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재를 투시하는 눈-1
“오수혈은 어떻게 다스리느냐?”
-정혈은 명치 끝이 더부룩한 것을 치료합니다.
-형혈은 몸의 열을 치료합니다.
-수혈은 몸이 무겁고 관절이 아픈 것을 치료합니다.
-경혈은 천식과 기침, 추웠다 더웠다 하는 걸 치료합니다.
-합혈을 설사하는 증상을 치료합니다.
“침의 부작용을 아느냐?”
부작용은 훈침입니다. 너무 피곤할 때, 술을 마셨을 때, 너무 배가 고플 때, 너무 놀랐을 때 등은 시침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훈침은 어지러운 증상이 생길 수 있고 가슴이 울렁거리며 숨이 차고, 메스껍고 토할 것 같으며 사지가 차가워지기도 합니다.
“선생님.”
“채 선생님.”
웅얼거리는 환청과 함께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
윤도가 눈을 떴다. 시선에 들어온 건 보건소 본소의 6급 고참 간호사였다.
“......?”
윤도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병원이었다.
“저 아시죠?”
“그럼요. 배 선생님...”
배인숙, 그녀는 본소의 보건행정 팀장역이다. 세희의 연락을 받고 본소에서 달려온 모양이었다.
“지소장님은요?”
“선생님 덕분에 맹장이 안 터졌대요. 수술 끝나고 병실로 올라가 있어요.”
“그래요?”
“은 소장님에게 얘기 들었어요. 침으로 맹장 터지는 걸 막았다면서요?”
“그건...”
“침술이 굉장하다면서요?”
“......”
“진짜 대단해요. 여기 의사들 말이 선생님이 개복 후에 침을 빼달라고 했다더라고요.”
“......”
“처음에는 무시하고 그냥 빼버릴까 싶었는데 하도 간곡하길래 그대로 오퍼레이션 진행했는데 개복하고 잘라내려고 하는 순간 맹장이 터졌다는 거예요.”
“......”
“예언이 너무 정확해서 다들 한동안 넋 놓고 있었대요.”
“......”
“곧 소장님도 오실 거예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장 이하 보건소 의료진들이 들어섰다. 소장과 내과의, 그리고 각 보건지소와 진료소의 공중보건의를 합쳐 넷이었다.
“채 선생님.”
공중보건의들이 먼저 반색을 했다. 특히 우종경이 그랬다. 그 역시 한의사 출신의 공중보건의였다.
“수고 많았어요.”
소장은 여자다. 100세 건강운동에 빠져 있다. 그렇기에 진료를 등한시 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 반면 공무원으로서의 보여주기 행정 감각은 탁월했다. 자칫하면 대형사고가 날 뻔 한 상황. 그걸 무마한 사건이니 반색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군수님께도 보고했어요. 공무원의 표상이라고 좋아하시더라고요.”
“네...”
“몸은 어때요?”
“견딜만합니다.”
“아무튼 갈매도가 우리 보건소의 핵심 진료인력이네요. S대 의사에 더불어 한의 명의까지...”
“과찬이십니다.”
“무슨 말씀을요, 은세희 소장이 벌써 좌라락 나팔을 불었어요. 이 사건 직전에도 굉장했다면서요? 그러고 보니 채 선생님 진짜 내숭이시네. 그 정도면 우리 본소에 계셔야지 침도 못 놓는 초짜처럼 말씀하시더니...”
배인숙 팀장이 부지런히 입을 털어댔다.
한바탕 소란을 떤 후에야 그들은 창승의 병실로 진격을 했다. 윤도도 슬슬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몸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날짜가 좋았다. 게다가 오늘은 이 지역에 5장일 서는 날이었다.
‘그래도 얼굴은 보고 가야겠지?’
딸깍!
창승의 병실문을 열었다. 안에는 세 사람이 있었다. 응급환자였던 창승과 서울에서 시속 120KM로 달려온 그의 어머니, 그리고 담당의사...
“어, 오셨네요.”
의사가 윤도를 알아보았다.
“어머, 이 분이?”
창승의 어머니가 벌떡 일어섰다.
“맞습니다. 아드님 맹장을 보호해준 구세주죠. 저희는 숟가락만 얹었을 뿐.”
“아유,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어머니가 윤도 손을 잡았다. 그 사이에 창승은 눈을 감았다. 자는 척 하는 것이다. 하긴 SSS 등급의 잘난 자존심이 윤도에게 굽히고 싶을까? 게다가 그 주체가 한의학이었다. 그가 의술로 인정도 안 하는 케케묵은 한의학.
“이 선배님은요?”
윤도가 창승을 돌아보았다.
“덕분에 수술이 깔끔하게 되었대요. 이제 방귀만 뀌면 되요.”
“다행이네요.”
“네, 너무너무 고마워요.”
어머니는 윤도 손을 놓지 않았다. 그 손을 놓으려던 윤도가 주춤 미간을 찡그렸다. 손에서 건너온 진맥의 기운 때문이었다.
“맥을 보니 피곤하시네요? 제 걱정까지 하지마시고 이 선배님 가료나 잘 해주세요.”
슬쩍 진맥을 확인했다. 좋지 않았다. 목이었다. 그 부분에서 진맥이 난맥을 이루었다. 아직 최악까지는 아니지만 나쁜 혈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할 수는 없겠지?’
아들의 응급상황을 알고 천리를 달려온 어머니. 당장 어찌할 정도로 위급한 건 아닌 거 같아서 다음으로 미루었다.
“그럼 저는 이만...”
윤도는 정중한 인사를 남기고 돌아섰다. 창승은 여전히 자는 척 하고 있었다. 슬쩍 넘어갈 줄 알았던 그의 입은 문이 열리고 윤도의 한 발이 복도를 딛는 순간에야 열렸다.
“채 선생.”
“......!”
윤도가 걸음을 멈췄다. 돌아보지는 않았다.
“고마웠어.”
무뚝뚝을 살짝 버무린 인사가 날아왔다. 천천히 돌아보니 창승이 손을 들어보였다. 한의에 대한 인정이다. 자기 몸으로 경험하고서야 결국 윤도를 인정하는 창승이었다.
“푹 쉬고 오세요.”
윤도는 뿌뜻한 미소를 남기고 문을 닫았다. 어깨가 가벼웠다. 신음 같은 문소리를 따라 어머니의 핀잔이 따라나왔다.
“얘는, 인사가 그게 뭐니? 무성의하게... 게다가 같이 근무하는 한의사 선생님이라며...”
“......”
뒷말은 들리지 않았다. 전 같으면 대뜸, 한의사가 의사입니까 하고 빈정을 날렸을 창승이었다. 윤도는 가벼운 걸음으로 병원을 나왔다.
***
5일장이 보였다. 한 길로 쭉 늘어선 들쭉날쭉 난전들. 텃밭에서 거둔 것부터 야산에서 채취한 것들, 바다에서 건진 잡어와 패류가 어우러졌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이제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쉬는 날과 5일장이 겹치면 구경을 나왔던 윤도였다.
한 쪽 구석에 약재들이 있었다. 더러는 산에서 캤다고 하고 또 더러는 텃밭에서 재배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개중에는 외지에서 사다가 이 지역 것인양 파는 것들도 있었다. 전에는 그저 파는 사람의 말만 믿었던 윤도. 오늘은 직접 확인해볼 생각이었다.
맨 먼저 윤도 눈에 들어온 건 당귀와 가시오갈피였다. 이런 것들은 장날마다 볼 수 있었다. 윤도가 좌판 앞에 앉아 가시오갈피를 살폈다.
“사요. 만병통치약입니다. 먹으면 인삼보다 좋아요. 저기 창곡산에서 직접 채취한 겁니다.”
60줄의 아저씨 입에서는 막걸리 냄새가 났다. 벌써 옆 좌판과 질퍽하게 한 잔 나눈 모양이었다. 가시오갈피를 집어드니 약향이 싸아했다. 눈이 뜨끈해지는 느낌과 함께 약 분석이 이루어졌다.
[원산] 중국 재배
[약재수령] 3년
[약성함유등급] 中下품
[중금속함유] 기준치 세 배 초과
[곰팡이독소] 미량
[약재사용여부] 가능
[용법 용량] 기존 용법 참조
[약효기대치] 下下품
윤도가 약재를 내려놓았다. 아저씨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대량 재배 수입산을 가져다 자신이 캤다고 구라를 치고 있는 것.
윤도 손이 당귀로 옮겨갔다. 그건 국산이지만 약성함유량이 낮았다. 야생이 아니라 텃밭에 가꾼 걸 지도 몰랐다.
“이봐요. 싸게 준다니까. 개시도 못했는데 만졌으면 팔아줘야지.”
생떼를 뒤로 하고 하수오 쪽으로 옮겨갔다.
“육방도 아시죠? 그 무인도에게 캔 겁니다. 하수오 좋은 건 알죠? 이런 거 놓치면 인간 아닙니다. 무지 후회합니다.”
이마를 질끈 동여맨 난전의 말도 상큼한 구라였다. 그 또한 중국산으로 나왔다. 거기에 흙을 살짝 입혀 진짜 채집한 것처럼 효과를 낸 프로 사기꾼이었다.
마지막으로 겨우살이를 체크했다. 푸석하고 볼품이 없지만 이 장에서 유일한 물건인 까닭이었다.
[원산] 한국 자생 밤나무
[약재수령] 13년
[약성함유등급] 下中품
[중금속함유] 무
[곰팡이독소] 무
[약재사용여부] 불가
[용법 용량] 기존용법 참조
[약효기대치] 下下품
“.....!”
분석을 감지한 윤도 눈이 동그레졌다. 간만에 국산을 만난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약성이 낮을까? 왜 약재사용 불가로 나왔을까? 바로 밤나무 겨우살이기 때문이었다. 겨우살이는 좋은 한약재지만 밤나무나 버드나무 겨우살이는 잘 이용하지 않는다. 두통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혈압에도 좋고 관절에도 좋고 스테미너에도 좋습니다. 게다가 섬에 자생하는 뽕나무에서 딴 최상품이라는 거 아닙니까? 이게 말로만 듣던 상기생입니다, 상기생.”
입담 좋은 난전상은 멋대로 봉지에 담을 기세였다.
“아저씨!”
윤도가 고개를 들었다.
“얼마치?”
“섬에서 딴 거 맞아요?”
“맞다니까. 젊은 사람이 청개구리 뒷다리라도 고아 먹었나? 왜 사람 말을 못 믿어? 내가 이런 거 장난칠 사람으로 보여? 나 이래 뵈도 먹고 살만 한 사람이라고.”
“그런 분이 밤나무에서 딴 걸 상기생이라고 파세요?”
“......!”
윤도의 돌직구에 난전상이 움찔거렸다.
“버드나무 하고 밤나무에 딴 겨우살이는 안 먹는 게 좋습니다. 그거 먹고 부작용 나면 아저씨가 책임질 건가요?”
“그럼 이게 밤나무에서 땄다는 거야?”
궁지에 몰린 난전상이 핏대를 올리고 나섰다.
“아니면요? 경찰 데려올까요?”
“이 사람이... 당신 뭐야? 식약청 단속반이라도 돼?”
“보건소에 근무하는 한의사입니다만.”
“......!”
윤도의 말에 난전상 기세가 완전히 꺾였다. 한의사는 면허가 있다. 그건 아무나 가질 수 있는 종이쪽지가 아니었다.
“이거 버리세요. 먹으면 두통이 따라옵니다. 약재로 잘 사용하지 않는 걸 가지고 상기생이라고 하시면 안 되죠. 곡기생도 못 되는 데...”
“진짜로 먹으면 두통이 생깁니까?”
혀 짧던 언어도 그새 길어졌다.
“예.”
“아, 어쩐지 그 인간이 싸게 넘기더라니...”
난전상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반 자백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