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 신고
시간 여유가 있으면 경찰이 올 때까지 김수선이 구하니와 남미연을 지켜보는 게 좋다. 그러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용병이 쳐들어와도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김수선은 경찰이 오기 전에 강하 캡슐을 옮겨야 한다.
김수선은 대신에 사까이와 용병들이 가지고 있던 총을 두 사람에게 나눠주었다. 엽총과 권총 하나씩은 싸우는 도중에 플라즈마 커터로 절단했지만, 멀쩡한 것도 있었다.
김수선이 물었다.
“총 쏠 줄 알아요?”
남미연이 큰소리쳤다.
“나 남미연이에요. 내가 출연한 영화에 총 쏘는 장면이 한두 번이었는 줄 알아요? 영화 촬영 때 전문가한테 자세 잡는 법 배우고 사격장에서도 많이 쏴봤어요. 나 가끔 클레이 사격도 해요.”
“그럼 남미연 씨는 됐는데, 구하니 씨는?”
구하니가 자신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총을 쏴 본 적은 없는데….”
“그럼 구하니 씨는 총의 안전장치는 해제하지 말고 들고만 있어요. 일이 생기면 총은 남미연 씨가 쏴요.”
남미연은 당황했다.
“아니. 잠깐만. 누가 쳐들어오면 나 혼자 싸우라고요?”
“초보자한테 방아쇠 당기게 하면 등에 총 맞는 수가 있어요.”
“아…. 그건 그렇지만….”
남미연이 부탁했다.
“혹시 김수선 씨가 같이 있어 주면….”
김수선은 그럴 수가 없다.
“난 공식적으로는 여기 없었다니까요.”
남미연도 수긍했다.
“그렇죠. 김수선 씨는 여기 온 적이 없죠.”
“주변은 내가 확인은 했으니까 침입할 놈은 없을 거예요. 아마.”
“아마요?”
“혹시 모르니까 사까이의 휴대폰으로 경찰에 신고하고 숨어있어요.”
“경찰이 아닌 놈이 오면 먼저 쏠까요?”
“지나가던 민간인이 총소리 듣고 온 거면 어쩌려고?”
“아…. 그렇죠.”
“그냥 총 가지고 잘 숨어있어요.”
◈ ◈ ◈
김수선은 두 사람을 남겨두고 충청도 펜션을 벗어났다.
김수선은 여기 올 때는 등 뒤의 보조 추진장치까지 사용해 달려왔다. 그 과정에서 흔적을 제법 남겼다. 눈에 뜨이는 큰 흔적은 좀 없애야 했다.
보조 추진장치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그걸 다시 쓰면 경찰이 출동하다가 작동음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돌아갈 때는 걸어서 움직였다. 새로운 흔적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걸음이 워낙 빨라서 산속인데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이 평지에서 뛰는 것만큼 빠른 속도가 나왔다.
비상탈출용 1인승 강하 캡슐은 작은 산등성이 너머에 있었다. 김수선이 그곳에 도착해 나무 사이에 숨겨둔 강하 캡슐을 확인했다.
캡슐은 아까 나뭇가지와 풀로 덮어두었다. 여전히 그 상태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김수선이 선우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장님. 지상에 이렇게 쉽게 내려오는데, 왜 오천 년 동안 못 왔을까요?”
- 옛날부터 내려올 수는 있었어. 다시 올라갈 방법이 없었지.
“그건 알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감상이 다르네요.”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만들던 시절이나 송나라 때는 물론이고, 유럽 중세 시대에도 위성 궤도까지 올라가는 로켓을 만들 기술이 지구에 없었다.
탐사대 지원위성에도 맨땅에서 그런 걸 만들 수 있는 기반기술은 없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다시 지원위성으로 올라갈 방법이 없어서 지상에 내려오지 못했다.
지금은 21세기라 상황이 달라졌다. 요즘은 수시로 인공위성용 로켓이 발사된다.
선우현이 물었다.
- 상황은?
“강하 캡슐을 들고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이걸 여기 두면, 경찰이 산을 수색하다가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 깊은 산에 숨는 것도 방법이긴 하지. 고생해라.
“선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데리러 오셔야지요?”
- 갈 거야. 가려고 했어.
“매우 의심스럽습니다만?”
- 믿어. 나 믿어서 손해 본 적 있냐?
“많습니다.”
- 그렇긴 하지.
김수선이 통화를 끝내고 캡슐에 손을 댔다.
강하 캡슐은 자체 비행 능력이 없다. 아래로 떨어질 때 방향은 바꿀 수 있지만 그걸 비행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나마 있는 건 하강 속도를 늦추는 감속 기능이다. 그건 안전한 착륙을 위해서 꼭 필요한 기능이다.
“들고 가는 수밖에 없네.”
김수선이 캡슐을 두 손으로 잡고 번쩍 들었다.
탈출용 강하 캡슐 자체가 자원 절약을 위해 경량화되어 있다. 우주복에는 강화 슈트 기능도 있어서 캡슐을 드는 것이 어렵진 않았다.
“깊은 산 속 옹달샘까지 이걸 들고 가야겠네. 처음부터 더 멀리 떨어진 곳에 착륙할 걸 그랬나?”
그랬으면 늦기 전에 두 사람을 구하러 올 수가 없었다. 김수선이 늦었다면 사까이가 남미연을 죽일 수도 있었다.
“지상에 내려와도 몸으로 때우면서 일하는 건 똑같네.”
◈ ◈ ◈
엠투가 주변을 수색하고 돌아왔다.
“멍!”
선우현이 말했다.
“총에 안 맞은 놈들은 다 튀었구나.”
“멍!”
경기도 펜션의 상황은 완전히 정리됐다. 이제 이 근처에 멀쩡히 돌아다니는 놈은 없다.
잔당 몇 놈은 도망쳤고 나머지는 선우현에게 당했거나 자기들끼리 쏜 총에 맞아 쓰러졌다.
선우현이 박서윤에게 말했다.
“내가 가면 경찰에 신고해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계획을 다시 확인했다.
“우현 씨는 이곳에 온 적 없어요.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와서 저를 구해준 거예요.”
그녀가 청부업자들이 쓰러져 있는 산을 가리켰다.
“저놈들은 대부분 서로 싸우다 총에 맞았다고 할게요.”
선우현이 박서윤에게 말했다.
“내가 서윤 씨가 안전한지 계속 지켜봐야 하는데, 경찰이 오기 전에 차를 숨겨야 합니다.”
“괜찮아요. 저는 접근하는 놈은 다 쏴버릴 거니까.”
“음….”
선우현이 엠투에게 말했다.
“야. 네가 서윤 씨랑 같이 있어라.”
“멍!”
“서윤 씨. 엠투는 몰래 접근하는 놈을 탐지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엠투가 어느 방향을 보며 짖으면, 거기에 누군가 있다는 소리입니다.”
“쏴버릴까요?”
“지역 주민이 총격전이 벌어진 곳으로 오진 않겠지만, 호기심 많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확인되기 전에는 경고 사격 정도만 해요.”
“알았어요.”
“총잡이 한 놈 정도는 엠투가 잡을 수 있으니까, 적이다 싶으면 이 녀석을 출동시키고요.”
“멍!”
“그럴게요.”
선우현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총을 몇 개 모아서 박서윤에게 주었다. 탄약도 충분히 가져왔다.
“탄약은 많으니까 막 쏴도 됩니다.”
“빨리 가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가긴 가야죠.”
“옥탑방으로 바로 가세요?”
“아니요. 먼저 수선이를 데리러 가야 해서.”
◈ ◈ ◈
선우현이 그곳을 떠났다.
박서윤이 휴대폰을 꺼냈다. 그건 그녀의 것이 아니라 천호균이 쓰던 것이다.
박서윤은 스래곤 비서실에 전화를 걸었다.
- 네. 스래곤 비서실입니다.
“박서윤이에요.”
- 실장님? 모르는 휴대폰 번호가 뜨는데요?
“내가 납치돼서 그래요.”
비서실 직원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 네? 네? 나, 납치요?
“여기서 납치, 살인미수, 그리고 범인들끼리 집단 총격전이 벌어졌어요. 총에 맞은 사람이 많아요.”
- 사, 살아계신 거죠? 괜찮으세요?
박서윤이 차분히 말했다.
“상황은 종료됐어요. 난 안 다쳤어요. 여기로 사람 좀 보내줘요.”
- 네! 제가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비서실, 법무팀, 보안팀까지 지금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을 모아서요. 홍보팀도 여유가 있으면 한 명쯤 같이 오라고 해요.”
- 네?
“여기 상황이 좀 심각해요.”
- 네! 당장 소집해서 가겠습니다!
“경찰에는 내가 신고할 테니까, 회사에서는 신고하지는 말아요. 보안에 신경 써야 해요.”
- 네!
박서윤이 펜션의 위치를 알려주고 통화를 마쳤다.
그녀가 전화를 끊고 나서 엠투를 쓰다듬으며 한동안 기다렸다. 엠투는 주변을 확인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박서윤이 말했다.
“이 정도 기다렸으면 우현 씨가 차를 몰고 떠났겠지?”
“멍!”
“그래. 충분하구나.”
그녀가 112에 전화를 걸었다.
“네. 신고하려고요. 여기서 납치, 살인미수, 그리고 범인들끼리 집단 총격전이 벌어졌어요. 총에 맞은 사람이 많아요.”
- 저기, 장난전화 하시는 거 아니시죠?
박서윤이 조금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장난이면 좋겠네요.”
◈ ◈ ◈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산골 소년이라는 닉네임으로 올라온 글이었다
- 나 오늘 UFO 본 거 같아요. 하늘 높은 곳에서 이상한 게 산으로 쭉 내려왔어요.
- 별똥별?
- 아뇨. 내려오면서 속도가 줄더니 산속으로 들어갔어요.
- 그럼 새 아닌가요? 독수리나 매 같은 거.
- 새는 분명히 아니었어요. 좀 더 인공적인 느낌이었거든요. UFO 맞나요?
- 그럼 드론이겠지.
- 좀 있다가 뭔가 터지는 소리도 들렸는데요?
- 드론이 터졌나 보네.
- 드론이라고 보기에는 좀 이상하게 생겼던데요.
- 스래곤에는 매순이라는 버드형 드론이 있습니다. 매처럼 생긴 드론도 있으니까, 모양 좀 이상한 드론이 있을 수도 있지요.
- 아. 그런가요?
◈ ◈ ◈
남미연도 충청도 펜션에서 112에 신고했다.
그녀의 상황 설명을 들은 담당자도 처음에는 신고 내용을 의심했다.
- 출동 요청은 했습니다. 기다리시면 경찰이 도착할 겁니다. 그런데…. 이거 장난 아닌 거 맞으시죠?
“어머. 내 목소리 몰라요?”
- 네?
“나 남미연이에요.”
담당자는 깜짝 놀랐다.
- 헉! 지, 진짜 남미연 씨?
“내가 설마 112에 허위 신고를 하겠어요? 그러면 곧바로 언론에서 날 지지고 볶고 할 텐데.”
- 그, 그렇죠!
남미연이 옆을 보았다.
“여기 하니 씨도 있는데. 구하니.”
- 네?
“같이 납치됐거든요.”
- 경찰 헬기도 출동 요청하겠습니다!
“네?”
남미연은 헬기가 뜨면 산으로 간 김수선이 목격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급히 말렸다.
“아뇨. 헬기는 됐어요.”
- 하지만….
“범인들은 다 제압됐다니까요. 우리는 괜찮아요. 천천히 오세요.”
-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여기 공간이 넓지 않아요. 무리해서 착륙하다 사고 날 수도 있어요. 그럼 안 되잖아요?”
담당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 그래도 남미연 씨와 구하니 씨가 납치되셨다는데 어떻게…. 착륙할 곳이 없으면 헬기 레펠로 내려가라고 요청하겠습니다.
남미연이 한숨을 쉬었다. 경찰 헬기의 출동을 막는 게 쉽지 않았다. 그녀가 다른 핑계를 댔다.
“우리는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특별대우를 받고 싶지는 않아요. 이런 거로 구설수에 오르면 우리는 피해자인데도 욕을 먹어요. 설마 그런 걸 바라시는 건 아니죠?”
- 앗! 그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천천히 오세요. 여기 상황은 다 끝났어요.”
남미연이 신고를 마치고 구하니에게 말했다.
“헬기에서 김수선 씨를 보면 곤란하잖아.”
구하니가 물었다.
“그런데 여기에 헬기가 착륙해 주면, 현장 증거가 좀 날아가는 거 아닐까요?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앗!”
“거기까지 생각하신 건 아니구나.”
◈ ◈ ◈
충청도 펜션은 산속 외진 곳에 있었다.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의 파출소 경찰이 출동했다.
구하니와 남미연은 펜션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차에서 내린 순경이 그녀들을 보고 외쳤다.
“헉! 진짜 연예인이다!”
최 경장이 순경의 등을 때렸다.
“이 새끼가. 피해자를 연예인이라고 불렀다가 나중에 무슨 욕을 먹으려고.”
“그, 그렇죠?”
최 경장이 두 사람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이제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팬입니다!”
“최 경장님?”
“아. 이게 아니지. 일단 현장을….”
현장을 둘러보던 최 경장은 깜짝 놀랐다.
“헉! 야. 구급차 불러.”
순경도 당황했다.
“저, 저 사람들 죽은 건가요?”
최 경장이 용병의 목에 손을 대보았다.
“아직 살아는 있다.”
“사람이 막 구겨져 있는데요?”
“빨리 구급차 부르라고!”
관할 경찰서 형사들이 충청도 펜션에 도착했다. 워낙 외진 곳이라 구급차는 한 대만 겨우 도착해 있었다. 다른 구급차는 더 먼 곳에서 출발해 아직도 오는 중이었다.
먼저 도착한 구급대원이 용병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형사가 물었다.
“어떻습니까?”
“살아는 있습니다.”
“사람이 구겨져 있는데요?”
“운이 좋았습니다.”
“구겨져 있는데 운이 좋아요?”
“아. 표현이 좀 이상하긴 하네요. 왜 살아있…. 아니, 구사일생이라고 해야 하나?”
형사팀장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하기 위해 남미연과 구하니에게 물었다.
“도대체 누가 저놈들을 저렇게 만든 겁니까?”
남미연은 연기력으로도 유명한 배우다. 그녀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몰라요.”
“네?”
“얼굴을 가리고 나타나서 다 쓸어버리고 그냥 떠났어요.”
“그래도 뭔가 본 게 있을 거 아닙니까?”
남미연이 딱 잡아뗐다.
“아뇨. 우리는 너무 무서워서 갇혀 있던 방의 제일 구석에 꼭 숨어있었어요. 조용해져서 나와보니까 이미 다 끝나 있던데요?”
형사팀장이 의심쩍은 눈으로 물었다.
“누군가 얼굴을 가리고 나타났다면서요? 그럼 얼굴을 가렸다는 건 어떻게 안 겁니까?”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