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279화 (279/281)

279. 옥탑방 옥상에서 II

선우현이 말했다.

“지구연합은 탐사대에 마가 끼는 걸 피하고 싶어 했어.”

그래서 선발대로 출발한 탐사대 지원위성은 선우현이 직접 조종했다. 자동조종장치는 이쪽으로 완전히 넘어온 후에 사용했다.

“엠투도 마찬가지야. 지구연합이 아니라 이곳에서 활동을 시작했지.”

김수선이 물었다.

“역시 엠투는 이쪽 지구에서 개처럼 변했다고 봐야겠군요. 선장님. 지구연합에 엠투처럼 변한 예가 있나요?”

“없지. 지구연합은 엠투 같은 장거리 정찰모듈을 이렇게 오래 가동한 적이 없으니까.”

지구연합은 탐사대가 조사해야 할 환경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엠투를 만들 때 고장이 잘 나지 않는 부품을 쓰고 자가 수리장치까지 탑재했다.

덕분에 엠투는 오랜 세월을 지상에서 활동해도 버텨냈다. 통신기나 단답형 음성 기능 등은 오래돼서 망가졌지만, 다른 기능은 자가 수리장치 덕분에 멀쩡했다.

김수선이 말했다.

“엠투는 진짜 개가 다 됐습니다.”

“맞아. 개처럼 말도 안 듣지.”

“이쪽 지구에서는 전자두뇌가 오염되었을 때의 영향이 지구연합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엠투가 저 정도에서 그친 게 아닐까 합니다.”

김수선이 다른 사례도 꺼냈다.

“최민영의 지난번 꿈도 마가 끼는 것에 저항한 결과로 추측되잖습니까?”

“그 분석을 부정은 못 하겠네. 가능성은 있어.”

“이쪽 세계에도 마가 끼기 시작한 걸까요?”

“아직 알 수 없다. 어쩌다 한 번뿐인 현상일 수도 있으니까.”

“마가 끼는 경우가 늘어난다면요? 지구연합에서는 마가 기계에 낄 때도 있습니다.”

지구연합에서는 그 경우 기계가 오염됐다고 말한다.

“넌 왜 재수 없는 말을 하고 그러냐?”

“그렇긴 하네요. 제가 왜 그랬을까요? 이러다 마가 낄라.”

“하지 말라고.”

“안 할 테니까 밥 먹으러 가시죠.”

“넌 또 먹냐?”

“선장님도 지상에 내려오고 나서 한동안 무척 자주 드셨습니다만? 제가 다 봤습니다만?”

“뷔페 사줄게.”

◈          ◈          ◈

뷔페식당에서 김수선이 감탄했다.

“선장님. 여기는 신들의 축제 현장인가요?”

“나도 처음에 그런 감상을 받았지. 위에서 칼로리바를 씹으면서 구경만 하는 것보다 직접 먹는 게 훨씬 더 좋더라고.”

김수선이 음식을 신나게 먹으며 말했다.

“지상에 내려오길 정말 잘했습니다. 이 좋은 걸 그동안 선장님만 드셨단 말이죠.”

“수선아. 너 이러다 다시 올라가면 아쉬워서 어쩌냐?”

“올라가는 순서는 가위바위보로 정하는 거죠?”

“응. 아니야.”

◈          ◈          ◈

곽덕구가 한동안 숨어있던 비밀 아지트 위치는 조직원들에게도 비밀이었다. 덕구파 간부인 이 부장이나 정 부장도 그 비밀 아지트가 어디 있는지는 몰랐다.

그런데 그곳을 아는 사람이 곽덕구 한 명인 건 아니다. 그가 경호원으로 데리고 다니던 조직원 두 명은, 곽덕구가 그곳에 숨어서 지냈을 때 같이 움직였다.

당연히 그들도 아지트의 위치를 알았다.

형사가 그 조직원에게 말했다.

“너도 알잖아. 덕구파는 완전히 망했어. 조직 재건? 불가능해.”

형사가 곽덕구의 혐의가 적힌 서류를 짚으며 말했다.

“곽덕구는 지금까지 드러난 증거만으로도 감옥에서 영원히 못 나와.”

형사가 선언했다.

“곽덕구는 끝났다.”

조직원이 반박했다.

“사장님은 빽이 많습니다.”

“그래. 그 빽을 쓰면 곽덕구는 사형은 면할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 빽이 너까지 지켜줄 것 같냐?”

압박을 받은 조직원 하나가 결국 입을 열었다.

“경기도 펜션에서 바위 뒤에 숨어있을 때, 사장님이 저한테 총을 겨누고 나가서 싸우라고 했습니다. 자기는 제일 좋은 방탄조끼를 입고 바위 뒤에 숨어있으면서 말이죠.”

형사가 얼른 맞장구를 쳤다.

“그래. 곽덕구는 그런 새끼야. 너를 버려서 자기가 살 수 있으면 얼마든지 그럴 놈이라고.”

“아지트의 위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장부 위치는 저도 모릅니다. 그런데 형사님. 이걸 협조하면….”

“너는 조서 쓸 때 내가 신경 많이 써줄게.”

◈          ◈          ◈

형사들이 곽덕구의 아지트로 찾아가 내부를 수색했다.

아지트에는 소형 금고가 있었다. 그 금고는 강제로 뜯어서 열었다.

“팀장님. 여기는 금괴 몇 개랑 돈 조금밖에 없는데요?”

“잘 찾아봐. 장부가 있을 거다. 우린 그걸 반드시 찾아야 해.”

◈          ◈          ◈

김수선은 옥탑방 옥상에서 지원위성과 연결해 경찰이 수색 중인 현장을 확인했다.

한국의 전파 탐지 체계에 걸리지 않으면서 위성 통신이 가능한 장비는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선우현이 손목에 팔찌처럼 차고 다니는 통신기였다.

그 통신기가 있어야 김수선이 탐사대 지원위성의 관측 카메라를 원격으로 사용할 수 있다.

김수선이 보고했다.

“형사들의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아직도 찾지 못했나 봅니다.”

선우현이 옆에서 같이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잘 숨겨놨겠지. 의심 가는 곳은?”

김수선이 한 손으로 치킨을 먹으며 관측 카메라를 움직였다.

“여기를 보시죠. 집 내부가 아니라 외부인데, 풀의 상태가 다른 곳과 다릅니다. 마치 최근에 땅이라도 파헤쳤다가 다시 덮은 것처럼요.”

“확인해보라고 해야겠다.”

선우현이 안성준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성준이 말했다.

- 갑자기 전화를 주시니까 또 무슨 대형 사건이 터졌나 싶어서 밥이 모래알처럼 느껴집니다. 설마 아니죠?

“그냥 제보할 게 있어서요.”

- 휴우. 밥이 다시 맛있어졌습니다. 무슨 제보입니까?

“경찰에서 곽덕구의 아지트를 수색하러 갔지요?”

- 거기 아는 사람이 있는데, 수색 중이라는 말은 들었습니다.

“아지트로 쓰는 건물 바깥, 서쪽으로 100m 지점의 땅이 수상합니다.”

- 예?

“곽덕구가 마지막 습격을 하기 직전에 장부를 옮긴 게 아닐까 합니다만. 아지트가 수색당할 때를 대비해서요. 최후의 안전장치였겠죠.”

- 아니, 그걸 어떻게 아시…. 설마 지금 거기 계신 겁니까?

“아니요. 지상에서는 잘 안 보일 텐데, 위에서는 보여서 제보하는 겁니다.”

- 아! 드론을 띄우셨군요! 매순이인가요?

“다른 걸 썼습니다.”

탐사대 지원위성의 관측 카메라로 조사했다.

- 다른 드론도 개발하셨군요! 역시 벼룩의 간도 잘 빼먹고 개발도 잘하는 스래곤 사장님! 제가 확인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          ◈          ◈

형사팀장이 곽덕구의 아지트에서 한숨을 쉬었다.

“이거 쉽지 않겠는데? 다 뒤져봐도 장부가 보이지를 않아.”

“숨겨진 공간이 있는 거 아닐까요?”

“지원을 요청해야 하나?”

다른 팀원이 다가왔다.

“팀장님. 광수대 안성준 형사한테서 전화가 왔는데요. 여기서 100m쯤 떨어진 땅을 파보라는데요?”

“응?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제보를 받았답니다.”

“제보? 일단 가 보자.”

형사들이 제보받은 위치로 이동했다.

“여기 풀의 상태가 조금 다르긴 하구나.”

“제가 파겠습니다.”

형사가 삽으로 땅을 팠다.

그리 깊게 파지 않았는데도 가방이 나왔다. 가방을 열어보았다. 비닐로 진공 포장한 장부들이 들어 있었다.

“헉. 진짜 있다.”

“아지트가 수색당할 때를 대비해서 여기에 숨겨놨구나”

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제보자는 이걸 어떻게 알았대? 혹시 덕구파 잔당이 제보한 건가?”

“그건 아닌가 봅니다. 이 지점이 드론으로 하늘에서 보면 잘 보인다고 했다던데요.”

팀장이 하늘을 보았다.

“드론이 어디 있어? 새 몇 마리는 날아다니는데….”

“스래곤이 개발 중인 드론이 아닐까요? 거기는 새처럼 생긴 드론을 만든 곳이니까요.”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스래곤 비서실장이 납치됐던 사건이니까 이렇게라도 도와주나 보다.”

◈          ◈          ◈

형사들이 곽덕구의 장부를 찾았다는 건 윗선에 보고됐다.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그 소식이 외부로도 새어나갔다.

어차피 형사들은 장부의 존재를 딱히 비밀로 하지도 않았다.

서장이 말했다.

“그 장부에서 거물의 이름이 몇 개가 나왔는지 알지? 그런데 그 장부의 존재를 우리만 알고 있잖아? 사방에서 들어오는 압력을 우리가 다 감당해야 돼.”

형사팀장이 말을 받았다.

“이렇게 장부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 압력을 우리가 아니라 윗선에서 감당하겠죠.”

“그거지.”

◈          ◈          ◈

4선 국회의원 박재곤이 장부 이야기를 듣고 펄쩍 뛰었다.

“곽덕구 이 새끼! 그런 장부는 미리 없앴어야지!”

박재곤을 통해 덕구파의 접대를 받은 정치인이 찾아와 따졌다.

“박 의원님. 이거 이제 어떻게 합니까? 난 그냥 박 의원님이 소개해줘서 밥이나 몇 번 먹은 것뿐인데!”

“밥만 먹은 건 아닐 텐데?”

“아니, 박 의원님?”

“이럴 시간에 압력 좀 넣어봐요.”

“이미 해봤습니다! 그런데 씨도 안 먹힙니다. 이번 사건에 스래곤 비서실장이 납치됐던 거 모르십니까?”

“스래곤이 아무리 잘나가도 결국 기업인데, 정치권에서 움직이면….”

“정치권에서도 수사 철저히 하라는 격려 전화가 여러 번 갔답니다.”

박재곤이 얼굴을 구겼다.

“왜요? 또 대성차에서 나섰다니까?”

“지금 대성차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 뭐가….”

찾아온 정치인이 설명했다.

“이건 소문이긴 합니다만, 이번 수사를 방해하는 사람은 앞으로 활토는 구경도 못 할 거라더군요. 설사 국회의원이라도요.”

박재곤은 당황했다.

“아니, 거기서 활토 이야기가 왜 나옵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압니까! 뭔가 연줄이 있겠지요!”

◈          ◈          ◈

덕구파의 뇌물 장부에 관한 소식이 뉴스에 하나둘 흘러나왔다.

덕구파 두목 곽덕구가 관리하던 정치인과 공무원 중에서 제일 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사람은 4선 의원 박재곤이다.

당연히 장부에는 박재곤에 관한 것이 많이 적혀 있었다.

뉴스에서 기사로 써먹기에도 박재곤이 제일 좋았다. 스래곤 주가조작 사건 이후로 권력은 쪼그라들었지만, 4선 의원이라는 타이틀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급해진 박재곤이 사방에 전화를 돌렸다. 먼저 연락한 건 그와 같이 해먹은 사람들이었다.

반응은 나빴다.

- 박 의원님. 그 장부에 내 이름도 있다고 해서 몸조심하고 있는데, 제가 뭘 어떻게 도와드립니까?

- 경찰에서 나한테 좀 보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참고인 조사라는데, 그러다 피의자 되는 거 한순간입니다.

- 내가 박 의원 말만 듣고 그 자리에만 안 갔어도 일이 이렇게 되진 않았어요!

박재곤은 방향을 바꾸었다. 예전에 같이 해먹긴 했지만 덕구파와는 엮이지 않은 국회의원을 찾아갔다. 그 국회의원은 같은 당이 아니라 상대편 당 소속이었다.

“최 의원. 내가 최 의원 많이 도와줬잖아. 나 좀 도와줘.”

“내가 전화 한 통 넣어보겠습니다.”

최 의원이 박재곤의 앞에서 전화를 걸었다. 통화하는 그의 표정이 점점 나빠졌다.

“어? 그래요? 어? 아니요. 괜찮습니다. 서운하기는요. 예. 아. 내가 전화했다는 건…. 그렇죠. 이건 그냥 안부 전화였지요.”

통화를 마친 최 의원이 박재곤에게 말했다.

“박 의원님.”

“분위기가 안 좋아? 장부는 곽덕구가 자기 마음대로 적은 것일 수도 있잖아. 그런 식으로 수사기관에 말이라도 해주는 게 어려워?”

최 의원의 표정은 심각했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던데요?”

“응?”

“곽덕구에게 권총을 주셨습니까?”

곽덕구는 당황했다.

“어어?”

“군용 방탄장비도 구할 수 있게 알선하셨고요?”

“아니, 그게…. 아니야! 난 아니야!”

“곽덕구의 경호원들이 자백했답니다.”

“헉!”

최 의원이 혀를 찼다.

“쯧. 주변 정리부터 하셔야겠는데요. 지금 외국 기업들도 이 사건을 주시한다던데, 증거가 이렇게 튀어나와서야 어디….”

박재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          ◈

마지막까지 곽덕구에게 붙어 있던 덕구파 조직원 두 명이 자백했다. 그들은 곽덕구의 범죄를 아는 대로 털어놓았다. 그중에는 마지막 습격에 국회의원 박재곤이 어떻게 관여했는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곽덕구는 그 습격을 준비할 때 일부러 박재곤에게 일을 맡겼다. 그렇게 엮어놔야 사건 수습에 박재곤이 최선을 다할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박재곤의 힘으로 덮을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넘었다.

박재곤의 힘이 강할 때도 덮는 게 쉽지 않을 정도로 사건이 컸다. 지금처럼 망해버린 상태에서는 덮는 건 불가능했다.

4선 의원 박재곤에 관한 뉴스가 쏟아졌다.

박재곤은 버텨 봤지만 결국 경찰에 조사를 받으러 가야 했다. 더 버티면 체포될 수도 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박재곤은 경찰서 앞에서 기자들을 향해 외쳤다.

“이건 저에 대한 정치 탄압입니다! 여러분! 저는 억울합니다!”

“그럼 결백하다는 말씀이십니까?”

“당연합니다! 제 평생을 바쳐 헌신한 정치 인생을 걸고 말씀드리는데, 저는 결백합니다!”

“곽덕구의 장부에 의원님 이름이 많이 나온다던데요.”

“그까짓 장부야 문구점에서 사서 볼펜으로 대충 적어도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곽덕구가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이미 체포된 덕구파의 간부들도 의원님의 이름을 말했다던데요.”

“여러분! 그거 다 거짓말입니다!”

박재곤은 결국 체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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