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4화 (84/265)

“어디까지 가능한지 무지막지 궁금해집니다. 난청? 아니면... 혹시 농아까지?”

“다 가능합니다.”

“......!”

윤도의 대답에 모두의 입이 벌어졌다. 이 한의사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닌가? 첨단과학시대에 대형병원도 못하는 일을 침으로 하겠다니?

확인은 장세화가 맡았다.

“농아까지도 가능하단 말이에요? 그 귀머거리까지도?”

“네.”

한 마디로 대답한 윤도가 뒷말을 이어놓았다.

“100%는 장담하지 못하지만 웬만하면 다 고칠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검증 들어갑니다.”

유재덕이 입구를 가리켰다. 다시 환자 세 명이 입장했다. 동시에 1번 카메라 옆에 있던 용 피디의 안면이 확 굳어버렸다. 여기가 이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였다.

사실 명의열전 게시판에는 온갖 불치병과 난치병 환자들이 진료 체험신청을 했었다. 윤도가 대반전을 일으킨 그 밤에 피디는 의사 타진을 했었다.

<명의만의 비장의 무기.>

새로 만든 코너 때문이었다.

비장의 무기...

피디가 원하는 건 극적인 순간이었다. 의술도 좋지만 극적인 순간이 필요했다. 의술에 신비감을 주려는 의도였다.

그때 윤도는 고심했다.

신비감.

산해경의 영약을 동원한다면, 거짓말 좀 보태서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곤란했다. 명의열전은 판타지 영화가 아니었다. 시청자들이 이해 가능한 범위의 기적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농(耳聾)환자!

윤도의 선택이었다. 농아와 이농은 달랐다. 농아는 듣지 못하는 이에 말하지 못하는 이까지 포함하지만 이농은 오직 듣지 못하는 사람을 뜻했다. 그거라면 방송으로도 적합했다. 즉석에서 증명할 수도 있는 것이다.

“화면을 보시죠. 한 분은 이명의 진단이고 또 한 분은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습니다. 마지막 분은 왼쪽 귀가 들리지 않습니다. 이 진단은 국내 굴지의 병원에서 받은 것으로 전혀 틀림이 없음을 이 유재덕이 보증합니다.”

유재덕은 화면 가까이에서 진단명을 가리켰다.

“저도 보증합니다.”

“저도요.”

보조 진행자들도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가능합니까?”

유재덕이 윤도에게 재차 물었다.

“가능합니다.”

“어머어머, 저 자신감 좀 봐.”

최고령 장세화가 분위기 메이커로 나섰다.

“그럼 나도 좀 부탁해요.”

그녀가 뛰어나와 네 번째 자리에 앉았다.

“여기서 출연자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귀는 어느 장부에 문제가 생기면 나빠지는 걸까요?”

유재덕이 질문을 날렸다.

“귀는 위? 나는 배가 고프면 잘 안 들리던데?”

“맞아. 위예요, 위. 나도 술 좀 오버하면 안 들리더라고요.”

“무슨 말씀? 간이 허하면 귀가 안 들립니다. 귀에도 영양이 필요하잖아요.”

“나는 닥치고 신장이야, 신장!”

출연자들은 저마다 자기 답의 근거를 들이대느라 바빴다.

“채 선생님?”

유재덕이 윤도에게 답을 물었다.

“답은 신장입니다.”

“에? 위가 아니고요?”

오답을 낸 개그우먼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신장입니다. 귀의 건강은 신장이 책임지고 있거든요. 신장의 경락이 귀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와아, 내가 정답이야, 정답!”

환자 줄에 앉았던 장세화가 환호를 했다.

“장세화 씨는 어떻게 맞춘 거죠? 귀가 안 좋으시다더니 나오기 전에 한의학 공부 좀 했습니까?”

유재덕이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냥 찍었어!”

“하하핫!”

출연진들과 방청석은 그녀의 조크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소리를 듣는다는 건 달빛의 원리입니다. 달은 태양의 빛을 받아서 빛을 내는 거죠. 귀 역시 신장의 기혈을 받아서 소리를 듣습니다. 신장이 건강해야 귀가 잘 들리는 이유입니다.”

간단하게 설명을 마친 윤도가 시침에 들어갔다.

이명 환자에게는 귀 옆의 청회혈, 눈과 귀 사이의 상관혈을 찔렀다. 다음으로 오른쪽 귀를 먹은 남자 환자에게는 청회와 협계, 풍지와 중저혈에 침을 넣었다. 왼쪽 귀를 먹은 여자 환자 역시 진맥으로 잡아낸 혈자리에 침을 넣었다.

이 침들은 지금까지의 장침과 달리 약침이었다. 그 침끝으로 산해경에서 얻은 ‘문경’이라는 영약 열매의 영력(靈力)을 주입한 것이다. 문경은 대추처럼 생겼다. 귀 먹은 병을 고칠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장침만으로 승부하고 싶었지만 방송은 시간제한 있는 진료. 부득 영약의 도움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장세화를 포함해 네 사람 공히 신장 혈자리를 북돋아 줄 장침을 넣었다.

<귀...>

사소한 것 같지만 굉장히 중요하다. 이명의 원인도 다양복잡하다. 원인은 신장이지만 발생은 과도한 성생활, 중년 이후의 큰 질환, 심한 음주, 가래 등등으로 발생한다.

이명과 달리 이농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질환이다.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는 건 남자에게 흔히 나타난다. 과로 후에 조심해야 한다. 특히 무리한 ‘에스’ ‘이’ ‘엑스’가 그렇다. 반면 왼쪽 귀가 그럴 때는 주로 스트레스성이지만 여자에게 종종 보인다. 이농은 종류도 많다.

[귀에 바람이 들어가 염증을 일으키면 귀가 간지러우면서 두통이 동반되므로 풍롱.]

[물이 들어간 후에 귀가 들리지 않으면 습롱.]

[과로한 후에 귀가 들리지 않으면 노롱.]

[기 순환에 장애가 생겨 발생하는 궐롱.]

[졸지에 못 듣게 되는 졸롱...]

모두가 신장이 약해서 온다고 보면 거의 맞는다.

“.....!”

“.....?”

장침을 뽑은 후에 청력 테스트가 이루어졌다. 도우미들은 공인 간호사들이었다. 시범 환자로 나온 사람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장세화 역시 다르지 않았다.

“세상에, 귀가 숲에 들어온 것 같아.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요.”

그녀의 감격 막춤이 작렬되었다. 잃었던 소리를 찾은 환자들 또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침, 주사, 약, 민간처방...

무엇으로도 뚫리지 않던 청각이 윤도의 장침 몇 방으로 아작이 나버린 것이다.

짝짝짝!

다시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진짜 하이라이트는 이제 시작이었다.

“그렇다면!”

진행자 유재덕이 진정한 옵션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분은 어떨까요?”

멘트와 함께 30대 후반의 부부가 걸어나왔다.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도 없는 부부였다. 그들 뒤의 화면에 진단서와 함께 장애인등록증이 보였다. 그 진단은 무려 국내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SS 병원 이비인후과의 것이었다. 진단자는 이비인후과 과장. 그 또한 이 자리에 초대가 되었고 자리에서 일어나 존재를 알렸다.

<농아>

아내 쪽이었다.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여자였다. 수화는 가능했다. 화면에 두 사람의 관계 화면이 흘러나왔다. 남자는 명문대출신이었다. 대학생 때 농아원에 봉사활동을 갔다가 이 여자를 만났다. 여자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지만 표정이 맑았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남자의 아버지는 직업이 좋았다. 아들의 교제를 말렸다. 엄마가 일찍 죽어 아버지와 자란 아들이었다. 그러다 아버지와 바다낚시를 가게 되었다. 서울로 오는 길에 중앙선을 넘어온 트럭에 받히는 대형사고를 당했다. 아버지는 즉사하고 아들은 목숨을 건졌다. 부상이 말이 아니었다.

두 달 가까운 대수술의 반복 끝에 목숨을 건졌다. 눈까지 가린 붕대를 풀었을 때 그 앞을 지키고 있었던 건 지금의 아내였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24시간 간병하셨어요.”

간호사가 설명을 대신했다. 아내는 죄 지은 듯 일어나 수화를 날렸다.

<살아나줘서 고마워요.>

수화 사이로 그녀의 눈동자가 별빛처럼 초롱거렸다. 그건 진심으로, 진심이었다.

수화를 남기고 돌아섰다. 자신의 처지를 알기에, 감히 넘보지 못할 남자. 이제 정신을 차렸으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남자는 아직 다 아물지도 않은 다리를 딛고 달려가 아내를 잡았다.

<가지 마>

서툰 수화를 보냈다. 그게 곧 청혼이었다.

“아내에게 아직 사랑한다는 말을 아직 못 들려줬어요. 아니, 많이 속삭여주기는 했는데 아내가 못 들어요. 딱 한 번만이라도 내 목소리를 들어줬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딱 한 번>

저절로 미션이 되었다. 꿈을 풀어놓는 남자의 목소리는 진작부터 젖어 있었다.

“아내 분도 그래요?”

수화통역자가 나와 아내에게 물었다.

<네.>

아내의 손이 수화를 그렸다.

“선생님!”

유재덕이 윤도에게 공을 넘겼다. 환자는 간이침대에 누웠다. 윤도가 그녀를 보았다. 해사하다. 얼굴에 악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잡티는 많았다. 피부도 그렇지만 얼굴에 검은 빛과 더불어 희끄므레한 반점이 보였다. 진맥을 시작했다. 영락없이 신장의 기혈이 꼬여 있었다.

“물 마시면 곧잘 토하죠?”

윤도가 남자에게 물었다.

“네.”

신장의 기혈 부조화는 문진으로 재확인이 되었다.

“선생님, 직접 진단을 내린 의사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재덕이 이비인후과에게 물었다. 의사는 차분한 미소로 고개를 저었다.

“현대의학에서는 불가능하다는 답이 나왔습니다. 그대로 가능한가요?”

유재덕이 윤도를 향해 소리를 높였다. 배경음악이 고조되면서 긴장감이 함께 올라갔다.

“가능할 거 같습니다.”

윤도의 대답은 주저가 없었다.

부용이 주목했다.

용 피디도 주목했다.

성공하기만 하면 초대박을 이룰 수 있는 상황. 그러나 실패하면 국장단에게 개망신을 당하고 통편집에 들어가야 할 상황. 그렇기에 용 피디의 얼굴에서는 식은땀까지 흘려 내렸다.

이 방송 실화냐? 3

이 방송 실화냐? 3

짝짝짝!

방청석과 출연자들은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스튜디오에 불이 꺼졌다. 불은 오직 두 곳에서 내려왔다. 윤도가 시침 중인 침대와 그 남편이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애절한 장면의 대조. 조명 색깔까지 명암의 대비를 이루며 이목을 집중 시켰다.

“마음 편하게 먹으세요.”

<네. 선생님>

아내가 수화를 그렸다. 윤도의 입 모양을 보고 말을 짐작하는 그녀였다.

맥을 짚었다.

신장에는 열이 있었다. 기혈의 열이다. 그 열은 지양혈에서 확인했다. 신장 열의 통로혈이었다. 다행히 최악은 아니었다. 환자의 이농은 완만하게 들어왔다. 신장에서 시작해 간을 타고 이기문혈로 올라갔다. 벙세의 차례를 짚으면 신장-간장-고황-이기문-비위의 순이었다. 이 차례가 바뀐 병을 맞으면 위험하다. 자칫하면 잠자다 죽는 경우까지도 나온다.

‘대거혈, 활육문혈, 신수혈...’

중심 혈자리를 차례로 짚어냈다. 하지만 장침은 조금 넉넉히 준비했다. 촬영 때문이었다. 방송이 나가면 수 많은 한의사들이 볼 일이었다. 이혈을 짚거나 변형된 혈자리를 짚으면 괜한 논란이 나올 게 뻔했다.

‘사짜다!’

‘정통침술이 아니다.’

원래 누군가 잘 되면 배가 아픈 법. 공개된 장소다 보니 원칙에 따라 침을 놓고 승부혈에 집중할 계획이었다. 첫 침은 신수혈자리에 넣었다. 장침이 아니라 약침이었다. 그런 다음 침을 제거하고 장침을 뽑아들었다. 첫 침은 귀 옆의 이문혈에서 청궁혈을 지나 청외혈까지 넣었다. 일침삼혈이었다.

“우!”

화면을 보던 방청객들이 탄성을 자아냈다. 두 번째 침은 하관에서 청궁혈로 들어갔다. 그 또한 일침이혈. 두 침은 역 ㄴ자 각도를 이루었다. 하부의 기혈에 신호를 보낸 후에 또 다른 침 하나를 뽑았다. 이번 것은

관원혈에 홀로 들어갔다. 관원은 물의 기운을 주관하는 곳. 환자의 신장에 물(水)이 부족하니 샘물부터 뚫는 것이다. 물은 생명체에 있어 최초 최상의 에너지 원이다. 환자에게 꼭 필요한 정기였다.

이 침은 세 방향 각으로 넣었다. 산해경의 영약을 약침으로 넣었지만 효과의 전달은 기약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침감의 극대화를 위해 자극을 강화한 것이다.

이 또한 윤도의 손이 알아서 한 일이나 본래 마비 등의 질환 치료시에 다용되는 것 또한 다방향 자침이었다. 이농도 따지고 보면 청력의 마비. 결코 헛발질이 아니었다.

신수혈자리에서 올라오는 기의 탄력이 느껴졌다. 그 다음 역시 약침으로 준비했다. 하나는 대거혈에 찌르고, 또 하나는 활육문혈에 대칭으로 찔렀다. 두 혈자리는 정석 공략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활육문혈은 태을혈과 활육문의 ‘중간’이었고 대거혈 역시 관원혈과의 ‘사이’였다.

이유는 두 혈자리가 통로가 너무 좁은 까닭이었다. 통로가 막힌 것과 같으니 중간 지점에서 공략에 나선 것이다. 어렵지만 무난히 자리를 잡았다. 은혈보다 낫고 철혈보다 나았다. 은혈과 철혈은 천 분의 일, 만분의 일 확률로 잡히는 희귀한 혈자리들.

은혈(隱穴)은 마치 무협의 자객처럼 숨어 있는 혈자리를 이르는 말이고 철혈(鐵穴)은 쇳덩이처럼 단단해 침으로 찌르기 어려운 혈자리를 가리킨다. 4대 기혈(奇穴)이니 8대 기혈이니 하는 말로도 회자된다. 윤도조차 아직 구경하지 못했으니 호사가 한의사들이 지어낸 말일 수도 있었다.

대거혈로 들어간 영약 기운이 올라왔다. 그 쯤에서 활육문의 영약 침 끝을 바닥까지 다 집어넣었다. 윤도의 신경은 활육문으로 집중되었다. 신장으로 들어온 나쁜 기운은 활육문을 거친다. 신장의 원기와 대거의 기운, 그 압박으로 밀려나올 사기(邪氣)를 활육문으로 방출하려는 계산이었다.

‘온다...’

윤도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약침 주사기에 남은 영약 용액을 마저 밀었다. 순간, 활육문혈자리에 반응이 느껴졌다.

우어어!

우어어!

사기의 아우성이다. 오랫동안 병자를 제압하고 통제권에 두었던 사기. 이제 와서 쫓겨가기 싫은 것이다. 하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귀로 올라가는 기의 통로를 막고 있지만 빗발치는 신장의 기를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열린다...’

윤도의 손이 먼저 느꼈다. 활육문의 문이 열리는 소리. 그 문을 따라 이농의 사기가 거칠게 밀려나는 소리...

아아아!

지상에 이보다 더 큰 카타르시스가 있을까?

얼마나 지났을까?

톡!

윤도 이마에서 땀방울이 떨어졌다. 그리고... 윤도는 알았다. 이제 신장의 기가 귀로 향하고 있음을. 그것은 우주에 형성된 블랙홀과 같았다. 하나가 차면 그 다음, 그 다음 혈자리가 차면 또 그 다음. 바닥을 드러냈던 물은 해일처럼 귀를 향해 솟구쳤다.

“어머!”

확대 화면을 보던 개그우먼이 먼저 비명을 질렀다. 환자의 얼굴 때문이었다. 그 얼굴에서 희끄므레한 반점이 나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건 귀가 열리는 신호였다. 윤도는 모두에게 쉬잇 사인을 보냈다. 어찌나 몰입했는지 유재덕과 방청객들까지 입을 막을 지경이었다.

파앗!

기는 마침내 환자 귀의 정수를 가득 채웠다. 면면히 이어지기에 줄어들지도 않았다.

윤도는 천천히 침을 뽑았다. 그런 다음 환자 몸을 바로 세웠다. 그런 다음 얼어붙은 남편을 불렀다. 남편이 아내 앞으로 다가섰다. 한 장면 한 장면마다 출연자들은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이제 고백해도 됩니다.”

윤도가 말했다.

“선생님...”

“고백하세요.”

“우리 은정이...”

남편은 떨리는 소리로 뒷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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