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5화 (175/265)

“대신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요.”

“뭔데요?”

“아까 여기 의료진들에게 죽고 싶다고 했다면서요? 그 이유가 약물 알레르기 때문인가요?”

“......”

윤도의 질문에 환자가 입을 닫았다. 다른 이유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걸 말해줘야 합니다. 알레르기는 결국 면역력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죽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들면 면역력이 높아질 수 없으니 제 치료가 무위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요.”

“아뇨. 진짜 낫기만 하면 안 죽어요. 실은 제가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있는데 지난번에 제가 소염진통제 먹고 쓰러지는 걸 봤었거든요. 그 후로 자꾸 피하길래 오늘 만났었는데 진통제 하나 못 먹고 엄살 작렬하는 남자하고 어떻게 사귀겠냐고 하길래 그 앞에서 진통제를 몇 알 먹었거든요. 그런데 제 몸뚱이에 이런 꽃이 피자 여자 친구가 기겁을 하고 가버렸어요. 저는 다른 때보다 심해지면서 119에 실려 왔고... 완전히 쫑난 거죠, 뭐.”

“바로 쓰러졌어요?”

“아뇨. 알레르기가 시작되면 먼저 신호가 와요.”

“어떻게요?”

“갑자기 머리 속이 더워지면서 간지러워요. 그러면 발진이 머리를 시작으로 하체로 퍼져요. 저혈압도 같이 오고요.”

청년의 증세 설명은 그쯤으로 끝냈다. 증세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윤도가 장침을 뽑았다. 먼저 사관을 열었다. 거기에 족삼리혈을 보태 면역증강의 통로를 만들었다. 그런 다음 이상 반응이 격렬한 혈자리 네 곳에 장침을 넣었다. 인영혈과 곡지혈, 견우혈, 그리고 내정혈이었다. 마지막 장침의 침끝 조절이 끝나자 환자의 피부온도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허어!”

언제 왔는지 알레르기내과과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스태프들과 함께였다. 환자의 약물 알레르기 약진은 이내 시든 풀처럼 세력이 시들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처음에 핀 것과 역순으로 기세가 무너졌다. 다리에서 머리 쪽 방향이었다.

“우와!”

팔을 확인한 환자가 탄성을 질렀다. 목소리 또한 한결 나아졌다. 인두의 부종도 함께 차도를 보이는 것이다.

윤도가 타이머를 세팅했다. 기혈이 온몸을 돌며 조화를 이룰 시간이 필요했다.

20분.

타이머가 울리면 발침을 하고 폐와 대장, 신장의 기혈을 보강할 생각이었다. 간호사 데스크로 간 윤도는 과장과 함께 향후 치료방향에 대해 논의를 했다. 그때 병실 간호사가 뛰어나오며 소리쳤다.

“채 선생님, 최윤태 환자가 이상해요!”

간호사의 목소리가 떨고 있다.

세팅한 타이머가 겨우 절반을 넘은 시간이었다.

치명적 약물 알레르기 아나필락시스-2

치명적 약물 알레르기 아나필락시스-2

‘윽!’

안으로 들어선 윤도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환자의 몸이 변해 있었다. 침빨을 받아 회복세로 돌아서던 최윤태. 잡은 줄 알았던 아나필락시스가 재강림한 것이다.

“최윤태씨.”

윤도 목소리가 높아졌다.

“으으...”

“어떻게 된 겁니까?”

“그게... 으으...”

신음하던 환자가 쓰레기통을 가리켰다. 쓰레기통 안에 약 껍질이 보였다. 몇 알의 소염진통제였다.

“이걸 먹었어요?”

“으으... 예.”

대답하는 환자의 목소리가 막혔다. 목구멍을 보니 인두의 부종이 엄청나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미쳤어요? 이걸 왜?”

“다 나았는지 궁금해서요...”

“......!”

“전에 두드러기도 한동안 괜찮아서 다 나았나싶으면 다시 재발을... 그래서...”

“이 약은 어디에서 났어요?”

“제 옷 주머니에... 낮에 여자 친구 앞에서 먹고 남은 거...”

“됐어요. 인두에 무리가 가니까 말하지 마세요!”

윤도는 미친 듯이 발침을 했다.

환자의 심리.

이해는 했다. 천형 같은 약물 알레르기를 가진 사람. 이따금 발현되는 증상 때문에 삶의 질이 형편없었다. 그래서 죽을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 차에 만난 명침 채윤도. 그의 침으로 낫는 것 같았다. 그 한의사가 가기 전에 확인하고 싶었다.

다 나은 걸까? 그렇다면 이제 소염진통제를 먹어도 괜찮아야겠지? 그래야만 다 나은 거잖아?

소염진통제는 그렇게 목을 넘어갔다. 그러나 치료는 완료가 아니라 진행상태. 침이 기혈 조화를 맞추는 상태에서 알레르기 유발물질이 들어오자 균형이 깨져버렸다. 윤도가 애써 맞춘 장침과 질병의 균형이 진통제의 난입으로 뒤틀린 것이다.

그 파급은 엄청났다. 환자의 발진 두드러기는 콜린성에 가까웠다. 아까에 비해 더 크고 사나우며 볼륨감도 강했다.

“괜찮습니까?”

알레르기 과장이 물었다.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상황이 굉장히 위험한 것 같습니다만... 인두부종이...”

“그렇군요.”

“무리가 될 것 같으면 환자의 동의만 구해주세요. 저희가 맡겠습니다.”

과장의 말을 들은 윤도가 환자를 바라보았다.

환자 최윤태.

갑작스런 악화를 초래한 그의 눈은 회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 희망이 피어나던 그 눈이 아니라 처음 본 눈이었다.

“최윤태 씨.”

윤도가 환자를 호명했다.

“예?”

“잘했어요.”

“예?”

“당신이 한 행동 말입니다. 환자는 그런 본능이 있어요. 내 병이 완벽하게 나았는지 확인하고 싶은...”

“선생님...”

“내가 조금 힘들어지기는 하겠지만 다시 잡으면 돼요. 당신 말처럼 진짜 나은 거라면 소염진통제를 먹어도 문제가 없어야겠죠. 당신이 조금 성급하기는 했지만요.”

“죄송합니다.”

“한 번 믿었으니 나, 또 믿을 수 있지요?”

“예...”

“이번엔 침이 좀 많이 들어갈지도 몰라요.”

“괜찮아요. 선생님이라면...”

“대신 다른 약속도 하세요. 만약 내가 실패하면 여기 과장님 말씀에 따르세요.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까.”

“알았어요.”

환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윤도가 과장을 돌아보았다. 레지던트와 인턴을 거느린 그가 알았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만약의 사태에 대한 수술 준비를 하겠다는 사인이었다.

윤도가 다시 진맥을 잡았다. 맥은 손가락을 밀어낼 듯 사나웠다. 사기의 본진은 폐경이었다. 피부를 주관하는 수태음폐경. 두드러기의 기세가 폐경을 장악한 것이다. 수태음폐경은 폐 및 대장·횡격막·위·신 등과 관계가 있으니 곧 폐의 기혈이 붕괴됨을 뜻했다.

재공사.

인체를 공사 따위에 비할 수 없지만 재공사는 어렵다. 첫 공사의 잔해 때문이다. 그 잔해를 말쑥이 걷어내는 게 공사만큼이나 어렵다. 더구나 윤도에게는 주저할 시간조차 없었다.

장침을 뽑았다. 첫 침을 중부혈에 넣었다. 이 침은 삼향자침이었다. 천지인의 세 방향으로 침을 꽂은 것. 그것은 곧 침감이 상초, 중초, 하초로 고루 진격하라는 포석이었다.

윤도의 손이 미친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행경로를 따라 운문혈을 찍고 천부와 협백, 척택, 공최, 열결을 지나 경거, 태연, 어제로 내려왔다. 방점은 소상혈이었다. 엄지손톱의 소상혈에 침을 넣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채 5분도 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빛의 속도였다.

윤도 손이 지나면 그 자리에 장침이 우뚝 섰다. 수태음폐경은 이제 장침 라인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소상혈자리에서 라인을 바라보았다.

폐...

오장은 따로 놀지 않는다.

간장은 심장을 돕고

심장은 비장을 돕고

비장은 폐장을 돕고

폐장은 신장을 돕는다.

심장은 폐를 억제하고

비장은 신장을 억제하며

간장은 비장을 억제한다.

네트워크다.

오장육부처럼 경혈도 네트워크를 이룬다.

머리 속에 팽글거리는 원리를 따라 비장혈을 따라갔다. 이제 시침의 목표는 다리의 족태음비경이었다. 비경으로 하여금 폐의 원기를 채워야했다. 그래야만 돌발 응급상황을 잡을 수 있었다.

대원칙.

그것은 급할수록 돌아가라였다. 윤도는 그 원칙을 따라 행군을 시작했다. 그러나 역시 응급상황이므로 비경의 모든 혈을 잡지는 않았다. 선택은 주요혈이었다. 태백혈, 공손혈, 지기혈, 장문혈, 비수혈이면 충분했다.

태백혈에서 기혈의 지원을 시작했다. 환자의 상태는 조금 전보다도 더 나빠졌다. 이제는 말도 하지 못했다. 인두의 부종이 소리를 막는 것이다.

“채 선생님.”

과장이 주의를 환기 시켰다. 최악의 응급이라는 뜻이었다.

윤도는 차분하게 침을 감았다. 손석구의 수술을 떠올렸다. 수십 군데 깨지고 부러진 상처도 흔들림없이 수습해내던 그 초연함. 그렇기에 윤도의 침감 조절도 초연했다. 제 아무리 응급이라도 한의사는 냉정해야 했다.

마침내 침 끝에 기혈이 올라왔다. 그 기세를 모으고 모았다. 윤도의 목표는 자명했다. 탱탱하게 차오른 비장의 기혈을 폐장으로 보내려는 것.

‘가라!’

기세가 쓸만하자 침끝을 반대로 감았다. 이제는 방출이었다. 기의 대방출.

족태음비경의 라인에 불이 켜졌다. 윤도의 눈에는 보였다. 비장으로 통하는 기의 라인. 그 라인을 따라 윤도의 신침 파워가 작렬하기 시작했다.

“으...”

환자는 결국 짧은 신음을 내며 늘어졌다.

“채 선생님.”

이제는 레지던트까지 나서서 상황을 주지시켰다. 그러나 윤도는 듣지 못했다. 몰입. 완전한 몰입이었다. 윤도는 이미 환자와 하나가 된지 오래였다.

최후 시침을 시작했다. 아까와 같은 네 혈자리였다. 아까와는 달리 한 혈자리에 세 개의 침이 한 쌍으로 들어갔다. 그 또한 천지인의 조화를 부르는 자침이었다. 숨 가삐 달리던 침은 곡지혈에서 끝났다. 윤도는 손을 떼지 않았다. 이번에는 곡지가, 전체 조화를 이룰 스위치였다.

“과장님, 더는 안 됩니다. 위험합니다.”

결국 레지던트가 소리를 질렀다.

“......”

과장 역시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상대는 채윤도였다. 부원장이 보증하는 한의사였다.

“과장님, 빨리 응급처치에 들어가야 합니다!”

한 번 더 강조되는 순간, 윤도 입에서 냉혹한 한 마디가 나왔다.

“소리치면 환자 심리에 해롭습니다.”

“......?”

“쉬잇!”

윤도 손가락이 입술로 올라갔다. 조용하라는 얘기였다. 단순한 동작이지만 압도적인 힘이 엿보였다. 레지던트는 입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윤도의 시선은 다시 환자에게로 돌아갔다.

사기(邪氣)...

환자의 몸은 최악이었다. 온몸에 홍반 수포가 핀 것 같았다. 그러나 거기가 알레르기 기승의 끝이었다. 마침내 폐장에 생기가 돌아온 것이다. 바닥을 드러낸 기혈이 차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으으...”

환자의 신음이 약간 길어졌다. 그걸 신호로 온몸의 두드러기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강물이 빠지는 것과도 닮아보였다.

“과장님...”

레지던트의 입에서도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번 신음은 경탄 쪽이었다.

믿기지 않게도 눈에 보였다. 알레르기 홍반과 발진의 붕괴. 그것은 마치 초고속영상을 보듯 후련하게 무너져갔다.

“선생님... 하아...”

환자의 목소리도 이제는 열렸다. 그럼에도 윤도의 자세는 변함이 없었다. 그의 시선은 침의 끝이었고 그의 감각도 침 끝에 올인이었다. 침 아니라 손의 일부가 된 장침. 윤도는 그 가느란 장침을 잡고 처절한 보사를 계속할 뿐이었다.

‘이 사람...’

과장은 등골을 훑고 가는 서늘함을 느꼈다.

장침의 명의.

솔직히 현대의학 전문의로서, 그것도 대한민국 최고 병원의 진료과장으로서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현장을 지켜보니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침술 뿐만 아니라 환자를 대하는 태도까지 그랬다.

‘그렇군.’

과장은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완전한 인정이었다.

“죄송합니다.”

다시 회복된 환자가 거듭 사과를 해왔다.

“괜찮아요. 남자가 그 정도 호기심은 있어야죠.”

“선생님...”

“솔직히 또 확인하고 싶지요?”

“.....”

“확인하세요.”

“예?”

“대신 며칠 있다가요. 몸이 새 조건에 안정될 시간은 줘야죠. 그 정도는 할 수 있죠?”

“그럼요. 며칠 아니라 몇 달이라도 괜찮아요. 약물 알레르기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럼 잘 안정하고 퇴원하세요.”

윤도가 돌아섰다. 생각보다 많이 지체한 시간. 치매환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꾸벅!

과장과 레지던트들이 엘리베이터 앞에 도열해 목 인사를 해왔다. 윤도 역시 같은 자세로 인사를 받았다.

땡!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땡!

소리와 함께 올라가던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호텔 로비처럼 단장한 휴게실이 나왔다. 윤도는 소망했다. 저 엘리베이터 문처럼 최윤태의 약물 알레르기 질환의 문은 굳게 닫히고 새 세상의 문이 열리면 좋겠다고.

“왔어?”

치매병실에 들어가자 할머니가 윤도를 반겼다. 아는 얼굴이라 반기는 건 아니었다. 할머니의 치매가 윤도를 아는 척 하는 것이다. 이 할머니는 이쁜 치매에 속했다.

“군대가 적성에 맞어?”

할머니는 윤도의 손을 놓지 않았다.

“안 맞는다고 해주세요.”

옆에 있던 보호자가 말했다. 설명도 이어졌다.

“손자가 군대에 갔어요."

가혹행위 때문에 사회적 문제가 되는 뉴스가 나오는 통에 가족들이 입을 맞춘 거라고 했다. 즉 가혹행위를 받고 있는데 차마 말할 분위기가 아니면 군대가 적성에 너무 잘 맞는다고 하라고 짠 것이다.

“적성에 안 맞아요.”

“그래?”

윤도가 말하자 할머니가 손뼉을 쳤다. 시침을 시작했다. 백회와 사신총, 태계혈에 장침을 넣었다. 시선이 편안해지는 걸 확인하고 약침을 넣었다.

할머니는 알츠하이머성 치매. 고단하던 시선에서 피로가 빠지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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