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8화 (188/265)

“얼핏 들은 얘기로는 위독한 환자들만 보고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들었소. 그 스케줄을 하루만이라도 더 연장해주시면 안 되겠소?”

“......?”

“부탁하오.”

“......”

당황한 윤도의 눈이 바이징팅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바이징팅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대륙의 주석.

베이징의 어린이병원까지 와준 것만 해도 대단한 사건이었다. 이제 격려를 마쳤으니 그냥 돌아가도 인민들에게 칭송을 받을 일이었다. 그런 그가 윤도에게 부탁을 하고 있었다. 이건 너무나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저는...”

윤도가 난색을 표했다. 자칫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사흘이 되면 곤란한 일이었다. 한국의 예약 스케줄을 통째로 버릴 수는 없는 까닭이었다.

“단 하루만이라도...”

“......”

“양이닝.”

주석이 아이를 불렀다.

“네, 주석님.”

양이닝이 앙가슴을 내밀며 대답했다.

“내 힘만으로는 명의를 잡기가 어렵구나. 네가 좀 도와주지 않겠니?”

“제가요?”

“채 선생님이 하루라도 더 머물면 이 병원 아이들이 더 많이 나을 수 있지. 그 중에는 네 친구도 있지 않을까?”

“제 친구도 있어요.”

“내 체면 좀 살려주겠니?”

주석이 양이닝과 시선을 맞추었다. 결국 양이닝이 나서게 되었다.

“채윤도 선생님, 도와주세요.”

“......”

“제 친구들도 낫게 해주세요.”

“......”

“채 선생...”

지켜보던 바이징팅까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수락해 달라는 지원이었다.

“네 친구 이름이 뭐지?”

윤도가 양이닝에게 물었다.

“양셔징요. 나랑 같이 왔는데 성도 같아요.”

“그 아이는 어디에 있죠?”

윤도가 리빙빙을 바라보았다.

“2층 병실입니다.”

“안내하세요. 양이닝의 그림을 받으려면 하루는 더 있어야겠군요.”

“와아!”

윤도의 대답과 함께 함성이 일었다.

짝짝!

박수도 나왔다. 주석이 시작이었다. 윤도는 간호사를 앞세워 복도로 나왔다. 박수는 오래 오래 윤도 뒤통수를 따라왔다.

펑펑펑!

병실에 카메라가 터졌다. 침대의 아이는 윤도가 살린 아이였다. 회복상태가 좋아 인터뷰도 할 수 있었다.

“침 맞고 나았어요. 감사합니다. 의사선생님들.”

원장은 복도로 나와 기자회견을 가졌다. 뒤에는 양방진료부장과 한방진료부장 등의 주요 의료진들이 함께 포진하고 있었다.

“치료책을 찾은 겁니까?”

“독감의 기세를 잡았습니까?”

기자들의 질문공세가 시작되었다.

“애석하게도 그건 아닙니다.”

원장이 답했다.

“그런데 어떻게 중증 환자들이 회복한 겁니까? 화타나 편작의 점지라도 받은 겁니까?”

인민일보의 기자가 소리쳤다.

“그렇습니다.”

원장이 그 말을 받았다. 복도에는 이내 싸아한 정적이 흘렀다. 베이징 최대의 어린이병원. 양방과 한방협진으로 중국 최강으로 불리는 병원이었다. 그런데 그 병원의 원장이 고대의 화타와 편작이라니... 질문을 던진 기자조차도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화타와 편작? 무슨 의미입니까?”

기자가 마이크를 내밀었다.

“어제, 우리 병원은 분명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독감 유행 이후로 날마다 발생하던 어린이 환자 사망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 이유를 묻고 있는 겁니다.”“어젯밤의 쾌거는 한의학의 쾌거입니다. 환자의 인터뷰에서도 들었듯이 침술이 독감의 기승을 잠재웠습니다. 그렇기에 화타와 편작이라고 답한 겁니다.”

“지금 이 병원에 각지의 중의 명의들이 의료지원 차 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분들이 이룬 기적입니까?”

“그렇습니다.”

“누구입니까? 설마 병상의 장지에용 박사는 아닐 테고... 이름을 밝혀주십시오.”

“그 명의의 이름은...”

원장은 한숨을 죽였다가 또렷하게 말을 이었다.

“채윤도입니다.”

“채윤도?”

기자들이 웅성거렸다. 대개는 의학전문기자이거나 보건에 관련이 있는 기자들. 그렇기에 중국 10대 중의들을 꿰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기억장치에 채윤도는 없었다.

“어느 성 중의입니까?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그럴 수 밖에요. 그는 우리 베이징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한국에서 날아온 젊은 한의사입니다.”

“한국?”

“그는 믿기지 않는 침술로 위독한 어린이들을 살렸습니다. 어쩌면 화타와 편작께서 보낸 의인일 지도 모르죠. 그래서 화타와 편작의 점지라는 질문에 동의한 겁니다.”

<한의(韓醫) 혼자 이룬 기적>

원장의 방점은 거기 있었다.

“중의가 아니라 한의가 주역이었다는 겁니까?”

“주역이 아니라 그 혼자 이룬 쾌거입니다.”

원장이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우!”

기자들이 출렁거렸다. 중국의 내놓으라하는 명의들이 몰려든 어린이병원. 마침내 그들이 치료책을 찾은 줄만 알았던 기자들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한국의 한의사라니?

“채윤도, 채-윤-도!”

“어젯밤의 쾌거 주인공이 한국의 한의사라는 거야. 어떤 인물인지 당장 자료 좀 부탁해.”

본사로 전화를 거는 기자들의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펑펑!

다시 카메라가 셔터가 쏟아졌다. 이번에는 윤도 앞이었다. 낮에 다른 병원에서 위독한 환자 넷이 이송되어 왔지만 그 또한 회복으로 돌려세웠다. 이제 이 병원을 포함해 인근 병원에는 위독한 어린이가 없었다.

기자회견은 길게 하지 않았다.

“아직 돌볼 어린이가 남았습니다.”

윤도의 마무리였다.

기자들은 맥없이 물러났다. 밤새 홀로, 전쟁터를 지켜낸 사람. 독감의 병마와 맞서 기적을 일군 사람. 그런 신의의 장침시술을 막을 기자는 대륙에 없었다.

남은 방의 환자 여섯에게 자침을 했다. 위독한 환자를 넘긴 후부터는 왕민얼과 함께 했다. 그는 주로 호침을 썼다. 얇게 자침되었다. 일반적인 경우의 침술이라면 그게 옳았다.

“Shikimic acid입니다.”

약침의 성분에 Shikimic acid를 주원료로 썼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채 선생.”

왕민얼의 눈빛이 흔들렸다. 무슨 약침 하나 개발하면 비방인양 숨기고 또 숨기기는 한국이나 중국이나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윤도의 배포에 놀라는 왕민얼이었다.

하지만 윤도 생각은 달랐다. 약침의 성분은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성분비였다. 똑 같은 재료를 준다고 해서 누구나 맛 있는 요리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윤도의 약침용액은 WHO의 조사관들과 베이징 당국도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마지막 독감환자는 윤도가 매조지를 했다. 호흡기에서 기승을 부리는 놈을 잡기 위해 태열혈에 장침을 꽂았다. 진맥에서의 반응점이었다. 침감을 넣었다. 아래로 손가락, 위로는 목까지 올라가는 자극이었다. 강자극이지만 난폭하지 않았다. 어린이임을 백 번 감안하는 손가락이었다.

콜록!

아이의 기침이 멈췄다. 그것으로 윤도의 자침도 끝이 났다.

‘후우!’

겨우 숨을 돌릴 때 간호사 리빙빙이 윤도 등을 건드렸다. 돌아보는 순간 작은 액자가 내밀어졌다. 휠체어에 탄 양이닝이었다.

“양이닝.”

윤도가 그녀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였다. 윤도를 본 어머니는 허리가 바닥에 닿을 듯 인사를 해왔다.

“어때요?”

액자를 넘겨준 양이닝이 물었다. 액자 속에는 윤도그림이 들었다. 그런데 윤도 혼자가 아니었다. 그 옆에 함께 그려진 사람... 중국 주석이었다. 그의 병문안 역시 윤도에 못지않은 기억으로 남은 모양이었다.

“나 혼자가 아니네?”

윤도가 물었다.

“마음에 안 들면 선생님만 다시 그릴 게요.”

“아니, 아주 마음에 들어.”

“실은 가지고 오는데 기자 아저씨들이 찍어갔어요.”

“그래?”

“제가 잘못했나요?”

“아니, 괜찮아. 아주 멋진 걸? 한국의 우리 한의원에 걸어야겠어.”

“다 나으면 엄마가 한국에 데려간다고 했어요. 그때 선생님 한의원에 찾아갈 게요.”

“그럴래?”

“그리고 저 꿈 바꿨어요. 원래는 화가였는데 선생님처럼 한의사가 되어서 아픈 친구들을 고쳐줄 거예요. 이렇게 큰 장침으로.”

양이닝이 두 팔을 벌려보였다.

“이야, 그거 영광스러운데?”

“고맙습니다. 선생님.”

양이닝의 두 눈이 호수처럼 반짝거렸다.

“저도 그 그림 찍어가도 돼요?”

양이닝이 돌아가자 리빙빙이 물었다.

“당연하죠.”

“선생님하고 기념 촬영은요?”

“그것도 문제없어요. 우리 둘이 한 장 부탁합니다.”

윤도가 왕민얼을 바라보았다.

“안 돼요.”

왕민얼은 인증샷 찍어주기를 거부했다.

“왜요?”

윤도가 묻자 왕민얼이 재빨리 윤도 옆에 붙었다.

“나도 같이 찍고 싶으니까.”

왕민얼은 말릴 사이도 없이 자기 핸드폰의 카메라 버튼을 눌렀다.

찰칵, 찰칵, 찰칵!

세 사람은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영상에 담겼다. 베이징 어린이 병원의 독감 전선. 그 사선의 선봉에 섰던 세 사람이었다.

정리가 끝난 윤도가 원장실 초대를 받았다. 안에는 베이징 시장과 당 간부, WHO 관계자 등이 함께 배석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약침지원을 요청 받았다. 바이징팅과 베이징 당국이 비용 일체를 부담하는 형식이었다. 윤도가 수락했다. 약침의 비용은 백신의 6배 가격으로 정했다.

윤도에게 요청된 약침은 약 1만명 분. WHO의 조사관들조차 인정한 것이라 가치가 컸다.

“주석님입니다.”

회의 중에 원장이 전화를 넘겼다. 원장이 윤도에게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자금성 인근의 주석궁으로 돌아간 주석이 업무 중에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채 선생. 고생이 많으셨소.”

“별 말씀을...”

“이 상황이 타결되면 한 번 초대해 정식으로 인사를 하겠소.”

“아닙니다. 그러실 것까지야...”“베이징 시장에게 최대한 편의를 봐드리고 했으니 편안히 돌아가시오. 우리 인민들을 당신 이름을 결코 잊지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윤도가 전화를 끊었다.

“채 선생님.”

상담실에서 짐을 챙길 때 바이징핑이 들어섰다. 이번에는 시라와 함께였다.

“선생님, 이거 받아주세요.”

시라가 봉투를 내밀었다.

“뭐죠?”

“약속대로 진료비입니다. 제 성심껏 담았으니 부디 거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설명은 바이징팅의 입에서 나왔다.

“진료비는 지난번에 주신 백지수표로 충분합니다. 정 뭐하시면 거기다 조금 더 적겠습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그것이고 이것은 이것이죠. 부디 받아주십시오.”

“회장님...”

“덕분에 기부와 봉사의 참 뜻을 알았습니다. 현장 봉사 말입니다. 그저 돈이나 몇 푼 내고 생색내듯 기자회견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더군요.”

“......”

“뉴욕에 상장된 우리 회사 주식입니다. 주당 50불 정도 하는데 8888주를 담았습니다. 많지 않지만 채 선생을 우리 회사의 주주로 모시는 것도 뜻 깊을 거 같아서 시라와 함께 결정했습니다. 8은 아시다시피 울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라서...”

바이징팅의 손은 공손했다. 도무지 뿌리칠 수 없는 봉투였다.

“그런 의미라면 받아두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시라가 좋아했다. 바이징핑도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바당바다당!

병원 마당에서 경찰 사이드카들이 경기를 했다. 공항까지 윤도를 에스코트할 인력이었다. 병원 앞에는 재중 한국인들이 수십 명 몰려와 있었다. 윤도의 뉴스를 보고 달려온 것이다.

“잘 했어요.”

“한국인으로 정말 뿌듯합니다.”

“이제 한의학도 한류입니다.”

한국인들이 입을 모았다. 해외에 나와 있는 그들에게 있어 윤도의 활약은 크나 큰 위안이자 긍지가 된 일이었다.

“타시죠.”

인사가 끝나자 바이징팅이 세단 문을 열었다. 그 앞에서 윤도가 병원을 돌아보았다.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윤도를 도왔던 간호사 리빙빙이 인사를 해왔다. 왕민얼은 손가락이 부러져라 세운 엄지를 내리지 않았다. 그 뒤로 도열한 마롱과 첸슈에센, WHO의 조사관들도 엄지를 꼽아주었다.

“선생님.”

양이닝이 격리실 층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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