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65/265)

“선생님께 자신감을 주려고요. 그날 실패했으면 기가 죽어서 오늘도 실패했을 겁니다.”

“......!”

안미란은 심장이 멈출 것만 같았다. 이 남자는 도무지 측정불가에 속했다. 으스대지 않고 자신의 스킬을 나눠주는 마음씨... 침술보다 그 인술에 뻑 가는 안미란이었다.

하지만!

모든 게 좋은 건 아니었다.

구대홍은 반대였다. 어제부터 차츰 기세가 나빠졌다. 무릎 암 부위의 연골도 조금씩 더 뜨거워졌다. 뒤따라온 안미란은 얼굴이 굳었지만 윤도는 흔들림이 없었다.

1주일 차 되는 날, 윤도는 일찍 잠에서 깨었다. 장침 먼저 챙겼다. 영약은 책상 위에 두었다. 주머니에 넣으면 갈등이 생긴다. 인간이기에 유혹을 받는 것이다.

여기서 영약을 쓰면 치료 효과가 어디서 온 건지 확인하기 어려웠다. 윤도가 해낸 것만은 분명하지만 선을 그어둘 필요가 있었다.

일침즉쾌.

암 환자를 치료하면서 윤도는 그 단어를 내려놓았다. 일침즉쾌의 뜻을 다르게 해석했다. 질환에 따라서는 장침 한 방으로 해결이 가능했다.

하지만 모든 질병이 그렇지는 않았다. 예컨대 지금 같은 암이라면 약간의 시간이 걸려도 될 일이었다. 일주일 만에 좋아졌다고, 한 달 만에 낳았다고 해서 일침즉쾌를 의심할 사람은 없었다.

이른 아침, 구대홍의 병실은 약간 웅성거리고 있었다. 간호사와 안미란이었다. 구대홍의 열이 높아진 까닭이었다.

“선생님.”

윤도를 본 안미란이 고개를 돌렸다.

“자정 무렵에 열 올랐죠?”

윤도가 물었다.

“어떻게 아세요?”

“제가 좀 볼 게요.”

윤도가 구대홍에게 다가섰다. 간호사와 안미란은 저절로 물러섰다. 진맥부터 짚었다. 맥은 환부를 볼 수 있는 창문. 그를 통해 보니 맥들이 환부 부근에서 벌떡거렸다.

상황 악화.

틀림없이 그랬다.

하지만,

‘빙고!’

윤도는 쾌재를 부르며 주먹을 쥐었다. 한의사로서 상황 악화가 좋을 리 없었다. 그러나 이건 윤도가 의도하던 결과였다. 바로 만성 질환의 급성 질환으로의 변화였다. 침으로 질환을 몰아붙여 병세를 바꾸어놓은 것이다. 급성은 만성보다 치료가 쉽기 때문이었다.

“잘 됐어요.”

윤도가 말했다.

“선생님.”

안미란은 이해할 수 없었다. 계속 좋지 않은 상황이었던 골종양 환자. 이제는 열까지 끓어오르는데 잘 되었다니...

‘이제부터 본 게임이다.’

안미란과 달리 윤도는 훌쩍 달아올라 있었다. 서둘러 침통을 꺼냈다. 종기의 명혈로 불리는 수삼리혈에서 공세를 시작했다. 복토혈에도 침을 넣었다. 그런 다음 환부 부위를 세부 공략하기 시작했다. 무릎을 중심으로 무려 10개 이상의 장침이 대리석처럼 웅장하게 자리를 잡았다.

“선생님...”

구대홍의 몸에서 땀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참아요. 열 내리는 건 어렵지 않거든요.”

윤도는 마지막 장침을 잡고 전체 혈자리를 조율했다.

닫혀라.

열려라.

기원을 보탰다. 병이 들어온 문은 막고 나갈 문을 여는 것이다. 맥과 혈의 문이 반응하는 게 보였다. 급성 상태가 되었기에 빨랐다. 문과 문을 두고 윤도와 골종양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골종양은 버티고 윤도는 몰아붙였다. 나가는 문으로 밀고, 그 문을 닫은 후에, 또 다음 문을 열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다. 윤도는 결국 골종양의 사기(邪氣)를 꼬리까지 밀어내는데 성공했다.

‘하느님...’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이 나왔다. 1주일... 무려 일주일의 사투였다. 물론 내일 당장 환자가 펄펄 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내일부터 현저한 차도를 보일 거라는 것. 그렇게 되면 폐에 멀티를 시도한 암은 문제도 아니었다. 본진이 무너지는 것이니 장침 한두 방이면 아작날 일이었다.

“구대홍 씨.”

윤도가 땀에 젖은 얼굴을 들었다.

“선생님...”

“소방관 체력검사 얼마나 남았죠?”

“8일요.”

“이거 챙겨요.”

윤도가 뭔가를 내밀었다. 구대홍이 찢어버렸던 수험표였다.

“선생님...”

“8일로는 짧을 지도 몰라요. 하지만 걸어갈 수는 있을 겁니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체력시험장에 걸어서 갈 수 있게 해드릴 거라고요.”

“선생님...”

“팔 힘 세다고 했죠? 발로 하는 건 힘들겠지만 몇 가지는 할 수 있을 겁니다. 내년을 위해서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저 무릎 절단 안 해도 되는 거예요?”

“시험 전에 걸을 수 있게 해드린 다니까요. 휠체어 없이.”

“선생님!”

“열 어때요? 조금 내렸죠?”

“그러고 보니...”

“그게 증거입니다. 오늘 푹 자고 나면 다리가 시원해질 거예요.”

“선생님...”

“수험표는 직접 붙이세요. 찢은 사람이 책임지는 거 맞죠?”

“선생님.”

구대홍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어쩌면 허튼 위로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구대홍은 괜찮았다. 며칠 간의 집중 치료 동안 그는 윤도의 진심을 느꼈다.

그렇기에 치료가 되지 않아도 원망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기에 이 위로가 단 하루의 착각이라도, 아니 단지 지금 이 순간만의 착각이라도 좋았다.

하지만 윤도는 허튼 말이 아니었다. 아직 산해경 영약을 전격 동원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여차하면 그것까지 투입할 요량이었기에 약속을 던진 윤도였다.

기혈 상승.

환자의 긍정적 마인드와 희망 또한 기혈 상승에 큰 몫을 하기에.

높아지는 위상-1

높아지는 위상-1

그 다음 날 아침, 새벽처럼 안미란의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안미란이에요.”

“어, 어제 나이트 한가했어요?”

“지금 나이트가 문제예요?”

“뭐 잘못 됐어요?”

윤도가 상체를 일으키며 물었다.

“잘못이 아니고요... 다리 말이에요. 구대홍 환자의 다리.”

“......?”

“비명을 지르길래 송 선생님이랑 달려갔는데 굉장히 좋아졌어요. 붓기도 쫙 빠지고 움직여도 많이 아프지 않대요.”

“......”

“선생님은 비명 안 질러요? 저는 그거 보고 환자보다 더 큰 소리를 질렀는데...”

“그럼 됐네요. 다 같이 소리 지르면 우리 단체로 정신병동에 수용될지 모르잖아요.”

“선생님, 정말...”

“폐암 환자랑 같이 확인 검사 좀 해줘요. 그 분도 많이 좋아졌을 거예요.”

“당연하죠. 안 그래도 송 선생님이 오더 내줬어요.”

“울음은 뚝!”

“선생님이 최고예요. 진짜...”

울먹임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최고?’

윤도 입 안에서 그 단어가 맴돌았다. 그러다 볼을 꼬집어 보았다. 아팠다. 실감이 안 나서 한 번 더 꼬집었다. 죽도록 아팠다. 그제야 윤도, 이불을 걷어차고 속옷 바람으로 펄쩍펄쩍 뛰었다.

“와우, 와아아우!”

허튼 늑대소리를 내며 폴짝거릴 때 어머니가 문을 열었다.

“채 의원!”

“어머니!”

“어디 아픈 거 아니지?”

“절대요.”

“뭔지 엄마가 알면 안 돼?”

“병원에서 암 환자 둘을 시범 치료하고 있는데 차도가 생겼대요. 화끈하게 말이에요.”

“응?”

“제가 장침으로 치료하는 암 환자들이 좋아지고 있다고요.”

“채 의원 지금 암 환자라고 그랬어?”

“네, 암.”

“세상에, 침으로 암까지?”

“옛날의 레전드 명의들은 다 하던 거예요. 그보다 더한 병도 고쳤거든요.”

“세상에... 채 의원 침이 예사롭지 않은 건 알 것 같지만 암까지...”

“이게 다 어머니 때문이에요.”

“내가 뭘?”

“그냥 그렇다고요.”

윤도의 목소리는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하지만 옷은 좀 입어야겠어. 누가 보면 채 의원 체면이...”

그제야 팬티 바람이라는 걸 깨달은 윤도. 본능적으로 손 방패를 이용해 사타구니를 가렸다.

“채 의원 좋아하는 고등어 구워줄게. 씻고 나와.”

어머니는 소담한 웃음을 남기고 나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아죽겠는 윤도, 기어이 펄쩍거리며 또 한 번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자, 아자자!”

**

“......!”

화면으로 검사결과를 받아든 조 과장이 꿈틀 흔들렸다. 앞에는 윤도와 마혁, 송재균, 안미란 등이 있었다.

“어때요?”

안미란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거...”

조 과장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차도가 없습니까?”

송재균도 조바심이 일었다.

“아니...”

조 과장은 두 영상물을 번갈아 본 후에야 뒷말을 이어놓았다.

“차도 정도 아니라 현저하네. 폐암 병소는 3분의 1로 줄어들었고, 골종양 역시 환부 깊은 곳을 시작으로 절반 이상 사라졌어.”

“예?”

안미란의 몸이 용수철처럼 튀었다. 송재균의 동공 역시 터질 듯 확장되었다.

“선생님!”

윤도를 바라보는 안미란의 목소리는 차라리 실신 직전이었다.

“채 선생.”

조 과장이 윤도 앞으로 다가왔다.

“수고했네, 정말 수고했어.”

조 과장이 윤도의 양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뜨끈한 신뢰의 몸짓이었다.

“고맙습니다. 믿고 맡겨주신 덕분입니다.”

“여기들 잠깐 있게. 나 부원장님 좀 모셔올 테니까.”

“제가 모셔올 게요.”

안미란이 과장에 앞서 복도를 뛰었다.

“......!”

VIP 특진 중에 달려온 부원장 또한 영상물을 보고는 말문이 막혔다. 종국에는 영상의학 전문의가 호출 되었다. 그가 처음 진단 영상과 현재 영상을 비교하며 설명을 했다.

폐암 판독설명이 먼저 나왔다. 이어 골종양 판독 소견이 나왔다.

“애당초 정강이뼈와 종아리뼈까지 내려갔던 암조직이 상당 부분 사라지고 지금은 무릎뼈를 중심으로 부분적으로 남았습니다. 넓다리뼈에도 약간의 전이 소견이 보였었는데 보시다시피 흔적에 불과합니다.”

“......!”

일동은 숨을 죽이며 경청했다.

“그리고 채 선생님 의견으로 발견된 폐와 신장의 작은 흔적들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조금 더 지켜봐야하겠지만 기적입니다. 미러클!”

영상 전문의는 기적을 강조했다. 결론은 ‘명쾌한’ 호전이었다.

“채 선생.”

부원장의 목소리는 그새 잠겨있었다. 그 역시 조 과장과 비슷한 장면을 연출했다. 두 팔로 윤도 어깨를 잡더니 가벼이 당겨 안아버린 것이다.

“가세. 환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야지.”

조 과장이 윤도를 앞세웠다.

“이쪽입니다.”

이번에도 안미란이 앞장을 섰다.

“암 병소가 확 줄어들어다고요?”

폐암환자 류수완은 까무러치기 직전이었다. PDA로 영상물을 보여주자 아이처럼 환호를 질렀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보호자들까지 합세해 조 과장에게 인사를 했다.

“제가 아니라 이쪽 채 선생입니다.”

조 과장이 윤도를 내세웠다.

“선생님.”

류수완이 윤도 손을 잡았다.

“고생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끝은 아닙니다. 잔당을 박멸해야죠.”

윤도가 웃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