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정부에서 의뢰가 왔다고요?”
윤도가 약제실을 찾자 진성태가 물었다.
“방금 사람들이 다녀갔습니다.”
“일본이라...”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요... 아무래도 미나토 씨 때문인 것 같군요. 그 사람이 일본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한 데다 원장님이 감쪽 같이 낫게 해주었으니...”
“가야겠죠?”
“원장님 성격에 그래야겠지요. 더구나 환자들 목숨이 풍전등화라면서요.”
“자칫하면 며칠 걸릴 수도 있으니 그렇지요.”
“그렇군요. 이럴 때는 원장님 몸이 두 개면 좋은데... 이참에 아예 몸을 음양으로 나누시죠.”
“하핫, 그럼 음양 분리는 아저씨가 원심분리기에 넣어서 해주시겠어요?”
윤도가 장단을 맞췄다.
“그냥 토요일, 일요일 양 이틀에 끝내고 오시면 좋기는 한데... 약침 준비해드려요?”
“으음, 가지말라는 듯 하면서 아예 등을 떠미시는군요?”
“그래 달라고 온 거 아닙니까?”
“어휴, 아저씨는 관상을 너무 잘 본다니까요.”
윤도가 손사래를 쳤다.
후쿠시마 원전.
지구 재앙의 하나였다. 윤도의 기억은 그랬다. 그때 방사능에 피폭된 사람들은 평생 동안 질병 걱정으로 살아야했다. 인류애의 입장에서 본다면 의술을 거부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입장을 바꿔 그들이 된다면... 한의사의 사명이 되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환자들의 병명을 상기했다.
Cancer.
병명의 줄기는 거의 같았다. 피부암이 둘에 폐암과 비강암, 그리고 췌장암... 마지막은 위암이었다.
“간호사가 한 명 동행합니다. 토요일 빠른 비행기로 부탁합니다.”
윤도는 결국 와타루에게 전화를 걸었다. 감격한 그의 인사는 전화기 속에서도 무한 반복되었다. 별 수 없이 윤도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동행은 승주로 결정을 했다. 연재는 아기가 있는 데다 승주가 일본어를 할 줄 아는 까닭이었다.
“와아, 해외출장까지 가게 되다니... 저 일본초밥과 라멘 완전 좋아해요.”
승주는 펄쩍 뛰며 좋아했다.
목요일, 금요일.
이틀 동안 산해경으로 영약채집을 나갔다. 그러나 법제에 시간이 걸리는 건 소용이 없는 일. 간편하게 쓸 수 있는 웅황과 또 하나를 확보했다. 웅황부터 찾은 건 미나토 때문이었다. 그에게 적유를 썼지만 웅황이 아쉬웠다. 웅황이라면 독소를 없애주는 축빈혈을 생략해도 될 것 같았다. 방사능도 독으로 봐야하니까.
금요일, 윤도는 아침부터 바빴다. 예약환자들의 스케줄을 당겼다. 만약을 위한 조치였다.
그리고...
마침내 토요일 아침, 와타루와 치모모는 새벽부터 윤도를 찾아왔다. 약침을 챙긴 윤도가 승주와 함께 장도에 올랐다.
인천공항은 복잡했다. 입국장 앞에 사람들이 많았다. 지나면서 보니 위안부 문제로 항의 차 나온 사람들이었다. 일본 정치인이 문제였다. 위안부에 대해 망언을 한 사람이었다.
위안부.
그 광경을 보자니 돌연 진료 의욕이 뚝 떨어졌다. 하지만 윤도가 구하러 가는 건 그저 환자. 전쟁 중에는 적군이라도 부상자를 치료하는 것이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위안부 망언 타쿠미 물러가라, 물러가라!”
일본 정치인이 나오자 시위대가 목청을 높였다. 탑승시간이 가까웠으므로 더는 보지 못하고 출국심사를 받았다. 가만히 돌아보니 와타루가 시위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양심은 있는지 표정이 제법 착잡해 보였다.
탑승 2시간 쯤 지나자 도쿄가 가까웠다. 착륙방송이 나왔다.
“레이디스 앤 잰틀맨...”
비행기를 타면 이 방송이 가장 반갑다. 목적지에 다다랐다는 사인이기 때문이었다.
중국에서 나올 때 그랬듯이 일본에서도 절차 없이 입국을 했다. 공항을 나가는 곳도 달랐다. 청사를 나오자 차량 두 대가 보였다. 그 중 한 대 앞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미나토였다.
“채윤도 선생님.”
그가 손을 들어보였다.
“여긴 어떻게?”
“제가 일본으로 돌아와 피부암 퇴치 확인을 받은 후에 정부 부처 인사들에게 요청을 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사태로 목숨이 위태로운 우리 국민들, 살려줄 신의가 한국에 있다고.”
“아...”
“인사하시죠. 여긴 국가특별위원회 의장이신 무라다입니다.”
미나토가 옆 사람을 소개했다. 장년의 무라다는 작은 키에 도수가 높은 안경을 끼고 있었다.
“이렇게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채윤도 선생님.”
무라다가 허리를 숙였다. 윤도도 그와 각도를 맞춰 인사를 나눴다. 그의 한국어는 인사말 뿐이었다.
“타시지요.”
미나토가 차를 가리켰다. 윤도는 승주를 데리고 차에 올랐다.
“지금 우리 정부 각료들은 제 피부암 완치에 무척 고무되어 있습니다. 지금 암전문 칸치병원에서 정부관리들이 선생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정부관리들이?’
윤도가 고개를 들었다. 뉘앙스를 보니 하급 관리가 아니다. 어쩐지 이 일이 보통 일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차는 한참을 달려 병원 앞에 닿았다. 시설이 좋은 병원이지만 보안이 심해 갑갑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깁니다.”
2층 복도를 앞서 가던 와타루가 문을 가리켰다.
딸각!
문이 열리자 안의 풍경이 드러났다. 병실이 아니라 회의실이었다. 안에는 병원장과 의사 둘, 세 명의 고관대작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미나토 선생님.”
선이 굵은 남자가 일어나 미나토를 맞았다.
“이 분이 바로 채윤도 선생이라오 슈스케 보좌관.”
미나토가 윤도를 가리켰다.
슈스케.
미나토를 고친 절에서 들었던 이름이었다. 그는 일본 내각총리실의 특급 보좌관. 총리실 다섯 보좌관 중에서도 총리와 독대하며 정책을 판단하는 실세였다. 하지만 윤도는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와타루.”
“예?”
고개를 드는 와타루의 눈에 윤도 눈이 빨려들었다. 묵직한 기상이 서린 눈이었다.
“저는 환자를 보러 왔습니다. 환자가 우선입니다.”
“채 선생님.”
와타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안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일본정부의 고관대작들. 그런 그들을 목전에 두고 윤도가 뱃머리를 돌리자는 꼴이었다.
“이분들은 내각총리실의 슈스케 보좌관님과 보건성의 타다요시 차관님, 그리고 우리 특별위원회의 고문님입니다. 그리고 이 병원 원장님과 진료부장, 대표주치의... 일단 여기서 이 분들 말을 들은 후에...”
“와타루.”
“예?”
“환자들의 생명이 백척간두에 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만...”
“그렇다면 환자를 봐야 대책이고 상의고 할 것 아닙니까? 안내를 부탁합니다.”
윤도가 잘라 말했다. 윤도의 머리에 와글거리는 건 여객선 사고 후로 갈매도에 찾아온 관계자들이었다. 윤도는 여기 놀러온 게 아니었다.
오나가나 높은 공무원이나 절차는 번거로울 뿐. 더구나 일본 정부의 고관대작들. 그들과 격식 갖춘 대화로 시간을 허비할 생각은 없었다.
“환자!”
윤도가 한 번 더 강조하자 고관대작들의 눈에도 당혹감이 스쳐갔다.
침묵.
따가운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다 슈스케의 입이 열렸다.
“모시게.”
굳은 목소리였다. 와타루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다시 앞장을 섰다.
저벅저벅!
윤도의 발소리를 따라 회의실이 멀어졌다.
“여기들 계십니다.”
와타루가 병실 하나를 가리켰다. 다른 병실에 비해 보안이 더 엄격한 VIP병실이었다.
안으로 들어섰다. 병실 풍경은 아주 색달랐다. 마치 국가 요인들의 병상 같았다. 여섯 침대마다 각각의 간호사가 붙어있고 레지던트로 보이는 의사 둘이 대기 중이다. 그들은 거의 부동자세였다.
그것 외에도 이상한 점이 보였다. 어쩐지 상설 병실은 아닌 것 같다는 것... 게다가 환자 침대에 네임카드조차 없다는 것...
“채 선생의 진료를 기다리는 분들입니다.”
윤도가 멈칫거리자 와타루가 재촉을 했다.
“진맥부터 보겠습니다.”
어차피 온 걸음이었다. 윤도가 가운을 꺼내 입었다. 승주도 그랬다. 그런 다음 첫 침대부터 진맥을 보았다.
“제가 돕겠습니다.”
일본 간호사가 다가와 부산을 떨었다. 윤도가 그걸 막았다.
“거기 계시다 필요한 질문이나 답해주시면 충분하다고 전해줘.”
윤도가 승주에게 말했다.
“......”
통역을 들은 간호사는 군소리 못하고 물러섰다.
첫 환자...
“우르세이요.”
시끄러워.
그는 소리부터 질렀다. 진료정보를 상기했다. 췌장암에 더해 정신병이 왔다는 환자. 이름이 없었으니 질병으로 매칭을 시켜야했다. 고함 뒤에는 노래를 불렀다. 헛소리도 했다.
“당신 말이야, 봤어? 내가 조금 전에 온천에서 사토미의 유카타를 벗긴 거... 내가 막 성교를 하려는 참인데 당신이 왔네?”
“사토미는 일본 여배우예요.”
승주가 통역을 했다. 허튼 소리를 흘려들으며 진맥을 했다.
“......!”
진맥이 손가락에 걸리자 윤도 고개가 갸웃 돌아갔다.
방사능 노출...
그 맥이 아니었다. 방사능에 대량 피폭된 맥은 특이점이 있었다. 할퀴는 듯 주저앉는 듯, 혹은 연기 날리는 듯한 느낌이다. 그게 없는 것이다. 그 맥은 미나토를 고치면서 얻은 노하우였다.
‘사람마다 다른가?’
생각을 접어두고 진맥에 집중했다. 췌장암은 깊었다. 하필이면 암 덩어리도 듬성듬성이었다. 일본 의료진이 왜 손을 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맥은 숨바꼭질을 하듯 잡혔다. 느리다가 참새가 모이를 쪼는 듯 뛰었다. 사수맥(邪祟脈)과 닮은 꼴이었다.
‘유사사수...’
윤도는 정신병이라고 전해진 질환의 가닥을 잡았다.
사수...
동의보감에서는 이 병을 기혈이 허하고 정과 신이 부족한 경우거나 담화의 작용으로 생기는 질환으로 본다. 원기허약이라는 말이다. 유사사수는 이 사수증과 닮았다. 정신병처럼 보이지만 정신병이 아니었다. 비허가 원인으로 보였다.
일본 의료진의 실수였다. 나이로 보아 MRI상의 회백질과 백질의 양을 줄어들었을 일. 거기에 이런 행동양태를 덧붙이면 치매 판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혹시 이 분, 소화 안 되는 음식물을 그대로 배설하는 설사를 하는 지 물어봐줘.”
윤도가 승주에게 통역 요청을 했다. 승주가 닥터에게 그 말을 전했다.
“그렇다고 하네요.”
“혹시 정신병에 대한 치료도 되고 있는지도...”
“집에서 가료하다 어제 병원에 왔답니다.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 대책은 세워놓았다고...”
“일단 정신병 약은 절대로 먹이면 안 된다고 해줘.”
“그렇게 전했습니다.”
장침, 韓日 역사를 관통하다-1
“반갑소.”
두 번 째 침대의 환자가 손을 내밀었다. 말기 암에 시달리지만 강단은 죽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간호사가 시중들기에 바빴다.
척 봐도 굉장한 신분이다. 하지만 과잉 간호이기에 윤도가 보기에 좋지 않았다.
거기서 다시 윤도의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이 환자에게서는 방사능의 피폭자의 진맥이 나왔다. 미나토의 그것과 유사했다. 잠시 병실 풍경을 돌아보았다.
여섯 환자...
모두 60대 후반부터 70대 후반으로 보였다. 인상에서 풍기는 느낌도 비슷했다. 고위관료 아니면 정치인인 것이다.
“어떻소?”
환자가 일본어로 물었다.
“폐암 병소를 확인했다고 전해줘. 신장과 비장을 함께 치료해야 한다는 것도.”
윤도가 승주에게 지시했다. 그러자 와타루가 나섰다.
“아니, 우리 간호사가 할 겁니다. 일본어를 알 거든요.”
윤도가 와타루를 막았다. 말이란 한 길을 건너가면 뜻이 변할 수 있었다.
“침으로 고칠 수 있냐고 합니다.”
승주가 환자의 말을 전달했다.
“해볼만하다고 전해.”
윤도가 답했다.
“오!”
통역을 들은 환자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다음은 60대였다. 그는 후두암이었다. 암이 많이 진행되어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약간의 호흡곤란까지 온 것이다. 그는 필담으로 의견을 물어왔다. 그 얼굴을 보던 윤도 눈빛이 살짝 굳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어디서 봤더라?’
잠시 생각 끝에 답을 끌어냈다. 인천공항이었다. 위안부 망언을 한 타쿠미 의원... 암 투병으로 해쓱해졌지만 거의 같은 이미지였다. 이 환자 역시 방사능 진맥은 보이지 않았다.
“해볼만합니다.”
윤도가 해준 대답은 처음과 같았다.
그렇게 여섯 번째 환자까지 진맥을 끝냈다. 여섯 환자들 중에서 방사능 피폭으로 인한 진맥은 둘 뿐이었다.
“어떻습니까?”
와타루가 물었다.
“이분들이 선발자입니까?”
“예. 왜 그러시는지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대답을 하며 환자들을 바라보았다. 두 가지가 자연스럽지 않았다.
첫째는 환자들의 진맥.
둘째는 성별과 나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