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팔...
그건 흉터 투성이였다. 어릴 때 화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손목이 시작되는 부근부터 어깨 밑까지 그의 살은 마치 피부를 걷어낸 생조직처럼 흉하게 보였다.
“이쪽도 보셔야겠군.”
서병탁이 반대 팔을 걷었다.
“......!”
그곳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왼팔보다는 나았지만 진맥을 잡기는 불가능했다.
“여기도 보시려나?”
그가 상의의 긴 목부분을 내렸다.
“......”
윤도, 어이가 없었다. 그가 자처한 건 역시 의도적이었다. 서병탁은 목조차 진맥을 잡기 힘들 정도로 흉터가 가득했다. 주저하는 사이에 그가 상의를 벗어버렸다.
“어머!”
승주가 입을 막고 물러섰다. 가슴과 복부, 심지어는 등 쪽에도 화상이 심했다. 마치 얼굴만 빼고 끓는 물에 빠졌다 나온 형상이었다.
“화타와 편작을 거론할 실력이라며 진맥이 어렵겠나?”
서병탁이 콧김을 뿜었다. 은근한 비웃음이 깃든 표정이었다. 돌아보니 김남우와 일행들의 표정도 비슷했다. 하지만 그들의 미소는 이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윤도가 서병탁의 손목의 세 곳에 장침을 꽂아버린 것이다. 두 손을 합쳐 도합 여섯 방이었다.
사삿!
그 손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빨랐다.
“무슨 짓이야?”
놀란 서병탁이 상체를 세웠다.
“진맥을 보려는 것 아닙니까? 움직이면 맥이 변하니 그대로 있으십시오.”
윤도가 서병탁의 상체를 밀었다. 이번에는 무려 13개의 장침을 뽑아들었다. 장침은 목의 인영맥과 12경맥의 동맥자리를 빼곡이 차고 들어갔다.
“이봐.”
서병탁이 고함을 쳤다.
“당신 한의사 맞습니까? 진맥을 보라고 하고는 흥분을 하다뇨? 지금 당신의 요구대로 맥을 짚고 있지 않습니까?”
“뭐라?”
“인간의 몸에서 진맥을 할 수 있는 곳은 모두 세 군데 아닙니까? 손목의 기구맥, 목의 인영맥, 각각의 12경맥의 동맥... 보통 손목에서 진맥을 하지만 당신들이 나를 검증하겠다 하니 FM대로 모든 진맥 부위를 보려는 겁니다.”
“이, 이 놈이...”
“말씀 삼가세요. 지금 검증 중이니까.”
윤도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압도된 서병탁은 뒷말을 잇지 못했다.
윤도가 진맥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왼손목이었다. 장침을 잡은 손가락의 자세는 관맥과 촌맥, 척맥을 잡는 것과 같았다.
“왼손 촌맥에서 심장과 소장의 이상을 읽지요. 관맥에서는 간장과 담, 척맥에서는 명문과 삼초...”
“......”
“오른손으로 갑니다. 여기서는 폐와 대장, 비장과 위장, 그리고 신장의 상태를 알게 됩니다. 남자는 왼쪽 손의 맥이 강하고 여자는 오른쪽 손의 맥이 강하게 뛰지요. 왜냐면 남자는 양기의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
“당신의 문제는 심장입니다. 심허로군요. 계속 말해도 되겠습니까?”
“뭐야?”
“내 말은 이 진단이 당신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진상 환자라면 개인정보 누설이라고 태클을 걸 수도 있을 테니까요.”
“이봐.”
“그럼 동의한 것으로 알고 계속하겠습니다.”
윤도는 김남우까지 바라본 후에 묵직하게 말을 이었다.
“당신의 심허는 하초로 내려가 생식기에서 고질병을 형성했습니다. 고환염에 발기부전... 진맥으로 보아 발기부전은 아마 10여년 쯤 된 것 같군요.”
“......!”
그제야 서병탁의 눈알이 뒤집혔다.
그는 설마하고 있었다. 진짜 진맥도 아니고 흉터 위에 꽂힌 침. 그걸 잡고 개폼을 잡는다고 생각하다가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그것도 세게 맞았다. 뇌가 터질 정도의 충격이었다.
“내친 김에 심장 구멍 이야기도 해드릴까요? 당신의 심장구멍은 6개입니다. 다섯이면 보통 사람 장삼이사요 일곱이면 총명한 사람이라는데 여섯이니 애매하군요. 털은 아쉽게도 하나 뿐입니다.”
“......”
“이제 침술증명을 해야 하나요? 사실 당신 심장은 구멍 하나가 절반 이상 막혀 있습니다. 그걸 뚫으면 7개가 될 것 같은데 한 번 찔러드릴까요?”
윤도가 망침을 들어보였다.
망침!
그 긴 기세가 서병탁의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미, 미쳤어?”
놀란 서병탁이 허둥거렸다.
“사실 저는 의심증에 관련된 약침도 조제 가능합니다. 당신에게 놔드릴 의사는 없지만...”윤도가 망침을 놓고 장침을 집어들었다. 그런 다음 거양혈을 찾아 장침을 넣었다. 순간 서병탁의 엉덩이가 들썩 올라왔다 내려갔다. 침감이 제대로 닿았다는 신호였다. 다음으로 질변혈과 환도혈로 이어지는 부근에 또 하나의 장침을 넣었다. 마지막은 족삼리에서 매조지를 했다.
물론 이 혈자리들은 시침이 쉽지 않았다. 질변혈에도 흉터가 있었고 다른 혈자리도 그랬다. 하지만 윤도의 신침은 흉터 아래 숨은 혈자리를 조금도 빗나가지 않았다. 손목의 진맥에서 혈자리 위치를 확인한 까닭이었다. 거기에 더해 유려한 손놀림... 그건 차라리 세계적인 연주가의 손처럼 보였다.
“서병탁 씨.”
시침을 마친 윤도가 서병탁을 바라보았다.
“서병탁 씨? 이런 새파란 놈이...”
“그건 중요하지 않고 같은 한의사로서 충고 한 마디 드리겠습니다. 보아하니 발기부전의 원인을 심허와 신허로 판단한 모양인데 당신 발기부전은 심허입니다. 괜히 지실, 경문, 차료, 신수혈 등을 건드려서 스트레스 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정통으로 자침하지도 못했습니다만...”
“뭐라?”
“느껴보시죠. 내 말이 틀린지.”
윤도가 질변혈자리에서 침을 감았다. 정확하게 4분의 3이었다. 그러자 서병탁의 짧은 ‘팔’ 하나가 허공을 향해 ‘저요’ 손을 들었다. 남자에게 달린 세 번째 팔이었다.
“......!”
그걸 본 서병탁과 김남우, 사색이 되고 말았다. 그 팔(?)은 완전히 90도로 섰다. 김남우의 시선이 맹렬하게 구겨지는 게 보였다. 사실 그도 서병탁에게 시침을 했었다. 젊은 제자의 고민인 발기부전. 무슨 그라를 사먹어도 잘 듣지 않는 희한한 상황. 어찌어찌 용을 써서 혈자리를 찾았다.
그러나 그의 침도 윤도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체면이나 세워주려는 듯 30도 정도 일어서다 무너진 것이다.
“......?”
서병탁의 표정은 몹시 복잡미묘했다. 그 자신의 인생 고민이던 발기부전이었다. 그의 한의원은 꽤 잘 나가고 있었다. 살 빼는 한약으로 히트를 친 덕분이었다. 그래서 돈 좀 만졌다. 하지만 그러면 뭐할까? 결혼 7년 차의 아내는 수영강사와 눈이 맞아 떠나갔다. 심리적인 요인까지 겹쳐 그 어떤 치료법도 신호만 오다 말던 물건. 그런데 지금은 90도로 직립한 위엄...
하지만.
그 90도는 바로 무너져버렸다. 윤도가 보에서 사로 침 감는 방향을 바꾼 것이다.
벌떡.
헤까닥.
벌떡.
헤까닥.
물건은 똥개 훈련을 받듯 일어나, 앉아를 반복했다. 모두 윤도의 침감이 내리는 명령이었다.
“이제 증명이 되었습니까?”
윤도가 다시 사를 행했다. 물건은 절망처럼 스르르 무너지더니 다시는 일어서지 않았다.
“아직 부족하다면 고환염까지 진행해 보이죠.”
윤도의 장침이 다시 움직였다.
넘보지 마라-3
넘보지 마라-3
이번에는 등의 지실혈이었다. 신수혈에서 가까웠다. 그곳에는 다행히 흉터가 없었다. 자침되는 순간, 김남수의 눈매가 번쩍거렸다. 혈자리 때문이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혈자리에서 두 푼 정도 달랐다. 그러고 보니 윤도의 혈자리는 죄다 조금씩 비껴 있었다.
모로 가도 서울을 간 것인가?
김남수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진맥으로 인한 진단은 명쾌했고, 침술로 인한 효과는 전격적이었다. 특별한 약침도 아니고 단지 장침이 들어간 상황. 다른 것은 그 장침이 물결을 찌르듯 바람을 찌르듯 너무나 자연스러웠다는 것 뿐이었다.
“어떻습니까?”
윤도의 시선이 고환을 가리켰다.
“......”
서병탁이 움찔했다. 90도의 감격이 너무 컸다. 그랬기에 두 알(?)의 반응을 깜빡한 것이다. 그런데... 뭉긋한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늘 무엇인가가 움켜쥐고 놓지 않는 듯 하던 그 아픔이...
“아마 뭉긋한 압통이 사라졌을 겁니다. 그렇죠?”
“......”
“증명이 되었으면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겠습니다.”
“이, 이봐.”
서병탁의 말이 나오기도 전해 윤도가 침을 뽑아버렸다. 서병탁의 알은 다시 뭉긋야리한 통증 상태로 돌아갔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렇게 여러분이 오셨으니 한 사람으로는 안 되겠죠?”
윤도가 김남수와 한의사들을 바라보았다. 김남수가 마르고 큰 한의사의 등을 밀었다. 윤도가 진맥을 잡았다. 그는 단 하나의 애로 외에 아픈 곳이 없었다.
“이 분은 오장육부와 사지육신은 멀쩡해 보이지만 대장이 좋지 않습니다. 특히 냉에 약해 에어컨 바람을 쐬이면 영락없이 화장실을 가게 될 겁니다. 침을 놔드릴까요?”
윤도가 키 큰 한의사에게 말했다.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다.
“......”
그제야 김남수도 등골이 뻐근해지는 걸 느꼈다. 윤도의 침... 자연스러움 속에 침의 원칙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침감을 조절하는 득기, 침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조금씩 넣고 빼기를 반복하는 소산화법, 침을 들어올리고 누르는 제삽까지... 그냥 보기에는 자연스러움일 뿐이지만 골똘하게 짚어보면 그 모든 것을 담은 손길이었다. 그러니 장침이 문제될 일이 아니었다.
<공명심에 사로잡힌 어린 한의사가 환자들을 현혹하고 있다. 대형사고 쳐서 한의학계에 대형 파장을 몰고 오기 전에 정체를 밝혀야한다.>
제자이자 후배인 네 한의사들의 말을 듣고 달려온 한방의 원로...
그러나 눈앞에서 펼쳐진 윤도의 침술은 흠 잡을 데가 없었다. 거의 모든 혈자리를 장침으로 다스리는 것이 불만스럽기는 하나 탓할 수 없었다. 마치 삼국지의 관우에게 너는 왜 청룡운월도만 쓰느냐고 따지는 것과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채윤도 선생.”
결정을 내린 김남우가 한 발 앞으로 나왔다.
“......”
“실례가 많았소. 우리가 모르는 신침의 도를 깨우쳤구려?”
“김 선생님.”
김남우 뒤에서 몇 제자들이 목청을 높였다.
“그만들 하시게. 솔직히 자네들이 말할 때 긴가민가하기는 했지만 채 선생의 침술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지 않은가? 저 짧은 시침 동안 채 선생의 침술에는 다섯 가지 침의 원칙이 춤을 추었네. 그건 보았나?”
“......”
“그렇다면 채 선생을 편작이나 화타의 후신으로 볼 수 있을 터, 시샘을 거두고 사과를 드리게. 대형사고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으니...”
“하지만 아무 환부에나 장침을...”
“침 중에는 돌침도 있고 봉침도 있네. 나아가 금침도 있지. 그렇게 보면 침이란 구침 가운데서 한의사와 환자에게 적합 것을 골라 시침하면 되는 것. 솔직히 말하면 나도 호침 자리에 장침을 넣고, 장침 자리에 호침을 넣은 적이 있네.”
“......”
“이제 보니 공명에 눈이 먼 건 이 노구였네. 후배들의 부추김을 떨치지 못하고 경거망동했으니 참으로 볼 면목이 없네. 청와대에는 다시 전화를 걸어 채윤도 선생의 침술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제기한 의견을 거둘 테니 결례를 용서해주기 바라네.”
김남우가 고개를 숙였다. 그는 과연 거목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과실에 대한 인정도 전격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해프닝은 그렇게 마감이 되었다. 김남우가 숙이자 다른 한의사들은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유, 정말... 같은 한의사가 잘 되면 축하는 못해줄망정...”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던 승주가 치를 떨었다.
윤도는 왕진준비를 했다. 부용의 SN에 들렀다가 광희한방대학병원에 가야했다. 치매환자 특별시침 요일이었다.
부릉.
막 차에 시동을 걸 때였다. 아까 시비를 걸던 서병탁 한의사가 어디선가 튀어나왔다.
“저기... 채 선생님.”
“뭐죠? 아직 증명할 게 남았나요?”
“그게 아니라...”
서병탁의 목소리는 안으로 잔뜩 기어들어갔다.
“그럼 왜요?”
“그게... 제 고질병 좀 치료해주시면 안 되나싶어서...”
“고질병요?”
“발기부전...”
“치료는 환자와 한의사의 신뢰가 우선입니다. 사이비 침술가로 몰아붙이는 분이 제 침술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 일은 면목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기에...”
“음양과 기혈의 조화를 상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는 건 압니다만 한의사로서 하실 말이 아닌 거 같은 데요?”
“죄송합니다. 아무튼 치료를 좀...”
“저도 죄송합니다. 제가 일본 방사능 피폭환자들, 치매 환자들, 피부암 환자들 예약이 밀려서 당분간 발기부전 진료계획은 없어서 말이죠. 나중에 계획이 잡히면 그때 예약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자세한 건 저희 한의원 홈페이지 공지를 참고해 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윤도가 차에 올랐다.
“잠, 잠깐만요. 채, 채윤도 선생, 채윤도 선생님!”
서병탁이 손을 들지만 윤도의 스포츠카는 저만치 멀어진 후였다.
“쌤통이다.”
접수실에서 지켜보던 승주가 쾌재를 불렀다. 물론, 연재와 정나현도 고소한 마음은 마찬가지였다.
***
“채 선생니임.”
윤도가 들어서자 코맹맹이 애교가 실내에 울려퍼졌다. 부용의 SN 엔터테인먼트 대기실이었다. 매트에는 한참 주가를 올리는 신인 걸그룹의 리더가 누워있었다. 태국 공연을 앞두고 마무리 연습을 하다가 발목을 접질린 것이다. 스케줄이 많아 강행군을 하다가 일어난 참사였다.
“선생님...”
리더는 아기 새 같은 표정을 지었다.
“걱정 마. 선생님 침은 마법이야.”
미나토 건으로 알게 된 미우가 다가와 위로를 건넸다.
“공감에 한 표. 살아있는 마법사시지.”
박연하도 동참을 했다.
장침은 단 한 방이었다. 손의 소부혈에서 대릉혈을 일침이혈로 잡은 것이다. 염좌가 일어난 쪽의 손이었다.
“일어나 봐요.”
침을 뽑은 윤도가 말했다.
“다리에는 안 놔요?”
“이미 끝났거든요.”
윤도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리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리를 딛었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어!”
그녀의 입이 딱 벌어졌다. 새로 매니지먼트 계약을 하고 결성된 팀이라 윤도를 잘 모르는 까닭이었다.
“우와, 신기. 저번에 다쳤을 때는 일주일 간 고생했는데...”
리더는 믿기지 않는 듯 한 바퀴를 턴 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