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2화 (252/265)

펑펑!

카메라의 플래시들이 빗발을 쳤다. 플래시를 받으며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섰다. 이제는 안에 있던 기자들까지 합세해 윤도와 손석구를 조명했다. 윤도는 손석구에게 모든 공을 돌렸고 손석구는 윤도에게 그랬다. 두 명의가 일어나 손을 잡았다.

대한민국 한방 최고 명의 채윤도, 현대의학 중증외상의 최고 권위자 손석구. 두 거인에게 보도진의 플래시가 쏟아졌다.

“라오시.”

복도로 나오자 세 어린이가 윤도에게 인사를 해왔다. 라오시는 선생님이라는 중국어. 언어처럼 모두 중국 어린이였다. 나이는 세 살부터 여섯 살까지. 두 남동생은 여섯 날 누나의 손을 잡고 눈을 초롱거렸다.

“라오시.”

이번에는 굵직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이들 뒤에 선 남자였다. 윤도가 살린 그 선장이었다. 그 뒤로 몇 명의 중국 선주들이 보였다.

“황천에서 건져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장이 말했다.

“별 말씀을. 몸은 어떠세요?”

“견딜만 합니다.”

“다행이네요. 아이들 두고 떠났으면 어쩔 뻔 했습니까?”

“덕분에 많은 걸 깨달았습니다. 다시는 한국 해역을 넘보지 않겠습니다.”

“그럼 더 좋고요.”

“나포된 배들도 여기 선주들과 의논해 최대한 빠른 시간에 담보금 물고 찾아갈 생각입니다. 우리를 최선을 다해 치료하고 살려주신 선생님을 위해서라도.”

선장이 고개를 조아렸다. 아이들도 아빠를 따라 고개를 숙였다. 윤도는 세 아이를 안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폭풍 뒤에 찾아온 평화였다.

펑펑!

기자들의 플래시만은 여전히 폭풍이었다.

명의의 향기.

명의의 향기.

부웅!

윤도의 스포츠카가 도로를 질주했다. 조수석에는 손석구가 타고 있었다. 둘의 목적지는 청와대였다. 신속한 치료로 희생자를 최소한으로 줄인 데 대한 치하의 식사초대였다.

“차 좋은데요?”

손석구가 웃었다. 아비규환의 날이 지난 지 일주일이었다. 마지막까지 관리하던 중상자 두 명도 해당 진료과로 옮겨주는 통에 시간을 낼 수 있는 손석구였다.

“저는 좀 뻘쭘합니다.”

“왜요? 채 선생님하고 잘 어울리는 데요.”

“이게 실은 제가 산 게 아니거든요. 그러다 보니 왕진 같은 거 갈 때는 환자에 따라 미안한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건 이해가 가네요. 사연이 있는 차로군요.”

“제가 침술에 눈 뜬 기념이라고 할 수 있지요.”

“흐음, 그렇다면 대통령께서 채 선생님에게 개인 앰뷸런스라도 한 대 내려야하는데...”

“예?”

“그렇잖습니까? 운동선수들 같으면 국위선양하면 연금도 주고 훈장도 주고 포상금도 주지요. 그런데 채 선생님은 훈장만 달랑...”

“흐음, 중이 제 머리는 못 깎으니 대통령 뵈면 선생님이라도 좀 챙겨주라고 해볼까요?”

“아이고, 그런 말씀 마십시오. 아시다시피 저는 차 있어도 타고 다닐 시간도 없습니다. 오늘도 실은 수술이 두 개나 예정되어 있었는데 조교수에게 맡기고 왔습니다.”

“그럼 더 밟아야겠네요. 후딱 다녀가시게.”

“아닙니다. 솔직히 선생님하고 있으니 좋은 데요? 우리가 나이 차이는 많지만 친구 같거든요.”

“영광입니다. 선생님 같은 분이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영광은 제가 영광이죠. 이번 일도 바쁜 분 데려다 제가 일 시켜먹은 셈이니...”

“그거야 의료인이면 누구나 해야 할 일 아니었나요?”

“누구나 해야 하죠. 하지만 누구나 채 선생님 같은 능력을 지닌 게 아니니까요.”

“아, 그날 제 옆에 있던 남자 분 보셨죠?”

“선생님 도와주던 사람요?”

“북한에서 오신 분인데 침술이 기가 막힙니다. 북에서 한의대를 다 마치지 못해 국내 대학 편입 중이신데 졸업만 하면 명성 좀 날릴 거 같습니다. 그때는 선생님이 저랑 같이 불러서 쓰셔도 됩니다. 제 이름 팔면 도와줄 거거든요.”

“그러고 보면 한의학이 정말 요긴하네요. 조금 더 영역을 넓히면 인류의 질병과 부상 퇴치에 혁혁한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당장 침술만 해도 그렇고요.”

“인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 그런데 선생님이 침술특화 한의대를 설립하고 싶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랬죠. 제 꿈입니다.”

“그렇군요.”

손석구의 눈가에 깊은 생각이 스쳐갔다. 운전하는 윤도는 그걸 보지 못했다.

짝짝짝!

대통령은 박수로 윤도를 맞았다. 정 비서관과 양 비서관 등의 핵심 참모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두 분이 최고예요. 우리 대통령도 못하는 일을 했어요.”

영부인이 양 엄지를 세워보였다.

“어허, 이거 내 체면이 말이 아닌데?”

대통령은 너스레로 장단을 맞췄다.

“제가 뭐 틀린 말 했어요? 이 두 분이 없었어 봐요? 자칫하면 똥 낀 놈이 성질낸다고 중국 쪽에서 독박을 씌웠을 지도 모른다고요.”

“거기까지야 아니지만 전격적인 재발방지 선언은 하지 않았겠지요.”

“아무튼 우리 대통령은 복도 많으셔.”

영부인의 올라간 입술은 내려오지 않았다.

“자자, 차린 건 없지만 많이들 드세요.”

다과 후에 대통령이 권한 건 메밀국수였다. 영부인께서 직접 삶아냈다고 했다. 무 역시 영부인이 갈아낸 것이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손석구가 말했다.

후룩후룩!

대통령 부부와 장 비서관, 양 비서관, 그리고 윤도와 손석구의 식사였다. 반찬은 세 가지에 불과하지만 정갈했다.

“어때요? 잘 삶아졌어요?”

영부인이 윤도에게 물었다.

“맛 있네요. 게다가 몸에도 좋은 메밀이라...”

“손 교수님은요?”

“저도 입에 딱 맞습니다. 술술 넘어가는 데요?”

“많이들 드세요. 두 번 세 번이라도 더 삶아내다 드릴 게요.”

영부인이 무 채를 밀어주었다.

“혹시 진료에 애로 같은 건 없습니까? 이런 기회에 말씀하시면 대통령께서 챙겨드리실 지도 모릅니다.”

정 비서관이 분위기를 띄웠다.

“중증외상센터가 어려운 건 국회에서도 말씀드렸고... 그러고 보니 의료현장의 분위기에 대해 드릴 새로운 안건이 있기는 합니다.”

손석구가 바로 응답하고 나섰다.

“말씀해 보세요. 제도적으로 부족한 게 있으면 보완을 강구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통령의 시선이 손석구를 향했다.

“특별한 의학대학 설립을 도와주십시오.”

“특별한 의학대학?”

대통령이 정 비서관을 바라보았다.

“침술특화 한방대학입니다.”

“......?”

듣고 있던 윤도가 파뜩 고개를 들었다. 한방대학? 손석구가 웬 한방대학?

“방금 한방대학이라고 했습니까?”

대통령이 확인에 나섰다.

“그렇습니다. 아시는지 모르지만 여기 채윤도 선생이 지금 침술을 특화한 한방대학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대든 한의대든 설립인가가 쉬운 건 아니죠. 하지만 이미 많은 경우에서 보셨듯이 채 선생님의 침술은 우리 민족의 보물로 전승해 가야합니다. 솔직히 우리나라에 채 선생님 같은 침술 한의가 몇 명만 더 있어도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 특화된 대학을 세워 10명, 100명, 1000명의 침술명의를 기른다면 불의에 죽어가는 사람들과 불치, 난치로 삶의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큰 빛이 될 것입니다.”

“손 선생님.”

윤도는 귀를 의심했다. 이 말은 윤도가 하려던 말이었다. 그걸 지금 손석구가 하고 있었다.

“제 눈에 대한 사연 아시죠? 중증외상 수술의 격무로 시력을 잃었던 눈입니다. 이 눈을 살려준 것도 채윤도 선생님이죠. 그런 맥락에서 보면 며칠 전 서해 상의 참변을 최소한의 희생으로 막은 건 우리 둘이 아니라 채윤도 선생님이었습니다. 이 분이 없었다면 저는 그 자리에 없었을 테니까요.”

“......”

대통령은 압도 되고 있었다. 손석구의 분위기가 그랬다. 돌직구처럼 핵심을 찌르는 내용에 팩트에 근거한 이야기들. 윤도를 아는 대통령이기에 감전을 벗어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영부인도 고개를 끄덕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제가 비록 힘은 없지만 필요하다면 기자회견이라도 열어서 채윤도 선생님의 침술특화대학에 대해 지지선언을 하겠습니다. 제가 아는 의료인 전부를 동원해서라도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채 선생님의 구상이 실현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허어!”

대통령 입에서 탄식이 나왔다. 입장이 곤란한 윤도는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두 양반은 볼 때마다 나를 부끄럽게 하시는군.”

대통령은 윤도를 바라보며 말꼬리를 이었다.

“채 선생.”

“예.”

“침술특화 한의대 이야기는 저번에 들었소만 어디까지 준비가 되었소?”

“예?”

“대학설립 말입니다. 채 선생이라면 말로만 구상할 분도 아니고...”

“죄송합니다. 제가 교육부에 정식으로 신청하려던 것이...”

“아니에요. 여기서 채 선생 탓할 사람 아무도 없어요. 그러니 허심탄회하게 말해보세요.”

“저도 궁금하네요.”

영부인도 거들고 나섰다.

“정 그러시다면, 대학부지는 이미 마련이 끝난 상태입니다. 설립자금도 제가 만든 신약에서 들어오는 돈으로 충분하고요.”

“인가만 나면 된다는 말이군요?”

“예...”

“그건 기분 나쁘군요.”

대통령의 표정이 굳었다.

“예?”

“손 교수님 말에 의하면 그 대학이 설립되어 우수한 인재가 배출되어야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질이 더 좋아진다는 거 아닙니까? 채 선생 설명도 그랬었고요. 그런데 그 정도 진척이 되었으면 말씀을 하셔야지 이 사람의 자문의라는 분이 한 마디 언질도 안 해서 나를 곤란에 빠뜨린단 말입니까?”

“그건...”

“이러니 우리 영부인께서 두 분이 저보다 낫다는 말을 하는 거 아닙니까? 대통령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는군요.”

“죄송합니다.”

“하핫, 조크예요. 과연 채 선생입니다. 지난번에 언급이 있었지만 아직은 멀었지 싶었는데 그새 준비를 다 갖추고 계시다니.”

굳은 표정을 풀어낸 대통령이 웃었다.

“동네방네 소문낼 일도 아니라서요.”

“맞아요. 진짜 꿈은 타이밍이 형성되는 그 순간까지 가슴 갈피에 찔러두는 거죠. 그러다 때가 왔다싶으면 팍!”

대통령이 주먹을 쥐어보였다.

“손 교수님.”

“예?”

“그 뜻은 잘 알았습니다. 보시다시피 우리 채 선생이 이렇습니다. 워낙 능력 있는 분이라 혼자 힘으로 개척해나가시잖아요. 어쩌면 그게 오히려 더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올 지도 모르죠.”

“예...”

“이 사람은 늘 채 선생 행보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런 줄만 아세요.”

대통령이 마무리는 시사하는 바가 컸다. 누가 봐도 긍정적이었다. 문장과 말투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그랬다.

온 김에 대통령 부부에게 침을 놔주었다. 영부인이 사양했지만 윤도는 메밀국수값이라며 우겼다. 두 사람은 적은 나이가 아니었다. 잔병일 때 고치면 큰 병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대통령 자문의의 몸이니 건강을 관리해줄 의무도 있었다.

“아유, 시원해.”

허리에 침을 맞은 영부인이 활개를 쳤다.

“어이쿠, 우리 영부인께서 20대 허리로 돌아가신 것 같구만.”

대통령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는 당신은요? 툭하면 채 선생님 침 노래를 부르시면서.”

“어허, 이 양반이 국가 기밀을 다 발설하시는구만. 다 발설해.”

대통령이 파안대소를 했다.

기념품을 받아들고 청와대를 나왔다. 올 때처럼 많은 사람들의 배웅을 받았다.

부릉!

차가 광화문 도로로 나왔다.

“선생님.”

윤도가 바로 포문을 열었다.

“왜요? 선생님이 할 말 가로챘다고 고소라도 하시게요?”

손석구가 느긋하게 응수했다.

“그건 아니지만...”

“저 때문에 입장 곤란했어요?”

“사실 상상도 못한 일이라...”

“원래 중이 제 머리 깎기 힘든 법이에요. 게다가 나도 채 선생에게 얼굴 서는 일이고.”

“......”

“침술특화대학 꼭 설립하세요. 그래서 우수한 침술 한의 많이 뽑으셔야 저도 급할 때마다 지원을 부탁하지요.”

“그럼 선생님도 중증외상 후배들을 많이 양성하셔야...”

“저는 좀 어렵습니다.”

“왜요?”

“병원 측의 인식과 신뺑이 닥터들 인식 때문이죠. 병원은 중증외상센터가 돈 안 된다고 찬밥취급이고 새내기들은 다 돈 되는 진료과로 몰려가고. 그나마 우리 병원은 제 이름 값 때문에 수련의 걱정은 안 하지만 다른 병원들은 수련의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곳도 많습니다.”

“그렇군요.”

“한의도 최근까지는 침체기지요? 하지만 이제 채 선생이 신의로 활약하면서 국민들 인식이 좋아졌으니까 앞으로는 점점 나아질 겁니다.”

“예...”

“오늘 일 참 유쾌했습니다. 선생님 대변인 노릇 말입니다.”

“손 선생님...”

“한의대설립... 아마 쉽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채 선생님이기에 가능합니다. 여건과 여론이 성숙된 이때에 밀어붙이세요. 제 도움이 필요하면 삭발투쟁이라도 해드리겠습니다.”

“마음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다 왔네요.”

손석구가 서울역을 가리켰다. 그는 KTX로 내려갈 예정이었다.

“채윤도다!”

“손석구 교수다!”

개찰구가 가까워지자 대학생 한 무리가 윤도네를 알아보았다. 손석구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플랫폼으로 입장을 했다.

KTX가 출발을 했다. 조금씩 속도를 내더니 긴 꼬리가 멀어졌다.

‘고맙습니다.’

멀어지는 열차를 보며 생각했다.

손석구.

그는 멀어졌지만 그의 인품은, 시원하게 펼쳐지는 철도길 만큼이나 길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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