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화 (41/265)

명품 장침 서울 상륙-2

그 말 뜻은 침구실에서 알게 되었다. 침대 위에 침을 기다리는 환자가 있었다. 50대 중반의 여자였다.

“말씀드린 제 후학입니다.”

장 박사가 윤도를 소개했다. 윤도는 가벼운 목인사로 첫 대면을 했다.

“굉장히 젊으시네요?”

“젊은 만큼 침에도 기가 팔팔하게 실리지요.”

장 박사가 윤도 등을 밀었다. 이미 가운을 얻어 입은 상황. 꼼짝없이 침을 꽂는 수 밖에 없었다.

“맥 좀 보겠습니다.”

환자의 맥을 잡았다. 눈을 감고 맥으로 체형을 그렸다. 그려졌다. 두루뭉술 풍후한 몸매에 각진 얼굴이었다. 맥은 산만했다. 머리와 어깨, 손목과 내장 등에 자잘한 병이 포도알송이처럼 달렸다.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 환자의 병은 인체의 기둥에 있었다.

“죄송하지만 움직이는 종합병원이시군요?”

가벼운 말로 환자의 경계심을 풀었다.

“맞아요. 갱년기라서 그런지 안 아픈 데가 없어요.”

대답하는 환자의 인상이 저절로 구겨졌다. 작은 움직임에도 큰 통증이 오는 것이다.

“두통과 테니스엘보우, 변비와 손목 통증은 천천히 잡아도 될 것 같고...”

“어머, 변비까지 알아요?”

“가장 큰 애로가 척추로군요.”

“장 박사님이 벌써 말씀하셨어요?”

환자가 장 박사를 바라보았다.

“웬 걸요. 우리 채 선생은 진맥만으로도 웬만한 병은 다 잡아내는 귀신입니다. 현대의학으로 치자면 움직이는 MRI라고 할까요?”

장 박사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침으로 되겠어요? 장 박사님 말 듣고 오기는 했는데 제가 골다공증이 있어 척추수술도 마땅치 않고 풍선확장술을 받았는데 신경유착이 문제가 되는 바람에 효과가 없어졌어요.”

환자가 윤도를 바라보았다.

“스테로이드 주사는 맞고 계신가요?”

“예... 하지만 요 며칠은 맞지 않았어요. 장 박사님이 부탁을 하셔서요.”

장 박사의 부탁.

윤도는 그 의도를 알았다. 스테로이드를 맞아 통증이 가시면 침의 효과를 알기 힘든 까닭이었다.

“시작하시게. 우리 정 과장님, 지금 굉장히 아프시거든.”

장 박사가 윙크를 날려왔다.

전초전.

그 단어를 생각하던 윤도가 침통을 열었다. 상념은 내려놓았다. 환자의 척추관협착은 심한 편이었다. 척추라면 섬에서도 여러 환자를 돌봐준 윤도였다. 어르신들 중에 퇴행성척추 질환이 많았다.

“......”

한 번 더 진맥에 집중했다. 세상에 쉬운 병은 없었다. 가벼우면 가벼운 대로, 무거우면 무거운 대로 집중해야 한다. 침이기에 더욱 그렇다. 혹시라도 폐를 찌르면 기가 치솟아 숨 쉬기가 힘들어질 수 있었다.

손가락의 움직임을 따라 허리의 혈자리 반응이 왔다. 명문, 요양관, 요유, 장강혈까지 내리 뒤틀리고 꼬였다. 그나마 요양관혈자리의 흔적이 선명한 게 다행이었다. 이 좁쌀 크기의 혈자리마저 말라버렸다면 환자는 머지않아 걷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혈자리를 잡은 윤도의 손이 담담하게 움직였다. 첫 침은 승부혈자리로 들어갔다. 중간에 두 번, 잠시 멈췄다가 남은 침을 밀어넣었다. 침술은 흐르는 물결 같았다.

장 박사의 고개가 갸웃 돌아갔다. 승부혈 역시 허리통증에 관여하는 혈자리. 그러나 장 박사가 생각하는 혈자리는 아니었다.

장 박사는 상료, 차료, 중료혈을 필두로 요양관, 요유, 백환유 등을 꼽고 있었다. 그런데 윤도의 침은 허리가 아니라 엉덩이 아래였다.

윤도는 물론 생각이 있었다. 승부혈은 일종의 등대였다. 이제부터 보낼 신호의 기준이 되어줄 등대. 작심한 윤도는 이번에도 척추에서 멀어졌다. 목이 가까운 대추혈이었다. 그곳에 장침을 넣었다. 그 다음으로 척추를 따라 내려오며 신주혈을 꿰더니 명문혈까지 가지런히 장침을 세웠다.

‘허어!’

장 박사는 거푸 감탄을 숨겼다. 혈은 원래 구멍이다. 그래서 한문도 구멍 혈(穴)이다. 많은 한의사들은 침을 찌른다. 그런데 윤도의 침은 찌른다기 보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구멍을 찾아 스르르 들어가는 침이니 혈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집중하던 윤도 손이 시침을 멈췄을 때였다. 잔뜩 찡그리고 있던 환자의 미간이 시나브로 펴지는 게 보였다.

“허리 쪽 조금 움직여보세요.”

윤도가 환자에게 말했다.

“......!”

조심스레 몸을 뒤틀던 환자가 고개를 들었다. 허리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대로 계세요.”

이번에는 거궐과 중완에 장침을 넣었다. 다른 침과 달리 화침이 들어갔다. 손가락이 뜨끈해지면서 침을 데운 것. 말하자면 뜸과 같았다.

“몸 펴보세요. 그냥 자연스럽게.”

“......!”

윤도 말대로 따라하던 환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도 모르게 굽던 몸이 힘 들이지 않고 펴진 것이다.

“세상에!”

환자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좌로 우로 몸을 틀어보았다. 아프지 않았다. 진통제를 잔뜩 투여해야 버티던 몸에 일어난 축복이었다.

“침 다 뽑았습니다. 일어나셔서 옷 입으셔도 됩니다.”

환자 몸에 들어갔던 장침은 어느 새 윤도 손에 들려 있었다.

짝짝짝!

장 박사 손에서 박수가 나왔다.

“허허헛!”

동시에 흐뭇한 웃음소리도 터졌다.

“정말 신침이네요. 통증이 거의 없어요. 어떻게 가능하죠? 고작 침 몇 방에...”

환자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딱 여섯 방이었습니다.”

장 박사가 손가락을 세워보였다.

“세상에... 약을 안 먹어도 안 아프다니... 저린 기운도 없고...”

“손을 좀 주시죠. 상완골두활낭염, 즉 테니스엘보우까지는 잡아드리겠습니다.”

테니스엘보우는 활낭부위에 생기는 질환으로 팔꿈치 바깥 쪽에 통증이 생긴다.

윤도가 장침을 꺼내들었다. 환자는 두 말없이 옷을 걷어주었다. 장침은 음상혈로 들어갔다. 그 또한 장 박사의 시선을 끌었다. 그라면 호침을 비스듬히 넣었을 상황. 하지만 윤도의 선택은 아주 달랐다.

장침으로 혈자리를 아우른 후에 곡지혈에도 침을 꽂았다. 그 침은 호침이었다. 침 자극은 강하게 전달되었다. 장침 그림자 뒤에 버티고선 호침은 흡사 호위병처럼 보였다.

“어떤가요?”

딱 28분 만에 침을 뽑은 윤도가 물었다. 28분은 환자의 기가 전신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이었다.

“어머!”

팔꿈치를 움직인 환자가 입을 쩌억 벌렸다.

“진짜 마법이네, 마법. 어쩌면 이럴 수가 있죠?”

환자가 윤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척추관협착증은 허리 근육을 관장하는 혈자리에 힘을 보태 늘어진 근육을 세웠습니다. 꾸준한 허리근육을 키우는 운동을 하셔야 오래 갈 겁니다. 테니스엘보우는 근맥에 기혈 조화를 주었으니 큰 문제 없을 걸로 봅니다. 기타 다른 애로점은 장 박사님께서 고쳐주실 겁니다.”

윤도가 인사를 건넸다. 전초전을 끝내는 통보였다.

“아하하핫!”

원장실로 돌아온 장 박사는 한참 동안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채 선생은 우리 한의학계의 보물이 될 걸세.”

“......”

“표정이 왜 그런가? 마음에 안 드나?”

“그건 아니고 전초전이라는 말이 이해가 안 돼서요.”

“말 그대로 전초전 아닌가? 방금 그 환자가 지용강이라고 인허가부서 실무 과장이라네. 서기관.”

“예?”

“노 차관 복심이기도 하고 국장의 측근이기도 하지. 왜 국어에 보면 은유법이라는 게 있지 않나?”

“그럼 에둘러?”

“요즘 사람들 말로 약 좀 뿌려둔 거지. 게다가 측근이 실제로 경험한 일이니 우리 말빨도 먹힐 것 아닌가?”

“아...”

“노 차관은 강직한 사람일세. 채 선생 의술이 좋다고 해도 느닷없이 실력발휘를 하겠다고 하면 거부감 일으킬 공산이 크지. 그래서 옆구리 슬쩍 찌르고 가는 걸세.”

“이제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나는 이해가 안 되네.”

장 박사가 고개를 저었다.

“뭐가 말씀인지요?”

“방금 그 지 과장 말일세. 척추관협착에 대해 침을 놓은 것 맞지?”

“예.”

“자침법이 이해가 안 되어서 말일세.”

“승부혈과 대추혈 때문이로군요?”

“맞네. 내 진맥으로 지 과장은 명문혈부터 요양관, 요유, 장강혈 쪽이 문제였네만... 나중 두 혈도 상체의 애로를 푸는 혈자리들이고.”

“맞습니다. 특히 요양관혈자리가 최악이었습니다.”

“그런데 색 다르게 승부혈부터 침을 넣었네. 크게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대추혈도 그렇고...”

“또 맞습니다. 두 혈은 직접 치료보다 간접 치료를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간접 치료?”

“그 환자는 중심 척추 혈자리가 다 바닥이었습니다. 만약 그 자리를 선택했다면 약간의 차도는 있을지언정 일침즉쾌의 효과는 없었을 겁니다.”

“비기로군?”

장 박사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비유를 한다면 박사님의 전초전과 비슷하겠습니다. 왜 물고기도 때로는 먼 데부터 몰아와야 많이 잡히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오, 그러니까 허리 아래의 질환이기에 상부로부터 힘을 모아 막힌 혈자리를 뚫는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고장난 혈자리에 대한 판단이 현미경처럼 정확했다는 건데?”

“다행히 진맥이 잘 잡혀준 덕이지요. 그 덕에 침이 잘 통했고 그래서 굽은 몸을 펴는 것까지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굉장하군. 나도 그게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상부혈에서 하부혈을 조절할 능력이 못 되기에 직접 아시혈에 자침을 하던 터인데...”

“전초전이 끝났으면 이제 본선으로 가시죠.”

“그래야겠지?”

“예.”

“채 선생.”

장 박사가 다가와 윤도의 양 어깨를 잡았다.

“예.”

“부탁하네. 이 사업은 우리 한의학의 발전에 꼭 필요한 일이네. 한의학의 중흥을 위한 기회이기도 하고.”

“......”

“게다가 이 회장님이라는 걸출한 후원자도 있지. 이런 시기에 채 선생처럼 재주 있는 한의사가 등장한 것도 이유가 있는 거 아니겠는가?”

“......”

“내 욕심 차리자고 하는 일은 아닐세. 그러니 채 선생의 빛나는 의술을 보여주시게. 지성이면 감천이니 수천 년 한의학의 우수성을 보고 나면 안 될 일도 되지 않겠는가?”

“박사님의 타겟은 노 차관이군요?”

“그렇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세 옵션 중에서는 그 쪽이 그나마 수월할 테니까. 노 차관의 허리질환과 안검염, 그 아들의 연축성발성장애, 마지막으로 이 국장 아내의 뇌염...”

“수월...”

“내 판단이 틀렸나?”

“제 생각은 노 차관의 아들 쪽입니다.”

“연축성발성장애?”

장 박사가 파뜩 고개를 들었다.

“예.”

“가능한가?”

“장담은 못하지만 시도해 보고 싶습니다.”

“채 선생...”

“노 차관의 아들이 가장 젊지 않습니까? 같은 수고라면 가장 젊은 사람을 치료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허헛, 대단하군. 역시 젊은 사람은 달라.”

“허락하시는 겁니까?”

“허락이랄 게 뭐 있나? 이 일의 핵심은 채 선생일세. 나는 그저 자리를 펴줄 뿐.”

“그럼 박사님 병실을 하나 빌려주시겠습니까?”

“그거야 문제가 있겠나? 따로 더 준비할 건 없나?”

“노 차관 아들의 전화번호와... 기도가 필요하겠죠.”

“전화번호도 어렵지 않네. 노 차관 아들이 다니는 대학의 교수 중에 내 지인이 여럿이니 말일세.”

“반가운 소리군요.”

“언제 시도할 생각인가? 노 차관과는 오늘 저녁에 만나기로 했네만.”

“가능하면 그 전에 끝내 보겠습니다. 전초전 2가 되겠군요.”

윤도의 대답은 막힘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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