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7화 (137/265)

“그때 제가 안고서라도 안과에 갔어야했는데...”

여자의 한은 여전히 마음 속에 깊은 흉터로 남아있었다.

“생후 4주 즈음에 눈 검사를 하지 않았군요?”

윤도도 상황파악이 되었다. 신생아를 낳으면 4주 즈음에 안검사를 실시한다. 그때 안검사를 했더라면 막을 수 있는 비극이었다. 그랬기에 병원에서 과실을 인정하고 순순히 보상금을 내준 것이다. 반대로 의료진이 할 일을 다했다면, 절대 보상금을 줄 리 없었다. 많은 병원들의 생리가 그랬다.

“아기가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어서 안에서 다 알아서 하는 줄 알았어요.”

여자는 또 한 번 억장이 무너지고 있었다.

신생아중환자실(NICU)...

그곳은 전쟁터와 다르지 않다. 대다수 의료인력이 근무를 꺼리는 곳이다. 윤도가 듣기로도 하루 24시간을 비상대기 상태로 살아야했고 식사조차도 총알처럼 먹어치워야 했다. 한 마디로 격무의 상징이다.

동시에 뭐 하나 잘못되면 온갖 비난을 떠안는 곳. 아기들을 돌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의료진들이지만 ‘사고’가 터지면 허탈감에 사표까지 내는 곳 또한 신생아중환자실이었다.

게다가 신생아들은 밤과 새벽에 이상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고 병세도 악화된다. 이 시간 대에는 주로 당직 레지던트와 간호사가 달랑 야전을 책임지고 있다. 그러다 이상이 생기면 각 과별 닥터를 콜하는 시스템이니 급박한 상황이 닥치면 기습 폭격을 받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신생아중환자실의 숙련인력은 구하기도 어렵다. 지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 즈음에 신생아중환자실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군요?”

윤도가 조심스레 의견을 냈다.

“맞아요. 한 쪽 라인에 있던 아기들이 전부 같은 감염증세를 보이며 심장발작이 일어나 한 보름 정도 병원이 뒤집힌 적이 있었어요.”

‘역시...’

윤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래 때문에 새우등 터진 격이다. 더 응급한 아기들을 살리려고 총력전을 펼치다 보니 덜 응급한 아기에게 소홀했다. 하지만, 실명이다. 세상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단순한 소홀로 생각하기엔 아기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안기고 말았다.

“아기를 좀 눕혀보시겠어요?”

윤도가 진료대를 가리켰다.

아기는 울지 않았다. 달빛처럼 은은하게 웃었다. 초점이 없는 눈동자, 그래서 윤도 마음까지 저릿하게 아파졌다. 윤도가 맥을 잡자 아기가 반대 손으로 윤도 팔을 움켜쥐었다. 얼굴은 여전히 웃는 상이다. 진맥을 멈추고 아기를 안아들었다.

아기 입에서 까르르 까르르 옥 구르는 소리가 났다.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맑은 미소와 목소리. 눈으로 갈 총기와 청명이 미소와 목소리로 간 걸까?

“세경아.”

여자가 다가섰다.

“네 눈을 보게 해주실 한의사 선생님이야. 얌전히 있어. 안 그러면 우리 세경이 엄마, 아빠 얼굴을 영영 볼 수 없어.”

“까르르...”

“엄마 말 알았지? 우리 착한 세경이...”

여자가 아기 가슴을 톡톡 두드렸다. 아기는 이제 얌전해졌다. 엄마와 교감하는 것이다.

운명...

그 무거운 단어가 윤도 머리에 맺혀왔다. 아기도 아는 걸까? 여기서 자기의 운명을 바꿔야한다는 걸? 자칫하면 평생 시각장애인으로 살 운명에 ‘빛’을 들여야 한다는 걸?

진맥...

아기에게는 운명 체크가 될 판이었다.

맥을 따라 아기의 오장육부로 들어갔다. 사지를 거쳐 머리로 올라갔다. 독맥의 기가 들어오고 임맥이 파악되었다. 그리고... 윤도는 마침내 아기의 안구 정보를 알게 되었다.

망막이었다. 그 망막혈관 안에서 가지를 친 작은 정맥 줄기와 모세혈관을 막은 혈괴들이 보였다. 아주 작아 좁쌀 같았다.

미숙아망막증.

처음에는 수정체 후 섬유증식증이라는 병명으로 통했다. 아직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난치병이다. 이 질환은 미숙 신생아들의 망막의 혈관에 주로 발생하는 병으로 특히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았던 미숙 신생아들에게 생길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신생아 중환자실의 고농도 산소치료로 인한 발생 비율보다, 태어난 신생아가 미숙할수록 망막증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다고 미숙아에게서만 생기는 것도 아니다. 태아에게도 생길 수 있고 고농도 산소 호흡치료를 받지 않은 미숙 신생아에게도, 만삭의 산모에서 태어난 신생아에서도 생길 수 있다.

난감한 건 안과 전문의가 아니고는 분간하기가 곤란하다는 점이다. 즉 아기에게 별 다른 증상이나 징후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질환은 다행히 서서히 진행되다가 멈출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근시나 사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계속 진행되면 시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만다. 일단 계속 진행되면 특별한 치료 방법이 없는 까닭이다. 그러다 조기에 발견하게 되면 주변 망막 박리치료법 등을 통해 치료가 되기도 한다. 현대의학의 경우는 그랬다.

아기의 핵심 역시 안구의 혈관이었다.

신생아 망막병증은 혈관 이상 질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상적인 경우 망막 혈관은 태생 4개월 즈음에 시신경 유두 부위에서 시작되어 주변부로 점차 망을 넓혀간다. 그러다 10개월 쯤 되면 형성을 마친다. 망막병증은 이 혈관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장애가 발생해 비정상적으로 혈관이 증식하게 되는 것이다.

혈관...

당연히 엉망이었다.

한 마디로 무질서의 극치였으니 실뭉치를 멋대로 뭉쳐 던져놓은 그림과도 닮아보였다.

혈자리...

특효혈 자리가 보이지만 그것으로도 카오스를 이룬 혈관뭉치를 풀 것 같지는 않았다. 결론이 나왔다.

<장침 불가>

윤도 등골이 서늘하게 변했다. 비정상으로 증식한 혈관이 너무 많았다. 거기에 모세혈관까지 이중으로 겹친 형세이니 하나하나 풀어 물길을 튼다는 것도 어불성설이었다.

“푸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윤도의 신침으로도 안 되는 질환이라니...

“안... 되나요?”

묻는 여자의 얼굴은 이미 어둡게 물들어 있었다.

“......”

“선생님.”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일부러 웃어주었다. 여자가 낙담하면 그 느낌이 아기에게 간다. 그건 치료에 좋지 않았다.

아기를 두고 원장실로 향했다. 문을 안으로 잠갔다. 이제 아기 눈을 살리는 길은 산해경 뿐이었다. 그 또한 장담할 일은 아니었지만 시도할 가치는 있었다. 저 먼 영남에서 쉬지도 않고 달려온 여자를 그냥, 돌아가세요 할 수는 없었다.

신비경을 꺼냈다. 눈에 대한 영약은 몇 가지가 있었다. 윤도의 머리에 든 건 ‘탁’이었다. 중산경으로 들어가 감조산을 비추었다. 황하가 보였다. 마음이 급한 탓인지 노란꽃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 노란 빛이 보이면 다른 꽃이었고, 더러는 누렇게 뜬 나뭇잎이기도 했다.

‘윽!’

잠시 쉬는 사이, 신비경에 진귀한 동물 모습이 들어왔다. 혹을 없애는 동물 ‘나’였다. 나가 있으면 탁도 있다. 윤도가 다시 신비경을 들이댔다. 그제야 탁의 노란꽃이 보였다. 탁이 현실로 나왔다. 윤도는 바로 생체분석을 들이댔다.

[원산] 산해경

[약재수령] 33년

[약성함유등급] 上中품

[중금속함유] 무

[곰팡이독소] 무

[약재사용유무] 가능

[용법용량] 껍질부터 씨가지 잘근잘근 씹어 먹는다. 눈이 어두워지는 것을 고친다.

[약효기대치] 上上

‘오케이!’

윤도가 쾌재를 불렀다. 그걸 들고 약제실로 갔다. 진경태에게 맡겨 진액을 추출토록 부탁했다. 갓난아이에게 맞는 용법이 아니었기에 약침으로 쓸 생각이었다. 아기의 망막 상태로 보아 그게 더 효과적일 것 같았다. 다행히 아기 눈에 어울리는 장침도 있었다.

<나노 장침>

노숙자의 침통 속에 든 장침이 그것이었다. 그 또한 멸균기 안에 집어넣고 잡균을 박멸했다.

“여기 있습니다.”

얼마 후에 진경태가 진액을 가져왔다. 그걸 받아들고 침구실로 향했다. 윤도의 걸음걸이가 비장했다. 어쩐지 손석구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일단 마취혈부터 잡았다. 갓난이였기에 오랜 시침을 견디기 힘들 수 있었다. 아기는 이내 잠잠해졌다.

“침을 놓을 겁니다. 잠시 나가계셔도 됩니다.”

“예.”

승주가 문을 열어주자 여자는 복도로 나갔다. 윤도가 나노 장침을 꺼내들었다.

탱!

장침의 매끈한 몸매에서 아득한 금속음이 들렸다. 새하얄 정도로 빛나는 은빛의 나노 장침은 정말이지 잘 보이지 않을 정로도 가늘었다.

‘시작하자, 채윤도.’

윤도 눈이 혈자리로 향했다.

미숙아와 나노 장침-2

미숙아와 나노 장침-2

톡!

‘탁’의 약물을 묻혔다.

오장직자침법에 더한 나노 장침.

아기의 눈을 위한 최강의 조합이었다. 거기에 준비한 산해경의 영약. 윤도가 결코 낙담하지 않는 요소들이었다.

바람결을 찌르 듯!

세상에서 가장 맑은 호수 같은 아기의 눈으로 나노 침이 들어갔다. 아기라고 거칠 것은 없었다. 침은 오직 환부를 겨냥하는 것. 아기건 노인이건 다를 바 없었다. 침끝은 공막과 맥락막을 지나 망막에 도착했다. 미세한 눈 조직이지만 윤도의 나노 침은 목표를 놓치지 않았다. 거기서 침끝을 돌려 망막의 중심동맥과 정맥을 찔렀다.

치큭!

느낌이 왔다. 혈관의 중심에 약침을 넣고 다음 나노 침을 뽑아들었다. 이번에는 혈관의 끝으로 침이 들어갔다. 왼눈에서 멋대로 꼬인 이상 망막혈관의 시작과 끝에 약침을 넣은 것이다.

오른쪽 눈에도 같은 시침을 넣었다. 네 개의 나노 침을 넣는 것만으로도 땀은 흥건하게 흘렀다. 승주가 내주는 수건으로 땀을 닦고 보조 혈자리를 잡았다. 합곡과 삼음교혈이었다. 여기 가해진 침은 강침(强鍼)이었다. 손석구의 경우처럼 눈 안의 잡티들을 없애려는 조치였다.

“원장님...”

시침이 끝나자 승주가 몸서리를 쳤다.

“왜?”

“제가 다 떨려요. 아이가 꼭 눈을 떠야할 텐데...”

“......”

윤도는 대꾸하지 않았다. 다른 시침이었다면 거의 장담할 수 있을 일이었다. 하지만 아기였다. 게다가 망막혈관이 너무 비정상적으로 증식을 했다. 장침으로 장담할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윤도도 아기에게만 전념했다. 중간에 약침도 갈아주었다. 어린 아기였기에 신주혈의 혈자리에도 침을 찔렀다. 어린 아이들은 신주혈이 지키기 때문이다. 나아가 신장은 눈동자의 기능도 책임지는 까닭이었다. 그때까지도 망막혈관의 변화는 크지 않았다.

‘안 되는 건가?’

처음으로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따르릉!

타이머가 울었다. 침을 뽑았다. 그때까지도 아기 눈의 변화는 별로였다. 눈에 띄이는 건 눈에서 나온 눈물에 탁한 색이 물들었다는 것.

‘후우!’

숨을 고르고 마취침까지 뽑았다. 아기가 꿈틀하더니 또 배시시 웃었다. 아기 눈앞에 손바람을 일으켰다. 눈은 반응하지 않았다. 어린이 환자를 위해 준비한 장난감을 내밀어도 보지 못했다.

“흑!”

승주가 먼저 눈물을 터트렸다.

“......!”

잠시 후에 들어온 여자의 반응도 승주와 같았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아기를 안아들었다.

“그래도 고맙습니다.”

여자는 눈물을 누른 채 인사를 해왔다. 복도까지도 꼿꼿하게 걸어나갔다. 여자의 눈물은 그녀의 차 안에서 터졌다. 마지막 희망으로 달려온 서울의 명침명의. 그마져도 두 손을 들었다. 이제는 끝이었다. 사랑하는 아기에게 영영,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줄 수 없는 것이다.

“여보.”

여자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세경이 손 선생님이 추천한 한의사 선생님에게 침 맞았어. 하지만... 우어엉.”

여자의 절규소리가 높아졌다.

“희연아, 힘내. 그래도 우리는 세경이를 살렸잖아? 어떤 부모는 사지가 없는 아기도 행복하게 생각하고 키웠다는데 우리 세경이는 눈만 안 보일 뿐이야. 내가 빨리 나아서 세경이 눈이 되어줄게.”

“여보...”

남편의 위로는 여자의 가슴을 더 긁어놓았다.

우리가 왜?

뭘 잘못했길래.

우리 아기가 왜?

이 어린 게 무슨 죄가 있다고.

감정은 자꾸 자꾸 북받쳐 올랐다.

“아아앙!”

여자가 울자 그 품의 아기도 따라 울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아기 울음소리가 더 높아졌다. 그제야 마음을 다스린 여자가 아기를 달래기 시작했다. 그런데...

“......?”

아기 눈물을 닦던 여자가 숨을 멈췄다. 아기의 눈물... 그건 눈물이 아니고 핏물이었다.

“우리 아기가 이상해요!”

여자는 다시 접수실로 뛰어들었다. 정나현이 아기를 받아들고 윤도에게 뛰었다.

“원장님, 아기가...”

정나현이 아기를 내밀었다. 윤도가 재빨리 맥을 짚었다.

“......!”

맥을 짚던 윤도가 화들짝 놀랐다. 눈의 맥이 돌아와 있었다. 그 주변의 혈자리, 약하긴 하지만 거의 정상이었다.

“식염수 가져오세요.”

윤도가 소리쳤다. 승주가 식염수를 들고 뛰었다. 정나현과 합세해 아기 눈을 닦았다. 윤도가 그 앞에 장난감을 보였다. 아기의 두 손이 따라왔다. 이번에는 작은 인형을 보였다. 잡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세경아!”

지켜보던 여자가 고함을 쳤다.

“이리 오세요. 엄마 얼굴을 보여줘야죠.”

윤도가 여자를 끌었다.

“세경아...”

여자가 아기를 안았다. 아기는 두 손을 내밀어 엄마 얼굴을 더듬었다. 여자가 고개를 돌리자 눈이 따라갔다. 왼쪽으로 가면 왼쪽, 오른쪽으로 가면 오른쪽이었다.

“으아악, 아악, 우리 세경이 눈이 보여요!”

여자는 아기를 안은 채 주저앉고 말았다.

“약침효과가 조금 늦게 난 모양입니다. 축하합니다.”

윤도가 말했다.

“으아악, 아아악, 아가, 내가 네 엄마야, 엄마라고!”

여자는 비명과 통곡에 눈물까지 섞은 채 몸서리를 쳤다. 그녀로서는 지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격이었다.

산해경의 영약과 나노 장침.

그 둘이 어울려 또 하나의 기적을 일구었다. 윤도는 여자의 비명 속에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맛이야. 이 맛에 한의사하는 거지...

“여보, 세경이 눈이 보여. 여기 원장님이 고쳐주셨어!”

여자의 비명은 이제 핸드폰 통화로 옮겨가 있었다.

원장실에는 묘한 흥분과 설렘이 가득했다. 윤도는 아기를 위한 처방을 내주었다. 겨우 정리가 된 망막의 기혈을 돋구기 위한 약제였다. 다행히 진경태가 가져온 대물 약재도 있었다. 윤도가 평양에 가있는 동안 진경태는 종일과 함께 남해의 섬들을 돌았다. 사람의 손길이 멈춘 그곳에서 자연의 지기를 고스란히 받은 대물 약재들을 가져왔다. 그는 역시 약초의 달인이었다.

정나현으로 하여금 제 값을 매기게 한 후에 금액을 입금시켰다. 진경태가 펄쩍 뛰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윤도에게는 큰 이익이었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약성들이었다.

“원장님.”

밖에 나갔다가 들어온 여자가 윤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은 귀밑에 걸려서 내려오지 않았다.

“말씀하세요.”

“방금 아기 아빠랑 상의했는데...”

여자가 작은 쇼핑백을 내놓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