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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화 (217/265)

죽은 혈과 산 혈의 기묘한 동거-1

죽은 혈과 산 혈의 기묘한 동거-1

인천공항에 착륙하자 긴장이 풀리며 피로감이 엄습을 했다. 오래 가지는 않았다. 환영 나온 반가운 얼굴들 때문이었다. 가족을 위시해 직원들까지 총출돌이었다.

“선생님.”

윤도에게 마지막으로 다가온 사람은 부용이었다. 뒷줄에서 묵묵히 지켜보다 꽃다발을 안겨주는 그녀였다. “중국에서 언제 돌아왔어요?”

“이틀 전에요.”

그녀가 웃었다.

“베이징 공연은요?”

“초대박이죠. 중국 고위층도 많이 오고 중국 주요 방송사에서 생방송도 했어요.”

“와아!”

“하지만 선생님 만큼은 아니죠.”

부용이 핸드폰 기사를 열어보였다. 엘리자베스와 윤도가 함께 찍은 인터넷 보도였다. 성수혁이 쓴 인유두종 바이러스 치료성공에 대한 기사도 보였다.

“어, 그 사진은...”

엘리자베스 사진을 본 윤도가 얼굴을 붉혔다. 너무 정다운 각도였다.

“질투 아니에요. 가는 곳 마다 장침 기적을 일으키는 선생님이 대단해서...”

“하핫, 어디 가서 차라도 한 잔 해야죠?”

“아뇨, 나오신 분들 많은데... 그리고 저, 다음 광동성 공연 준비 때문에 출국해야 해요.”

“지금요?”

“마침 시간이 맞길래 기다리던 참이었어요. 다녀와서 연락할 게요.”

부용은 간단한 인사를 놓고 물러났다.

돌아보는 사이도 없이 승주와 연재가 꽃을 안겨주었다. 동생 윤철의 꽃도 그 위에 쌓였다.

“웬일이냐? 네가 꽃을 다 쏘고?”윤도가 윤철을 바라보았다.

“윤철이 취직했단다. 인턴이지만 첫달 월급 나왔다고 네 구두도 선물로 사다놨어.”

어머니가 윤도 팔뚝을 치며 웃었다.

“이야, 우리 아우님 대단한데? 그런데 왜 형한테 말 안 했냐?”

“에이, 씨... 맨날 바빠서 집에도 잘 안 온 게 누군데? 툭하면 외국으로 튀고...”

“내가 그랬냐?”

“아무튼 축하해. 우리 형이 갑이다.”

“얌마, 너도 축하한다.”

윤도가 윤철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철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제 몫은 하는 윤철이었다.

“아버지는요?”

집에 돌아온 윤도가 짐을 풀며 물었다. 아버지는 윤도 못지않게 바쁘다. 그렇기에 안부라도 챙기는 윤도였다.

“형, 아버지...”

“쉬잇!”

윤철이 나서자 어머니가 말문을 가로막았다.

“무슨 일 있어요?”

윤도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그게...”

“말씀하세요.”

“아버지가 채 의원 걱정한다고 말하지 말랬는데...”

“어머니!”

“알았어. 어휴, 저건 눈치도 없이...”

어머니가 윤철을 향해 눈총을 날렸다. 그런 다음 앞치마에 주섬주섬 손을 닦더니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래요?”

이야기를 들은 윤도 표정이 무겁게 변했다.

사고였다.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던 젊은 직원. 공장 재단기에서 오른쪽 팔을 잘렸다. 한 달 전 일이었다. 재단기에는 컴퓨터 안전장치가 있었지만 작동되지 않았다. 다행히 교통사고 뇌사자가 있어 팔을 공여 받았다. 그 팔을 절단해 이식을 한 것이다.

난생 처음 일어난 큰 사고. 최선을 다해 지원을 하느라 더욱 바쁜 아버지였다.

“경찰은요?”

윤도가 물었다. 직원에 대한 치료야 당연한 거지만 사업주로서 책임져야하는 법적 판단도 중요했다. 자칫하면 구속될 수도 있는 까닭이었다.

“다행히 안전시설과 관리규정은 문제가 없어서 아버지는 괜찮대. 하지만 그 청년이 아버지가 아끼던 직원인데다 머잖아 결혼한다고 상견례 날까지 받아둔 사람이라서...”

“......”

“채 의원이 미국 간 동안 재활이다 뭐다 더 좋은 병원을 백방으로 알아보느라 집에도 거의 못 오셨어.”

“그걸 왜 이제야 말씀하세요? 수술 받은 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면서?”

윤도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렇게 우직한 아버지였다. 누구에게도 신세지기 싫어하는 사람. 의학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속을 끓였을 생각을 하니 콧등이 알큰해져 왔다.

“아버지가 절대 말하지 말라는 바람에...”

“그런데 윤철이는 어떻게 알아요?”

“쟤는 우리가 통화하는 걸 듣고는...”

“얌마, 너도 그런 거 들었으면 형한테 말을 해야지. 아버지 성격 몰라? 혼자 죽으셔도 우리에게 고민 같은 거 말씀 안 하실 분이야. 우리가 알아서 도와줘야지.”

“미안해... 나도 취업하면서 적응하느라 바빴던 데다가 엄마가 형한테 말하면 국물도 없다고 하길래...”

윤철이 뒷목을 긁었다. “허얼, 미치겠네.”

“미안해. 채 의원.”

“그 사람 입원한 병원이 어디예요?”

“지금 가게?”

“아니면요? 그 직원 곧 상견례도 해야 한다면서요? 회복되지 않은 팔로 나가면, 어머니 같으면 딸 주시겠거요?”

“안 주지...”

“어휴...”

“송송병원 505호실.”

병원 이름은 윤철의 입에서 나왔다. 윤도가 그 손에 스포츠카 키를 던졌다.

“시동 걸어라. 옷만 좀 갈아입고 나갈 테니까.”

“알았어.”

윤철이 밖으로 뛰었다.

“채 의원...”

“걱정 마세요. 어머니가 알려줬다고는 안 할 테니까.”

“그게 아니고... 그런 것도 채 의원 장침으로 돼?”

“어머니!”

“안 되지? 다들 그러더라고. 팔이 잘렸고... 게다가 남의 팔을 붙였으니 침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그래서 걱정만 할까봐 말 못 꺼낸 거야.”

“해볼 게요.”

“응?”

“해본다고요.”

“채 의원...”

“다녀올 게요. 병원이 멀지 않으니 음식은 그냥 두세요. 다녀와서 먹을 게요.”

윤도가 돌아섰다.

달리는 차에서 핸드폰을 눌렀다. 세 번째 시도에서야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저예요.”

“어, 채 원장, 어디야?”

“미국에서 방금 귀국했습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내가 깜빡했네. 미안, 공항에 나가봐야 하는 건데...”

“지금 송송 병원이죠?”

“응?”

“거기 꼼짝 말고 계세요.”

“채 원장, 채 원장...”

아버지의 말도 듣지 않고 전화기를 끊어버렸다. 송송병원이 보이기 시작했다.

“채 원장.”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아버지가 다가왔다. 회사 일을 보다 온 건지 현장복 차림이었다.

“밥은 먹고 다니시는 거예요?”

“응? 응...”

“병실은 어디예요?”

“병실?”

“다 알고 왔어요. 안내하세요.”

“......”

“어서요.”

윤도가 다그쳤다. 아버지는 쩝 입맛을 다시더니 병실을 가리켰다.

“저 쪽...”

4인용 병실이었다. 환자의 간병은 늙은 홀아버지가 맡고 있었다. 어머니가 일찌감치 죽은 집안이었다. 홀아버지가 반듯하게 키웠다. 전문대 나왔지만 성격이 진취적이고 밝아 아버지 일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이 직원을 더 총애하던 아버지였다.

환자는 잠들어 있었다. 보호자에게 인사를 하고 진맥을 잡았다. 사고가 난 오른손이었다.

“......!”

손을 놓았다.

다시 시도했다.

“......?”

윤도 고개가 갸웃 돌아갔다. 도무지 맥이 건너오지 않았다. 어쩌다 느껴지는 맥도 맥인지 안개인지 알기가 어려웠다.

왼손 쪽으로 바꾸었다. 이 쪽 맥은 시원하게 잡혔다. 심장의 맥을 제외하고는 큰 문제가 없었다.

‘심장맥...’

그건 아마 충격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괜찮아질 일이었다. 다시 오른손 맥에 도전했다. 이번에는 혼신을 다한 진맥이었다. 희미하게 연결되는 맥은 아지랑이의 느낌 같았다.

이 팔은 이식 받은 팔. 원래는 환자의 팔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혈자리 파악도 뜬구름잡기가 되었다. 어쩌다 짚이는 혈자리도 극악 난시라도 걸릴 듯 이중으로 겹쳐 보였다. 원래 팔이 가지고 있던 혈자리에 환자의 오장육부 기운이 전해지면서 새 혈자리 흔적이 나오는 것이다. 어디가 진짜 혈자리인지 알기 어려웠다.

‘허상과 진상...’

이식 받은 팔에 있던 혈자리와 환자의 몸에서 내려온 혈 기운이 형성한 두 혈자리의 기묘한 동거. 기묘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눈을 감았다. 그 옛날 동화에서 읽은 오성과 한음 이야기가 떠올랐다. 담장을 넘어온 옆집 감은 내 것일까 옆집 것일까? 감나무 가지 문제로 분쟁이 일자 오성은 기지를 발휘한다. 옆 대감집으로 가 문풍지를 뚫고 불쑥 팔을 집어넣은 것이다.

“이 팔이 제 것입니까? 대감님 것입니까?”

그 집은 권율 장군의 가문이었다. 그러나 오성은 쫄지 않았다.

“그 팔은 너의 것이다.”

배포에 놀란 대감은 오성의 편을 들어주며 감 분쟁에 종지부를 찍는다.

윤도의 눈이 환자의 팔을 보았다.

원래는 다른 사람의 팔. 그러나 환자에게 이식되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환자의 혈자리에 맞춰 세팅되는 게 옳았다. 진맥을 잡은 채 왼손으로 ‘환자’의 혈자리를 눌러보았다. 원래 팔의 혈자리도 눌렀다. 미세하지만 환자의 혈자리에서 반응이 감지되었다.

약했다.

아직 새 주인의 몸에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완전 무반응은 아니었다. 그 정도면 되었다.

“지정의 방이 어디죠?”

복도로 나온 윤도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어쩌려고?”

“상의할 게 있어서요.”

“채 원장...”

“이 분 머잖아 상견례 가야한다면서요?”

“상견례는...”

“아직 포기할 때 아니에요.”

윤도가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상견례, 그 단어는 아버지를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2층에 가면 수부미세재건실이라고 있다. 차용만 박사가 지정의야.”

“아버지는 여기서 기다리세요.”

윤도가 돌아섰다.

“채윤도 한의사?”

2층 진료실, 윤도의 방문을 받은 지정의가 고개를 들었다. 이 분야에서는 나름 권위 있는 명의였다. 그는 윤도를 잘 모르고 있었다.

“505호실 환자가 저희 아버지 회사 직원이십니다.”

“그래요?”

“죄송하지만 경과에 대해 좀 알 수 있을까요?”

“그건 그쪽 보호자하고 회사 관계자들에게 말했는데...”

지정의는 귀찮은 표정이었다. 대학병원에 있다 보니 적당히 권위주의에 물든 닥터. 긴 말보다 효과적인 카드를 뽑아들었다.

“S대 나오셨더군요?”“그렇소만, 큼...”

대답 뒤에 헛기침이 붙었다. 그의 자부심이었다.

“혹시 SS 병원의 강기문 박사님 아십니까?”

“강기문? 우리 선배님인데요?”

지정의가 떡밥을 물었다. 윤도의 계산된 질문이었다. 의사면허번호를 보고 졸업년도를 추정한 것이다. 지정의는 강기문의 2년 후배였다. 의사동문들 세계에서 2년 후배면 안면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쩌면 직속선배로 모시며 수련의 생활을 했을 수도 있었다.

“혹시 그분과 통화가 가능하십니까?”

“우리 강 선배님은 늘 바쁘시다오.”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핸드폰을 뽑아들었다. 강기문은 바로 전화를 받아주었다.

“저 한방하는 채윤도입니다.”

“어, 채 선생.”

강기문이 반색을 했다. 그러고도 남을 인연이었다.

“혹시 HH병원의 차용만 박사님 아시나요?”

“알지. 내 직속 후배였어요. S병원에서 수련의 같이 했는데 나한테 많이 까이면서 배웠지.”

“죄송하지만 저 지금 그 분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분께 부탁이 좀 있는데 말씀드리기가 어려워서 말입니다.”

“그 친구 환자 문제인가요?”

“그런 쪽입니다.”

“채 선생이 장침 놓을 일이 생긴 모양이군요?”

“그것도 그렇습니다.”

“차용만이 못하게 합니까? 당장 바꿔주세요.”

“그건 아닙니다만 박사님이 잘 좀 말씀드려주시면...”

“알았어요. 당장 바꾸세요. 이 인간이 미세재건인가 뭔가 하면서 이름 좀 날리더니 천하의 명의도 몰라보고...”

강기문의 지지를 받으며 전화를 넘겨주었다.

“여보세요.”

긴가민가 통화하던 차용만이 경기를 했다. 전화 속 인물은 진짜 강기문이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의 발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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