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화 (29/265)

갈매도에 뜬 톱스타들-3

상황이 수습되자 미녀들 진맥을 보게 되었다. 그녀들의 반협박이었다. 미녀들의 협박이다 보니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 불편한 부위는 장침을 놓아 해결해 주었다. 문제는 매니저였다.

30대 초반 남자 매니저 윤세웅. 장에 혹이 있었다. 문진을 했더니 이따금 혈변도 나온다고 했다. 혈자리 기세로 봐서는 대장암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랫배가 아프죠?”

윤도가 팔뚝의 공최혈을 누르며 물었다. 공최혈은 대장과 연결되기 때문이었다.

“어, 거길 누르는데 왜 배가 아프죠?”

매니저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장에 좋지 않은 게 있어요. 서울 가시면 바로 병원가세요.”

윤도가 말했다. 그는 즉석에서 서울의 병원에 예약을 때렸다. 원래는 일 바쁘다고 차일피일하던 차. 하지만 부용의 경우와 신통체험을 하고는 등골이 오싹해진 것이다.

윤도가 별장을 나서자 부용과 미녀들도 따라 나왔다.

“선생님, 우리 현서, 이제 괜찮겠죠?”

부용이 걱정스레 물었다.

“약 한두 번 먹으면 해결될 겁니다.”

“어떤 약인지...”

“그건 환자의 프라이버시라서... 궁금하시면 직접 물어보시죠.”

윤도는 프라이버시를 핑계로 넘어갔다.

"혹시 마음에 드는 애는 없었어요?"

"네"

"아, 아뇨. 조크였어요."

"네..."

바다당!

윤도 오토바이에 시동이 걸렸다. 미녀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는 건 굉장히 뜨끈한 일이었다. 윤도는 영웅처럼 환대를 받으며 밤길을 달렸다. 스포츠카 키는 사모님 가방 안에 고이 넣어두었다. 동생 현철에게도 문자를 보냈다. 차를 태산전자에 돌려주라는...

윤도는 기억을 더듬었다. 스포츠카 키가 아니라 장현서의 맥이었다. 그 맥은 느낌은 부용과 통하는 데가 있었다. 공통점은 몸매와 생김새였다. 환부의 맥을 제외하니 그랬다. 맥으로 몸매와 생김새가 파악되는 것이다. 이제마 선생의 사상체질을 생각해 보면 착각은 아닌 것 같았다.

경락과 경혈도 그 사람을 닮는다.

경락과 경혈로도 그 사람의 체형과 생김새를 파악할 수 있다.

윤도에게는 또 하나의 신비였다.

한편 장현서의 원인은...

‘푸훗!’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급성장경색 원인은 기생충이었다.

기생충!

회충, 요충, 편충, 십이지장충, 조충...

기생충도 종류가 굉장히 많다. 뿔 달린 유구조충도 있고 마디로 이루어진 녀석들도 있다. 그들 일부도 장경색을 만드는 주요인의 하나다.

그녀의 기생충은 회충 무리로 짐작되었다. 아름다운 미녀의 뱃속에 와글거리는 회충... 그녀는 구충제를 한 번도 먹지 않았다고 했다. 덕분에 어쩌다 예쁜 배를 회충에게 전세로 내준 것이다.

“푸하하핫!”

윤도는 참았던 웃음을 여기서 터트렸다. 웃음소리는 밤 바다의 파도에 섞여 멀어졌다.

**

“채 선생님.”

항구의 가로등 앞에서 차명균을 만났다.

“어, 죄송합니다. 제가 늦었어요.”

윤도가 오토바이를 세웠다.

“괜찮습니다. 섬 안에서 가면 어딜 가겠습니까?”

“오토바이 쓸 일이 생겼나보죠?”

“그게 아니고 육지 경찰서에서 연락이 와서요.”

“경찰서요?”

윤도 뇌리에 가짜 무당이 스쳐갔다. 하지만 차명균은 그 여자와 관계가 없었다.

“나한테 포상금을 준다네요. 중국 불법어선단 잡는데 공을 세웠다고...”

“잘 됐네요.”

윤도가 반색을 했다.

“잘 되긴요? 그게 누구 때문입니까? 진짜 공로자는 선생님이니 상을 받아도 선생님이...”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바다에 나가지도 않았는데?”

“대신 우리 선원과 저한테 파워를 주지 않았습니까? 차이나 양아치 격퇴 파워.”

“그건 선장님 공이니까 다른 말씀 마세요.”

“그러면 저도 상 안 받습니다. 이 차명균이가 남의 공이나 가로채는 싸가지 없는 인간인 줄 아십니까?”

차명균이 배수진을 치고 나왔다.

“그럼 뭐 저도 앞으로 선장님과 어머니 진료는 대충보는 수 밖에요.”

“예?”

“생각해보세요. 치료는 의사의 본분인데 그걸 가지고 공이라고 하시면 낯 뜨거워서 진료 못합니다.”

“선생님.”

“선장님이 받아서 어머니 맛 난 것 사드리시고 저는 방어나 한 마리 선물로 주세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허어,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럼 저는 바빠서 이만...”

윤도가 사택 쪽으로 뛰었다. 차명균이 불러도 돌아보지 않았다. 첫인상 더러웠던 섬의 3대 권력자 차명균. 알고 보면 그도 잔 정 많은 사람이었다.

사택에 들어서기 무섭게 주인 아줌마와 그 어머니의 진맥으로 실험에 돌입했다. 맥으로 파악되는 체형과 생김새를 확인하고 싶었다. 실험은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

머릿속이 시원해졌다. 아직 더 많은 확인이 필요하지만 맞는 것 같았다. 두 여인네의 맥에서 몸매가 그려진 것이다. 현실과 딱이었다.

‘이 손...’

윤도는 자신의 손가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볼수록 고마운 손가락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의자를 당겨 앉았다. 신비경을 잡고 산해경을 펼쳤다. 금맥을 캐러 나서는 기분이 들었다. 하긴 의술을 다루는 사람에게 이보다 더 소중한 금은보화가 어디 있을까?

윤도의 선택은 서산경이었다. 장경색이 일어난 장현서를 위한 탐색이었다. 신비경으로 영산을 비추었다. 감탕나무와 떡갈나무가 보였다. 윤도는 작은 새를 찾았다.

새의 이름은 ‘비유’.

역병과 기생충에 특효인 약재였다.

기생충 약 쯤은 보건 지소에도 있었다. 그럼에도 산해경 것을 원했다. 지소의 약은 차선책으로 쓸 수 있으니 마음도 여유로웠다.

‘있다.’

한참을 겨눈 후에야 목표물을 찾았다. 비유는 메추라기와 비슷했다. 많은 무리 중에서 한 마리를 잡았다. 새는 거울을 따라 나왔다.

[원산] 산해경

[약재수령] 3년

[약성함유등급] 上中품

[중금속함유] 무

[곰팡이독소] 무

[약재사용유무] 가능

[용법용량] 모든 역병과 기생충증에 사용한다. 머리 부분을 제외한 곳의 털을 뽑고 부리와 다리를 함께 넣어 6시간 이상 탕을 내어 식전에 전량 마신다.

[약효기대치] 上中

6시간.

시간도 충분했다.

약탕기에 탕을 앉히고 자리에 누웠다. 눈앞에 별장 미녀들이 와글거렸다. 윤도는 혈기왕성한 신병(?). 본능까지는 숨길 수 없기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밤이 까무룩 깊어갔다.

“......!”

아침이 되자 창승이 뒤집혔다. 장현서와 미녀들 때문이었다. 급성장경색에서 회복한 장현서. 혼자 오지 않았다. 미녀 친구 셋을 동반하고 내소한 것이다. 창승의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그녀들의 목적은 단호했다.

“채윤도 선생님 뵈러 왔는데요?”

그 말을 들은 세희가 한방진료실을 향해 뛰었다.

“채 선생님.”

“왜요?”

가운을 챙기던 윤도가 돌아보았다.

“나가보세요. 연예인들이 왔어요. 나수예와 이가인, 민지은과 장현서예요.”

나이 먹었어도 은세희는 여자다. 미녀들 이름을 줄줄 꿰고 있었다.

“그럼 여기로 모셔주세요.”

“여기로요?”

“약 때문에 왔을 겁니다. 제가 어제 진료를 좀 봐줬거든요.”

“무슨 병으로...”

“죄송. 이건 공유하기가 좀 그런 게 원인이라서요.”

윤도가 웃었다. 세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복도로 나갔다.

“선생님!”

장현서와 미녀들이 몰려들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아저씨들이나 드나들던 진료실. 미녀들이 들어서자 실내에 해가 들어온 거 같았다.

“어떠세요?”

“편안하게 잤어요. 너무 감사해요.”

“침은 임시방편이었고 이걸 드셔야합니다. 안 그러면 언제 다시 막힐지 모르거든요.”

윤도가 탕제를 내밀었다.

“한약이에요?”

“제 개인 처방입니다. 마실만 할 겁니다.”

장현서가 탕을 받아들었다. 지난 밤 잠시 지옥에 다녀온 그녀. 한 손으로 코를 막은 채 탕을 비워냈다.

“응?”

탕을 마신 장현서 손이 배로 내려갔다.

“왜요?”

“배가...”

“아파요?”

“아프긴 한데 자연이 부르는 그...”

“화장실 다녀오세요. 물 내리지 마시고요.”

윤도가 밖을 가리켰다. 장현서는 미녀들을 보디가드로 세워두고 화장실로 향했다. 볼 일 보는 소리는 좀 요란하게 들렸다. 한참 후에 그녀가 돌아왔다. 얼굴에는 진달래빛 홍조가 가득했다.

“물 안 내렸죠?”

윤도가 일어서자 그녀가 가운을 잡았다.

“보시게요?”

“예. 확인할 게 있어서요.”

“안 보시면 안 돼요?”

앞을 막고서 울상을 짓는 장현서...

“이게 치료가 잘 되고 있는지 확인을 위해...”

윤도가 대답했다. 비유의 효능을 확인하려는 생각이었다.

“제가 사진 찍어왔는데...”

장현서가 고개를 숙인 채 핸드폰을 내밀었다. 연예인 인기스타. 자신의 적나라한 치부를 보여주기 싫은 것이다. 윤도가 화면을 보았다. 과연 회충 조각들이 보였다. 어찌나 많은지 우동 한 그릇을 토막쳐 변기에 부어놓은 것 같았다.

“됐습니다. 시원하게 빠졌네요.”

윤도가 웃었다. 일반 구충제를 먹으면 기생충이 녹아서 나온다. 반면 비유는 원인물질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환자에게는 비위가 상할지 몰라도 치료 입증으로는 그만한 일이 없었다.

“네...”

장현서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쉬었다. 쪽 팔리는 순간을 피한 그녀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화장실 쪽에 한 할머니의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국시를 여기다 버린 거야? 먹는 거 이래 버리면 죄 받아 뒈져.”

“화이고, 이 아까븐 것을 기냥 쌔리부었네? 어떤 쌍판이 이런 못된 짓을 했노? 손모가지를 팍팍!”

다른 할머니 목소리도 따라나왔다.

“아, 진짜...”

장현서의 볼은 불이라도 붙을 듯 뜨겁게 변했다. 이가인이 달려가 할머니들에게 굽신 허리를 조아리고 변기 물을 내렸다.

쏴아아!

국시(?)가 내려가고서야 장현서 얼굴이 조금 펴졌다.

하지만 다시 구겨졌다. 이가인이 윤도에게 한 말 때문이었다.

“선생님, 저 사실 변비 때문에 고생하는데 저도 저 약 좀 먹으면 안 돼요? 굉장히 쌌던데...”

“야! 너 선생님 앞에서...”

장현서가 가인의 입을 막았다.

가인에게도 장침을 꽂아 변비 혈자리를 잡아주었다. 그녀는 침을 뽑기 무섭게 화장실로 직행을 했다. 양은 많이도 나왔다. 변기 물을 세 번이나 내리고서야 겨우 잔해를 치운 이가인이었다.

“아, 개운해. 몸무게가 2kg은 준 것 같아요.”

이가인은 날아갈 듯 가볍게 화장실을 나왔다.

“빨리 오세요, 지소장님!”

지소 앞에서 세희 손이 팔랑거렸다. 현서 일행과 기념사진을 찍기로 한 것이다. 오십 가까운 여자도 스타 연예인에게는 약했다. 창승은 마지못한 듯 끌려나왔다. 윤도가 피식 웃었다. 자칭 타칭 SSS급이라 한 번 튕긴 것이지 미녀라면 사족을 못 쓰던 ‘남자’였다.

“찍어요.”

찍사는 이가인과 민지은이 돌아가며 맡았다. 그녀들도 아주 유명하다. 하지만 장현서의 인기 급상승에 댈 바는 아니었다.

찰칵!

세희 핸드폰이 화면을 담았다.

찰칵!

장현서 핸드폰도 돌아갔다.

찰칵!

윤도 핸드폰에도 찍었다.

“저기요.”

마지막으로 창승의 핸드폰도 나왔다. 체면을 차리다가 결국 핸드폰을 내민 창승이었다. 현서와 이가인은 윤도에게 찰싹 붙어 사진을 찍었다. 심쿵이 따로 없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현서가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급성장경색을 장침 한 방으로 잡았다고?”

창승이 나지막이 물었다.

“예...”

“채 선생 침술, 진짜 다시 봐야겠네. 대체 못 하는 게 뭐야? 그러다 암도 고치는 거 아냐?”

창승이 질린 듯 고개를 저었다. 자고 나면 한 건씩 올려대는 윤도였다.

내일은, 그 다음의 내일에는 또 어떤 병을 고쳐댈지...

끙!

창승의 입에서 나오는 건 탄식 뿐이었다.

5일장의 약작두 달인.

5일장의 약작두 달인.

뿌우웅!

“선생님!”

오후의 배편에서 미녀들이 아우성을 쳤다. 윤도는 쑥스러운 마음으로 배에 올랐다. 휴일을 맞아 나가는 육지 나들이였다. 5일장에서 약초구경을 할 생각이었다.

조용히 나가서 하룻밤 자고 오려던 생각이 틀어져 버렸다. 하필이면 부용과 미녀군단도 섬을 나가는 날인 모양이었다. 가방을 챙기다 인사하러 온 부용과 마주쳤다.

“어디 가세요?”

그녀가 물었다.

“육지에 좀 나가려고요.”

“저도요.”

“서울 가시는 건가요?”

“네. 그래서 선생님께 인사 드리러왔어요.”

부용이 답했다. 빼도 박도 못하고 한 배에 타게 되었다.

“선생님!”

장현서도 반색을 했다. 하지만 이가인과 두 명 미녀의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들은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는데 멀미 걱정 때문이었다.

“멀미 때문에 그러죠?”

윤도가 물었다.

“네...”

이가인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리 오세요. 멀미 없애드릴 게요.”

“정말요?”

“침 한 방이면 되는데 싫으면 혈자리를 누르셔도 됩니다.”

윤도가 호침을 들어보였다. 장침도 문제없지만 겁을 먹을까봐 배려한 것이다.

“전 침 놔주세요.”

이미 윤도 신세를 져본 이가인은 침을 겁내지 않았다. 즉석에서 그녀의 손목 아래 내관혈자리에 호침을 넣었다.

“우와, 속이 금세 편해졌어요.”

일침즉쾌다. 이 정도는 일도 아닌 윤도였다. 하지만 다른 미녀는 긴장을 풀지않았다.

“나는 침이 싫은데...”

“알았어요. 그럼 손목만 주세요.”

윤도가 침을 거두었다. 멀미 정도는 굳이 침을 넣지 않아도 되는 까닭이었다. 내관혈은 멀미 특효약이다. 숙취와 입덧으로 속이 편치 못할 때도 좋다.

“우와, 신기해. 울렁거림이 사라졌어.”

미녀의 얼굴도 이가인처럼 활짝 펴졌다.

“멀미약이 없을 때는 이 내관혈을 눌러주면 되요.”

윤도가 즉석 내관혈 강의를 선보였다. 손목 아래에 손가락 세 개를 대면 그 끝이 바로 내관혈이었다.

“이렇게요?”

바짝 다가선 장현서가 윤도를 따라했다.

“거기다 쌀알을 하나대고 밴드를 붙여도 효과가 좋지요.”

“와아, 한의학 쓸모가 알뜰살뜰하네요?”

미녀들은 그렇게 멀미를 잊었다.

“선생님, 내친 김에 서울까지 같이 가요.”

이가인과 장현서 등의 미녀들이 입을 모았다. 윤도가 웃었다. 마음이야 어딘들 못 따라갈까? 하지만 윤도 신분은 군인과 같은 공중보건의였다.

“아주 가시는 건가요?”

난간의 윤도가 부용에게 물었다.

“푹 쉬었으니 본격적으로 뛰어야죠. 가끔은 내려올 거예요.”

부용은 생기가 넘쳤다. 조금 남았던 얼굴 흉도 화장으로 커버가 되었다. 누가보아도 병자로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스포츠카에 대한 언급도 나오지 않았다. 윤도의 뜻을 받아준 모양이었다.

“부용 씨는 잘 하실 겁니다.”

“선생님 생각해서라도 부끄럽지 않게 일할 거예요.”

“저야 뭐...”

“겸손하실 필요 없어요. 생각해 보세요.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오늘도 저는 별장에서 안드로메다를 오가고 있겠죠. 낳아준 부모님께 욕이나 날리며...”

“병 때문에 일어난 행동입니다. 마음에 담을 필요 없어요.”

“어쨌든 지금 너무 좋아요. 세상이 다 내 것 같은 걸요. 아플 때를 생각하니 못할 일도 없을 것 같고요.”

“다행이네요.”

“언제 공보의 끝나죠?”

“아직 멀었습니다. 군대로 치면 이면 이제 일병이에요.”

“제가 종종 인사드리러 올 게요. 선생님도 서울 오시면 연락하세요. 제 전화번호 알죠?”

“예...”

“약속하신 거예요?”

“네...”

“그리고 저나 제 가족이 아프면 치료도 해주셔야 해요.”

“서울에는 좋은 의사가 많지 않습니까?”

“꼭 그렇지도 않아요.”

부용이 윤도를 바라보았다. 의미심장한 눈빛이었다. 윤도는 그 마음을 알았다. 서울은 물론, 미국과 독일, 일본을 거치고도 낫지 못한 병이었다. 결국 오지의 섬에서 생을 마칠 각오를 했던 부용의 부모님들. 그걸 생각하면 서울이 손에 꼽힐 일은 아니었다.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요,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연락하세요.”

“그럼요. 바로 아버지 회사 헬기라도 띄울 거예요.”

“네.”

“선생님도 파이팅하세요.”

부용이 손을 내밀었다. 윤도가 그 손을 잡았다. 손을 놓는 순간, 부용이 기습적으로 안겨왔다. 불치병을 고쳐준데 대한 육탄 인사였다.

“다음은 내 차례, 내 뒤로는 다 줄 서!”

부용의 인사가 끝나자 현서가 군기를 잡았다. 그녀와도 악수를 하고 진한 포옹을 받았다.

“추웅성!”

부용과 미녀들은 왁자지껄 거수경례를 남기고 멀어졌다. 그녀들을 데려간 건 전부 번쩍번쩍한 세단급 차량이거나 고급 밴이었다.

‘좋네.’

윤도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한 번 뿐인 삶이다. 건강하고 멋지게 부와 명예를 누리는 건 모든 인간의 꿈. 눈앞이 허전해지자 다시 공중보건의 한의사로 돌아왔다. 장터 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약 구경도 하고, 보고 싶은 사람도 있었다.

“자, 이거 한 번 잡솨봐, 남자한테 참 좋아. 어떻게 좋은 지는 먹어보면 알아. 아침 밥상이 달라져.”

약초 장사들의 입담은 오늘도 질퍽했다. 당귀와 작약, 느릅나무와 더덕 등을 구경했다. 산에서 나왔다는 항암버섯도 보았다. 장터에서는 모든 약재가 만병통치약이었다.

구경만 하고 사지는 않았다. 윤도 기준으로 분류하면 약재들 대다수가 下품이었다. 그중 일부는 밭에서 캤고, 또 일부는 키만 멀대처럼 큰 중국산이었다. 중국산이라도 약성이 좋으면 상관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저씨는?’

약 분석을 하던 윤도 시선이 구석 쪽으로 옮겨갔다. 오늘은 있었다. 약작두의 달인 진경태가 두 눈 가득 들어왔다.

철겅철겅!

그의 약작두는 오늘도 마술을 부리고 있었다. 손에 걸리면 단숨에 잘려나갔다. 두께와 크기가 자로 잰 듯했다. 사람들은 그 재주를 구경하느라 넋을 놓았다. 진경태가 재미난 건 약작두 솜씨만이 아니었다. 그는 약값 에누리 없기로 유명했다.

아무리 많이 사도 깎아주지 않는다. 덤도 없다. 부른 가격에 흥정이 들어오면 약을 치워버리는 초강수까지 마다않는다. 그럼 융통성 없는 인간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약이 필요한데 돈이 없는 것 같으면 아예 거저 줘버린다. 그러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도 그는 약작두를 잡고 신명이 났다. 백출은 주사위 크기로 썰어내고 감초와 도라지는 흰떡을 자르듯 한다. 창출은 둥글게 썰고 백합은 손으로 자른다. 이렇듯 약재의 성질에 따라 그의 재주는 백 가지로 변했다. 풀과 나무에서 약재가 되는 것이다.

한방에서 절단은 아주 중요하다. 처방의 균형과 조화를 위한 첫걸음이 바로 약재 절단이었다.

실제로 예전 한의사들은 약작두를 아꼈다. 좋은 약재를 구입해 탕제를 만들 때마다 즉석에서 약재를 꺼내 썰기도 했다. 좋은 치료를 위한 방편의 하나였다. 지금은 일부 약재를 제외하고는 모두 규격화되어 있다. 그렇기에 약작두 다루는 한의사는 보기가 어렵다.

“당귀 좋네요.”

윤도가 슬쩍 인사를 건넸다.

“上품은 아니고 중간은 가오. 사시려면 만원만 내시오.”

진경태는 오늘도 무뚝뚝의 끝판왕이다.

“중간이면 밭에 심은 건가요?”

“밭은 밭이지만 산자락 턱밑 밭이오, 중금속 범벅인 찻길 옆 밭에 비하면 영약이지.”

퉁명스럽지만 솔직했다. 윤도의 분석도 그랬다. 시장통의 약재들이 대개 下下나 下中품인데 비해 이 당귀는 下上이나 中下는 되었다. 산해경의 기준이 아니라면 中上이 될만한 퀼리티였다.

“다른 건 없나요? 산에서 캐신 대물 같은 거...”

“있긴 하지만 가격이 안 맞수다. 보아하니 젊은 양반이 고질병이 있어 아쉬울 것도 아닌 것 같고...”

“보여주세요. 괜찮으면 제가 사죠.”

“가쇼. 젊은 사람이 약초를 얼마나 안다고 번거롭게...”

“알 수도 있지요.”

“그 사람...”

“이 당귀, 초가을 지나서 뽑은 거 아닙니까? 말리는 날 비가 왔든지 아니면 보관에 소홀하셨습니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한 등급은 더 올릴 수 있었겠는데...”

“......!”

윤도 말에 진경태가 고개를 들었다. 돌직구를 느낀 것이다. 그의 눈빛이 이 놈 봐라 하는 쪽으로 변했다.

“이 오가피는 여름에 마련하셨군요. 하지만 남오가피가 아니라 북오가피입니다. 독성이 있는 편이니 많은 양은 먹지말라는 주의를 줘야할 겁니다.”

“......”

“이제 명품 좀 볼 수 있겠습니까?”

윤도의 눈빛이 진경태를 겨누었다. 진경태는 미간을 잔뜩 구기더니 한약봉지를 열어놓았다. 안에서 나온 약재는 흙을 바른 고구마처럼 생겼다. 바로 봉령이었다.

“뭔지는 알겠소?”

진경태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윤도의 분석이 펼쳐졌다.

[원산] 한국 자연산

[약재수령] 7년

[약성함유등급] 中上품

[중금속함유] 무

[곰팡이독소] 무

[약재사용유무] 가능

[용법용량] 기존용법 참조

[약효기대치] 中上

中上품.

오랜만에 괜찮은 분석이 나왔다. 재배가 아니라 자연산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약성이 가장 잘 응축된 겨울에 캤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귀한 적봉령이군요.”

“흐음...”

“약성이 좋은 겨울에 캐셨고... 上품으로 보입니다.”

일반적 유통기준에 맞춰 上 등급을 주었다.

“뭘 더 아시오?”

“버드나무와 식초를 주의해야겠죠. 함께 복용하는 건 금기사항이니...”

“당신, 약초꾼이오?”

꾼은 꾼을 알아보는 것. 윤도가 허튼 사람이 아님을 알자 진경태가 관심을 보였다.

“초짜 한의사입니다.”

“한의사? 그건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신가? 나 이래 봬도 한약사니 구라깔 생각일랑 마시오. 쥐꼬리 월급에 목매기 싫어 때려치우고 이 짓이지만.”

“면허증 가지고 올까요?”

“한의사의 면허는 진맥 아니오? 그깐 종이 쪼가리에는 관심도 없고...”

진경태가 손목을 들어보였다. 윤도가 그걸 낚아채 진맥을 짚었다.

“한 쪽 레이더가 고장나고도 약작두 솜씨가 신기에 가깝다...? 대단하시네요.”

“레이더?”

“녹내장이군요. 한 쪽 눈 시신경이 죽어 한 눈으로 버티시죠?”

“......!”

“장침을 몇 방 놓으면 막힌 혈이 뚫릴 지도 모르겠는데... 큰 공사라 장터에서 벌일 판은 아니고... 속는 셈치고 언제 갈매도 한 번 들어오세요.”

“그럼 당신이 갈매도 한의?”

진경태 눈빛이 변했다.

“저를 아십니까?”

“소문은 들었지. 새파란 젊은이가 침술이며 약재 보는 눈이 제법이라고 하던데...”

“누가 그러던가요?”

“참숯 한의원장 황녹수...”

“소문이란 원래 과장되기 마련이죠. 장담은 못하지만 시도해볼 가치는 있는 것 같으니 근간 한 번 들르시기 바랍니다.”

윤도는 쌍화탕 재료를 몇 가지 골라들고 일어섰다. 진경태는 윤도의 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귀신처럼 좋은 약재만 골라 담는 윤도였다.

윤도와 진경태.

앞으로 이어질 인연이 이렇게 만났다.

‘허어, 나이 고작 서른 미만인데 약재 눈은 죽은 스승 고봉달 급이니...’

진경태는 무엇에 홀린 듯, 멀어지는 윤도의 뒤통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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