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280화 (280/281)

280. 옥탑방 옥상에서 III

4선 의원 박재곤이 기자들 앞에서 외치는 모습이 TV 뉴스에 나왔다. 박재곤이 체포된 후에는 여러 뉴스에서 그 모습을 방송했다.

박서윤이 옥탑방 옥상에서 선우현과 함께 TV를 보면서 말했다.

“박재곤이 기자들 앞에서 저렇게 외치는 건, 국민이 아니라 다른 정치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예요.”

“경고하는 거군요.”

“네. 박재곤은 정치 인생 내내 이권을 다른 정치인들과 나눠 먹었어요. 같이 해먹은 정치인들에게 혼자서는 안 죽는다고 경고하는 거죠.”

“그러니까 경찰이 확보한 뇌물 장부를 곽덕구가 근거 없이 아무렇게나 쓴 것으로 만들어달라는 소리네.”

“맞아요.”

“서윤 씨가 그냥 짐작으로 하는 말은 아닐 테고.”

“제가 이번 사건의 피해자라는 게 알려지고 나서, 여기저기서 비서실로 관련 정보를 보내주세요.”

“누가요?”

“대성차 그룹 같은 곳에서요. 그 외에도 우리 회사에 바라는 게 있는 회사들이 박재곤 의원에 관한 정보를 정리해서 보내줬어요. 그중에 겹치는 것만 따로 모았는데, 드려요?”

“나중에 볼게요. 일단 지금은.”

선우현이 옆을 보았다. 김수선과 신나리는 배달 음식을 경쟁적으로 먹고 있었다.

“쟤들이 다 먹기 전에 우리도 좀 먹읍시다.”

신나리가 오른손에 쥔 젓가락으로 스파게티를 집어 먹고 왼손의 포크로는 수육을 찍어 먹으며 말했다.

“언니. 먹는 속도가 장난 아닌데요?”

김수선은 거기에 콜라까지 마셔가며 말했다.

“너도 꽤 먹는다?”

“스무 살의 소화능력은 돌도 씹어먹어요.”

“예전부터 지켜봤는데 그렇게 먹어도 나를 못 이겨.”

“네? 저를 전에도 봤어요?”

옆에서 고기를 먹던 엠투가 고개를 들었다.

“멍?”

김수선이 말을 돌렸다.

“소문을 들었어.”

“앗! 나를 당황하게 해놓고 그 틈에 더 먹는구나!”

◈          ◈          ◈

대성차는 M 연료전지를 탑재한 고급 승용차 프리미어 X8을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 반응은 굉장히 뜨거웠다. 덕분에 여러 나라에서 대성차의 인지도가 꽤 올라갔다.

X8의 반응을 본 다른 회사들도 서둘러 M 연료전지차를 출시했다.

그중에는 전기차를 개조하는 회사도 있고, 테스트 차량에 썼던 방법 그대로 엔진만 M 연료전지와 모터로 교체하는 회사도 있었다.

후자의 경우는 부품 낭비도 심하고 효율도 떨어졌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차조차도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보다는 장점이 많았다.

차를 출시하는 회사가 많아지면서 필요한 M 연료전지의 수요도 급증했다.

대성차 회장 양중근이 손녀인 양수진과 식사를 하며 말했다.

“우리가 프리미어 X8로 선점 효과를 누린 건 맞다. 회사 인지도가 꽤 많이 올라갔지. 그런데 이제 그 효과를 보는 단계는 지났어. 이제부터는 물량 싸움이야.”

양수진이 물었다.

“앞으로는 M 연료전지를 많이 확보하는 회사가 유리해진다는 거죠?”

“그렇지. 누구는 한 달에 만 대 파는데 누구는 십만 대를 판다? 만 대짜리가 먼저 나왔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십만 대짜리가 이긴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 달에 십만 대씩 팔아서 번 돈을 다시 홍보와 연구 개발에 투입할 수 있으니까.”

“할아버지. M 연료전지는 핵심 모듈을 스래곤이 독점 공급하잖아요. 어느 회사에 얼마나 공급할지는 선우현 씨가 결정하고요.”

“그래서 선우현 사장이 중요해. 게다가….”

양중근이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선우현 사장에게는 아직 공개하지 않은 신기술도 있다며?”

“네?”

“그 조폭 두목이랑 기획사 사장 놈이 노리던 게 신기술이라던데.”

“아…. 신기술이 진짜로 존재하는지는 선우현 씨만 알겠죠.”

“그래서 말인데.”

양중근이 양수진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어떻게, 진전이 좀 있냐?”

양수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뇨. 여러 번 찔러봤는데 꿈쩍도 안 해요. 뭐 이런 남자가 다 있지 싶다니까요?”

“선우현 사장이 바람둥이는 아니겠지?”

“그럼 저한테 반응을 보였어야죠.”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니겠지?”

“의심이 가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닌데, 그냥 의심 수준이에요. 아직 승부가 난 거 아니에요.”

대성차 그룹 회장 양중근이 큰소리쳤다.

“뭐든 말만 해라. 내가 팍팍 밀어줄 테니까.”

“누가 밀어준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니까요.”

◈          ◈          ◈

구하니와 남미연이 김수선을 식사에 초대했다. 그들은 고급 레스토랑의 제일 좋은 룸을 잡아놓았다.

남미연이 말했다.

“그날 거기서 구해주셔서 고마워요. 갑자기 나타나서 그 외국 용병 놈들을 막 무찌를 때는 진짜 히어로가 나타난 줄…. 김수선 씨?”

김수선은 음식을 먹느라 바빴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걸 팔고 있었네. 선장님은 맨날 배달 음식만 시켜주던데.”

“김수선 씨?”

김수선이 입에 대게 튀김을 문 채로 물었다.

“네? 왜요?”

“아, 아니에요. 뭐 더 시켜줄까요?”

김수선이 손가락으로 탁자 끝에서 끝까지 가리켰다.

“여기 나온 거 전부 다요.”

“그, 그렇게 많이요?”

“웅…. 자원 낭비인가요?”

“아뇨. 다 먹으면 낭비 아니죠. 시켜줄게요.”

구하니도 말을 걸었다.

“김수선 씨. 신곡 녹음도 하셔야죠. 곡은 다양하게 준비했으니까 고르기만 해요.”

“밥 다 먹고 노래 들으러 갈까요?”

“오늘 바로요?”

“네. 왜요?”

“이번에도 외국어 버전을 내실 거라면 번역도 해야 하고….”

“번역은 직접 하면 돼요. 영어는 잘하고, 고대 언어는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없…. 아니다. 선우현 님이랑 나. 우리 둘보다 잘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거야 알죠. 그게 아니라, 번역하려면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냥 하면 돼요. 언어 잘한다니까요?”

◈          ◈          ◈

김수선은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요리를 행복한 얼굴로 실컷 먹었다. 그런 후에 구하니의 작업실에 들러 곡을 몇 개 들어보았다.

“좋은 곡이 두 개나 있네요?”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에요.”

“여기다가 고대 음악 복원한 거 두 곡만 추가하면 되겠다.”

“어머. 그럼 이번에도 고대 음악 시리즈가 나오는 건가요?”

“그럼요. 제가 옛날 노래를 좋아하거든요. 옛날에 참 많이 들었는데.”

옛날에는 현지협력자에게 통신기를 보낼 여유가 있었다. 김수선은 현지협력자를 통해 그 시대의 음악을 많이 접하고 즐겼다.

구하니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건 그냥 옛날 노래가 아니라 몇천 년 전 고대 노래잖아요.”

“나한테는 다 옛날 노래예요.”

◈          ◈          ◈

김수선은 곡을 두 개 골라놓고 옥탑방 건물로 돌아왔다.

그 건물에는 빈방이 많았다. 김수선은 박서윤의 옆방을 썼다. 그런데 그곳보다는 옥상을 더 좋아했다.

“이래서 선장님이 지상을 안 떠나는구나.”

선우현이 옥상 평상에서 뒹굴며 물었다.

“무슨 소리야?”

“오늘 깨달았습니다.”

“뭘?”

“지상에는 선장님이 시켜준 배달 음식보다 맛있는 게 많다는 것을요.”

“너도 이제 배가 불렀구나. 처음에는 컵라면 하나도 그렇게 맛있어하더니.”

“말을 돌리지 말고 해명을 해보시죠?”

“네가 오늘 먹은 곳의 음식은 여기로 배달이 안 돼. 그래서 못 시켜준 거야.”

“아!”

“납득했으면 일해라.”

“선장님이 일하면 저도 일해야죠.”

선우현이 말을 바꾸었다.

“아니다. 놀아라. 우린 그냥 놀자.”

“보급품을 위성 궤도로 보내야죠. 그게 있어야 우리 선체가 안 쪼개지고 위성 궤도에 떠 있을 수 있습니다.”

“보급용 더미 위성에 뭘 담을지는 네가 결정해.”

“쇼핑이군요.”

◈          ◈          ◈

선우현이 스래곤 연구소 김정수 이사와 최 팀장을 만났다.

“이쪽은 김수선. 위성을 어떻게 만들지는 앞으로 수선이와 의논해서 결정하시죠.”

김정수 이사가 물었다.

“그럼 이분께서 우리 회사로 입사하시는 겁니까?”

“외부 컨설턴트입니다. 내가 어렵게 모셔왔습니다.”

김수선이 작게 말했다.

“어렵게 내려오긴 했습니다.”

김정수가 물었다.

“그럼 컨설팅 범위는 어디까지….”

“실험용 위성 제작과 궤도 설정까지. 그 외에도 물어볼 게 있으면 물어봐요. 우리 수선이가 아는 게 많습니다.”

김수선이 선우현의 귀에 대고 작게 말했다.

“선장님. 지구의 기술과 제가 아는 지구연합의 기술은 직접 호환이 안 되는데요?”

“개발 방향을 조언하는 정도는 할 수 있잖아.”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건 제가 잘하죠.”

“그래. 네가 잔소리를 잘하지.”

선우현이 김수선을 소개해준 후에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뒤에 남은 김정수 이사에게 최 팀장이 물었다.

“김 이사님. 어떻게 하죠?”

“뭘 어떻게 해? ‘우리 수선이’라고 부르시는 거 못 들었냐? 실험용 위성 제작은 김수선 씨의 말이 법이라고 생각해야지.”

“아니, 그거 말고요.”

“예산? 위성은 어차피 사장님 돈으로 쏘는 거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김정수가 물었다.

“그럼 뭐? 왜 말을 빙빙 돌려?”

“사장님은 비서실장님하고 가까우신 거 아니었나요? 그런데 왜 ‘우리 수선이’라고….”

김정수는 멈칫했다.

“어? 어…. 에이. 아니겠지. 분위기가 그런 느낌은 아니었잖아.”

“그런가? 그럼 뭐 아는 여동생 같은 건가?”

“성이 다른데…. 아! 혹시 출생의 비밀?”

“헉! 그건가?”

◈          ◈          ◈

토마스가 한국에 도착했다. 그는 스래곤 견학 신청을 미국에서 미리 했다. 나사를 통한 신청이라 견학까지는 스래곤에서 받아주었다.

토마스가 스래곤에 찾아와 말했다.

“지난번에 우주에서 인공위성 충돌 사태가 벌어졌을 때, 그 결과를 미리 계산해 경고해주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을 만나고 싶습니다.”

토마스는 그 사건으로 인해 미국에서 유명해졌다. 제법 유명한 사람이 찾아왔기 때문에 스래곤에서는 홍보실 직원이 토마스를 상대했다.

직원이 말했다.

“미팅 요청은 회사에서 거절했다고 알고 있는데요.”

“인사라도 하고 싶어서 그럽니다.”

“곤란해요.”

토마스가 몇 번 더 말했지만 씨도 먹히지 않았다. 선우현은 대기업 회장들도 만나지 못한다. 토마스라고 다를 건 없다.

토마스는 결국 연구소 견학 정도만 허락받았다. 보안 시설에는 접근할 수 없지만, 외부에 공개된 공간은 구경할 수 있었다.

토마스가 아쉬워하면서 조세핀에게 말했다.

“그 사람한테 꼭 인사하고 싶었는데.”

“나사에서 출장을 보내준 건, 견학하면서 뭐라도 알아내라는 거였다면서요.”

“연구실의 겉모습만 보고 어떻게 뭘 알아내겠어?”

“박사학위 있다면서요.”

“전공이 달라.”

두 사람은 견학을 마치고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조세핀이 말했다.

“스래곤은 구내식당이 유명하다니까 밥은 먹어보고 가야죠.”

식당에서 접시에 음식을 담던 토마스가 멈칫했다.

“어?”

“왜요?”

토마스가 음식이 담긴 쟁반을 들고 한쪽에 있는 식사 테이블로 걸어가 말을 걸었다.

“혹시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습니까?”

김수선이 밥을 먹다가 고개를 슬쩍 들었다.

“토마스?”

“본 적 있군요! 그러니까 어디서….”

“음…. TV?”

“아….”

토마스가 김수선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다. 분명히 익숙한 느낌인데….”

토마스가 김수선의 등 뒤를 향해 손가락으로 날개를 그려보았다. 토마스의 눈이 커졌다.

“설마, 엔젤?”

“여신이라고 불러요.”

“What?”

조세핀이 옆에서 인사했다.

“수선 씨. 미안해요. 토마스가 이상한 소리를 할 때가 가끔 있어서.”

토마스는 당황했다.

“어? 조세핀이 아는 분이야?”

“우리 동네에 사는 분이에요. 스래곤 직원이셨네.”

조세핀이 토마스를 다른 테이블로 끌고 갔다. 자리에 앉힌 후에 조세핀이 말했다.

“우주에서 엔젤을 봤다는 이야기를 자꾸 하면 정신 상태를 의심받는다고 하지 않았어요? 우주왕복선을 다시는 못 타고 싶어요?”

“타야지. 난 다시 우주에 가야 해. 그래야 엔젤을 다시 만나지. 그런데….”

토마스가 김수선을 보며 말했다.

“위성 궤도에서 조난됐을 때 본 그 느낌인데….”

“토마스가 상상 속에 만들어낸 엔젤은요. 상상 속에서도 얼굴은 못 봤다면서요.”

“상상이 아니야. 분명히 봤어. 그리고 저 여성분은, 등 뒤에 날개만 있으면 느낌이 비슷하겠다 싶은데….”

“수선 씨는 날개가 없잖아요.”

“그러네. 왜 없을까?”

◈          ◈          ◈

신나리가 김수선과 밥을 먹으며 물었다.

“언니. 저 외국인을 알아요?”

“그냥 어쩌다 한 번 본 사이야. 그리고 그때 저 사람은 내 얼굴도 못 봤어.”

김수선이 토마스를 구출할 때는 헬멧을 쓰고 있었다.

“얼굴을 못 봤는데 어떻게 언니를 알아보는 거지? 몸매 보고 아나? 하긴. 언니 몸매가 사람 몸매가 아닌 것 같기는 하죠. 그래서 엔젤이라고 불렀나 보다.”

“엔젤 말고 여신이라고 해줄래?”

“이 언니 그렇게 안 봤는데 자뻑이 심하네요.”

“나 진짜 사람들이 여신이라고 불렀다니까?”

“무슨 여신이요?”

“파괴 여신?”

“아.그럼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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