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9화 (69/265)

“큼, 너무 젊지 않나요? 의술은 경험도 중요한데... 크흠.”

목 고르는 소리와 함께 나오는 진 비서의 어투는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래도 침술은 중국의 전설적 명의 편작과 화타에 비견되는 실력입니다.”

김 전무가 윤도를 띄웠다.

“큼, 직접 맞아보셨나요?”

“......?”

그 한 마디에 전무의 대꾸가 길을 잃었다. 이 회장의 지시만 받았지 직접 경험한 적은 없는 김 전무였다. 게다가 윤도와는 오늘이 초면이었던 것.

“우리 회장님의 자제분 둘을 사경에서 구한 의술입니다.”

“어쨌든 김 전무께서 겪어본 일은 아니로군요.”

“......”

“대인께서는 통증이 조금 가라앉아 눈을 붙이고 있습니다. 괜한 수고할 거 없이 돌아가세요. 저도 병원에 볼일이 좀 있고... 크흠!”

진 비서는 목을 가다듬고 돌아서버렸다.

“이, 이봐요. 진 비서.”

김 전무가 부르지만 그녀의 걸음은 멈춰지지 않았다. 하지만 윤도의 한 마디가 그 발을 세웠다.

“목에 가시 걸렸죠?”

회전문 앞에서 진 비서와 수행원이 돌아보았다.

초대박 의술 비즈니스-2

초대박 의술 비즈니스-2

윤도가 한 발 다가섰다.

“크음...”

진 비서는 대답대신 불편한 기침을 밀어냈다.

“대인께 놓을 침이었지만 바쁘시다니 선생님께 놓아드리죠.”

윤도가 진 비서를 마주 보았다.

“이봐요. 이건 침으로 해결될 게 아니라...”

“중의들은 안 되나요?”

윤도 목소리에는 힘이 가득했다.

“뭐라고요?”

“저는 할 수 있습니다.”

“이봐요. 이 가시는 안으로 깊어서 보이지도 않는...”

“손목에 한 방이면 충분합니다.”

“한 방?”

윤도가 진 비서의 손목을 잡았다. 로비의 의자에 앉은 진 비서의 손목으로 장침이 들어갔다. 손목 아래 내관혈에 가까운 간사혈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시침하고 혈자리 반응을 재촉했다. 그녀의 목울대가 울컥하는 순간 장침을 뽑았다.

전광석화.

조금 서두른 감은 있었다. 하지만 그리 어려운 시침은 아닌 상황. 침술에 멋을 내는 윤도는 아니지만 이번 만은 극적인 효과를 위해 퍼포먼스를 조금 입혔다.

“끝났습니다.”

“끝나? 응?”

진 비서가 목을 만졌다.

“큼큼!”

목 조절 후에 침도 넘겨보았다. 그녀의 눈은 이내 휘둥그레 변했다.

‘넘어갔어?’

황당한 얼굴로 윤도를 바라보는 진 비서...

“아쉽군요. 대인의 잔병도 해결하고 더불어 오랜 치아 고민도 풀어주려 왔는데...”

인사를 남긴 윤도는 미련 없이 김 전무를 향해 돌아섰다.

“가시죠.”

“그럴까?”

김 전무 역시 태산전자의 대표 중역다웠다. 윤도의 속내를 눈치 채고 바로 장단을 맞춘 것이다. 나름 승부수였다. 윤도 머리에는 인삼장수 임상옥의 일화가 있었다. 먼 옛날 임상옥이 중국에 갔을 때 상인들이 담합해 인삼값을 후렸다. 임상옥은 인삼을 쌓아놓고 불을 질러버렸다. 설마 하던 중국 상인들은 애걸을 하며 불을 껐다. 일부 인삼이 탔지만 남은 인삼값을 높여 충분한 이득을 취했다.

그 전략이었다. 단 한 방이지만 침술의 가치를 선보였다. 진 비서는 상무위원의 복심. 누구보다 상무위원이 가진 질병의 애환을 알 사람이었다.

“이봐요.”

몇 걸음 떼기 무섭게 진 비서가 윤도를 불렀다. 윤도는 못 들은 척 계속 걸었다.

“이봐요.”

다급한 진 비서가 윤도 옷깃을 잡았다.

“왜 그러시죠?”

윤도가 무심하게 돌아보았다.

“가시 말이에요. 사실 우리 수행단 중에도 침술을 아는 사람이 있어요. 하지만 엄두도 못낸 일이라 한국 병원에 가던 길인데...”

“대인을 모시는 일입니다. 보통 의술이면 회장님께서 보내셨겠습니까? 회장님은 진심으로 대인을 위해 대한민국 대표 한의사를 보내신 겁니다.”

김 전무가 슬쩍 윤도 가치를 높여놓았다.

“제가 좀 성급했네요. 대인께 다시 말씀드려볼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진 비서는 잰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

“과연 명의시군.”

엘리베이터를 보며 김 전무가 말했다.

“전무님이야 말로 명 경영진이십니다.”

“보조 맞춘 것 말인가?”

“예.”

“그 정도 감각도 없이 세계시장에서 살아남기는 힘들지.”

“......”

“하지만 보조야 어느 정도 눈썰미만 있으면 가능하다네. 문제는 상황의 지배가 아닌가.”

“상황지배...”

“아니, 상황의 역전이랄까? 채 실장이 적어도 9회말 동점 찬스를 만들어 놓은 거네.”

“제가 아니고 ‘우리’입니다.”

“나는 거들었을 뿐이야. 채 실장의 의술 카리스마... 굉장했어.”“그렇다면 이제 진짜 가시를 뽑아야죠?”

“중국 프로젝트에 걸린 가시?”

“맞습니다.”

윤도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김 전무는 그 태도에 매료되었다. 처음 만난 사이지만 든든하기 그지없는 윤도였다.

“만나보시겠답니다.”

잠시 후에 진 비서가 내려왔다.

‘상무위원...’

윤도는 그 무거운 단어를 내려놓았다. 소국의 대통령보다도 막강하다는 중국의 상무위원. 태산전자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그의 호의를 받아야하는 상황. 하지만 윤도는 지금 정치가 아니라 진료를 위해 온 한의사였다.

그렇기에 생각했다. 상무위원이 아닌 한 사람의 환자. 신분 같은 건 다 내려놓고 오직 환자로만 대하겠다고.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막강 권력의 상무위원은 그저 윤도의 환자였다.

[상무위원=한 사람의 환자.]

그 팩트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대인 나오십니다.”

VIP룸에서 진 비서가 말했다. 객실은 굉장히 크고 화려했다. 슈페리어룸이니 스위트룸이니 하는 객실과는 차원부터 달랐다.

딸깍!

문이 열렸다. 문 안에서 한 사람이 드러났다.

“......!”

윤도의 시선이 멈췄다. 안에서 나온 한 사람, 키가 굉장히 작았다.

“대인을 뵙습니다.”

김 전무가 먼저 인사를 했다. 윤도도 뒤를 이었다.

“중국어를 할 줄 아오?”

상무위원 자오후닝이 윤도를 바라보았다.

“예.”

“한의사시라고?”

“예.”

윤도가 답했다.

“무엇을 할 수 있소?”

“진맥을 보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진맥...”

상무위원이 소파에 앉았다. 김 전무와 윤도, 진 비서 등은 일동 숨을 죽였다.

“나는 번거로운 걸 싫어하오만.”

상무위원이 선을 그었다.

“그럼 애로를 말씀해 주시지요.”

“명의라면 환자의 얼굴만 봐도 병색을 알아내는 법 아니오?”

상무위원의 눈빛이 윤도를 겨누었다. 얼굴만 봐도 병을 알아내는 명의... 책에는 있었다. 전설적 명의들이 그랬다. 안색만 보고도 며칠 못 살 것을 예측한 명의가 한둘인가? 태창공 순우위가 그랬고 편작이 그랬다. 가까이는 조선의 허준도 그 레벨이었다.

상무위원은 그 예로써 윤도의 의술을 가늠하고 있었다.

“명의마다 갈래가 다른 법입니다. 중국이 자랑하는 편작의 집안만 해도 그렇죠. 그들 형제들은 모두 의원이었지만 한 사람은 병이 생기기 전에 처방을 했고, 또 한 사람은 병이 든 후에 처방했으며 마지막으로 편작은 중병을 주로 치료했습니다. 그렇기에 의서에는 편작이 최고의 명의로 꼽히지만 정작 편작 자신은 자신의 형제들을 명의로 꼽았었지요.”

“그럼 당신은 어떤 갈래의 명의요?”

“이거죠.”

윤도가 장침을 뽑아보였다.

“장침이라...”

상무위원이 손짓을 보냈다. 그러자 진 비서가 뭔가를 건네주었다.

‘침통?’

윤도가 미간을 좁혔다. 진 비서가 건네준 건 분명 침통이었다. 익숙한 침통에 긴장하는 건 길이 때문이었다. 장침을 담는 통보다도 압도적으로 길었다.

“이런 침 본 적 있소?”

상무위원이 침통을 열었다. 침이 몇 개 나왔다.

“......!”

윤도의 시선이 멈췄다. 망침이었다. 장침에서 발전한 망침. 그러나 이 망침은 윤도가 본 것보다도 유난히 길어보였다.

“내 주치의 쑨취앤이 이걸 잘 놓지. 해서 보기만 해도 위안이 되기에 좋은 걸로 한 통 얻어 간직하고 있소이다만.”

“......”

“시침해 본 적 있소?”

“......”

“없군?”

“한 번 있습니다.”

“한 번?”

“그렇습니다.”

“한 번은 경험으로 보기 어려우니 명의는 아니잖소? 내 예전 방한 때도 호기심에 한의를 불렀으나 조그만 호침으로 손장난이나 하다 가더이다. 효과도 그저 그랬고...”

“침의 길이가 명의에 비례되는 것입니까?”

“환자에게 맞추는 게 명의의 기본이 아니오? 중국의 내 주치의는 그렇게 말했소만.”

“그 주치의의 시각은 너무 편협합니다.”

윤도가 맞불을 놓고 나섰다. 옆에 선 김 전무의 눈매가 파르르 경련하는 게 보였다. 상대는 중국 최고위급 권력자. 둘은 지금 상무위원의 마음을 사러 온 특사들이었다. 그렇기에 상무위원이 싫다면 돌아서서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게 옳았다. 그런데 윤도의 반응은 정면대응이었다.

‘끄응.’

김 상무가 신음을 삼켰다. 그렇다고 끼어들기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다.

“편협하다?”

“예.”

“그렇다면 당신이 옳다는 걸 증명해야 할 텐데?”상무위원 눈동자에 핏발이 서자 실내에 짜릿한 긴장이 흘렀다.

“원하시면 망침으로 시침해 드리죠.”

“한 번 해본 실력을 믿어도 되겠소?”

“한 번이지만 침 하나로 두 명을 찔렀습니다.”

“그 무슨 궤변이오?”

“산모의 배를 통해 태아 손의 합곡혈을 찔렀으니까요.”

“......!”

윤도의 말에 상무위원이 움찔 흔들렸다.

“그건 보지 못했으니 그렇다친대도 내 망침은 한국 망침보다도 더 길다오.”

“침은 한의사 몸의 일부인 것이니 조금 길고 짧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

“방금 환자와 한의사의 관계를 말씀하셨으니 덧붙이는데 환자 역시 자신의 고질병을 고치고 싶다면 의원에게 마음을 열어야합니다. 저는 마음을 열지 않는 환자는 치료하지 않습니다. 이는 태창공의 삼불치와 편작의 육불치에 나오는 말이니 중국 사람인 대인이 모르지 않겠지요.”

“......”

“......”

“내 고질병의 으뜸은 이빨과 치통이네만.”

침묵하던 상무위원이 말을 이어놓았다.

“알고 왔습니다.”

“이 회장 쪽에서 말한 치아소생약의 비방을 만든 사람이 당신이신가?”

“그렇습니다.”

“내 그 말을 듣고 내 주치의에게 물었네만 한참을 웃더군. 그런 약은 중국의 전설 속에나 나오는 영약이라고.”

“인간의 기혈도 전설 같은 물질이지요. 말로는 설명이 어려운 것이니까요.”

윤도가 맞받았다. 차분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배어나오는 표정. 가냘픈 듯 하면서도 고고한 태도에 상무위원의 눈꺼풀이 내심 경련을 했다.

“자신한다?”

“오랫동안 고질병에 시달린 병자들은 골똘해집니다. 많은 치료법에 매달리지만 잘 되지 않으니 한두 번, 혹은 며칠 만에 포기를 하지요. 물론 그런 병들의 치료가 쉽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치료란 병이 깊어진 시간만큼 돌아가야 하는 것이니까요.”

“그렇기에 이 회장의 호의를 거절한 거라네. 회장께서 말하길 며칠이면 효과를 볼 거라고 했는데 당신의 말과도 모순되는 것 아닌가?”

“다른 의원이 불가능한 치료,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게 명의 아닙니까?”

“명의라...”

상무위원의 눈빛이 윤도를 겨누었다. 그의 안광은 강철판이라도 뚫을 것 같았다. 대륙 지배자의 한 사람인 상무위원. 그 무게만큼의 내공이 담긴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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