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 옥탑방 옥상에서
한국에 있는 나사 직원 조세핀이 미국에 있는 토마스의 전화를 받았다.
- 헤이. 조세핀.
토마스는 예전에 인공위성 궤도에서 조난됐다가 구출된 적이 있다. 조세핀은 스래곤의 위성 충돌 경고를 무시했다가, 나중에 상황을 깨닫고 뛰어다니면서 사방에 경고했다.
그 후로 토마스는 조세핀과 연락은 하는 사이가 됐다.
조세핀이 물었다.
“나 퇴근했는데, 설마 일 이야기는 아니죠?”
- 나 조만간 한국에 가.
“네? 왜요?”
- 스래곤에 예전에 도와줘서 고맙다고 인사라도 하려고 출장 신청했어. 그랬더니 허가가 바로 나오네?
“그런 허가가 왜 나와요? 나사가 예산이 남아도나?”
- 스래곤이 요즘 유명하잖아. 미래를 위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거겠지.
“견학 명분은요? 보면 뭐 아세요?”
- 나 박사학위 있어.
“그럼 가서 견학 잘하세요.”
- 스래곤에 같이 가자고 전화한 거야.
“바빠요.”
- 스래곤의 경고를 무시해서 나를 위험에 빠뜨린 거 조세핀이잖아. 나한테 빚 있어.
“나중에 남들이 다 무시하는데도 스래곤의 계산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해서 토마스를 살려줬잖아요. 나사에서도 그걸로 퉁 쳤어요.”
- 내가 밥 살게. 같이 가주라. 난 한국은 잘 모르잖아.
“쳇. 비싼 거 사요.”
◈ ◈ ◈
선우현과 김수선이 옥탑방 옥상으로 올라갔다.
김수선은 옥상에 들어가자마자 난간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서 두 팔을 옆으로 펼쳤다.
“이 옥상은 항상 위에서 보기만 했습니다. 드디어 이곳에 왔네요.”
“와보니까 좋은 거 알겠지?”
“탁 트인 전망과 바람이 진짜 좋습니다. 이 좋은 걸 그동안 선장님만 즐기셨군요.”
“수선아. 잘 나가다가 삐딱선 타는 거 아니야.”
옥상에는 대형 TV도 있었다.
“선체에서 관측 카메라로 TV를 보려면 선장님께 채널을 돌려달라고 해야 했죠. TV만 켜놓고 가버리면 소리도 없이 화면만 봐야 했고요.”
“이제 네 마음대로 봐라. 리모컨도 있다.”
김수선이 옥탑방 내부도 확인했다.
“여기는 항상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해놓고 사시나….”
김수선이 옥탑방 내부를 본 후에 다시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선장님의 집은 어디입니까?”
“거기잖아.”
“여기는 돼지우리인데요?”
“그 정도는 아니지.”
“선체에 있을 때는 자원이 부족해 흘릴 것조차 없어서 몰랐는데, 참 대단하십니다.”
선우현이 말을 돌리려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배달 음식부터 시킬까? 치맥, 피자, 보족 세트?”
“아쉽지만 오늘은 그 정도만.”
김수선은 배달 음식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그래서 선우현이 라면을 먼저 끓였다. 오는 길에 컵라면을 하나 먹었지만, 봉지라면은 맛이 또 달랐다.
“계란은 두 개 넣으시죠.”
“그럴 거야.”
“김치도요.”
“넌 먹어본 적도 없으면서 제대로 따지는구나.”
“남이 먹을 때 구경은 많이 했거든요.”
선우현이 라면을 끓여준 후에 탐사대 지원위성의 상태를 물었다.
“자동 수리모듈은?”
김수선이 라면을 먹으면서 대답했다.
“요즘 자원에 여유가 생겼잖습니까? 그래서 선체 외부 수리용 두 대, 내부용 한 대를 고쳐서 세팅해놓고 왔습니다. 단순 균열은 발견 즉시 자동으로 수리할 겁니다.”
“단순하지 않은 건?”
“내외부 수리모듈 모두 지상에서 원격제어가 가능합니다. 승인이 필요한 손상이 발생했을 때는.”
김수선이 가져온 장비를 젓가락으로 가리켰다.
“선장님의 팔찌형 중계기를 통해 선체의 상태를 확인하고 처리하면 됩니다.”
선우현이 김치를 밀어주며 말했다.
“좋네. 그러면 한동안은 우리가 없어도 추락 안 하고 버티겠구나.”
“적어도 선체가 쪼개지지는 않겠죠.”
이제 탐사대 지원위성은 돌발상황만 없으면 지구 위성 궤도를 안정적으로 돌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편한 걸 그동안 쓰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김수선이 단서를 달았다.
“선장님. 자동 수리모듈은 자원을 많이 소모합니다. 자원 재활용 효율도 낮습니다. 현재 선체에 남아 있는 자원만으로는 우리가 직접 관리할 때처럼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다른 나라의 위성 로켓에 빈자리가 있나 찾아보자. 지상에서 보급용 위성을 보내면 선체에서 받을 수는 있지?”
“외부 견인장치를 고쳐놨습니다. 우주 쓰레기는 잡기 어렵지만, 정해진 궤도로 안정적으로 비행하는 보급용 더미 위성 정도는 여기서 원격으로 조종해 회수할 수 있습니다.”
“그럼 그 문제도 됐고.”
지상에서 물자를 보내주면 지원위성은 지구 위성 궤도를 안정적으로 돌 수 있다.
그런데 해결해야 하는 일은 그게 다가 아니다. 선체에서 생산하는 물자를 지상에서 받아야 한다.
“레드 포션은?”
“레드 포션과 급속성장촉진제도 여기서 원격으로 장비를 제어해 만들 수 있습니다. 강하 캡슐에 넣고 지상으로 보내는 것도 가능합니다.”
“내 팔찌가 옆에 있을 때만?”
“당연하죠. 위성 궤도의 선체로 지구의 전파 감시 시스템을 피해서 통신이 가능한 건 선장님의 팔찌형 통신기뿐이니까요.”
“그 작업을 할 때는 내가 옆에 있어야겠네.”
“노느니 그거라도 하시죠.”
“요즘은 좀 바빴어.”
“계속 바쁘실 건가요?”
“아니. 이제 선체와 회사 둘 다 알아서 잘 굴러가잖아. 더 놀아야지.”
“그렇게 놀아서 언제 우주왕복선을….”
“수선아. 왕복선이 손에 들어오면 너 다시 올라가야 하는데?”
김수선이 얼른 말을 바꾸었다.
“왕복선이야 M 연료전지를 팔다 보면 결국 손에 들어오겠죠. 서두를 필요 없습니다.”
“그때까지는 놀 거냐?”
김수선이 라면 국물을 시원하게 들이켠 후에 대답했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설마 선장님 혼자 놀려고 하셨습니까?”
◈ ◈ ◈
인기 가수 구하니와 인기 배우 남미연이 납치됐다가 구출됐다. 그것만 해도 이슈가 너무 커서 비공개 수사는 어려웠다.
스래곤 비서실장 박서윤도 같이 납치됐다. 납치된 장소는 다르지만, 주범은 같은 놈들이다.
게다가 대규모 총격전까지 벌어졌다.
그쯤 되면 경찰 선에서 덮는 건 불가능하다.
당장 기사가 쏟아졌다. 현장에는 방송국 중계차들도 달려가 뉴스를 내보냈다.
[이런 대규모 총격전에 사망자가 없다는 건 기적 같은 일입니다만, 용의자는 대부분 총상을 입어 병원에….]
청부업자들의 총상 중 절반은 자기들끼리 쏘다가 생긴 것이다. 총을 쏜 놈이 워낙 많아서 누가 누구를 쐈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덕구파 두목으로 알려진 곽 모 씨와 기획사 사장 천 모 씨가 이 사건을 일으켰다고 의심되는 가운데….]
처음 나온 기사에서는 성만 적혀 있었지만, 곧바로 곽덕구와 천호균의 이름이 인터넷에 퍼졌다.
[경기도 펜션에서 구출된 박 모 씨는, 스래곤의 핵심 임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사건이 스래곤의 신기술을 노린 산업스파이 사건은 아닌지 깊은 우려가….]
산업스파이 이야기는 박서윤이 경찰에서 진술할 때 나왔다. 곽덕구는 선우현을 유인하기 위한 미끼로 신기술을 요구했지만, 천호균은 신기술을 진짜로 빼내고 싶어 했다.
뉴스가 쏟아지면서 수사를 맡은 경찰도 고민이 깊어졌다.
경기도 관할 경찰서의 서장이 수사팀장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현장에서 선우현 사장의 이름을 들은 사람이 많다는 거지?”
“예. 대화가 가능한 청부업자들이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곽덕구가 그들이 싸운 상대를 향해 선우현이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얼굴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에는 마스크로 가렸고, 나중에는 청부업자의 복면을 빼앗아 쓰고 싸웠나 봅니다.”
서장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박서윤 실장은 뭐래?”
“그건 다 그놈들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던데요. 선우현 사장이 그럴 리가 없다면서요.”
서장이 선우현이 과거에 해결한 사건 이력을 보며 말했다.
“선우현 사장은 그럴 리도 있고, 그럴 능력도 있는 사람이잖아.”
“그렇죠. 무술 고수니까요. 다만….”
“다만 뭐?”
팀장이 서류들을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총을 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예전 사건에서는 설사 적이 총을 쏜다 해도 선우현 사장은 총을 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애매하네.”
“많이 애매하죠.”
서장이 좀 더 고민하다가 물었다.
“일단 그 사람이 선우현 사장이라고 치고 생각해보자. 청부업자 중에 누굴 쐈는지는 파악이 됐고?”
“아니요. 복면을 쓰고 산속을 신출귀몰하게 뛰어다니면서 쐈답니다. 그러다 보니까 청부업자끼리 쏜 것과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초반에 싸운 몇 놈은 선우현 사장이 쏜 것 같긴 합니다만….”
“그것도 증거는 없고?”
“예. 청부업자들이 자기들끼리 쏜 것도 전부 선우현 사장에게 당했다고 주장해서요.”
서장이 물컵을 손으로 잡았다. 물을 이미 다 마셔서 컵은 비어 있었다.
“선우현 사장의 알리바이는?”
“그 시간에 집에서 잤다는데요?”
“현장 근처에서 목격되지는 않았고?”
“예. 본 사람이 없습니다. 거기가 워낙 산골이라서요.”
“환장하겠네.”
“저희도 환장하겠습니다.”
서장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비볐다.
“야. 선우현 사장 같은 거물을 체포하려면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해. 스래곤은 압수수색도 어려워. 무리해서 체포하거나 압수수색 했다가 증거 못 찾으면 감봉으로 안 끝나.”
수사팀장이 조언했다.
“서장님. 우리가 찾는 게 연쇄 살인마나 조폭 두목쯤 되면 체포든 압수수색이든 강행하겠는데요.”
“그런 경우면 나도 고민 안 했다.”
“자기 비서실장을 구출하러 간 사장을 잡겠다고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렇지?”
“그렇죠.”
서장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이런 대형 사건의 범인을 못 찾으면, 너희는 무능력한 수사팀이 되겠네? 난 무능력한 서장이 되고. 그럼 우리 평가는 어디까지 떨어질까?”
팀장이 머뭇거렸다.
“어…. 그게요.”
“우리 앞에 놓인 길은, 이쪽은 가시밭길이고 저쪽은 수렁이네?”
형사팀장이 제안했다.
“다른 길을 하나 파시죠?”
“응?”
“곽덕구가 숨겨둔 장부가 있습니다.”
“뇌물 장부?”
“박서윤 실장은 그렇게 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애들이 그걸 찾는 중입니다.”
서장이 턱을 긁었다.
“덕구파의 뇌물 장부라…. 잔챙이부터 거물까지 골고루 있겠네?”
“그렇죠.”
“거물이 걸려들면 압력이 세게 들어올 텐데…. 예전에 체포된 덕구파 놈들 주장대로면 장부에는 다선 국회의원도 있을 테고.”
“스래곤 비서실장이 납치된 사건입니다. 압력이 들어오면 스래곤에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 회사는 갑자기 성장했잖아. 정관계에 인맥이 충분히 있을까?”
“인맥 쩌는 대기업들이 스래곤에 줄을 서고 있는데, 직접 인맥을 만들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렇긴 하네?”
“광수대 사람에게 들었는데, 자기네들 수사에 압력이 들어왔을 때는 대성차와 전호 그룹이 나서서 막았다던데요.”
“뭐? 저번에 대성차 양중근 회장님이 전화했다는 게 스래곤이랑 관련된 거였어?”
“그때는 스래곤이 이번처럼 깊게 연관되지는 않았는데도 그 두 곳에서 개입했다고 들었습니다.”
서장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래애? 야. 장부 빨리 찾아. 우리도 면피할 거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지. 박서윤 실장이랑 이야기할 때 우리가 장부 찾고 있다는 말 꼭 해라. 그래야 스래곤에서 커버 쳐 주지.”
“알겠습니다!”
◈ ◈ ◈
박서윤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옥탑방으로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녀가 물었다.
“우현 씨. 괜찮으시죠?”
“보다시피.”
“그런데 저분은….”
김수선은 테이블에 치킨과 피자, 보쌈과 족발을 펼쳐놓고 먹고 있었다. 음료는 콜라와 맥주를 마셨다.
박서윤은 그녀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선우현이 아까 떠날 때 김수선을 데리러 간다고 했다.
“김수선 씨. 반가워요. 말씀은 가끔 들었어요.”
김수선이 먹던 걸 내려놓고 물티슈로 손을 닦으며 말했다.
“저도 직접 만나니 반갑네요.”
선우현이 말했다.
“앞으로 수선이도 여기서 지낼 겁니다.”
박서윤이 제안했다.
“제 옆방이 비어 있잖아요. 거기가 딱 좋겠네요.”
“하긴. 빈방도 많은데 돼지우리에서 살 필요는 없지요.”
“네? 돼지우리라니요?”
“수선이 눈에는 그렇게 보이나 봅니다. 지금 먹는 걸 보면 누가 돼지인지는 모르겠지만.”
◈ ◈ ◈
이튿날 김수선이 옥상에서 육포를 하나씩 던졌다. 엠투가 그때마다 폴짝폴짝 뛰면서 육포를 받아먹었다.
김수선이 말했다.
“선장님. 엠투는 너무 개 같습니다.”
“멍?”
“지구연합에서 누군가 개처럼 행동하게 가르쳤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선우현이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해봤는데, 아니야. 없어. 엠투의 전자두뇌는 지구연합에서는 작동시키지 않았을 테니까.”
“엠투 정도의 고성능 전자두뇌는 마가 끼어서 오염될 위험이 있긴 하죠.”
전자두뇌가 오염되는 걸 피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아예 켜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엠투의 상태가 더 의심이 갑니다.”
“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