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6화 (246/265)

“제가 말씀드렸었죠? 아기가 한 이틀만 참아주면 회복될 수도 있다고 했는데 그대로 된 것...?”

공치사를 늘어놓는 담당교수 지명세. 부부는 그를 지나쳐 윤도에게 향했다.

“선생님.”

“축하합니다.”

해쓱해진 윤도가 웃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아닙니다. 준서는 부모님의 사랑과 집념이 살린 겁니다.”

“그런 말 마세요. 여기 의료진은 포기했던 아기인데...”

“굉장히 어려운 상태인 건 사실이었습니다. 하늘이 돌본 거죠. 나중에 침을 몇 번 더 맞으면 괜찮아질 거 같습니다.”

“선생님.”

눈물을 뿌리는 부부를 달래고 병실을 나왔다.

“채 선생.”

창승이 다가왔다.

“어떻게 됐어?”

“살았습니다.”

“으악, 정말?”

“안 되나 싶었는데 아기가 잘 버텨줬어요.”

“으아악, 역시 채윤도.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미안하지만 제가 화장실에 좀...”

윤도가 웃었다. 긴장이 풀리니 방광이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강물처럼 들어찬 소변을 비워냈다. 복도로 나오니 주치의실이 보였다. 인사나 하고 가려고 들어섰다. 안 쪽 탈의실에서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나중에 와야겠군.’

발길을 돌릴 때 대화소리가 걸음을 세웠다.

“좋은 경험된 거야. 다음부터는 미숙아들 탈장 밀어 올릴 때 조심하라고.”

“네.”

앞의 말은 지 교수 것이었고 뒤의 대답은 민 선생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으로 알라고. 다른 수련의 같으면 내가 수습 안 해줬어.”

“......”

“오늘 나이트 비번이지? 이 건 시원하게 떨쳐버릴 겸 나가서 같이 한 잔 하자고. 오늘 설마 그 날은 아니지?”

담당교수가 민 선생 어깨를 짚었다. 민 선생은 몸을 빼지만 교수의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 손이 민 선생을 당겨 안았다. 등을 토닥이는 교수의 눈에는 욕정이 이글거렸다.

어라, 이 것들?

이제 보니 의료과실?

이제 보니 그렇고 그런 사이?

윤도의 피가 폭풍처럼 끌어올랐다.

인큐베이터 Emergency-3

인큐베이터 Emergency-3

사건이 대략 파악되었다. 닥터 민의 표정. 그래서 어두웠던 모양이었다. 윤도가 생각한 것처럼 환자에 대한 연민에서 나온 감성이 아니었다.

퍼킹.

핏대 게이지가 확 올라갔다.

더 나쁜 건 담당교수로 보였다. 탈장의 문제였다면 그가 직접 체크를 하는 게 옳았다. 그걸 무시하고 주치의를 내세웠다. 미숙한 탓에 사고가 났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니 질책이나 책임 대신 다른 카드를 꺼내들었다.

네 잘못이니 네가 무마해라. 그럼 나도 모른 척 해주마. 다만 한 가지... 담당교수의 시선이 민 선생의 몸매를 더듬었다.

<거래>

우월적 지위를 내세운 불손한 카드였다. 미투(Me too)의 기원(基源)이었다.

담당교수가 복도로 나왔다. 휘파람을 불며 멀어졌다. 닥터 민은 잠시 후에 보였다. 어깨가 한없이 늘어졌다. 가엾게도 기득권의 덫에 걸린 것이다.

윤도는 비상구 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변강쇠야? 무슨 소변을 그렇게 오래 봐?”

병실 앞으로 돌아오자 창승이 애정어린 핀잔을 주었다.

“변강쇠는 이 병원에 많은 거 같은 데요?”

“응?”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윤도가 창승을 바라보았다. 몹시 진지한 눈빛이었다.

잠시 후 윤도 손에 들어온 건 진료기록부 사본이었다.

“뭐 확인할 거 있어?”

사본을 챙겨다준 창승이 물었다.

“S병원 말입니다. 그만 뒀지만 라인 있죠?”

“그야...”

“이 거 좀 검토해달라고 하세요.”

“채 선생.”

“소아과 아니시잖아요? 이 병원은 당사자이니 물어볼 수 없고... 제 생각이지만 담당 의료진이 뭔가 숨기고 있습니다.”

“......?”

윤도 말에 창승이 벼락처럼 반응했다. 뭔가 감을 잡은 것이다.

“한 치의 가감도 없이 알아봐 주세요. 아니면 선배님도 저하고 적 됩니다.”

이제는 폭탄선언까지 투하하는 윤도였다.

진료기록부의 행간에 숨은 사연을 알아내는데 걸린 시간은 15분이었다. 윤도는 사본을 팽개쳐버렸다. 윤도의 추측이 들어맞고 있었다.

병실에서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는 기도삽관이었고 둘째는 탈장에 대한 안일한 대처였다. 준서 의료진의 대처는 마취성 진통제였다. 아픈 미숙아에게 진통제를 투여해 재워버렸으니 고통을 표현할 길을 막아버린 셈이었다.

탈장수술은 난이도가 높지 않은 게 문제였다. 담당교수가 적극 나서지 않는 통에 적시에 수술 스케줄을 따내지 못했다. 그렇게 방치되는 동안 장파열의 문제가 야기되었다.

한 마디로 탈장을 너무 우습게보았다.

어쩌면 상시 긴장의 결과로도 보였다. NICU는 24시간 비상체제다. 인간은 반복에 약해진다. 게다가 전부 목숨을 다투는 환자들이다 보니 탈장 정도는 초비상사태에 속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탈장은 목숨까지도 앗아갈 수 있는 병이다. 그건 이 미숙아의 경우가 잘 말해주고 있었다.

서혜부는 다른 말로 사타구니를 지칭한다. 정상의 경우 장기는 복막 안에 존재한다. 그러다 복벽이 약해지면 복강 밖으로 삐져나온다. 그게 탈장이다. 이 아기의 경우는 서혜부 주위를 통해 빠져나왔으므로 서혜부 탈장이다. 어떤 경우에는 손으로 만져 복강 내로 밀어 넣으면 제 자리로 가기도 한다. 그러나 적시에 조치를 하지 않으면 장이 썩을 수도 있다. 아기의 경우가 여기에 속했다.

그 주의 화요일 오전, 아기는 X-레이를 찍었다. 이때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 다다음 날 부모들에게 장파열이 통보되었다. 민 선생이 담당교수의 지도 하에 탈장을 복강으로 밀어올린 이후였다. 아기가 자지러졌다. 탈장이 방치되면서 장에 썩기 시작했는데 그걸 간과한 의료진이 이학적검사와 더불어 무리하게 탈장을 복강 내로 밀어올리다 사단이 난 것 같다. S 병원 측의 판단이었다.

담당교수의 회진이 거의 없었다는 점도 지적이 되었다. 노련한 전문의라면 아기의 보챔만으로도 이상을 감지했을 테고 그랬다면 장천공으로 인한 대변의 누출과 고환감염도 막을 수 있었을 거라고 했다.

이 사안은 간호일지에서도 드러나고 있었다. 이날 아기는 심하게 보채며 울었고 면회시간에 들어온 보호자가 항의를 했다는 기록이 있었다.

한 마디로 병원의 과실이었다. 미숙아는 집중 관리를 요하는 환자. 그렇기에 NICU의 A셀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허술한 관리를 받은 것이다.

“선배님.”

윤도가 창승을 바라보았다.

“왜?”

“이 미숙아 담당교수 말입니다. 평판이 어때요?”

“지명세 교수?

“예.”

“소문은 좀 안 좋아. 안하무인에 입신양명파라더군. 수련의들 후려잡는 건 물론이고.”

“......”

“하지만 나도 잘은 몰라. 닥터 민 대하는 거 보면 헛소문인 거 같기도 하고.”

“어떻게 대하는 데요?”

“아까 봤잖아? 좀 잘난 척 하는 면은 있지만 그만하면 군기 잡는다고 볼 수 없지.”

“이유가 있는 지도 모르죠.”

“이유?”

“오늘 닥터 민 당직 아니죠?”

“그렇게 들었는데 왜? 설마 그 사이에 꽂혔어?”

“이 선배님은 어때요? 잠깐 나갈 수 있습니까?”

“당연히 나가야지. 내가 모셨는데 저녁이라도 쏴야하지 않겠어?”

“그럼 가시죠. 제대로 꽂히는 게 뭔지 제가 보여드리죠.”

윤도 목소리에서 불꽃이 튀었다.

“채 선생.”

창승이 미간을 찡그렸다. 한우생등심집 앞에 위치한 24시 편의점이었다. 윤도가 다짜고짜 내놓은 건 컵라면이었다.

“왜요? 의사 쯤 되니까 컵라면은 못 먹습니까?”“누가 그렇대? 당직 설 때는 이것도 하느님이야.”

“그럼 얼른 드세요. 불어터지기 전에.”

윤도가 먼저 면을 우겨넣었다.

“여기서 이래야하는 이유를 말해줘야지.”

“눈으로 봐야하는 일입니다.”

“채 선생.”

“글쎄 입 더러워질까봐 말 못한다니까요.”

“뭔가 오해를 하고 있나본데 지 교수는 사생활에 문제없어. 집안 좋고 인품 좋아. 시건방진 건 실력이 있으니까 그런 거고.”

“안 드실 겁니까?”

자기 몫을 해치운 윤도가 창승의 라면을 바라보았다.

“아, 진짜. 배 고프면 근사한 데로 가자고. 나 수련의지만 그 정도는 쏠 수 있어.”

“누가 안 간답니까? 조금 있다가자는 거죠.”

“진짜 불손한 상상하는 거면 너무 오버야. 닥터 민은 약혼자도 있는 몸이거든. 게다가 지 교수는 60대. 누가 봐도 매칭이 안 되는 그림이잖아?”

“미안하지만 그 일은 나이랑 별 관련이 없거든요.”

“......”

“어!”

창승의 라면을 집어들던 윤도가 동작을 멈췄다. 한우집에서 지 교수와 민 선생이 나오고 있었다.

“아, 진짜...”

창승은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긁어댔다. 하지만 그 역시 동작을 멈추게 되었다. 지 교수와 민 선생 때문이었다. 둘은 차를 두고 걸었다. 차를 마시려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놀랍게도 지 교수의 걸음이 멈춘 건 모텔 앞이었다. 주저하는 민 선생을 잡아끌고 있었다.

“이제 됐습니까?”

윤도가 일어섰다.

“채 선생...”

“실은 아까 외진 곳에서 두 사람이 말하는 걸 들었어요. 지 교수가 민 선생 약점을 빌미로...”

성상납내지는 성폭행 각.

“......”

창승이 자지러졌다. “병원 감사실에 아는 직원 있다고 했죠?”

“채 선생.”

“연락하세요. 선배님도 이런 일에 끼기는 싫을 테니.”

“젠장, 그럼 아예 숙부님에게 걸자고. 그래야 한 방에 끝나지.”

“콜!”

윤도가 화답했다.

30분 쯤 후에 병원 감사실장이 도착했다.

실장은 혼자 모텔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나올 때는 세 사람이 함께였다. 지명세 교수와 민 선생, 그리고 감사실장. 지 교수는 감사실장에게 매달리다시피 애원하고 있었고 민 선생은 넋이 반은 나가있었다.

“이제야 정리가 된 것 같군요. 이제 한 턱 제대로 쏴보시죠.”

윤도가 창승의 덜미를 당겼다.

다음 날 지명세 교수는 해임을 당했다. 감사실장의 보고를 받은 이철중이 창승을 불러 자초지종을 들었고 민 선생을 호출해 확인을 받은 것이다. 민 선생에게 내린 처벌은 엄중 경고였다. 성 문제에 있어서는 피해자였지만 자신의 실수를 감추려고 한 일이니 그 책임까지 면해주지는 않았다. 준서의 부모에게는 위로금으로 5천만 원 보상이 결정되었다.

사고는 두 얼굴 지명세의 잔머리였다. 평소 민 선생을 넘보던 그였다. 어떻게 하면 한 번 건드릴까 궁리하던 끝에 기회를 잡았다. 실수를 포착한 것이다. 양심의 가책을 받은 민 선생의 약점을 노려 합궁을 시도했다. 문제는 이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조사를 하다 보니 몇 해 전에도 유사한 투서가 있었다. 그때는 지 교수가 명예훼손 운운하며 펄펄 뛰는 통에 유야무야 넘어갔다. 때늦게 확인해 보니 그 투서도 신빙성이 높았다.

“부원장님.”

부원장실로 불려온 지명세는 선처를 호소했다. 미숙아를 살린 일로 기분이 좋아져 고생한 민 선생을 치하하다보니 과음을 하는 바람에 발생한 불가피한 일이라는 거였다. 정작 자신은 발기불능으로 섹스를 할 수 없다는 증거도 꺼내놓았다. 다른 병원의 발기부전 치료 기록이었다.

그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성폭행이나 추행은 거시기로만 하는 게 아니었다. 지명세의 주무기는 기구였다. 그것으로 예비 신부인 민 선생을 능욕했다. 그건 민 선생의 고백으로 알게 된 일이었다.

짝!

이철중이 따귀를 날렸다.

“부원장님.”

뻔뻔하게도 억울한 표정을 짓는 그 얼굴에 또 한 방의 따귀가 작렬했다.

“들어오세요.”부원장이 소리쳤다. 문이 열리며 들어선 건 형사들이었다. 그 옆에는 민 선생이 서있었다.

“당신은 파면이야. 민 선생이 용기를 내서 고소를 했으니 다음 조치는 경찰에서 받도록.”

이철중은 파면이라고 말했지만 지명세의 귀에는 파멸로 들렸다.

파멸.

갑질의 대가였다.

“지명세 교수 파면!”

NICU 앞에서 창승이 외쳤다. 윤도는 방금 도착해 있었다. 준서를 위한 왕진이었다.

“짤렸어요?”

윤도가 물었다.

“짤린 것 And 경찰서 행. 민 선생이 성폭행으로 고소를 했다네.”

“그래요?”

“결혼 앞 두고 고민 많이 했는데 채 선생 보고 느낀 게 많아서 용기를 냈대.”

“제가 뭘요?”

“미숙아 말이야. 자기는 주치의면서도 실수를 숨기고 달아날 궁리만 했는데 채 선생은 아무 연관도 없으면서 혼신의 치료. 옆에서 지켜보면서 대오각성했나 봐.”

“아무 연관이 없다는 건 좀 그렇네요. 의료인이면 병자에 대해 적어도 n분의 1의 책임은 있다고 봅니다.”“역시...”

“그럼 파혼인가요?”

“아니야. 다행히 남편 될 친구가 외국계라서 이해를 해줬다네. 사실 고소도 그 친구가 강력하게 권한 일이래. 언젠가 밝혀질 일이라면 이런 기회에 다 벗고 가자고. 그게 결혼 새출발 의미와도 어울리지 않냐고.”

“좋은 남자 만났군요.”

“그리고 부원장님이 면목없다고 전해달래. 나중에 밥 한 끼 사면서 따로 사죄하시겠다고.”

“부원장님이 왜요?”

“우리 병원에서 일어난 일이잖아? 채 선생 볼 면목이 없다고 하더라고.”

“앞으로 잘 하시면 되죠.”

“어, 저기 민 선생 오네?”

창승이 복도 끝을 가리켰다. 닥터 민이 다가오고 있었다.

“채 선생님.”

그녀가 윤도 앞에 섰다. 마음 고생으로 수척하지만 표정은 밝아보였다.

“......”

“정식으로 사과드리려고요. 제 과실, 선생님에게만은 고백하고 싶었어요.”

“그건 준서에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래야죠. 준서 부모님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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