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한의사들은 핏대부터 올렸다. 면허부터 운운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노윤병을 쓰레기 취급했다. 그때마다 노윤병은, 신기의 침술을 증명하며 그들의 콧대를 뭉개주었다. 때로는 고양이를 썼고, 또 때로는 자신을 직접 자침해서라도 그랬다.
그런데 이 한의사, 겸허하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응하지 못한 고양이를 깨우고, 자신의 오랜 지병까지 단숨에 해결한 신묘한 능력자. 그런 그가...
“선생...”
“농담 아닙니다. 만약 거부하면 치료비 많이 청구할 겁니다. 미안하지만 선생님, 돈 없으시죠?”
“......”
“아직 술이 다 깨지 않았을 테니 옆 침구실을 비워드리겠습니다. 거기서 한 잠 자고 나면 제 진료도 끝날 겁니다. 그때 지도를 부탁드립니다.”
“......”
“김 샘, 이 분 3호실로 모셔요.”
윤도가 승주를 불렀다. 이미 압도된 노윤병은 고양이를 안은 채 승주에게 이끌려나갔다.
야옹!
주인 대신 고양이가 윤도를 돌아보며 울었다.
오늘의 라스트는 내년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는 유명한 야구선수 나황모였다. 윤도도 그의 팬이다. 최근 기사에도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신분조회를 요청해 왔다는 기사가 났을 정도였다. 그는 올해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무려 14승 9패의 호성적을 올린 것이다. 그는 매니저와 함께 원장실로 들어왔다.
“명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매니저가 나서 분위기를 잡았다. 명함이 건너왔다. 매니지먼트회사 명함이었다.
“제가 영광이죠. 저도 나황모 선수 좋아하거든요.”
윤도도 호감을 밝혔다.
“실은 우리 나 선수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여러 구단에서 오퍼가 들어와 있어 메이저로 가는 건 기정사실이고 문제는 계약조건인데...”
매니저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나 선수가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라면?”
“다름이 아니고 최근에 몸이 안 좋아서 건강식품과 한약재를 먹었는데 이게 아무래도 메이저 구단에서 시비거리가 될 수도 있어서...”
“어떤 시비 말이죠?”
“도핑 테스트 말입니다. 메이저 쪽은 우리보다 약물에 대한 규제가 엄격하거든요.”
“건강식품과 한약재라면 문제가 있겠습니까? 한약이야 물론 정식 한의원에서 받으셨을 테고...”
“그렇기는 한데 만에 하나... 그래서 선생님이 해독침도 잘 놓으신다기에...”
“혹시 모를 일이니 몸 안의 독소를 쭉 빼달라는 말씀이군요.”
“맞습니다. 역시 한 번에 알아들으시는군요. 괜한 시비에 휘말리면 국익 손해 아닙니까? 나 선수 정도면 수백, 수천만 불 외화를 벌어들일 판에.”
매니저가 반색을 했다. 그 반색이 윤도에게 거슬렸다. 왠지 느끼하고 비즈니스 냄새가 배인 행동이었다.
도핑 테스트...
한 선수의 인생을 끝장낼 수도 있는 사안이다. 윤도는 유명 수영선수의 일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한의사는 운동선수를 치료할 때는 도핑금지약품 목록까지 고려해야했다. 그런 약을 먹었다면 굳이 걱정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일단 진맥부터 좀 볼까요?”
나황모를 진료대에 눕혔다. 워낙 덩치가 좋아 진료대가 좁을 지경이었다. 맥을 잡았다.
“......!”
단 한 번의 맥으로 윤도의 정신이 벌떡 일어났다. 나황모의 진맥은 활성이 넘쳤다. 이건 일반적인 맥이 아니었다. 숨을 고르고 한 번 더 체크했다. 심장의 기혈이 달랐다. 윤도가 손목을 놓았다.
“죄송하지만 나 선수에게는 해줄 게 없습니다.”
윤도의 선언에는 주저가 없었다.
“선생님!”
매니저가 다가섰다.
“침을 놓거나 탕제를 지어야할 텐데 제 능력으로는 감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다른 곳으로 가보시기 바랍니다.”
텅!
거기서 매니저가 가방을 열었다. 그는 그 안에 들었던 5만원권 뭉치를 다 꺼내놓았다. 5만원권 20뭉치였다.
“다른 건 필요 없습니다. 그저 나 선수 몸 안의 독소만 시원하게 빼주십시오.”
매니저가 1억을 밀어놓았다.
“저는 능력 없습니다.”
윤도가 재차 거절했다.
“이거 진료거부하는 겁니까?”
“거부가 아니라 능력부족이라는 겁니다. 큰 병원에 가보세요.”
“선생님!”
“김 샘, 이 분들 나가십니다. 모셔주세요.”
윤도가 인터폰을 당겼다. 곧 이어 승주가 들어섰다. 놀란 매니저가 황급히 현금을 쓸어 담았다. 그런 다음 빈정을 울리며 원장실을 나갔다.
“아, 진짜... 누가 여기가 명의라고 소개한 거야? 개뿔도 아니구만.”
“왜 저런데요?”
승주가 물었다.
“별 거 아니야. 가서 업무정리하고 퇴근해.”
윤도가 승주를 내보냈다. 매니저는 주차장에서 어딘가로 전화를 하며 핏대를 올리고 있었다.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분명 금지약물을 복용했다. 맥으로 보아 그 양도 많았다.
사연은 알 바 없다. 하지만 금지된 약물을 쓴 건 선수의 도덕성과도 연관이 되는 문제였다. 그렇기에 메이저구단의 피지컬 테스트를 앞두고 제 발에 저려 윤도를 찾아온 것이다.
물론 윤도가 축빈혈에 장침 한 방을 넣어 해독을 시켜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황모의 몸 상태로 보아 치료약으로 끼어들어간 게 아니었다. 그런 경우까지 구제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일과 마감.
윤도는 진료 화면을 마감하고 컴퓨터를 셧다운 시켰다. 옆 침구실로 가니 노윤병이 보이지 않았다.
“......?”
가버린 건가?
무심결에 창을 내다보다보았다. 윤도의 시선은 거기서 멈췄다.
야옹!
고양이였다.
고양이의 바다였다.
어디서 몰려왔을까? 뒤뜰은 온통 고양이로 붐비고 있었다. 담장 위에도, 나무 위에도,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 곳은 없었다.
“원장님.”
진경태가 침구실로 들어왔다. 고양이 때문이었다. 노숙자 때문이었다.
“저 친구 말입니다.”
“그냥 두세요.”
속내를 아는 윤도가 먼저 말했다. 그 길로 복도로 나와 뒤뜰에 섰다.
야옹!
노윤병이 처음에 데려온 고양이가 윤도를 바라보았다. 무리를 헤치고 다가오더니 두 발을 세우고 얌전히 앉았다. 노윤병은 침을 놓고 있었다. 여전히 고양이였다.
야옹!
“쉬잇!”
윤도가 앞의 고양이에게 주의를 주었다. 노윤병의 침은 고양이의 심장으로 들어갔다. 장침이었고 아주 깊었다. 다른 몇 군데 혈자리에도 침이 들어갔다. 고양이에게 놓는 침은 최소한, 윤도 못지않게 간결하고 정확했다.
야옹.
늘어졌던 고양이가 일어섰다. 꼬리를 세우자 노윤병이 이마를 쓰다듬었다. 고양이는 노윤병 다리에 볼을 비볐다. 노윤병의 손이 또 다른 고양이 등가죽을 잡았다. 고양이는 얌전했다. 다시 장침이 나왔다. 이번에는 간으로 들어갔다. 침을 잡은 손이 섬세하게 움직였다.
‘오장직자침...’
윤도의 등골이 다시 한 번 오싹해지는 순간이었다. 윤도의 짐작이 맞았다. 그는 오장직자침을 할 수 있었다.
야옹.
침을 맞은 고양이 눈에 생기가 돌았다. 그 고양이 역시 노윤병 옆에 얌전했다. 그는 무리 중에서 또 하나의 고양이를 잡아들었다. 이번에는 다리를 절뚝거리는 고양이였다. 그 고양이도 노윤병의 장침을 맞고 다리를 절지 않았다.
“원장님!”
장침을 챙기던 노윤병, 그제야 윤도를 보고 일어섰다.
“계속 하세요.”
“아닙니다. 급한 놈들은 대충 보았습니다.”
“방금 놓은 침...”
간에 침을 맞은 고양이를 보며 윤도가 말을 이었다.
“그 그림 속의 침이죠?”
“......”
“말하고 싶지 않으시면 하지 않아도 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노윤병은 고개를 숙이며 말꼬리를 붙여놓았다.
“흉내나 내는 지경입니다.”
“흉내가 아닙니다.”
“예?”
“제가 보기에는 오장직자침이 맞았습니다.”
“원장님이 그 침을 아십니까?”
노윤병의 시선이 또 한 번 튀었다.
“처음에는 생각만 있었죠. 선생님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말은?”
“선생님이 떨구고 간 침갑 말입니다. 거기 비기가 적혀있었지 않습니까?”
“그럼 그 그림만 보고?”
“그럴 리가요? 단순히 뭔가 비기가 있구나 하는 정도만 알았어요. 그게 인연이었는지 북에서 차상광과 차평재 부자를 만났고, 거기서 그 침술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노윤병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차상광 때문이었다.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니 윤도가 만날 수가 없었다.
“차평재는 병상에서, 차상광은 그 분을 치료하다가 꿈결에 보았습니다.”
“아...”
“바람결을 찌르듯... 그 말을 하시더군요. 어렴풋하던 제 침에 실체를 안겨주는 말씀이었습니다.”
“당신은...”
일어섰던 노윤병이 풀썩 주저앉았다.
“진정한 명침이로군요. 나는 그 분의 곁에서 보고 배워도 아직 익히지 못한 것을...”
노윤병의 눈에는 허망함과 존경심이 번갈아 들락거리고 있었다.
고양이 명의-3
고양이 명의-3
“이제는 익혔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노윤병이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오장직자침을 놓은 고양이를 안아들고서 말을 이었다.
“그저 고양이들에게 흉내만 낼 뿐.”
“사람에게는 안 된단 말씀입니까?”
“예...”
“......!”
윤도의 미간이 살포시 구겨졌다.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었다. 과거의 마의(馬醫)들이 그랬다. 마의는 말의사들이다. 그들 중에는 사람과 말을 공히 치료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조선의 유명한 침술가도 한 때는 마의였다. 하지만 일부는 오직 말만 돌볼 수 있었다. 말과 사람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
“......”
둘은 잠시 동안 침묵했다. 그 사이에 고양이들이 하나 둘 사라졌다. 이제는 단 한 마리의 고양이도 남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윤도가 권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선 채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는 일이었다.
원장실로 돌아와 차를 내주었다. 대화는 다시 이어졌다.
“차평재 선생을 치료하셨다고요?”
“예.”
“소문으로는 산송장이라고 들었는데...”
“이제 다시 침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하긴 원장님 실력이라면...”
“한국에서는 무얼하고 있나요?”
윤도가 조심스레 물었다. 척 보면 나오는 노숙자 각. 그렇다고 너 노숙자냐 하고 돌직구를 꽂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 인생사라는 게 늘 이렇게 꼬이는 편이라... 큰 마음 먹고 남한으로 왔지만 거지꼴을 면치 못하고 있지요.”
“큰 마음의 그림은 한의사였죠?”
“예...”
“북한에서 한의대를 다 마치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중퇴했습니다.”
“사연을 들어도 될까요?”
“별 거 없습니다. 졸업반 시절, 당 간부의 아들이 신입생으로 들어왔는데 하도 건방을 떨기에 혼구멍을 좀 내주었지요. 그게 문제가 되어 처벌을 받았습니다. 교수들도 한 사람만 빼고 그 놈 편이라 더 다니기 힘들다고 생각해 그만 두고 말았습니다.”
“그 한 명이 차상광이었죠?”
“맞습니다.”
“그 때부터 그 분 밑에서 침술을 배웠고요?”
“침을 갈고 예진을 하면서 보조를 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제 은인인데 그때는 모든 게 피해의식 투성이라 그 분 역시 나를 진짜 제자로 여기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침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거든요.”
“오장직자침 말인가요?”
“여러 가지가 그렇죠.”
“......”
“침술을 옆에서 보면 애가 타는데 스승은 늘 잔심부름과 체한 거, 삔 거 등의 소소한 침만 맡겼습니다. 결국 곁눈질로 몰래 배우는 수 밖에 없었는데 스승은 또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어느 날, 친척에게 연락이 왔는데 아픈 노인이 있으니 정말 차상광의 제자라면 와서 침을 좀 놓아달라고 해요. 징표가 가져오라기에 그 분의 침갑을 잠깐 들고 갔었죠. 거기서 사례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오해가 되어 스승에게 내침을 당했습니다. 평소에도 제가 남한 일에 관심이 많다고 꾸짖음이 많던 분이셨거든요.”
“......”
“그 분이 볼 때 저는 아직 그릇이 아닌데 남한의 화려함이나 젯밥에만 관심이 있다고 오해를 하신 거죠. 정작 저는 제 일천한 출신 성분 때문에 성분을 차별하지 않는 남한 사회를 동경한 거고 침술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조급했을 뿐인데 말입니다.”
노윤병의 미소가 쓸쓸하게 변했다. 그 대목이었다. 차평재가 말한... 이런저런 이야기의 퍼즐이 맞아 들어가면서 윤도는 점점 겸허해졌다.
“한국에 와서는요? 공부를 계속하지 않았나요?”
“그게... 막상 한국에 오니 여기서는 면허가 문제가 되더군요. 북에서는 제가 시골을 돌며 침을 놓아도 별 문제가 없었는데 여기서는 무면허 침쟁이가 되는 거예요. 제가 평양에서 졸업반 때 그만 두었는데 여기서는 대입수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남한 사회에 적응하기도 바쁜데다 한의대는 학제도 길고 돈도 많이 들기에 엄두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그게 또 하나의 좌절이 되어 탈북자들과 그 가족들 상대로 침술을 펼치다가 누군가 신고를 하는 통에 떠돌이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서울역 등지에서 노숙자들 질환이나 돌봐주면서 이 신세로...”
“그럼 이 침은요?”
윤도가 나노 침을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