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5화 (145/265)

쫘악!

김경호의 빰에서 불꽃이 튀었다. 이어서 폭풍 질타가 쏟아진다.

너란 놈은... 너라는 녀석은 도무지...

그런데...

오늘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눈을 감았던 김경호가 눈을 떴다. 아버지는 사진을 보고 있었다. 기타 속의 자신에게 시선을 꽂은 채.

“봤냐?”

김정엽의 목소리가 나른했다.

“......”

“기타가 왜 좋았냐?”

“......”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

김정엽이 홀로 책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냥요.”

푸른 혈관이 돋은 손 위로 김경호의 말이 내려앉았다. 김정엽이 아들을 돌아보았다.

“그냥 멋있어 보였어요.”

거기서 김정엽의 시선이 멈췄다. 아버지는 아들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한 마디를 꺼내놓았다.

“나도 그랬다.”

“진짜요?”

“문 앞에 기타 사다 놨다. 이제부터는 기타 쳐도 돼.”

“진심인가요?”

“그래. 아무 옵션도 없다.”

“아버지...”

“미안하다. 네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시험 때만 되면 배가 아프다고 했던 거... 그때는 네가 심약해서 신경성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간이 약해서였다고...”

“아버지...”

“그때 그걸 고쳐줬어야했는데 엉뚱하게 남자답게 살라는 야단이나 치고...”

아버지의 손은 다시 책을 주섬거린다. 하지만 건성이라는 거, 아들은 알았다. 몇 권씩 모은 책들이 삐뚤빼뚤 쌓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책임이 아니에요. 미국에서도 그런 일이 종종 있어서 병원에 갔었는데 거기 의사들도 스트레스나 신경성이라고 했거든요.”

“다 돌팔이들... 하지만 스무 살이 넘어서는 아버지에게 말했어야지. 신경성이 아니라고.”

“저는 나름 신호 많이 보냈었어요.”

“그랬냐?”

“아버지는 왜 말씀 안 하셨어요? 심장이 안 좋다는 거...”

“채 선생... 검사결과 보내달라고 하더니 네게 보여줬구나?”

“제가 보면 안 되나요?”

“......”

“이 앨범...”

김경호가 앨범을 집어들었다. 김정엽이 따로 정리한 아들 편이었다.

“처음으로 봤어요. 여기 쓰인 메모들... 아버지의 진심인가요?”

“......”

“그냥 분위기를 위해 적은 글이라면... 남들 보여주기 위해 적은 거라면... 저 채 선생님께 치료 받고 다시 미국으로 갈 게요. 여기서 아버지의 부담으로 남기는 싫어요.”

“진심이었다.”

김정엽이 잘라말했다.

“채 선생님...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어요. 굉장하신 분이더군요.”

“......”

“기타 허락하실 건가요?”

“거실에 나가보면 알 거다.”

“거실?”

김경호가 서재 문을 밀었다. 그리고, 한 발만 나온 걸음이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 거실이었다. 기타가 있었다. 하나가 아니라 무려 여덟 개였다. 그동안 김정엽이 빼앗아가 때려 부순 기타와 일치하는 숫자였다. 때려 부셨다던 그 기타들 전부였다. 그러니까 김정엽은 기타를 부수지 않고 어딘가 두었던 모양이었다.

“아버지!”

김경호가 소리쳤다. 놀라움과 감격이 뒤섞인 소리였다.

“네가 아끼는 물건이잖냐? 차마 부술 수 없어 고모집에 맡겨두었었다.”

“아버지...”

“아무 거라도 해보거라. 저기 채 선생 말마따나 우리 둘 다 죽는 것 보다야 각자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게 낫겠지.”

“아버지.”

“아아, 내 품에 안겨서 펑펑 우는 건 질색이다. 너는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신파 싫어하거든. 지금은 다 사그라졌지만 나도 어릴 때는 활화산의 열정이 있었으니까.”

“아버지...”

“기념으로 함께 기타 한 곡 어떠냐? 이사도라... 그건 대략 칠 수 있을 거 같다.”

“아버지.”

울먹이는 김경호 품에 기타가 안겨졌다. 김정엽은 웃고 있다. 이제 보니 그는 천재가 아니라 거인이었다. 김경호는 그걸 이제야 알았다.

“자자, 거기 바깥의 용 부장, 2층의 채 선생, 기왕 이렇게 된 거 다들 모여서 부자 연주회나 감상해주시오. 뭐 이 아버지 때문에 불협화음이 나올 건 뻔하지만.”

“절대로요. 제가 아버지 연주까지 다 살려드릴 거에요.”

김경호가 기타를 들고 아버지 옆으로 붙어 앉았다.

딩다라라랑!

도로로롱!

부자가 나란히 기타줄을 골랐다. 김경호에게는 더 이상 우울증이 엿보이지 않았다. 기타 하나로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연주 또한 기가 막혔다. 아버지의 헐렁함을 리드하며 완급조절을 해나갔다. 아버지가 버벅거리면 노련한 선율로 빈 곳을 메웠다. 아버지보다 잘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것. 그 기타로 난생 처음, 아버지에게 도움이 된 것이다.

디딩!

연주가 끝났다. 윤도와 용천규가 박수를 쳤다. 가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윤도가 일어섰다. 이제는 윤도가 연주를 할 차례였다. 아버지와 아들의 질병... 심허와 간허...

‘역시...’

김경호의 진맥은 놀랍도록 변해있었다. 심허는 여전하되 빈 곳이 꽤 채워진 것이다. 우울증의 현상을 보여주는 뇌 쪽 경락도 그랬다. 중증 우울증이 되면 뇌 변화가 일어난다.

많은 경우, 왼쪽 전방 영역의 기능이 저하되면서 도파민 등의 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약해져 있다. 마치 코카인 약물중독처럼 대뇌피질을 비롯한 뇌 구조에서 비정상적인 대사를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순간의 뇌 느낌은 그리 최악이 아니었다.

마음 心.

멋대로 흐트러졌던 네 획의 글자가 가지런히 모인 것이다.

이제는 간경까지 손을 볼 생각이었다. 간은 목(木)이오 심은 화(火)이니 근본치료에 속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누웠다.

처음에는 달라보이던 부자. 기타를 치면서 누운 자세도 같아졌다. 퍼펙트한 부전자전이다. 유전자는 도둑질도 못한다는 말의 증명이 거기 있었다.

느긋하게 사관혈부터 열었다. 이제 시간을 다툴 일도 없는 것. 아버지와 아들에게 나란한 방식을 동원하는 윤도였다.

양손의 합곡과 양발의 태충혈이 활짝 열렸다. 사막에도 파도가 있다고 아버지부터 자침을 하게 되었다. 병을 다스리는 방법은 물 다스리는 법과 다르지 않았다. 물이란 적정량으로 흘러야한다. 너무 많으면 넘치고 적으면 마른다. 나아가 고이면 썩기 마련이다.

신수혈과 경문혈을 시작으로 물길을 정비해 나갔다. 마른 혈자리에 물을 채우고 넘치는 혈자리에는 물을 비웠다. 간수혈을 지나 기문혈과 합세했다. 그 마지막은 심수혈과 거궐혈이었다. 물길을 잡았으니 이제는 병소에 다이렉트였다.

심장!

그곳을 장침이 겨누었다. 용천규는 장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침은 너무나 진지하게, 마치 그 부위에 있던 것처럼 심장 안으로 들어갔다. 오장직자침이었다.

톡!

윤도이 땀이 지검장의 가슴팍에 떨어졌다. 그 사이에 침은 좁아진 관상동맥 안을 정확히 찔렀다. 옹기종기 군락을 이룬 혈괴들이었다. 서두르지 않고 작은 느낌부터 잡았다.

셋, 넷, 다섯...

침이 연속 들어가자 관상동맥의 혈류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혈류 속도가 붙자 장침으로 찔러주기만 해도 혈괴들이 씻겨나갔다. 혈류가 제대로 회복된 것이다. 쫄쫄에서, 콸콸이었다.

“하아!”

지검장이 숨을 크게 쉬었다.

“불편하세요?”

윤도가 물었다.

“아니오. 너무 편해서...”

아들을 돌아보며 웃는 김정엽. 아들도 똑 같은 미소로 화답했다.

“그대로 조금만 계십시오.”

시계를 보며 아들에게 향했다.

아들의 침은 조금 더 많았다. 간허에 위치까지 바로 잡아야하는 시침이기 때문이었다. 우울증 시침보다 앞서 행했다. 간에 앞서 신장도 잡았다. 윤도의 침은 오늘도 근본을 가렸다. 오장을 자극해 위치를 잡았다. 처진 간이 위로 올라섰다. 그러자 위장은 저절로 바르게 되었다.

“배 어때요?”

윤도가 김경호에게 물었다.

“시원해요. 늘 뭉긋하게 아린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언제 시험봐도 아프지 않을 겁니다.”

빠이빠이!

윤도가 위장 통증과의 작별선고를 내려주었다.

우울증의 뒤틀린 물길은 나쁜 반응을 보인 혈자리 순서로 정비했다. 이제는 백회가 먼저였다. 기준점을 먼저 잡은 것이다. 인당에 이어 독맥으로, 심포경락으로, 장침이 달렸다. 심포경은 제 4늑간이다. 궐음수와 천지혈에 장침을 넣었다. 내관에도 한 방을 찔렀다.

심경의 심수혈은 제 5늑간이다. 심수와 극천에 침을 넣고 신문혈에서 심경의 혈문을 활짝 열었다. 심수의 한 가운데인 신도혈에도 장침 하나를 추가했다.

찬란한 시침의 마무리는 대추혈이었다. 대추혈은 뇌중후군을 치료한다. 심포경의 내관 역시 마음을 안정 시키는 명혈이었다. 다른 대안도 있지만 환자의 상태에 따른 자침이었다.

전체 조율은 백회에서 시행했다.

같은 심허라고 해도 부자의 침은 다르게 들어갔다. 숲을 보면 답이 나온다. 숲은 늘 푸르지만 숲의 나무는 전부 다르다. 강을 보면 답이 나온다. 강은 모두 바다로 흘러가지만 그 줄기는 모두 다르다. 그게 한의학이었다. 그게 혈자리였다.

김경호의 시침까지 끝나자 두 부자가 서로를 돌아보았다.

“우리 아들도 알고 보니 많이 늙었구나.”

아버지가 웃었다.

“아버지는요? 할아버지 삘 나는 거 모르시죠? 주름제거 성형 좀 하세요.”

“하핫, 이 참에 한 번 해볼까?”

하하핫!

하하하!

부자가 소리내어 웃었다. 그 웃음소리까지도 영락없는 붕어빵이었다. 부자의 닮은 꼴 붕어빵... 오랫동안 잊었다가 다시 보게 된 닮은 모습... 어쩌면 이 붕어빵이야 말로 오늘의 최고 특효혈이었을 것만 같았다.

“채 선생.”

용천규가 손바닥을 들어보였다. 윤도는 있는 힘껏 그 손바닥을 후려치며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짝!

부자가 새로운 생을 살게 되었다는 신호음이었다.

초대박 신약계약.

초대박 신약계약.

“채 선생님!”

낭보를 가져온 사람은 강외제약 대표 류수완이었다. 그의 회사를 찾아간 윤도를 류수완은 정문까지 나와 반겨주었다.

“여기까지 나와 계세요?”

윤도가 차에서 내렸다. 세상이 어두워진 깊은 밤. 이런 시간까지 퇴근하지 않은 것도 놀라운데 윤도를 맞이하는 것이다. 그것도 이사진 셋을 거느린 채.

“나와야죠. 암요.”

류수완은 들 떠 있었다. 그 이유가 그의 입을 박차고 나왔다.

“선생님이 개발한 알레르기 비염과 아토피 약이 세계시장을 뚫었습니다!”

류수완의 목소리는 회사 마당을 쩌렁쩌렁 울렸다.

“사장님...”

“독일에 간 신약 개발팀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독일 최고 명문제약사인 바이마크사에서 우리 신약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것도 최고의 로얄티 조건으로 말입니다.”

“사장님...”

“들어가시죠. 이거 진짜 좋은 밤입니다. 아주 미치도록 말이에요.”

류수완이 윤도 등을 밀었다.

사장실에 들어서자 계약서 사본이 나왔다.

“보세요. 방금 팩스로 들어온 따끈따끈한 MOU입니다. 이게 말이 MOU지 계약과 동시에 계약금까지 입금되었습니다. 보세요.”

이번에는 통장이 보여졌다. 입금액은 무려 480만 유로에 달했다.

480만 유로.

“사장님...”

“아까부터 뭐가 사장님입니까? 다른 말 좀 해보세요.”

류수완은 여전히 들 떠 있었다. 그 소파 뒤에 도열한 이사들도 감격을 숨기지 못했다.

“이거 다 채 선생님 돈이란 말입니다. 우리 돈으로 약 60억이에요.”

“......”

“안 되겠네. 이사님들, 누가 우리 채 선생님 물 좀 한 잔 드리세요. 아무래도 정신줄이 얼어붙으신 거 같습니다.”

“아, 아닙니다. 저 괜찮습니다.”

“대박입니다. 대박... 미국에서도 유럽에서도 선생님이 개발한 신약을 닥치고 인정이라고요. 그렇죠? 서 이사님?”

류수완이 이사를 바라보았다.

“맞습니다. 사실 독일의 바이마크가 운이 좋았습니다. 그 계약 끝나기 무섭게 미국의 글로벌 제약회사에서도 접촉이 왔거든요. 그 놈들 250만불로 후려치려는 걸 독일에서 480만 유로 콜이 왔다고 하니까 급 600만불로 돌아서더군요. 목에 힘주다 헛물 켜는 걸 보니 속이 다 후련했습니다.”

“사장님...”

“아, 우리 채 선생님은 여전히 사장님이네. 이 계약금 다 선생님 거라고요. 제가 첫 계약금은 무조건 선생님 찔러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돈이 문제가 아니라 바이마크...”

윤도가 겨우 숨을 골랐다.

바이마크.

기술력이 깐깐한 글로벌 제약회사다. 미국의 글로벌 제약사에 비해 자본금은 조금 작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로열티를 챙기는 지구 최강의 제약사였다. 그렇기에 웬만한 신약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21세기 들어 그들이 외부에서 사들인 신약은 고작 3개에 불과할 정도였다. 그들 안에 세계 최강의 신약연구소가 있는 까닭이었다.

그런 그들이 윤도의 신약 딜을 받아들였다. 거기다 신약을 들이민 류수완의 배짱도 놀랍지만 완벽한 제품만을 선호하는 바이마크의 선택이라니 놀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저희도 놀랐습니다. 바이마크사 개발진들이 일제히 ‘Na, wunderbar’를 외쳤답니다. 원더풀이라는 뜻이죠!”

이사가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게 제가 뭐랬습니까? 채 선생님 신약은 된다고 했지 않습니까? 저도 신약 몇 개 개발해봤지만 바이마크에서 원더풀 소리 듣기는 처음입니다. 덕분에 우리 회사 이미지도 상한가 치게 생겼습니다.”

류수완의 목소리를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아마 내일 주식시장 문 열면 바로 상한가 들어갈 것 같습니다. 적어도 삼일은 불기둥 상한가가 유지될 겁니다.”

이사들도 싱글벙글이었다.

“하지만 이게 옵션이 하나 있습니다. 아니, 저쪽의 요청이라고나 할까요?”

류수완이 윤도 쪽으로 다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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