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장침 서울 상륙-1
“으악!”
신당동 윤도의 집에 비명이 터졌다. 어머니와 윤철의 비명이었다. 어머니는 느닷없이 제대했다는 윤도 때문에 뒤집어졌고 윤철은 흰 스포츠카에 빵빵 터졌다. 전화를 하지 않은 탓이었다. 가족들을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
“이거 저번에 내가 돌려준 찬데?”
박 기사가 떠나기 무섭게 윤철이 윤도를 보았다.
“다시 타게 되었다.”
“그럼 이제 형 차야?”
“뭐 그렇다고도...”
“으악, 대박, 개대박!”
“너는 지금 차가 문제니? 형이 제대를 했다는데?”
엄마가 윤철에게 눈을 부라렸다.
“쳇, 공보의가 군대야? 솔직히 꿀보직 중에서도 상 꿀보직이지. 난 공보의하라고 하면 군대 한 번 더 가겠다.”
윤철이 콧방귀를 뀌었다.
윤도보다 두 살 어린 윤철은 대학 2학년을 마치고 7사단에서 군복무를 했다. 강원도 심산유곡의 휴전선을 지켰다. 그래서 눈, 제설, 폭설 같은 단어를 몸서리치도록 싫어한다. 걸핏하면 한강보다 많은 눈을 치웠다고 각을 세우는 상황이었다.
“진짜 제대한 거야? 휴가 아니고?”
어머니가 다시 물었다.
“저번에 여객선 사고 때 인명구조 돕고 중요 범인 검거 도왔잖아요? 그 공로로 소집해제가 되었다네요. 다시 섬으로 갈까요?”
“아, 아니... 나는 그저 믿기지 않아서...”
“절 받으세요.”
“절은 무슨... 얘, 절은 내가 국방분지 병무청인지 한테 해야겠다. 이렇게 빨리 돌려보내줘서.”
“그러게 말이야. 좀 팍팍 구르다 와야 하는 건데...”
윤철이 애정어린 심술보를 터트렸다.
“저 심보하곤... 아빠한테 빨리 전화나 해. 형 제대했다고.”
어머니가 빼액 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윤철의 관심은 거기 있지 않았다.
“형, 나 저거 한 번 타보면 안 될까? 그때 가져다주느라 잠깐 타봤는데 승차감이 완전 빤똬스튁하더라.”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랴? 헛소리 그만하고 짐이나 내려라.”
윤도가 동생 등을 밀었다.
딸깍!
방문을 열었다. 방 안은 그대로였다. 어머니가 날마다 관리했다는 반증이었다. 책부터 정리했다. 섬마을에서 챙긴 사례와 메모도 잘 끼워두었다. 신비경은 물론, 산해경과 함께 서랍에 고이 넣고 잘 닫았다.
“이어, 아들!”
아버지는 8시가 되기 전에 귀가했다. 허름한 점퍼 차림이기는 전과 다름이 없었다.
“큰 아들 채윤도 공보의의 의무를 마치고 소집해제를 명 받았습니다.”
윤도가 거수경례를 했다. 경례는 훈련소 이후에 처음이었다.
“좋아, 역시 내 아들이다. 일년도 안 돼서 공로 제대라니. 내 친구 놈들 내 카톡보고 다 뒤집어지더라.”
아버지가 양 어깨를 잡아주었다. 그 손길은 오늘도 듬직했다.
“아, 진짜... 나 제대했을 때는 밤 12시에 들어오시더니...”
윤철이 볼멘소리를 냈다.
“얌마, 너는 만기제대고 형은 특별제대잖니? 그러니 특별하게 대해야지.”
“그게 말이 되요? 만기 제대가 더 좋은 거지.”
“지방 방송 아웃. 아무튼 기분 조오타. 앉자.”
아버지가 윤도를 당겼다. 오랜만에 가족의 파티가 시작되었다. 어머니의 솜씨가 발휘되면서 식탁은 육해공군 요리가 넘치고 있었다.
“그나저나 대통령 바뀌니까 나라 좋아졌구나. 한만큼 보상받는 사회가 되다니...”
“운이 좋았던 거죠, 뭐.”
윤도가 대답했다.
“얘는, 그게 무슨 운이야? 사람 살리는 게 아무나 하는 일이니? 그것도 한두 명도 아닌데...”어머니가 거들고 나섰다.
“어쨌든 고생했고, 간만에 건배 한 번 하자.”
아버지가 잔을 들었다. 윤도 아버지는 작은 가방공장을 경영한다. 브랜드를 준비하다 두 번이나 털어먹었다. 그래서 윤도네 집은 만년 하위 중산층이다. 금수저는 꿈도 못 꾸지만 흙수저까지는 아니었다. 아버지의 뚝심과 성실 덕분이었다.
“당신은 많이 마시지 말아요. 안 그래도 늑막통이 도져서 끙끙거리면서...”
“어, 늑막통이 다시 도졌어요?”
샴페인을 넘긴 윤도가 물었다.
“이게 고질병 아니냐? 며칠 참으면 또 괜찮아지니까 걱정할 거 없다.”
“제가 한 번 볼 게요.”
“네가?”
아버지가 고개를 들었다. 문득 긴장하는 표정이었다.
“형, 여객선 일로 유명해진 건 알겠는데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야? 군대 가기 전 일 생각 안 나?”
윤철이 과거를 상기 시켰다.
“아, 그거...”
윤도가 얼굴을 붉혔다. 전과가 있었다. 이따금 도지는 아버지의 늑막통. 그걸 고쳐주겠다고 일주일 동안 침을 놔준 적이 있었다. 결과는 꽝이었다. 혈자리를 제대로 못 찔러 오히려 통증을 키웠던 것. 결국 아버지는 다른 한의사를 찾아가 통증을 덜었다.
“그래. 괜히 무리하지 말거라. 솔직히 그때 나 무지하게 아팠다. 네 체면 봐서 말은 안 했다만...”아버지의 말도 거절에 가까웠다.
“인정합니다. 그때는 완전 초짜였으니까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1년도 안 지났거든.”
윤철이 현실을 상기시켰다.
“찰라의 순간에 각성하는 사람도 있지.”
보란 듯이 말하며 아버지의 맥을 짚었다. 아버지는 차마 손을 빼지 못했다.
‘아버지...’
맥을 짚다가 울컥 눈물을 쏟을 뻔 했다. 아버지의 병은 늑간통만이 아니었다. 늑간통이 상하의 균형을 깨면서 팔과 어깨, 허리까지 뻗친 것이다. 전립선 사정도 나빴다. 이 쯤 되면 잠도 편히 못 자고 소변도 시원하게 못 볼 일. 그런데도 가족을 위해 내색하지 않고 일하고 있으니 가슴이 울컥해 왔다.
“파티는 그만 끝내죠. 아버지 침부터 놓아야겠어요.”
“야, 나 괜찮아. 침 필요하면 내일 맞을 게. 내일.”
아버지가 손사래를 쳤다.
“아버지, 늑막만 아픈 거 아니죠?”
윤도가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헐렁하던 그 눈빛이 아니었다. 진단을 제대로 마친 권위 있는 의사의 눈빛이었다.
“응? 뭐 그냥 나이들다 보니 여기저기...”
“위 아래 안 아픈데 없잖아요? 빨리 누우세요.”
윤도가 다그쳤다. 실은 눈물이 나올까봐 일부러 소리를 쳤다.
“아, 그 녀석, 술마셨으니까 음주 침술이잖아? 나 괜찮으니까 나중에...”
“한 잔 밖에 안 마셨어요. 그리고 제 침이 전하고 다르니까 첫 침 맞아보고 아프면 안 맞으셔도 되요.”
윤도가 침통을 꺼내들었다. 어머니가 거들자 아버지는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늑간신경통이 어깨하고 팔로 올라갔어요. 저 아래로도 소변빨이 신통치 않고요. 병원은 다니시는 거예요?”
혈자리 주변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그래서 온몸이 아팠나? 난 요즘 가죽 원단이 무거워져서 그런가 했는데...”
아버지가 시선을 돌렸다. 웬만해서는 병원도 안 가는 아버지. 그렇게 번 돈으로 윤도를 한의대에 보내고 윤철도 인서울을 시켰다. 대입 때는 자정에도 꼬박꼬박 학원에 마중 왔던 아버지였다. 그렇게 과로한 까닭인지 아버지의 몸은 곯을 대로 곯아있었다.
“아버지.”
첫 번째 장침을 들고 조용히 말했다.
“왜?”
“이제 고생 끝났어요. 제가 아프지 않게 해드릴 게요.”
“어이구, 말은 고맙다만 오늘 침이나 아프지 않게 잘 부탁한다.”
“침은 다 끝났어요.”
윤도가 손을 떼어보였다.
“응? 들어가는 줄도 몰랐는데?”
아버지가 상체를 살짝 들었다. 윤도가 거울을 보여주었다. 아버지의 눈빛은 그 각도에서 굳어버렸다. 등짝의 심모혈과 영대혈, 격모혈에 꽂힌 장침만 다섯 개였다. 오화침으로 불리는 늑간신경통 혈자리를 장악한 것이다.
등 쪽은 원래 위험이 따르는 경혈.
그럼에도 윤도의 신침은 주저가 없었다. 뒤를 이어 겨드랑이 쪽에도 일침삼혈로 하나가 꽂히고 어깨의 견우혈과 견후혈에도 장침이 들어갔다. 종아리의 삼음교혈에도 장침이 보였다. 그 혈자리는 아버지의 전립선을 위한 혈자리였다. 사실은 회음혈이 더 좋은 자리. 하지만 홀딱 벗길 수 없으니 아버지의 체면을 고려해 차선을 택한 윤도였다.
“......!”
아버지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순식간에 십여 개에 가까운 장침이 들어간 것이다. 놀라움은 아버지의 것만이 아니었다. 어머니와 윤철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그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전에는 분명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척 봐도 초짜였다. 하지만 오늘의 윤도는 확실하게 달랐다. 마치 드라마 속의 명의를 보는 듯한 포스였다.
“우와! 우리 형 맞아? 허준 빙의 포스야.”
윤철이 엄지를 세워주었다.
“.....”
어머니는 말을 잊었다. 여객선 활약 이후로 아들 의술이 많이 좋아진 건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상상 이상이었다. 그 멍한 시선도 윤도가 깨주었다. 어머니의 손도 끌어 당긴 것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어머니도 같이 맞으세요. 허리 아직도 아프죠?”
어머니를 아버지 옆에 앉혔다. 그러자 윤철이 지레 겁을 먹고 튀었다.
“형, 나 피곤해서 먼저 잔다. 참고로 난 아픈데 없거든.”
“짜식! 군대에서 특급전사에 강철심장되었다고 구라 떨더니... 야, 넌 특별히 만리장성만 한 망침을 찔러줄 테니 빨리 나와.”
기념으로 넣어둔 망침을 흔들며 겁을 주었다.
동시에 이해했다. 한의대 6년 동안 윤철은 윤도의 마루타(?)였다. 치맥이나 족발을 떡밥으로 내세워 침술 실험을 했던 것이다.
“아야, 아야!”
······눈물을 찔끔거리면서도 치킨 뒷다리를 뜯던 윤철은 지금 생각해도 고마웠다.
진심이었다.
**
“다녀오겠습니다.”
다음 날, 윤도는 침통과 약병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스포츠카는 타지 않았다. 장 박사와 중요한 일이 내정된 상황. 스포츠카 몰고 다니는 것보다는 조신한 게 좋을 것 같았다.
지하철역에서 노선표를 보았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게 역삼역이었다. 역삼역에는 반월 한의원이 있다. 윤도가 다니던 한의원이었다.
‘반 원장은 내 제대를 알고 있을까?’
알 리가 없다. 혹시 안다고 해도 평가절하할 그였다. 초짜 윤호를 거둔 그였다. 버벅 신공을 지켜본 그였다. 첫날 찌른 침은 들어가다 빠지기 일쑤였고 손은 사시나무보다 빡세게 떨었었다. 오죽하면 풍 맞았냐는 농담까지 나왔을까?
당장 달려가 그가 자랑하던 침술을 보고 싶었다. 당시의 윤도가 보아도 그리 고수는 아니었던 그의 침술. 급 발전한 현재의 시선으로 보면 어떨지 궁금했다.
‘일단 장 박사님.’
허튼 생각을 떨치고 지하철에 올랐다. 객차 안에서 전화 테러를 받았다. 친구들에게 보낸 문자 때문이었다.
<나 제대했다.>
한두 명에게 보낸 말이 친구들에게 쫙 퍼진 모양이었다. 문자도 들어오고 축하전화도 들어왔다. 정신 없는 통에 약속장소가 가까워졌다.
‘후우!’
숨을 고르고 고개를 들었다.
<장백 한방병원>
궁서체로 쓴 병원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장백교 박사의 병원이다. 아담한 4층 건물이었다.
딸깍!
원장실 문이 열렸다. 장 박사는 안에 없었다.
“여기서 기다리세요. 오시면 모시라고 하셨거든요.”
여직원이 소파를 권하고 나갔다.
딸깍!
또 한 번의 문소리와 함께 어색함이 찾아왔다. 주인 없는 방에 혼자 있는다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벽면을 가득 채운 한의서를 보았다. 고서를 비롯해 좀 알려진 책들은 거의 다 있었다. 황제내경을 뽑아들었다. 한의사들에게는 필수영양소 같은 책이다. 책을 펼쳤다.
장 박사는 어떤 부분에 방점을 두고 있을까? 여백 메모는 많았다. 죄다 한문이었다. 한문 또한 한의사가 피할 수 없는 공부였다. 그렇다고 해도 장 박사의 한문은 상상 이상이었다. 거의 모든 메모를 한문으로 도배하고 있었다. 윤도의 시선이 五勞所傷 위에 멈췄다.
五勞所傷.
다섯 가지 피로한 증상이다. 학교 다닐 때 시험에도 나왔던 글귀였다. 하나하나 더듬을 때 낭랑한 목소리가 어깨를 넘어왔다.
“오랜 시간 보는 일은 심장을 피로하게 하여 혈을 상하게 하고, 오래 누워있으면 폐장이 피로해서 기가 상하고, 오래 앉아있으면 비장이 피로해져서 근육이 상하고, 오래 서 있으면 신장이 피로해져서 뼈가 상하고, 오래 걸으면 간장이 피로해져서 힘줄을 상하게 하니 이를 일러 오로(五勞)라 한다.”
“박사님.”
“제대로 맞췄나? 늙으니 기억이 자꾸 가출을 해서 말일세.”
“안녕하셨습니까?”
“제대 축하하네.”
장 박사가 악수를 청해왔다. 윤도는 기꺼이 그 손을 잡았다.
“앉으시게. 늙은이 서재에서 뭐 건질 게 있다고...”
장 박사가 자리를 권했다. 그런 다음 손수 차를 타서 내놓았다.
“올라오느라 고생했지?”
“아닙니다.”
“황칠나무로 만든 차일세. 쭉 마시고 원기를 보충하시게. 그래야 나를 도울 수 있을 테니까.”
“......”
“부담스럽나?”
“예...”
“솔직해서 좋군. 하지만 채 선생은 할 수 있을 걸세.”
“......”
“그럼 손 좀 풀어보려나?”
장 박사가 일어섰다.
“박사님.”
“전초전일세.”
문 앞에 선 그가 웃었다.
전초전?
무슨 전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