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4화 (144/265)

“......”

“아까 그런 말씀하셨죠? 젊은 놈이 무슨 우울증이냐고... 죄송한데 지검장님은 우울증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그, 그야...”

“우울증을 이르러 마음의 감기라고 부릅니다. 초기일 때는 그렇다고 쳐도 중증으로 발전하면 이제 암이 된 겁니다. 이렇게 암 수준이 되면 젊은 놈이라고, 의지가 강하다고 해서 저절로 해결되는 경우가 아주 드뭅니다. 현대의학적으로 설명하자면 당뇨병처럼 호르몬 분비 등의 생화학적 문제로 감정조절이 불가능해질 수 있거든요. 세로토닌, 도파닌, 노르에피네프린 등이 그것인데 세로토닌의 농도가 감소하면 불안, 예민, 적개심, 우울, 자살충동까지 좌라락 유발합니다. 지금 아드님 앞에 놓인 상황입니다.”

“......”

“한의학적 견해를 얹어 설명하자면 우울증은 심리적인 요인으로써 온몸의 경락과 기혈이 엉망인 상황입니다. 위에 말한 호르몬의 정상화를 위해 뇌기능을 치료하고 생기를 보강해 울체를 풀어야합니다. 우울은 음병(陰病)이니 양기가 필요한 곳에 집중 보충을 해야겠죠.”

“.....”

“우울증은 원인이 더 중요한 병입니다. 결과만 놓고 치료에 들어가면 완전한 치료가 어렵습니다. 아드님의 완전한 회복을 원한다면 도와주십시오. 제가 볼 때 이대로 두시면 올 해를 넘기기도 어려울 수 있습니다.”

“......”

“지검장님.”

“후우... 기타라...”

“환자의 치료를 위해 그 사연도 좀 들었으면 합니다만...”

“기타...”

“......”

“아줌마, 물 좀 주세요.”

지검장이 가정부를 향해 말했다. 그녀가 물을 가져오자 단숨에 비우고 숨을 골랐다.

“사필귀정이라더니 일이 이렇게 되나?”

“지검장님, 채 선생은 믿을만합니다. 제가 보증을 하죠. 저는 자리를 비워드릴 테니 채 선생 요청을 들어주십시오.”

당부를 남긴 용천규가 거실을 나갔다.

“하긴 말하지 않을 수도 없구려. 그 사연이 나와야 아들 치료가 된다니...”

주저하던 지검장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지검장의 시선이 먼 과거로 달려갔다. 그가 중학교 때였다. 공부를 잘했다. 엄격한 아버지지만 큰 어려움 없이 살았다. 그러다 이웃에 고등학생 형이 이사를 왔다. 기타를 기가 막히게 잘 쳤다. 어린 마음에 그게 너무 멋졌다.

담배를 꼬나물고 기타를 치는 그 형의 모습. 그럴 때마다 넋을 놓고 바라보는 여학생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드는 김정엽에게는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었다. 단발머리 그녀는 바라만 봐도 가슴이 뛰었다. 그녀의 눈길을 끌기 위해 기타를 배웠다. 이웃집 형처럼 이따금 담배도 꼬나물었다. 어머니가 야단을 쳤지만 아버지 없을 때 주로 연습을 했다.

그러다 걸리고 말았다. 사업차 일본에 간다던 아버지가 그날로 돌아온 날이었다. 바람이 심해 여객선이 뜨지 못했지만 김정엽이 알 리 없었다.

그 여학생을 꼬드겨 방에 모셔놓고, 담배를 꼬나물었다. 개폼을 다 잡으며 기타를 쳤다. 몰입하기 시작했다. 기타 음은 더 높아졌고 담배 연기는 방안을 가득 채웠다.

그때!

아버지가 방문을 열었다. 하필 어머니마저 시장에 간 시간이라 완충이 없었다.

“아버지!”

놀란 김정엽이 담배를, 기타를 떨어뜨렸다.

퉁!

기타가 떨어지며 깊은 울림소리를 냈다. 동시에 아버지도, 그의 눈앞에서 넘어가고 있었다.

쿵!

소리는 좀 달랐다. 떨어진 기타는 공교롭게도 두 쪽으로 조각나고 말았다. 그게 암시였을까? 가슴을 뜯으며 쓰러진 아버지도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심근경색이었지만 당시 의술로는 역부족이었다.

기타!

김정엽의 인생에서 영원한 트라우마가 되었다. 이후로 김정엽을 기타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심지어는 기타를 치는 가수들조차 싫어했다.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따라서 아들 김경호에게도 늘 주의를 주었다.

‘기타는 절대 안 돼.’

그런데.

아들이 기타를 들고 돌아왔다. 미국에서 돌아온 김경호를 처음 만난 날, 김정엽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그 짐 속의 기타를 꺼내 내다버린 것이었다. 어쩌면 아들의 우울증이 시작된 날이었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은 셈이었다. 죄가 될 수 없었다. 유전자라는 것, 감출래야 감출 수 없는 거였다.

“부전자전이군요.”

사연을 들은 윤도가 잔잔하게 말했다.

“그렇군요.”

“제 말은 세 분의 한의학적 견해를 말하는 겁니다.”

“기타가 아니고요?”

“한의학적입니다. 아드님을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할아버지는 심허로 심근경색을 맞으셨고, 아드님 역시 심장의 심허로 우울증이 왔고, 아버지도 심허로 심장 안에 심각한 질환을 키우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아드님의 우울증은 다른 경우보다 더 심각합니다. 심허로 인해 심부전이라도 오면 다른 환자보다 사망률이 매우 높아질 수 있으니까요.”

“방금 아버지라면 나?”

“그렇습니다.”

윤도의 대답에는 주저가 없었다.

“채 선생!”

“조금 전 쓰러지셨을 때 진맥으로 알았습니다. 치료가 시급한 건 아드님 뿐만 아니라 지검장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심혈관에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혹시 왼팔이 아프거나 턱선을 따라 아찔한 통증이 오지 않습니까?”

“그걸 어떻게?”

“역시...”

“그렇잖아도 며칠 전에 벼르고 벼르다가 지인인 심장전문의를 찾아 갔다오. 내일 오전에 결과를 보기로 했는데...”

“지금 전화해 보세요. 지인 닥터라면 아마 결과를 미리 알려줄 수 있을 겁니다.”

“......”

“기왕 저랑 시작한 일 아닙니까? 끝을 보셔야죠.”

“끝...”

지검장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아, 양 박사. 나 김 지검장이야. 응... 퇴근했나? 그 검사결과 말이야...”

통화하던 김정엽의 머리카락이 삐죽 솟구치는 게 보였다. 윤도의 말이 맞은 것이다.

“내일 당장이라도 수술 날짜 잡지 않으면 자다가 황천 갈 수 있다고? 알았네. 내, 내일 들림세.”

지검장이 통화를 끝냈다. 핸드폰을 수습하는 손이 속절없이 떨었다.

“관상동맥 쪽이죠? 원인은 심실의 빈맥이고요.”

“......”

“아드님에게는 말하지 않았죠? 지검장님 몸이 좋지 않다는 사실.”

“뭐 그만 일로...”

“내일 병원에서 수술 날짜 잡을 필요는 없습니다.”

“뭐라? 내 친구 말로는 위중하다고 하던데?”

“제가 지금 치료해드릴 테니까요.”

“채 선생...”

“대신 기타를 사오세요. 아드님과 지검장님, 나란히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

“아드님의 우울증 말입니다. 심허가 원인이지만 그전에 간허가 먼저 왔습니다. 아마 중학생 때 정도였을 거 같은데...”

“간허라고요?”

“학생 때 배가 아픈 적이 있지 않았나요?”

“많았어요. 특히 시험 때를 중심으로...”

“간허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심허는 버틸만했지만 간허가 먼저 왔죠. 간이 제 자리보다 낮게 쳐지면서 생기는 현상들입니다.”

“그럼 그게 시험에 대한 부담으로 생긴 신경성이 아니라?”

“간허입니다. 지금도 아마 간간히 위장이 안 좋을 겁니다. 물론 이제는 우울증에 묻혀 고려의 대상도 아니겠지만요.”

“맙소사, 병원에서도 한결 같이 시험에 대한 부담에서 오는 신경성이라고 했는데...”

“심허와 간허를 다 다스리면 아드님은 초등학교 때의 멋진 모습으로 돌아갈 겁니다. 다만 지검장님의 바람대로 판검사나 의사가 되는 게 아니라 기타를 치겠지만요.”

“간허라니... 그게 다 간 때문이었다니...”

김정엽의 시선에 회한이 스쳐갔다.

“어떻습니까? 둘 다 죽는 것 보다 둘 다 사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드님이 비록 기타를 치는 인생을 산다고 해도 말입니다.”

“채 선생...”

“한의사로서 지시합니다. 기타를 사오시고 자침을 받으세요. 그냥 두면 둘 다 위태로울 환자이니 약간의 강제성을 발동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기왕 닥치는 일이니 기꺼운 마음으로 치료를 받으시면 더 좋겠지요.”

윤도의 말은 일방 통보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검장은 그 말에 이끌려 일어서고 있었다. 상황을 장악한 윤도. 그의 말은 부드럽지만 거부하기 어려운 힘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전에 지인 닥터께 전화하셔서 말입니다...”

부탁이 하나 더 이어졌다.

지검장은 끄덕 고갯짓으로 요청을 수락했다.

중증 우울증을 깨라-4

자박!

윤도가 걸음을 옮겼다. 이제 다시 2층이었다.

“풋!”

윤도 말을 들은 김경호가 쓴 웃음을 토했다. 한의사로서 윤도의 기분은 그만큼 더 좋아졌다. 냉소가 나와도 무관심보다는 나았다.

“믿기지 않나요?”

윤도가 물었다.

“당연하죠. 아버지가 기타를 가져온다고 해도 쑈에요. 그 분의 관심은 앞날에 장애가 될 내 우울증이지 기타가 아니니까요.”

“아버지에게 맺힌 게 많네요?”

“아버지 자체가 내게는 늘 벽이었습니다. 김정엽의 아들, 김 검사의 아들, 김 검사장의 아들, 천재의 아들...”

“그런 아버지의 인생은 뭐든 꽃길이었을까요?”

윤도의 시선이 책상의 알약병으로 옮겨갔다. 산도스에스시탈로프람정, 알프람정... 모두 우울증에 쓰는 약들이었다.

“고시 4관왕이십니다. 가는 곳마다 주인공이었겠지요. 검찰에서도 요직만 돌아다니셨고...”

“또요? 아버지에 대해 또 뭘 알죠?”

“완벽주의자!”

“건강도 그럴까요?”

“예?”

“할아버지가 어떻게 죽은 줄 아세요?”

“그야...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다고...”

“맞아요. 아버지와 경호 씨, 그리고 할아버지까지 합쳐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게 아마 심장의 심허일 겁니다. 가계가 다 심장 기력이 튼실하지 않아요.”

“할아버지는 몰라도 우리 아버지는 아닙니다.”

김경호가 각을 세웠다.

“그렇지 않아요.”

윤도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지검장의 심장검사 결과표였다.

“......!”

진단결과를 본 김경호가 휘청 흔들렸다.

“이거 진짜입니까?”

“그럼요. 어쩌면 당신 아버지... 그동안 돌연사하지 않은 게 행운일 정도로 심장이 좋지 않습니다.”

“그, 그럴 리가...”

“그게 부모예요. 자식보다 더 아파도 자식 앞에서 내색하지 않지요. 게다가 이건 비밀인데... 당신 아버지도 기타를 좋아해요.”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혹시 아버지의 앨범이나 일기장 같은 게 있으면 가서 뒤져보세요. 좋지 않은 짓이지만 아버지에 대해 오해하는 것보다는 낫지요. 아버지는 지금 잠깐 나가셨거든요.”

“......?”

“어서요.”

윤도가 다그치자 김경호가 주춤 일어섰다. 그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아버지의 서재로 들어갔다. 거기 낡은 앨범이 있었다. 지금은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접착식이었다. 첫 번째 것은 어머니와의 결혼식 이후의 사진이었다. 다음 앨범은 김경호만의 단독 앨범이었다. 아들의 성장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

그걸 보는 순간, 김경호가 한 번 더 출렁거렸다.

앨범...

그건 정말이지 정성을 다해 정리가 되어 있었다. 사진마다 김정엽의 친필 메모도 빠지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경호의 아홉 번째 생일.>

<내 자랑스러운 경호의 첫 번째 100점 시험지.>

<우리 경호가 자주 다니던 학교 앞 문방구.>

<우리 경호가 아빠 엄마를 위해 만든 첫 번째 요리 라면.>

<우리 경호가...>

<우리 경호가...<내 인생의 가장 큰 보물인...>

김경호는 앨범에 홀린 듯 넘기는 걸 멈추지 못했다. 약해진 몸은 척추부터 와들거렸다. 날짜순으로 정리된 앨범은 한 사람의 역사를 보는 듯 했다. 미국에서 보내온 편지들도 봉투 째 보관되어 있었다. 그 봉투 끝은 언제나 단정하게 가위로 잘렸다. 김경호의 것이라면 편지조차도 정성을 다 했음을 알 수 있는 증거였다.

그리고 그 맨 마지막...

진단서가 보였다.

김경호의 우울증 최초 진단서였다. 진단서에는 눈물이 떨어져 아롱져 있었다. 많았다. 폭풍 눈물을 흘린 김정엽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였다. 60년대, 70년대를 살아온 아버지였다. 그때의 남자들 정서에 충실했다. 속 마음을 숨긴 채 아들을 다그친 것이다.

‘아버지...’

김경호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김경호는 아버지의 행동이 위선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위선이라면, 이렇게 마음을 담아 메모할 수 없을 일이었다.

젖은 눈으로 다른 앨범을 넘겼다. 이제는 아버지의 미혼 시절이었다. 기타가 나오는 사진은 없었다. 그러다 마지막 장을 넘길 때였다. 접착식 페이지가 팔랑거리며 사진이 떨어졌다. 원래는 두 장만 보이던 면. 그런데 떨어진 사진은 여섯 장이었다. 큰 것 두 장 뒤에 작은 사진들을 숨겨 붙인 면이었다.

“......!”

여섯 사진을 집어든 김경호가 와들와들 떨었다. 한 장, 뒤집어진 사진 뒤에 쓰인 메모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이제 영원히 기타를 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 김정엽의 필체였다.

사진을 앞으로 돌렸다. 아버지의 얼굴이 나왔다. 기타를 치며 찍은 사진은 무려 네 장이었다. 장면과 공간이 달랐다. 두 장은 중학생 아버지가 ‘개폼’을 잡은 것이고 하나는 단발의 여자친구, 또 하나는 동네 형과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아버지 폼은 기타에 익숙해 보였다.

아버지의 비밀...

그 비밀의 씨줄을 잡게 되는 김경호였다.

그러니까 윤도의 말이 맞았다. 메모로 미루어보아 할아버지는 아버지 때문에 죽었다. 기타 때문에 죽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기타를 싫어하게 되었다. 그게 기타만 보면 정색하는 이유가 되었다.

‘아버지...’

김경호가 무너졌다. 단 한 번도 기타에 대해 말하지 않았던 아버지. 그 속에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사연이 깃들었던 것이다.

와당 쿵탕!

김경호의 팔에 걸린 앨범과 책무더기가 우르르 무너졌다. 서둘러 책을 정리하려는 순간, 서재 문에 기척이 느껴졌다. 김경호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기척의 주인공은 아버지였다.

“......”

김경호는 본능적으로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 움츠렸다. 그들 부자의 관계 현주소였다.

저벅!

아버지가 다가와 사진을 집어들었다. 기타 치는 그 사진이었다. 순간 김경호의 세상이 슬로우비디오처럼 늦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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