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265)

신침(神鍼) 열손가락-1

“먹어.”

선임 공보의이자 갈매도 보건지소 지소장인 이창승이 돌돔회를 가리켰다. 섬 지역 선임답게 낚시는 수준급 실력. 윤도의 사고 소식을 인터넷으로 접하고 영양보충을 위해 준비를 했다고 했다.

“뭐 이런 걸 다...”

윤도가 뒷목을 긁었다. 창승은 원래 이런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그도 의사. 대형사고 뒤에 오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등을 의식했는 지도 모른다. 닥치고 굴려먹으려다 윤도가 병원에 입원이라도 하면 대략 낭패다. 의대 인기가 치솟으면서 여학생 비율이 높아지는 통에 공중보건의 숫자가 확 줄어버린 것이다.

“괜찮아?”

초장과 간장을 세트로 밀어주며 한 번 더 묻는다. 뜻밖의 환대에 하마터면 눈물이 나올 뻔 하는 윤도다. 선임은 지능형 이기주의자다. 그저 자기 밖에 모른다. 보건본소에 있을 때도 의사출신 소장과 한 판 붙고 섬 지소로 왔다. 지잡의대 나온 일반의 소장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창승이 명의인 것도 아니었다. 제 아무리 좋은 의대 나왔다고 해도 겨우 인턴을 마친 상황. 임상경험으로는 시골 보건소의 의사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건 처방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위가 안 좋아요-스멕타, 가스터, 티로파 처방.

▶감기가 심해요-씨잘, 시네츄라, 타이레놀, 탄툼액 처방.

▶신경통이에요-치옥트산, 뉴로톤 처방.

▶고혈압이에요-트윈스타정, 레보살탄정, 다이크로짇, 엑스포르테 처방...

최고 의대출신 의사는 어떤가 해서 두어 달 처방을 눈 여겨 보았지만 다른 공중보건의들과 다를 바 없는 처방의 연속이었다.

아무튼 갈매도 지소장이 되자 권위까지 얹어 마치 종합병원 과장이 인턴 다루듯 윤도를 대하던 창승. 그런 그가 살갑게 나오니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윤도였다.

“괜찮냐고?”

“다행히...”

윤도의 눈은 술잔에 있었다. 얼기 직전까지 냉동실에 들었던 맥주. 잔에 이슬이 맺혔다. 그 잔을 잡은 손에서 치직 화기가 느껴졌다. 윤도만의 느낌이었다. 매운탕은 반대였다. 창승의 부탁을 받은 이웃 아주머니가 끓여낸 매운탕은 맛깔스러운 냄새가 났다. 불판 위에서 보글보글 끓었다. 창승의 재촉에 한 수저를 떴다. 이때는 손가락에 한기가 더해졌다.

차가운 걸 잡으면 더워지고,

더운 걸 만지면 차가워지는 느낌.

수저를 놓고 손가락을 보았다. 충격이 몸에서 가시지 않은 걸까? 그런 걸까?

“몇 명 죽었다고?”

골똘한 가운데 창승이 물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몇 명 죽었냐고?”

“34명...”

“한의에서 말하는 천운이네?”

마침내 빈정 작렬이다.

“......”

“하긴 거기서 죽으면 내가 개고생이지. 안 그래도 공보의 딸린다는데 결원 생긴다고 한 명 바로 꽂아줄 것도 아니고...”

“......”

“그러게 내가 뭐랬어? 그런 거 다 쓸 데 없다고 했잖아? 정 외국 가고 싶으면 스페인이나 한 번 다녀오든지 중국 한의가 대수야?”

윤도가 고개를 들었다. 잘 나간다 싶더니 대놓고 옆 고속도로로 새는 게 보였다.

“아무튼 무사해서 다행이야. 중국에서 죽었어봐. 사체운송에 장례에 보상에... 걔들이 시신관리하고 보상이나 제대로 해주겠어?”

“이 선생님.”

“지소장!”

“......”

“기분 상했어? 말이 그렇다는 거야. 현실이잖아?”

“아무리 그래도...”

“골났구만?”

“됐습니다.”

“에이, 왜 그래? 이거 내가 새벽에 포인트에 나가서 아침까지 굶으며 낚아 올린 거야. 육질이 죽여주지 않아?”

“......”

“먹자고. 먹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잖아? 막말로 그 시커먼 호수에서 못 나왔어봐? 이런 거 다 그림의 떡이지.”

이창승은 빈정과 위로에 양다리를 걸친 채 지소장의 권위를 누렸다. 별 수 없이 잔을 부딪쳤다. 공보의 의무복무기간은 무려 3년.

3년차 이창승의 제대 날짜는 내년 4월 15일로 같이 있을 시간이 장구하니 도리가 없었다.

“근무는 어떡할 거야?”

잔을 놓은 창승이 물었다.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 섬의 진료소에는 진료일이라는 게 있다. 창승이 멋대로 정한 스케줄이다.

<채윤도-월, 화, 목, 금>

<이창승-수, 금>

윤도는 일주일에 네 번이고 창승은 두 번이다. 간단히 말해 윤도는 날마다 진료를 해야 하고 창승은 일주일에 두 번만 진료하는 시스템이다. 거기에 대한 이유는 창승의 보건소 본소 예방접종 지원이었다.

그는 특정 시점에 예방접종 지원을 나간다. 그 보상으로 일주일에 이틀만 일하겠다는 속셈이었다. 실제로 그는 지소 가까운 곳에 사택을 얻어두고 거기서 대기한다. 말이 대기지 실은 게임이나 하며 뒹구는 것이다. 수요일과 금요일만 정식으로 출근하는 꼴이었다.

“어, 우리 채 선생 오셨네?”

어구를 지고 오던 70대 황노인이 반색을 했다. 이 갈매도의 터줏대감이다. 관절이 좋지 않아 침을 좋아했다. 윤도의 실력이 좋은 편도 아니지만 칭찬이 후한 사람이었다.

“오늘은 술 마셔서 침 못 놓습니다.”

창승이 잘라 말했다.

“후딱 좀 놔주고 마시면 안 될까? 며칠 침을 못 맞았더니 무릎이 내 무릎이 아니야.”“어르신, 우리 채 선생, 중국에서 죽다 살아온 사람이에요. 같이 간 사람이 자그마치 서른 네 명이나...”

창스의 염장이 거듭 작렬했다.

“술 생각 없으니 그만 끝내죠. 침 놔드리고 쉬겠습니다.”

윤도가 창승을 막고 일어섰다.

“채 선생.”

“화요일 아닙니까? 연가 중이지만 내 진료일이기도 하고...”

윤도가 바람을 일으키자 창승은 어깨만 으쓱거리고 잡지 않았다.

“앉으세요.”

한의 진료실에서 윤도가 말했다. 황노인은 제집처럼 침대에 걸터앉았다. 하긴 섬 주민들에게는 사랑방 같은 곳이기도 했다.

황노인의 무릎을 ㄱ 자세로 잡았다. 관절치료는 소파나 의자에 앉은 채 하는 게 좋다. 그 사이에 진료소장 은세희가 부항준비를 마쳤다. 작은 보건지소에 장(長)만 셋이다. 이창승은 지소장, 윤도는 한의원장으로 불린다. 정식 공무원이자 간호사인 은세희는 공인 간호소장(?)이었다.

“채 선생님 힘든데 내일 오시지...”

은세희가 거들어보지만 황노인은 콧방귀도 안 뀌었다. 윤도의 손이 노인의 무릎 위에서 놀았다. 음곡혈을 잡고 곡천혈을 잡았다.

“......”

혈자리에서 손을 뗀 윤도가 손가락을 털었다. 손끝이 문득 시렸다. 헤이싼시호의 싸아한 느낌이 배어나온 것이다. 그렇잖아도 그저그런 침 실력. 그 잘난 감각마저 사라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겨우 혈자리를 잡아 중완, 관원, 족삼리, 독비, 음곡을 따라가며 침을 꽂았다. 일부는 장침을 넣으면 좋은 혈. 하지만 장침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표면에 살짝 꽂힌 침들은 건드리면 쏟아질 듯 보였다. 그걸 알기라도 하는 듯 황노인 입에서 비명이 나왔다.

“아이고!”

“아프세요?”

“오늘은 왜 이렇게 아파? 잘못 찌른 거 아니야?”

“......”

“쉬는 사람 불렀다고 일부러 골탕 먹이는 거 아니지?”“죄송합니다. 침이란 게 가끔은 아플 때도 있어요.”

뻔한 핑계를 대며 겨우 시침을 마쳤다. 한의에 눈 뜨자고 다녀온 명의순례는 개꽝인 거 같았다. 명의순례 2일차 상해중의약대학에서 시침 실습을 할 때는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착각이었다. 침 놓기가 전보다 더 힘들어졌다.

“나 참...”

겨우 숨을 돌리나 싶을 때 뒤에서 창승의 목소리가 들렸다.

“명의 순례가 아니라 고량주 병나발에 가라오케 순례만 했나? 손까지 떨어?”

돌아보니 창승은 보이지 않았다.

“신경 쓰지 마세요. 그냥 성격이잖아요.”

세희가 웃었다. 50세가 코앞인 그녀는 오지 진료소 근무만 20년 짬밥이다. 공중보건의들의 생리를 잘 안다. 나아가 그녀로써는 자존심 덩어리이자 시간 때우기로 머리가 가득 찬 공중보건의들을 구슬러 잘 부려먹어야 할 책무도 있었다.

<큰 문제없이.>

그녀의 지상과제였다.

“좀 어떠세요?”

침을 빼며 윤도가 물었다.

“어째 괜히 온 거 같네. 더 아파.”

황노인의 말투도 윤도 편은 아니었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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