐까 싶다.

언제 어딜 가도 똑같은 불변의 장소.

배에서 미친 듯이 꼬르륵 소리가 났다.

음식 냄새를 맡아서 그런가?

공복감이 더욱 심해진다.

아무 자리에 앉아 위에 걸린 메뉴판을 읽었다.

역시 포장마차!

싸고, 양 많고, 인심 좋고, 익숙한 이름이 한가득.

“우동하고, 맥주 하나요.”

주문을 할 때까지만 해도 모르고 있었다.

내 인생이 어느 틈에, 어디선가, 어떤 자식 때문에,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몰아칠지…….

‘왜’ 따위는 바라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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