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화 (27/265)

갈매도에 뜬 톱스타들-1

<채윤도가 별장 재벌 딸의 불치병을 치료했다.>

<보건 지소 한의사가 죽은 별장 아들을 살렸다.>

소문은 해무(海霧)처럼 섬을 덮었다. 부용에게 감염된 간호사의 피부병을 고쳐준 게 발단이었다. 그녀와 친분이 있던 항구 직원이 전말을 퍼뜨린 것이다. 사모님은 치료장소로 별장의 방 하나를 기꺼이 내주었다. 치료는 성공이었다. 그녀 얼굴의 일부이던 마스크는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또 한 사람의 오크였던 간호사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를 데리러 온 남편과 중학생 딸도 그랬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부용도 몇 번이고 같은 말을 했다. 그녀를 간호하다 피부 괴질에 걸린 간호사였다. 보상을 해주었다지만 마음에 짐으로 남았던 일. 그 짐을 벗는 부용과 사모님이었다.

“허어!”

소문을 확인한 이장은 말문이 막혔다.

“아이고, 사람 잘못 봤네.”

어촌계장도 장탄식을 했다.

술자리나 행사 때마다 창승 편을 들었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세상이 변해버렸다. 일주일에 이틀. S대 나온 의사 한 번 보자고 줄을 잇던 창승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대신 일주일에 나흘이나 진료, 그러나 일부 침 선호자를 제외하고는 파리를 날리던 윤도의 진료는 완판 매진급으로 변했다.

아픈 사람들이 몰려왔다.

아프지 않은 사람들도 몰려왔다.

소문이 소문을 낳았다.

어떤 날은 50여 명이 줄을 선적도 있었다. 섬 환자 전부가 몰려온 줄만 알았다. 그래도 윤도는 인상을 찡그리지 않았다. 환자가 없어 뻘쭘하던 윤도였다. 편하기는 해도 자존심이 상했었다. 그런 차에 몰려오는 환자들...

윤도는 최선을 다해 시침을 했다. 산해경 속에서 꺼내온 약도 치료를 거들었다.

일침즉쾌의 신침에 더불어 즉방즉효의 산해경 영약들.

이제는 장 박사의 조언까지 덧붙였다. 영약의 가루나 다린 물을 침 끝에 묻혀 시침함으로써 효과를 배가 시킨 것. 그렇게 하니 적은 양의 약재로 좀 더 많은 사람의 치료를 도울 수 있었다. 물론 침에 약재를 묻히면 감염의 우려도 있으므로 충분히 주의를 했다.

와다당!

목요일 오후, 진료 줄이 줄어들자 차명균의 오토바이를 빌렸다. 윤도는 섬 끝을 향해 달렸다. 거기 사는 할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선상님!”

윤도를 기억하는 할머니가 산사나무 아래서 손을 흔들었다. 전화를 했더니 그때부터 나와 있던 모양이었다.

“동생 분 집은 어디죠?”

오토바이를 세운 윤도가 물었다.

“쩌그...”

할머니가 낡은 집을 가리켰다. 담장은 허름하지만 마당은 나뭇잎 하나 없이 깨끗했다. 동생은 마루 끝에 앉아 멀리를 보고 있었다. 수평선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괴이하면서도 고단해 보였다. 혼자 늙어간다는 거, 치매에 걸린다는 거, 결코 아름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섬이다 보니 도시처럼 요양병원에 보내는 게 아니라 방치하는 경우도 있있다.

“안녕하세요?”

윤도가 먼저 인사를 했다.

“이 년아. 용한 한의사 선상님이시다. 니 년 치매 고쳐주러 오셨어.”

할머니가 윤도를 소개했다.

“지랄 염병... 치매는 무슨...”

동생이 히죽 웃었다. 눈동자가 탁했다. 그나마 정신이 멀리 외출한 때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초기 치매는 이렇게 왔다갔다 할 때가 많았다.

“진맥 좀 볼까요?”

마루에 마주앉아 진맥을 하려는데 어디선가 조개껍데기가 날아왔다.

퍽!

윤도 어깨를 치고 흩어졌다.

“......!”

돌아보니 장년의 여자가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 여자에요. 저 아래 사는 가짜 무당... 우리 동상 꼬셔서 돈 후려 먹는...”

할머니 눈초리가 좋지 않게 변했다.

“당신 뭐여?”

무당이 기세 좋게 다가왔다.

“보건지소 한의사입니다만.”

“한의사는 무슨? 초보 공중보건의지. 쌩 사람 상대로 돈 안 내고 실습하는...”

“공중보건의라고 해도 한의사인 건 사실입니다.”

“헛소리 말고 그 손 놔.”

“이 분은 진료가 필요합니다만.”

“미친 놈, 그 보살은 용왕님의 노여움을 받았어. 너도 헤까닥 돌고 싶지 않으면 어여 손 놓고 찌그러지란 말이야. 끄윽.”

무당의 말 끝에 트림이 붙었다.

“그렇게 못합니다.”

“뭣이여? 니가 지금 줄초상 나는 꼴 보려고 이래? 여기서 부정 타면 이 집 핏줄들이 대대손손 줄줄이 피똥 싸고 죽어.”

“에그머니!”

무당의 과격한 저주에 할머니가 몸서리를 쳤다.

“당신 진짜 무당 맞아요?”

“뭣이여?”

“진짜 무당이라면 사람들 협박하면서 등 칠리 없죠. 이 부적 진짜입니까? 내가 가져가서 전문가에게 감정해 봐도 될까요?”

“뭐여? 니깐 게 무속에 대해 뭘 안다고 주둥이 나불이야?”

“그러는 당신은 의술에 대해 뭘 압니까? 얼굴 뜨고 트림하는 걸 보니 췌장이 꽤 상한 모양인데 자신이나 돌보시죠. 근육도 아프고 살도 아프죠?”

“이 놈아, 좀 보긴 한다만 이건 신통(神通)이여, 신통!”

“가세요. 무면허 의료행위로 고발하기 전에.”

윤도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뭐, 뭐라?”“계속 방해하면 경찰 부릅니다.”

윤도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무당은 치를 떨더니 저주의 융단폭격을 퍼붓고 돌아갔다.

“두고 보자 이 놈, 네 놈이 우리 칠성대감, 용궁대감님을 무시하고 무사할 줄 알아?”

“어휴, 저 저...”

무당의 표독함에 할머니가 몸서리를 쳤다.

“가짜 무당이라고요?”

“그럼. 듣자니 지리산 일대에서 무당들 치다꺼리나 하다가 왔다는데 용한 무당 행세를 하면서 늙은이들 쌈지돈 알겨먹는다니까.”

‘한심한...’

방해물이 사라지자 차분히 진맥에 들어갔다.

‘신문, 내관, 백회혈...’

윤도는 뒤틀린 혈자리를 찾아냈다. 신문혈이 특별히 거칠게 튀었다. 침을 꺼내 차분히 다스렸다. 노인의 혈자리라 신중해야 했다. 질병으로 보면 침을 깊이 넣어야하지만 나이와 건강도로 보아 무리하면 안 될 일...

미세하게 섬세하게...

머리의 백회혈 피부를 꿰었다. 왼손 둘째손가락으로 장침 끝을 누른 채 밀어 넣었다. 침 각도가 좋아 혈관은 건드리지 않았다. 최종 조율을 끝내자 동생의 혈자리들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눈동자에 서린 광기도 조금씩 빠져나갔다.

“졸려.”

동생이 하품을 했다.

‘오케이.’

윤도가 주먹을 쥐었다. 신침은 치매에도 통했다. 혈자리와 맥만 봐도 확신이 섰다. 다시 재발할 맥이 아니었다. 동생의 입에 산해경에서 구한 피로회복 열매를 물려주었다. 동생은 까무룩 잠이 들었다.

“한참 잘지 모릅니다. 일어나면 가뜬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화이고, 진짜 용하시네. 쩌번에 가짜 무당이 푸닥거리할 때는 선불 맞은 노루처럼 뛰드만.”

“이제 괜찮을 거예요.”

“치료비는 올매나?”

“안 내셔도 됩니다.”

“뭔 소리여? 여까정 왕진을 왔는데?”

할머니가 극구 쌈지돈을 꺼내놓았다. 속곳에 박음질로 만든 비밀 주머니가 출처였다.

“그걸로 동생분 맛난 거나 만들어 드리세요. 안 그러면 어르신 다시 안 볼 겁니다.”

윤도가 괜한 으름장을 놓았다.

“그럼 안 되지...”

할머니가 울상을 지었다.

“미안하시면 지소 오실 때 감자나 몇 개 쪄오세요. 아셨죠?”

“그거야 무슨 힘이 들까마는...”

“그럼 저는 갑니다.”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멀리 여객선이 들어오고 있었다. 속도를 올렸다. 본소에서 약이 들어오는 날이다. 세희를 도와 약을 운반할 생각이었다.

뿌우웅!

고동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응?’

선착장에 도착한 윤도가 시선을 가다듬었다. 가짜 무당 때문이었다. 그녀 옆에 붙어선 갈매지소 경찰관이 보였다. 퇴직 직전의 경찰관, 불뚝 나온 똥배처럼 늘 푸근한데 오늘은 근엄 모드다. 그림이 심상치 않았다.

“쩌거시 선상님 모함하고 다니다가 고소를 당했대. 쩌그 해당화집 할망구 있지? 그 할망구가 전에 아플 때 100만 원짜리 푸닥거리를 한 모양이야. 그때는 아무 효과 없다가 이번에 선상님 침 맞고 다 나았잖아? 그런데 조금 전에 가짜 무당이 찾아와 우리 채 선상이 돌팔이라고 흉을 보니까 돈 게우라고 고소를 했다누만.”

부두 주변에 사는 할머니가 실황중계를 해주었다.

‘허얼.’

“제 주제 모르고 날 뛰다가 된통 걸렸지. 아이고 꼬셔라.”

할머니는 박장대소를 감추지 않았다. 그러자 주저하던 무당이 다가와 윤도 손을 잡았다.

“뭡니까?”

“선생, 아까 그 뭣이냐... 나보고 췌장이 안 좋다고 했었지? 살덩이가 아픈 것도 그것 때문인가? 선생 장침이 그래 좋으면 나 배 오기 전에 침 좀 놔주면 안 될까?”

‘허얼.’

“잘못하면 몇 달 살 거 같은데 온몸이 쑤셔서 그래.”

무당은 금세라도 울 지경이었다.

“가셔서 조사 잘 받고 그동안 불쌍한 할머니들 돈 우려먹은 거 다 물어주고 오세요. 그럼 생각해 보죠.”

윤도가 단칼에 잘랐다. 병을 생각하면 침을 놔주고 싶지만 당장 죽을 병도 아니었다.

“아이고, 내 팔자야.”

무당은 울상이 되어 한숨을 쉬었다. 그렇잖아도 뭔가 조치를 취하려던 가짜 무당. 이렇게 정리가 되니 다행이었다.

“채 선생님.”

골똘하던 윤도 귀에 맑은 소리가 들어왔다. 별장의 부용이었다. 하얀 블라우스에 검은 스키니 바지, 선글라스를 끼고 벤츠에 기댄 그녀는 스타의 라인에 못지않았다. 항구에서 일하는 몇 몇 젊은 축의 사람들은 그녀의 눈부심에 홀려 눈을 힐금거리고 있었다.

“나오셨어요?”

윤도가 인사를 받았다. 부용 옆에 선 박 기사도 인사를 해왔다. 차는 두 대였다.

“선생님도 배에 볼 일 있어요?”

“약하고 물품이 들어오는 날이거든요. 부용 씨는요?”

“저는 손님이 좀...”

“얼굴 좀 봐도 되요?”

“당연하죠.”

부용은 기꺼이 선글라스를 벗어주었다. 윤도가 얼굴을 만졌다. 눌렀다 떼어도 문제가 없었다. 빠르게 흉이 가시고 있는 얼굴. 일부 잡티를 제외하면 정상에 가까운 회복이었다.

“괜찮네요. 몸은 어때요?”

“기분 Good이에요. 아프지 않던 때보다 더 좋은 거 같아요.”

“좋아보이기는 해요.”

“바쁘지 않으시면 제 손님들 소개해드릴 게요.”

“손님들요?”

“이제 곧 현장 복귀하려고요. 제가 건강을 되찾았다니까 저랑 일하던 애들이 굳이 이 먼 데까지... 어?”

부용이 배를 향해 두 손을 흔들었다. 윤도의 시선도 그곳을 향했다. 그런데 윤도만 그런 게 아니었다. 조금 늦게 달려온 세희도, 항구의 사람들도 한 곳으로 시선이 쏠렸다. 일단은 이진웅이 먼저 내렸다. 그는 윤도에게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문제는 진웅의 뒤였다.

“언니!”

“대표님!”

어디서 들리는 파랑새의 합창일까? 눈앞이 돌연 화사해지더니 믿기지 않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한 무더기의 꽃다발 뒤에서 SSS급의 미녀 스타 10여 명이 등장한 것이다.

수행 매니저 두 명을 동반한 섹시 미녀군단. 하나 같이 판타스틱한 몸매를 가진 미녀들이다. 시원하게 노출된 허벅지와 세련된 의상.

한 마디로 별천지에서 온 요정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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