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3화 (223/265)

소방대원의 사투.

진압도끼로 서까래를 찍어 붕괴되는 건물의 중심을 바꿔놓은 것이다.

누구일까?

악몽처럼 떨어지는 불덩어리 아래에서 목숨을 걸고 화마에 맞선 소방관...

설마...

‘구대홍...?’

윤도 손에 폭풍경련이 일기 시작했다.

<화재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십시오. 제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지난번에 들었던 말이다. 이곳 소방서로 발령이 났다며 찾아와 씩씩하게 하던 말...

‘설마...’

손의 경련이 다리로 내려갔다.

“원장님.”

윤도 얼굴을 본 승주가 하얗게 질려버렸다. 윤도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옷깃에 걸리며 핸드폰을 놓쳤다. 그걸 줍는 동안에도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설마...’

겨우겨우 핸드폰을 눌렀다.

“감사합니다. 소방서입니다.”

관할 소방서가 나왔다.

“여기는 아까 화재 현장의 한의원인데요. 방금 뉴스를 봤습니다. 혹시 부상 당한 대원 이름을 좀 알 수 있을까요?”

윤도가 묻는 동안 세 간호사는 숨도 쉬지 못했다. 잠시 후 그녀들의 시선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핸드폰을 따라 함께 무너져 버렸다.

소방관의 이름은 구대홍이었다. 윤도가 구해준 골암의 청년. 첫 화재 진압현장에서 성공리에 임무를 수행했다며 뿌듯해 하던 그 소방관. 그가 윤도의 한의원을 구하고 부상을 입은 것이다.

‘젠장!’

윤도가 밖으로 뛰었다.

선전포고-1

선전포고-1

“아버님.”

구대홍이 이송된 병원에 도착한 윤도 눈에 장작통닭 트럭이 들어왔다.

“선생님.”

병원에서 나오던 구대홍 아버지가 윤도를 보고 반색을 했다.

“아드님은요?”

“그게...”

아버지의 눈이 도로를 향했다. 거리에서 통닭을 굽다가 비보를 받고 달려온 그. 목장갑조차 벗지 못한 채였다.

“의사들 네 명이 30여 분 동안 드레싱이라는 것만 해대더니 여기서는 힘들다고 방금 SS병원으로...”

그 목소리는 방전된 배터리처럼 힘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윤도가 돌아섰다.

“선생님, SS병원 가실 겁니까?”

아버지가 뒤에서 물었다.

“네.”

“저도 같이 갑니다.”

구대홍의 아버지가 트럭으로 달렸다.

부우웅!

두 대의 차량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달렸다. 하얀 스포츠카와 통닭트럭. 차의 외관은 달랐지만 안의 두 사람은 같은 마음이었다.

‘SS병원...’

좋지 않았다. 큰 병원으로 간다는 건 심각하다는 얘기. 그 병원에 아는 사람도 많건만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이봐요. 거기.”

SS 병원에 파킹을 하자 관리원이 다가왔다. 목소리는 구대홍의 아버지를 겨누고 있었다.

“이 차 여기 대면 안 됩니다. 옮기세요.”

나란히 주차했지만 통닭트럭만을 문제 삼는 관리원이었다.

“응급실에 실려온 소방대원 부친입니다. 자리가 많은데 뭐가 문제입니까?”

윤도가 나섰다.

“예약 자리입니다. 그리고 냄새 나잖아요? 민원 들어옵니다.”

“냄새?”

관리원의 태도에 윤도 핏대가 확 솟구쳤다.

“지금 그게 문제입니까? 이분은 화재 진압하다가 부상을 입은 소방대원 부친이시라고요.”

윤도가 각을 세우자 관리원 목소리가 내려갔다.

“하지만 민원이...”

“알겠습니다. 제가 다른 데로 옮기죠.”

기 죽은 구대홍 아버지가 키를 꺼내들었다. 윤도가 그걸 막았다.

“아닙니다. 자리가 있는데 왜 다른 데로 옮깁니까?”

“선생님...”

“문제가 되면 제가 책임집니다. 아니, 이철중 부원장님께 항의하겠습니다. 이런 경우가 어디 있냐고.”

“아이고, 그냥 가십시오. 요즘 민원들이 까탈스러워서 그랬습니다.”

부원장 이름을 들은 관리원이 꼬리를 내렸다.

응급실로 뛰었다. 뒤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이봐요!”

관리원이 또 딴죽을 거나 싶어 돌아보았다. 그런데...

“채 선생, 아니, 채 원장님!”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창승이었다. 갈매도 보건지소의 사수 의사 이창승. 제대하면서 이 쪽으로 수련의 과정을 옮긴 모양이었다.

“이 선생님.”

“역시 내 눈썰미는 아직 안 죽었다니까? 뒷모습 보니까 딱 채 원장이잖아?”

창승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여기로 오신 겁니까?”

가운을 보며 물었다. 왼쪽 주머니에 SS 마크가 선명했다.

“S병원에 찍혔잖아? 하는 수 없이 옮겼지 뭐.”

“늦게나마 제대 축하드립니다.”

“그거 빈정이지? 공로 제대한 사람이 말이야... 그나저나 역대급 한의사 님이 우리 병원에는 왜? 오늘 협력 진료 있어?”

“그게 아니고 응급실에 좀... 오늘 화재 현장에서 다친 소방대원이 여기로 실려왔다길래요.”

“아는 사람이야?”

“예, 제가 전에 암을 고쳐주었습니다.”

“......!”

“응급실, 입구가 어디죠?”

“따라와. 나도 조금 전에 진찰했어. 지금 화상 클리닉 팀들이 그쪽 병실로 옮기고 있을 거야.”

이창승이 앞장을 섰다. 윤도는 구대홍 아버지를 앞세워 그 뒤를 따랐다.

“실장님, 이 분은...”

이창승이 화상 스태프들에게 윤도를 소개했다. 화상 클리닉 실장에 피부과장까지 비상 호출된 상황. 그 심각성을 알 것 같았다.

SS병원은 화상 특화병원의 하나였다. 1층에 화상클리닉이 있고 화상중환자 전용 입원실과 치료실, 성형외과, 미용성형센터와 재활의학과, 중앙수술실, 회복실, 입원실이 시스템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었다. 윤도는 실장과 함께 침대 뒤를 따랐다.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화상 클리닉 실장도 윤도를 알고 있었다.

“환자 상태는 어떻습니까?”

“3도 화상 부위가 24%에 달합니다. 굉장히 심각하죠.”

<24%>

수치에 윤도 입이 벌어졌다. 화상은 그 정도에 따라 1도, 2도, 3도, 4도 화상 등으로 구분한다. 1도 화상은 대개 피부 표피층에 국한된 화상이다. 표피가 비닐 모양으로 벗겨지게 되지만 자연 치유가 가능하다.

2도 화상은 구분이 필요하다. 표피층을 지나 진피유두층까지 내려간 경우에 표층 2도 화상이라고 한다. 흉을 남기기는 하지만 2주 정도면 대개 치유가 된다. 그러나 심부 2도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합병증의 위험이 있고 기능장애를 줄 수 있는 흉터로 남을 가능성이 급격히 올라간다.

표피와 진피, 피하지방까지 손상이 온 3도 화상은 자연재생이 불가능 한 것으로 본다. 따라서 수술이 필요하다. 심한 경우에는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4도 화상은 최악이다. 피하조직 아래의 뼈와 근육까지 손상을 입어 절단술과 피부이식수술, 조직편(플랩)이식술이 필요한 경우를 말한다.

구대홍의 화상부위는 무려 24%, 20%가 넘으면 중증으로 분류하니 초중증 화상이었다. 이때는 단계별로 치료 과정이 필요하다. 화상으로 인한 수액 치료 및 항생제 치료가 수반되며 화상 창상 치료 역시 함께 동반된다.

이후, 손상된 피부를 제거하는 수술을 실시하며 수술이 진행된 후에는 관련 재활치료 및 화상 피부케어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수술실 앞에서 실장이 안경을 고쳐 쓰며 말을 이었다.

“흡입화상으로 인한 부작용까지 최악이라는 겁니다.”

“......!”

흡입화상.

화재사고나 프로판, LPG가스 폭발 등으로 인해 화상을 입은 경우를 화염화상이라고 칭한다. 화염화상의 경우 대부분 밀폐된 공간에서 일어나므로 고온열기, 일산화탄소, 연소물질 흡입으로 인한 흡입화상이 함께 발생한다.

“유해화학물이 폐포 깊숙이 침투해 기관지수축이 심각합니다. 점막의 섬모 기능도 제 기능을 못해 폐부종이 왔고요, 심지어는 호흡부전도...”

‘호흡부전!’

실장의 진단은 점점 더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집준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수액요법으로 어느 정도 버텨줄는지... 기도폐쇄도 우려되고 있어 기관절제술도 불가피한데 폐 외에도 간과 신장 등의 다발성 기능부전 증후군과 패혈증마저 염려되는 상황입니다.”

“......”

“게다가 환자는 무의식... 필요한 조치는 다 취해보겠지만 연기를 너무 많이 마신 데다 환부가 워낙 넓다보니 솔직히...”

잠시 숨을 돌린 실장이 뒷말을 이었다.

“오늘 밤을 넘길는지...”

“그 정도로 심각합니까?”

“이건 뭐 방열복을 입은 건지 안 입은 건지... 대체 불 속에서 얼마나 오래 있었길래 이 모양인지 모르겠습니다.”

실장이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제가 좀 봐도 되겠습니까?”

“지금 굉장히 위험한 상태입니다.”

“저 소방대원이 골암에 걸렸을 때 제가 완치를 시켰습니다. 그 보은인지 오늘 화재에서 저희 한의원을 구했습니다. 진압용 도끼로 불타는 옆집의 벽을 까서 무너지는 방향을 바꿔준 거죠. 저 모양이 된 화상의 원인입니다.”

“......”

윤도 말을 들은 실장은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윤도가 하도 진지하기에 반문조차 못하는 그였다.

“각별한 인연이라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저희도 손 쓰기 난감한 상황이라...”

“부탁합니다. 도움이 되는 방향이 있다면 돕고 싶습니다. 보호자께서도 동의하셨고요.”

윤도가 구대홍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네.”

그는 딱 한 마디로 윤도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병원의 판단으로는 이미 저승역이 가까운 아들. 그가 윤도에게 기대는 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워낙에 우리 병원과 협진도 많이 하시는 분이고 다방면에 명침명의로 알려지셨으니... 한의학적 방법이 있나 찾아보시죠.”

클리닉 실장의 허락이 떨어졌다.

“여기 한방하시는 채윤도 선생, 다들 알지?”

단숨에 클리닉으로 들어선 실장이 스태프들을 향해 말했다. 구대홍에게는 혈청과 수액, 전해질 등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화상의 범위가 체표면적의 15~20%가 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되면 화상 부위에서 분비되는 물질들이, 혈관에서 조직으로 빠져나가는 체액을 증가시킨다. 전신 부종이 생기는 코스다. 반대로 순환혈액량은 감소된다. 따라서 적절한 혈액 순환을 위해서 초기에 상당량의 수액 공급이 필요하다. 비타민과 전해질의 보충 역시 필수였다.

에스카로토미(Escharotomy)를 실시하려던 스태프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이는 피부하부의 근육조직의 부종을 방지하기 위해 화상 입은 가피를 절개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에데마가...”

스태프 하나가 구대홍을 바라보았다. 에데마는 부종. 척 봐도 시선을 돌리고 싶을 만큼 심각한 부종이었다.

“사고 소식 듣고 달려오셨다네. 환자하고 인연도 깊고... 진료 좀 하고 싶으시다니 응급 처치 끝나면 잠깐 비켜드려.”

실장의 지시와 함께 닥터들이 하나 둘 물러섰다.

“......!”

구대홍 앞에 다가선 윤도가 할 말을 잃었다.

참담.

한 마디로 말하면 그 단어였다.

환자 주위는 뜨거웠다. 화재현장의 화기가 아직도 빠지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구대홍은, 아직도 불 속에 있었다. 진압용 도끼를 들고 목조건물의 대들보 하나를 노리고 있었다. 이 건물이 윤도의 한의원 쪽으로 넘어가지 않게, 그가 한 약속 따위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뜨거워!

뜨거워!

그의 오감이 몸부림을 쳤을 일.

그러나 구대홍은 본능이 내는 ‘뜨거워’라는 단어조차 망각하고 있었다.

퍽퍽!화염 속의 도끼질이 눈에 선했다. 사방에서 불꽃이 쏟아지지만 그는 오직 도끼질을 할 뿐이었다.

물과 불, 바람... 재해 앞에서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인간. 그럼에도 오직 보은의 일념 하나로 윤도의 한의원을 구한 구대홍...

몸은 엉망이었다. 인간의 존엄은 참담한 상처 속으로 사라졌다. 영화에서 본 오크가 이랬던가? 천형의 저주를 받은 돌연변이가 이랬던가?

극악의 피부질환에 나무인간 증후군까지 임상체험한 윤도였다. 그러나 막 화상을 입은 구대홍의 모습은 또 달랐다.

‘구대홍 씨...’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소방공무원 체력시험장으로 가던 날, 임용된 후에 윤도의 한의원을 찾아와 씩씩하던 모습.

‘안 돼.’

윤도가 고개를 저었다. 형태가 어떻게 변했을지언정 이 사람은 구대홍이었다. 골암이 회복되자 목숨으로 소방대원을 꿈꾸던 아름다운 청년. 다 낫지도 않은 몸을 이끌고 체력검사에 도전한 불굴의 청년. 목숨이 위험한 걸 알고서도 윤도의 한의원을 지켜준 사람. 그 목숨의 한 올이라도 남아있다면 결코 생의 종착역에 닿게 할 수 없었다.

‘당신은 내가 살려요.’

윤도가 온몸으로 중얼거렸다. 도무지 길이 없을 것 같은 초중증 화상에의 선전포고였다.

화상 사이로 드러난 맨살 부위에 장침 하나를 넣었다. 맥을 짚는 자리였다. 윤도는 맨땅에 앉았다. 의사들이 놀랐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장침의 끝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맥을 짚었다.

의사들은 어깨를 으쓱하거나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그들이 보기엔 주술행위로 보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주술사’가 다름 아닌 윤도였다. 침끝을 잡은 윤도는 자신을 비웠다. 빈 마음으로 구대홍의 상태를 빠르게 체크했다.

장기손상...

있었다.

신장-비장-간장-폐-심장...

오장의 손상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었다. 폭주였다. 맥은 난폭하면서도 위태로웠다. 실장의 말대로 이대로 두면, 오늘 밤을 넘길 수 없었다. 빠르게 괴사되는 조직과 폭발적인 반응의 부종들. 목숨을 덮으려 달려드는 쓰나미 앞에 유일한 위로는 두 개였다.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

<신경말단이 붕괴되면서 당장은 통증이 줄어들었다는 것.>

‘구대홍 씨.’

윤도의 시선이 구대홍에게로 옮겨갔다.

‘내가 왔습니다. 느껴요?’

순간, 구대홍의 맥이 꿈틀 반응을 했다. 그도 윤도가 온 걸 아는 걸까? 윤도는 그 반응을 따라 마음을 넣어주었다.

‘걱정 말아요. 이제는 내가 당신의 소방관입니다. 내 모든 것을 걸고 당신을 구하러 갑니다.’

꿈틀!

또 한 번 침이 반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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