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0화 (240/265)

“뭐죠?”

“중국 인터넷판 기사예요.”

출력물에는 윤도 얼굴이 나와 있었다. 그 옆은 추이펑과 중의들이었다. 동행한 기자가 올린 기사였다.

“......!”

기사를 읽어가던 윤도가 시선을 멈췄다.

<신진 중의들, 세계 최고로 꼽히는 한국 한의와 협력 치료 차 방한 중>

<신진 중의들, 놀라운 침술로 협력치료 선도>

소제목들이 좋지 않았다. 기사에도 연수라는 단어는 없었다. 세계적인 명의 채윤도와 협력하는 중의. 그것은 곧 연수 온 중의들을 윤도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는 작태였다.

“이 기자, 본질을 모르는 거 아닌가요? 연수가 아니라 협력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정나현이 핏대를 올렸다.

“아뇨. 어쩌면 이게 본질일 겁니다.”

“예?”

“저 때문에 중의들 자존심에 금이 갔잖아요. 그걸 회복하려는 거죠.”

“어머, 저속해요.”

“연수비가 무려 2억이잖아요. 굴기를 중요시 하는 중국인데 일없이 거금을 투자할 리 없지요.”

“그럼 그냥 돌려보내는 게...”

“이미 도전장을 받았습니다.”

“예? 도전장이라고요?”

“내일 기사는 중의, 한의를 뛰어넘는 대륙침술을 선보이다, 이렇게 나갈지도 모르죠.”

“원장님.”

“하핫, 걱정할 거 없어요. 희망이야 누구든 품을 수 있는 거니까. 저 퇴근합니다.”

키 홀더를 돌리며 정나현을 지나갔다. 휘파람도 나왔다. 피가 후끈 달아올랐다. 이 도전, 유쾌하게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어차피 벌어진 판이므로.

“제게 맡겨주시면 오전 중에 걷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추이펑의 발언은 야심 그 자체였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오늘 진료할 예약환자들 자료를 보는 자리였다. 첫 환자로 내정된 진행성 근위축증 환자를 대상으로 의견을 나눌 때 추이펑이 딜을 던지고 나왔다.

“추 선생, 진행성 근위축증은...”

쑨시앙이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저는 채 선생님에게 말씀드리고 있는 겁니다만.”추이펑은 쑨시앙조차 일축했다.

“환자도 보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겁니까?”

윤도가 물었다.

“이미 보았습니다만.”

“......?”

“조금 전 우리가 도착할 때 그 환자가 보호자들과 함께 차에서 내리더군요. 휠체어에 앉을 때 저도 같이 부축하면서 맥을 잡았습니다.”

“......?”

“어제 제가 드린 부탁... 제가 이 환자를 걷게 하면 시범을 부탁드립니다.”

추이펑의 시선은 집요했다.

“부탁이 아니더라도 오장직자침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과시성으로 비칠까봐 연수 과정에서는 빼려던 것인데 그리 원한다면 참관을 허락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무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닙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보기만 해서는 공부가 되기 어렵습니다. 진행성 근위축증은 제가 공부를 좀 했습니다. 주로 유전성 근육 질병이죠. 근육의 위축과 근력의 저하가 진행됩니다. 맥을 보니 비신양허입니다. 손발이 차고 호흡이 짧고 소화기능저하에 소변줄기도 시원치 않지요. 만성피로에다 이른 아침 묽은 변을 보는 날이 잦을 것이니 제 말이 틀렸습니까?”

추이펑은 근위축증에 대해 유려하게 읊어댔다. 차트에 기재된 것과 거의 유사했다.

“중국에서도 두어 명 고쳐본 적이 있으나 침법에 부족한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채 선생님께서 살피시고 조언해주시면 침술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추이펑이 핸드폰은 내밀었다. 화면에 중국 의학지 화보가 나왔다. 추이펑이 근위축증을 치료한 관련기사였다. 그것은 곧 추이펑이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의미였다. 윤도를 띄우는 듯 하면서도 제 욕심이 계산된 교활함이 엿보였다.

“정 그렇다면...”

쿨하게 수락해주었다. 여기는 윤도의 홈 그라운드. 그 정도 여유는 있는 윤도였다.

환자는 20대의 여학생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근위축으로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 온갖 약을 써봤지만 모두 허사였다. 추이펑에게 시침을 맡겼다. 환자에게는 동의를 구한 상태였다.

침은 단 두 방이었다. 환자를 돌리고 척추의 극상돌기 좌우에 장침을 박은 것이다. 장침은 물을 꿰듯 유연하게 들어갔다. 보사를 행하는 모습은 차라리 무아지경이었다. 하지만 윤도만 볼 수 있는 흠이 있었다. 그의 침은 유연하지만 난폭했다. 오직 결과를 지향하는 까닭이었다.

“발침하겠습니다.”

3시간이 지난 후 추이펑이 윤도를 바라보았다. 끄덕, 고갯짓을 하는 것으로 답했다. 이제는 중국 기자에 더불어 두 중의도 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다.

50분 간격을 두고 세 번 들어간 장침. 척추극상돌기에서 침이 빠졌다. 윤도가 다가가 진맥을 했다.

“......”

잠시 숨을 멈췄다. 비신양허, 즉 비장과 신장의 기혈이 바닥나 따뜻한 양(陽)의 생기가 부족했던 상태가 개선되어 있었다. 비장과 신장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약간의 부조화를 보이지만 근위축증을 잡은 건 확실했다.

“일어나볼래요?”

윤도가 환자에게 말했다. 환자가 움직이자 정나현이 부축해 주었다. 환자의 두 발이 바닥을 밟았다. 오랫동안 앉고 서지를 못했던 환자. 벽을 짚더니 혼자 힘으로 버티고 섰다.

“어머!”

환자가 소스라쳤다. 파르르 경련한 환자가 더듬 한 발을 떼었다. 그 발은 무너지지 않았다. 또 다른 발이 받치며 앞으로 나갔다. 윤도가 침구실 문을 열었다. 복도에는 그녀의 보호자들이 있었다.

“여보!”

딸의 회복을 본 어머니가 비명을 질렀다. 통화를 하고 있던 아버지는 핸드폰을 떨구고 말았다. 들어갈 때는 휠체어를 탄 채였던 딸. 그 딸이 걸어서 나오고 있었다.

“치료는 여기 중국에서 오신 추이펑 선생님께서 해주셨습니다.”

윤도가 보호자들에게 말했다. 중의의 공을 가로챌 생각은 없었다.

펑펑!

중국 기자의 카메라가 플래시 공세를 이어갔다.

윤도는 탕약에 과잉으로 고양된 비장과 신장에 대한 처방을 끼워 넣었다. 추이펑의 오버를 잡아주는 것이다. 그걸 알 리 없는 추이펑은 환자와 함께 기념촬영에 바빴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중국 기자였다.

오후, 토론실의 분위기가 숭고해졌다. 또 다른 중증 근무력증 환자 때문이었다. 첫 맥은 우레이가 잡았다.

“중증의 근무력증인가?”

그가 중얼거릴 때 추이펑의 인상이 구겨졌다. 연수의 마지막 환자라고 선언한 윤도 때문이었다. 근위축증 환자를 치료한 그였으니 유사한 환자의 등장에 실망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맥을 잡았을 때 표정에 반전이 일어났다. 입꼬리가 귀 쪽으로 올라갔다. 환자는 흉선암(thymiccarcinoma)이었다. 중중의 근무력증으로 짚힌 맥은 흉선암과의 연관성에서 나온 결과였다.

<흉선암>

희귀암이다.

차트의 병명 앞에 우레이와 쑨시앙의 표정이 굳었다.

흉선.

가슴의 종격동 앞쪽에 위치하는 면역기관이다. 출생 시에는 12~15g이고 사춘기 때 약 40g으로 커졌다가 이후 점차 작아져 성인에서는 퇴화한다. 주로 40~60세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환자는 30대의 여자였다. 처음에는 흉선종으로 진단을 받았다. 절제수술을 했다. 재발하여 검사하니 흉선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흉선암은 재발이 심한 암으로도 불린다.

암의 부위 또한 최악이었다. 심장 뒤쪽이라 수술불가 판정을 받은 것이다. 양방에서는 수술로 완전하게 절제하는 것을 최고의 방법으로 친다. 그 방법이 물 건너 가버렸다.

추적검사 결과는 더 비참했다. 폐 전이였다. 항암 4세트와 방사선치료를 받았다. 몸이 견디지 못하고 장부가 망가졌다. 갈비뼈는 물론이오, 손목의 뼈들도 건드리면 부러질 판이었다.

회생불가!

치료의견을 묻는 질문에 우레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가 잡은 진맥도 그랬다. 촌맥은 물론이오, 관맥과 척맥까지 최악으로 치달아 있었다.

“비훈요법으로 꾸준히 치료하면서 면역을 강화하면...”

쑨시앙은 시도 의견을 내놓았다. 자신 있는 말투는 아니었다. 이제 윤도의 시선이 추이펑에게 향했다.

“어렵지만 치료 못할 상태는 아니라고 봅니다. 흉선암의 본진을 약침으로 녹여 암의 기선을 잡으면 치료 가능하다고 봅니다.”

진격.

예상하던 답이 나왔다.

“추 선생님 말이 맞습니다. 환자는 지금 최악의 상태입니다. 하지만 목숨이 붙어있고 오장육부가 제 자리에 있는 한 희망은 있는 법이지요. 환자의 맥에서 확인한 분도 있겠지만 환자는 삭맥에 삽맥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치료를 서두르되 과정은 꼼꼼히 짚어가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봅니다.”

윤도가 상황을 정리했다.

“암 환부에 오장직자침을 쓰실 겁니까?”

추이펑이 물었다.

“치료하면서 결정할 문제입니다.”

윤도가 일어섰다. 세 중의는 윤도의 시침을 참관했다. 연수의 핵심이랄 수 있는 희귀암의 치료였다. 그러나 윤도의 침은 기본부터 펼쳐졌으니 그저 사관혈이었다.

“......!”

추이펑의 미간이 확 좁혀졌다. 그 다음도 기본 시침이었다. 이번에는 12경락으로 빼곡하게 들어갔다. 먼저 음(陰)으로써 궐음, 소음, 태음을 잡았고 양(陽)으로써 소양, 태양, 양명을 잡았다. 침끝을 감고 돌리며 경락의 기 운행을 바르게 조절했다.

“으음...”

환자는 힘에 부친 듯 신음을 쏟아냈다.

발침하고 간격을 둔 후에도 기본 시침은 변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오행침법이었다. 동서남북 사방의 목금화수(木金火水)에 맞춰 양팔의 곡지혈과 양다리의 족삼리를 잡더니 중앙 토(土)를 상징하는 중완에 장침을 넣었다. 병색에 지친 환자는 그대로 늘어져 버렸다.

“끝입니까?”

추이펑이 물었다.

“추가 시침의 결정은 이 침감의 기가 인체를 세 바퀴 돈 후에 결정할 겁니다. 잠시들 나가서 차라도 한 잔하고 오세요.”

윤도가 답했다. 채근 따위로 진료의 틀을 바꿀 윤도가 아니었다. 추이펑의 시선은 환자에게 꽂혔다. 의욕과잉이다. 시침하고 싶어 손이 근질거리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윤도가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만약을 대비한 대책은 동영상이었다.

침구실을 나온 윤도는 두통 환자를 시침했다. 낙맥이 막힌 환자였다. 낙맥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열이 머리까지 올라간다. 낙맥의 기 소통을 원활히 하여 환자의 두통을 없애주었다. 약제실로 간 윤도가 약침을 받아들었다. 흉선암 부위에 직자침으로 들어갈 약침이었다.

원래는 처음부터 직자침으로 갈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환자의 상태가 너무 약했다. 그 상태에서 암을 몰아붙이면 파편이 튀어 새로운 전이를 이룰 수 있었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했다. 추이펑은 오장직자침으로의 일침즉쾌를 고대하지만 침술이란 과시하기 위한 게 아니었다.

그때였다. 침구실 쪽에서 정나현의 마른 비명이 울려퍼졌다.

“원장님, 원장님, 큰일 났어요!”

족가지마足家之馬-2

족가지마足家之馬-2

침구실로 달려온 윤도가 경악했다. 환자의 몸이 서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뭐야?’

서둘러 맥을 짚었다. 맥은 난폭했다. 나른한 환자 몸에 낯선 기혈이 들어와 있었다. 난폭한 힘이 몰아치자 조금씩 모양을 갖춰가던 기혈이 엉기며 오장육부의 조화를 망쳐버린 것이다.

“침 좀 줘요.”

서둘러 구급혈을 찔렀다. 백회혈에 이어 용천혈을 찔렀다. 양 끝으로 난폭한 사기를 뽑아냈다.

퓨숫퓨숫!사기는 거친 소용돌이로 밀려나왔다. 숨을 돌린 윤도가 응급수습에 나섰다. 오수혈의 정혈을 잡아 분출이 멈춘 기를 작동시켰다. 정혈은 기의 발원지로 꼽히는 까닭이었다. 대혼란은 겨우 안정이 되었다. 환자의 숨소리가 가늘게 새어나온 것이다.

연이어 합곡과 태충혈에 장침을 넣었다. 두 혈은 기 순환의 중심. 가라앉는 목숨의 끈을 잡았으니 완전한 안정을 유지하려는 생각이었다.

그 사이에 중의들이 들어왔다. 문은 열려있었고 정나현도 놀랐던 탓에 딱히 막지 않았다. 중국 기자와 진경태도 그들 뒤에 있었다. 윤도는 의식조차 못했다. 오직 환자에게 몰입할 뿐이었다.

30분.

치열하게 침감을 조절하던 윤도가 겨우 손을 놓았다. 바람 앞에 등불로 변한 환자 상태를 되돌린 것이다.

‘후우!’

잠시 숨을 고른 윤도, 다시 장침을 잡았다. 아직도 저 안에는 바글거리는 난폭함이 있었다. 윤도의 응급처치 덕에 발광을 멈췄지만 그대로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흉선암.

난폭함이 가득한 장소는 그곳이었다.

“2번 약침 주세요.”윤도가 정나현에게 말했다. 정나현이 약침뚜껑을 개방했다. 동의보감에 준한 새명단에 옻나무추출액을 배합해 만든 암세포 치료제였다. 새명단에서 유용한 성분을 얻고 거기에 항암과 전이 방지력이 뛰어난 옻나무 추출액에 인진쑥의 유효성분을 배합해 만든 것. 순한 작용에 더불어 강력한 암 제압력을 가지고 있어 악성 암에 대비한 약침이었다.

장침이 동원되었다. 두 침이 흉선암 덩어리의 입구와 출구부터 막았다. 다음으로 들어간 장침은 조금 더 굵었다. 있는 대로 침감을 감은 윤도가 감았던 침을 단숨에 뽑아냈다.

퓨숫!

강하게 뭉쳐있던 난폭한 사기가 밀려나왔다. 마치 지하의 가스관에서 올라오는 가스덩어리 같았다. 양쪽을 눌러 남은 사기까지 알뜰하게 빼내고는 약침을 넣었다. 화끈한 화침이었다. 강력한 자극 덕분에 환자의 흉선 부근이 불끈 반응을 했다. 미리 대비하던 윤도의 왼손이 경련을 막았다. 중심의 약침은 점점 더 온도를 높여갔다. 암세포가 녹는 게 느껴졌기에 손을 떼었다.

그 손이 폐로 옮겨갔다. 장침 몇 개가 폐의 혈문을 막았다. 나노침이 출격한 건 그 다음이었다. 그 또한 약침으로 들어갔다. 폐로 전이된 암 덩어리에 대한 저격 시침이었다. 달아날 혈문을 막았으니 오직 타겟만 적중하면 되었다.

꿀꺽!

몸서리치는 적막 속으로 중의들의 침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우레이와 쑨이앙은 기절 직전이었다. 흉선을 적중한 장침부터 그랬다. 이번에는 무려 폐였다. 가까운 고황혈조차 익숙하게 침을 놓기 어려운 법. 그 근처에 여러 동맥과 신경이 분포하는 까닭이다. 자칫 폐를 찌르면 말도 못하고 거품을 문다. 여차하면 사망이다. 그렇기에 깊은 자침은 신의급이 아니면 엄두도 못내는 판.

하지만 윤도의 나노침은 벌써 세 개째 폐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실력도 없이 과시하는 침이라면 환자의 혈색이 저승에 도달해야 할 상황. 하지만 환자의 얼굴은 조금씩 생기를 더하고 있었다.

‘후우!’

날숨과 함께 윤도가 숨을 돌렸다. 시침이 끝난 건 아니었다. 장침은 계속 출격했다. 양문혈을 꿰고 수삼리와 양로혈, 천종혈, 전중혈을 잡았다. 양문혈은 암의 명혈, 수삼리와 양로, 천종 역시 종기의 명혈. 중의들은 이론으로 윤도의 침술을 더듬어갔다. 그것만으로도 아찔했다.

“후우!”

윤도의 숨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그제야 시침을 마친 윤도였다. 정나현이 내민 수건도 그때야 받아들었다.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된 후였다.

“와우!”

기자가 카메라를 들고 다가섰다. 윤도가 팔을 뻗어 그를 제지했다. 윤도의 표정은 시침하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추이펑!”

윤도가 추이펑의 가슴팍을 사납게 밀었다. 날 선 목소리와 함께 침구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였다.

“......”

추이펑은 대답조차 못하고 콧등만 꿈틀거렸다.

“내 환자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윤도가 물었다.

“무, 무슨 소리인지...”

“발뺌을 하겠다?”

“이, 이봐요. 채 선생님.”

“닥쳐, 이 나쁜 놈. 네 헛된 공명심 때문에 환자가 죽을 뻔 한 걸 보고서도 헛소리야?”

윤도가 주먹을 날리려는 순간, 퍽 하는 소음이 먼저 울렸다.

“억!”

추이펑이 옆구리를 잡고 무너졌다. 진경태의 주먹이 먼저 나간 것이다. 다시 잡아 일으켜 세운 진경태. 잘난 추이펑의 턱에 무쇠 같은 타격을 날렸다. 험한 산과 섬에서 약초를 캐던 근력이었다. 추이펑은 그 자리에 늘어진 채 거품을 뿜었다.

“왜 이러십니까?”

기자가 각을 세우고 나왔다. 기자의 턱에도 진경태의 선물이 안겨졌다. 무지막지한 정권이었다. 기자는 추이펑 위로 날아가 한데 엉겨 쓰러졌다.

“추이펑.”

윤도의 목소리가 추상처럼 이어졌다.

“시침을 했지? 환자의 흉선암 부위에?”

“으...”

겨우 몸을 세운 추이펑은 중심 잡기에 바빴다.

“말해. 환자의 흉선암에 네 침감이 남아있었다.”

“......!”

그 한 마디에 추이펑이 휘청거렸다.

“네 침은 오로지 결과중심이지. 그래서 기혈을 다루는 게 난폭해. 게다가 지금 쓴 침은 더욱 난폭했어. 왜냐고? 단 한방으로 환자를 치료해서 네 실력을 입증하려는 욕망이 담겼으니까. 안 그런가?”

“......”

“그것으로 나를 누르고 중의학이 우월하다는 증거로 삼고 싶었겠지? 한의 채윤도가 버벅거린 희귀암 환자를 중의 추이펑이 침 한 방으로 살렸다.”

“......”

“어리석은 인간 같으니. 네 비록 호망조각을 한 덕분에 손의 감각이 섬세해 침술은 어느 정도 일가를 이루었다만 네 나라 명의 편작의 값진 교훈을 망각하고 말았구나.”

“편작?”

“그래. 편작. 중의학을 공부했다면 편작이 왜 자기 아버지의 병을 고치지 않았는지 배웠을 것 아니냐? 편작이 그 아비의 병을 고칠 줄 몰라서 두고 두고 치료했던 것이냐? 당장 낫게 하는 것보다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는 걸 몰랐단 말이냐?”

“......”

“이 환자는 오랜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로 오장이 헐고 골수가 사무치는 상태였다. 네 진맥이라면 그 정도는 알았을 것 아닌가?”

“......”

“인간이란 아픈 부위가 나으면 움직이려하기 마련이다. 목숨을 위협하는 건 흉선암이 맞지만 육체의 부실함 또한 위태롭기 그지없으니 그것부터 받쳐줘야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을 일. 오직 흉선암을 고쳐 운신하다가 뼈가 무너지고 오장이 찢어지면 어떻게 수습하려했단 말이냐? 나 또한 이 환자에게 일침즉쾌를 이룰 수 있지만 진정한 침이란 과시가 아니라 환자의 심신을 돌보는 것. 이 환자에게는 일침즉쾌의 과시보다 작은 것으로 말미암아 큰 것을 이뤄가는 공들임이 필요했던 게 아닌가?”

“.......”

“그래서 기본 기혈치료를 하던 참인데 헛된 공명심으로 치료를 방해하다니. 네가 정말 원리치료와 근본치료를 중시하는 중의가 맞단 말이냐?”

윤도의 준엄한 꾸지람에 추이펑은 사색이 되고 말았다. 지적은 한 치의 틀림도 없었다. 추이펑은 공명심이 앞섰다. 그는 이 흉선암은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그게 눈을 가렸다. 그렇기에 몰래 시침을 강행한 추이펑이었다. 윤도 몰래 완치 시켜 자신의 침술을 과시할 생각이었다. 그런 마음이기에 침감도 더 강하게 들어갔다. 원래도 난폭한 침 위에 공명심의 난폭함이 더해진 것이다.

“너는 명의가 될 자질을 가지고 있다. 침술 또한 뛰어나다. 하지만 네게는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 그저 최고가 되고 싶은 명예욕으로 가득한 침술일 뿐.”

“......”

“득지어심, 응지어수(得之於心, 應之於手)라는 말을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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