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 교전
엠투가 박서윤이 갇혀 있는 곳을 향해 빠르게 접근했다. 그러다 바스락 소리를 냈다.
천호균이 뒤로 급히 돌아섰다가 엠투와 눈이 마주쳤다.
“뭐, 뭐야!”
엠투가 점프했다.
엠투는 개와 똑같이 생겼다. 개가 달려드는 걸 본 천호균이 반사적으로 권총을 들고 방아쇠를 당겼다.
공중을 날아오는 엠투를 초보자가 권총으로 맞히는 건 어렵다. 게다가 엠투는 천호균의 정면이 아니라 측면으로 점프했다.
총탄이 허공을 갈랐다.
엠투가 창틀 옆면을 밟았다가 벽을 향해 다시 점프했다.
천호균이 방아쇠를 미친 듯이 당겼다. 제대로 조준할 틈도 없어서 총구만 대충 엠투 쪽으로 향하고 난사했다.
엠투가 벽을 박차고 다시 천장으로 뛰었다. 총탄이 뒤늦게 벽에 꽂혔다.
“씨발! 뭐 이리 빨라!”
천호균이 권총을 황급히 머리 위로 들었다.
눈높이가 비슷할 때도 맞히기 어려웠는데 천장으로 점프하는 걸 쏘는 건 더 어려웠다. 게다가 자세가 바뀌는 바람에 팔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엠투가 천장에서 아래로 뛰며 천호균의 위로 들어 올리는 팔을 콱 물었다.
천호균의 팔은 옆으로 휙 젖혀졌다. 팔이 뜯겨나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으아악!”
쇠도 씹는 엠투이지만 적의 팔을 잘라버리진 않았다. 박서윤의 눈앞에서 그런 잔인한 모습을 보여주면 한동안 옥상에서 간식을 못 얻어먹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팔을 놓지도 않았다. 엠투가 팔을 단단히 물고 천호균의 옆으로 휙 넘어갔다.
천호균의 오른팔이 뚝 부러졌다. 오른손의 권총도 옆으로 날아갔다.
“끄아아악!”
엠투가 천호균의 팔을 놓고 바닥에 착지했다.
천호균은 몸을 비틀며 왼손으로 부러진 오른팔을 잡았다.
“이, 이 개새끼가….”
욕을 먹은 엠투가 낮게 으르렁댔다.
“크르르.”
엠투의 다리가 낮아졌다. 눈으로는 천호균의 목을 조준했다.
박서윤이 엠투가 노려보는 위치를 눈치채고 재빨리 외쳤다.
“엠투! 죽이지는 마!”
여기서 천호균의 목을 물어뜯어 죽이면 엠투도 위험해진다. 그녀는 한국 사법기관이 엠투를 풀어줄지 알지 못했다.
천호균은 겁을 집어먹고 뒤로 주춤 물러나다가 나자빠졌다. 부러진 팔이 바닥에 부딪히면서 고통이 밀려왔다.
“아아악!”
엠투가 떨어진 권총의 위치를 확인한 후에 박서윤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손이 묶은 채로 다시 의자에 묶여 있었다.
박서윤이 앞으로 묶인 손을 살짝 흔들었다.
엠투가 그녀의 손을 묶은 끈을 먼저 물어뜯었다. 정확히 끈만 잘려나갔다. 엠투는 의자에 묶인 끈도 물어서 잘랐다.
박서윤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잘했어. 엠투.”
“멍!”
“나중에 소고기 사줄게.”
“멍!”
“내가 요리해서.”
엠투가 꼬리를 격렬하게 흔들었다.
박서윤이 천호균에게 말했다.
“야.”
“뭐?”
“내가 우현 씨를 배신할 리 없잖아.”
“멍?”
박서윤이 엠투에게 설명했다.
“이놈이 밖을 보지 못하게 하려고 거짓말로 시선을 좀 끌었어. 그래야 네가 들어오기 쉽잖아.”
“멍!”
“너도 알고 있었구나. 이놈은 모르던데.”
천호균은 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소리를 질렀다.
“스래곤 사장은 남미연이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놈이야! 너도 버려질 거라고!”
“남미연 씨는 안 죽었어.”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알 수 있어. 어떻게 아는지는 감방에서 잘 생각해봐. 생각할 시간은 아주 많을 거야.”
천호균은 체포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죄를 많이 지었다. 회사에 있을 때 지은 죄도 문제이지만, 지금 여기서 저지른 짓은 더 심각했다.
‘스래곤 비서실장 납치에 사장 살인. 사장이 살아남아도 살인미수. 그것도 총기를 대규모로 사용한 살인 또는 살인미수.’
징역이 몇 년이나 떨어질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는 곽덕구의 말을 듣고 이 계획에 참여했다. 선우현을 죽이고 외국으로 밀항해 얼굴을 바꾸면,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다시 부자로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계획이 너무 틀어졌다.
선우현이 함정을 준비하기도 전에 쳐들어왔다. 인질로 잡혀 있어야 할 박서윤은 풀려났다.
‘내가 여기서 체포되면….’
나락에 떨어진다.
천호균의 눈에 조금 전에 떨어뜨린 권총이 보였다. 그가 욕을 하며 권총을 향해 몸을 날렸다.
“씨발!”
박서윤이 옆으로 한 걸음 크게 뛰었다. 엠투도 점프했다.
박서윤은 오른발이 바닥에 닿자마자 왼발로 발차기를 날렸다. 그녀의 발이 천호균의 턱을 걷어찼다.
엠투가 점프했다가, 박서윤의 발차기가 정확히 꽂히는 걸 보고 천호균의 등을 가볍게 밟은 후에 앞으로 넘어갔다.
천호균은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몸은 앞으로 엎어졌다. 눈은 이미 뒤집혀 있었다.
박서윤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권총을 주웠다. 리볼버가 아니라 반자동권총이었다.
그녀가 탄창을 꺼내 잔량을 확인했다. 탄약이 넉넉하게 남아 있었다.
“우현 씨 혼자서 저 많은 총잡이를 상대하는 건 어려워. 내가 도와줘야 해.”
“멍?”
“나 권총 쏠 줄 알아. 방산업체와 미팅할 때 그 회사 실탄 사격장에서 쏴봤어.”
“멍?”
◈ ◈ ◈
선우현이 적을 유인하며 펜션을 확인했다. 펜션에서 총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잠시 후에 박서윤이 힐끗 보였다.
“엠투. 믿고 있었다. 이제 내 차례…. 응?”
박서윤이 권총을 쥐고 밖을 살피고 있었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서윤 씨가 나서려고 해도 엠투가 말리겠….”
엠투가 먼저 펜션을 빠져나왔다. 박서윤이 엠투를 따라 움직였다.
“말려야 할 네가 앞장서면 어쩌자는 거냐.”
◈ ◈ ◈
선우현이 적을 유인하며 산속으로 들어갔다. 일부러 이동하는 모습을 조금씩 보여주면서 적을 끌어들였다.
청부업자들이 곽덕구와 함께 산으로 들어갔다.
청부업자 중에 불안해하는 놈이 나왔다.
“저놈이 저 산에서 매복하면 우리가 당하는 거 아냐?”
“저 새끼 탄약이 얼마나 남았지?”
청부업자들은 돈 때문에 이 일을 한다. 돈은 살아있어야 쓸 수 있다. 청부업자들이 전진을 멈추고 서로 눈치를 보았다.
곽덕구가 그걸 보고 욕을 내뱉었다.
“이 새끼들이….”
그는 충청도 펜션에는 사까이와 용병을, 이곳에는 청부업자를 배치했다.
청부업자에게 신뢰나 직업윤리를 기대할 수는 없다. 몰아붙였다가는 반란이 터질 수도 있다.
곽덕구가 선우현을 끌어내기 위해 산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네가 도망치면 인질을 죽이겠다!”
산속에서 대답이 나왔다.
“넌 상황파악 능력이 부족하구나. 정 부장이 없었으면 벌써 망했겠어. 아. 이미 망했지.”
“이 새끼! 인질이 다 죽어봐야 피눈물을 흘릴 새끼로구나!”
곽덕구가 사까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대편에서 전화를 받았다. 곽덕구가 휴대폰을 스피커폰 모드로 설정하고 말했다.
“저 새끼한테 살아있는 여자 비명 좀 들려줘라!”
김수선이 말했다.
- 얻다 대고 명령질이냐?
“어?”
곽덕구는 당황했다. 사까이가 전화를 받아야 하는데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충청도에 배치한 용병은 모두 남자였다.
곽덕구가 소리를 질렀다.
“너 누구야!”
- 내가 이름이 많아서.
“뭐?”
- 이쪽 지역에서는 나찰이라고 하면 익숙하려나?
“무슨 개소리냐! 이 전화 주인 어디 있어!”
- 사까이? 아직 죽지는 않았다. 다른 놈들은…. 모르겠네. 죽었을지도.
곽덕구의 동공이 흔들렸다.
“너….”
곽덕구가 멈칫했다. 김수선의 말투가 선우현과 조금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설마….”
김수선이 말했다.
- 여기는 내가 점령했으니까, 거기 있는 놈들은 알아서 잘 살아남아 봐.
그 대화가 다른 청부업자들에게도 들렸다. 청부업자들이 당황했다.
“뭐? 뭐야? 이거.”
“타깃은 한 놈이라더니, 더 있었어?”
“씨발. 우리는 저 새끼한테 총을 쏘면서 싸우고 있다고. 일이 틀어져서 체포되면 다 엿 된다고!”
곽덕구가 청부업자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외쳤다.
“그래서 너희 전부 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게 했다! 서로 누구인지도 모르게! 누구 하나 잡혀도 그놈만 들어가고 끝이야!”
“당신은 우리가 누구인지 알잖아!”
곽덕구가 방금 그 말을 한 놈을 향해 총을 겨누며 소리를 질렀다.
“나도 브로커를 통해 너를 모집했다. 네 이름 따위는 몰라!”
“그, 그래?”
곽덕구는 어차피 뒤가 없다.
‘충청도 거점은 날아갔다. 이제 인질은 하나뿐이야. 지금 선우현을 못 죽이면 내가 죽어.’
곽덕구가 외쳤다.
“현상금을 올리지! 저 새끼 몸에 총알을 박은 사람은 금괴 열 개! 죽인 사람은 금괴 오십 개를 주겠다!”
1kg짜리 금괴 50개를 사려면 40억 원 가까운 돈이 필요하다.
“저 새끼가 바로 로또다! 한 방만 제대로 쏘면 평생 놀고먹을 수 있다!”
보상이 커지자 청부업자들의 눈빛이 변했다.
“씨발. 그래. 한 방이면 인생 바뀌는 거야.”
“맞히기만 해도 다 합치면 10억이라고!”
“막타 치는 놈은 40억 추가야!”
곽덕구를 보며 군침을 삼키는 놈도 있었다.
‘현상금이 너무 큰데? 저 새끼는 황금이 얼마나 많은 거야?’
그걸 빼앗고 싶었다. 하지만 섣불리 공격하지는 못했다.
곽덕구는 방탄조끼에 방탄헬멧까지 쓰고 있다. 한 방에 죽이긴 어려운 데다가, 설사 이긴다 해도 생포에 실패하면 황금도 없다.
게다가 청부업자들은 서로 얼굴도 모른다. 이마에 붙은 번호 외에는 아는 게 없다. 누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이라 곽덕구를 잡을 사람을 모으기도 어렵다.
‘저 새끼가 부하를 우리 사이에 숨겨놨겠지. 배신자가 나오면 처단하려고.’
청부업자가 아쉬움에 입맛만 다시며 숲으로 고개를 돌렸다.
‘황금을 챙기려면 타깃을 잡아야겠네.’
곽덕구가 현상금을 높이자마자 사기가 올라갔다. 청부업자들이 적극적으로 숲으로 진입했다. 몇 놈이 뭉쳐서 움직이는 경우도 있었다.
선우현은 청부업자들의 화력이 집중된 곳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따로 떨어진 놈들을 노리고 하나씩 제거했다.
금괴 50개를 혼자 먹고 싶은 놈이 총을 들고 조용히 전진했다.
“방금 저쪽에서 보였으니까, 이쪽으로 가면 아마 뒤를 칠 수 있….”
선우현이 갑자기 그쪽 숲에서 튀어나와 방아쇠를 당겼다. 산탄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놈이 뒤로 날아갔다.
“으아악!”
선우현이 총을 쏘자마자 옆으로 뛰었다.
주변에 있던 다른 청부업자들이 총소리와 비명이 들린 방향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선우현이 사라진 자리에 총탄이 쏟아졌다. 산탄부터 권총탄까지 다양한 탄환이 나무에 박히고 돌을 깨뜨렸다.
곽덕구가 소리를 질렀다.
“흩어지지 말고 포위해! 저쪽으로 포위하란 말이다!”
김수선이 물었다.
- 선장님. 상황이 어떻습니까?
선우현은 지금은 휴대폰과 블루투스 이어폰을 사용해 김수선과 연락을 주고받는 중이다.
“나 지구연합군 에이스였다. 이런 놈들에게 내가 당하겠냐?”
- 청부업자 중에는 군 출신도 있을 텐데요? 특수부대 출신일 수도 있습니다.
“움직임이 다른 놈이 몇 명 있긴 하더라.”
조정식은 특수부대 출신이다. 그는 권총을 쥐고 혼자 은밀히 움직였다.
‘케이원이나 케이투가 있었으면 훨씬 쉬웠을 텐데.’
그가 군대에서 쫓겨난 건 범죄가 들통나서이지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는 다른 청부업자들이 선우현과 싸울 때 옆으로 이동했다.
‘적의 뒤를 노리면 확실히 잡을 수 있지만….’
지형이 험한 산속에서 선우현에게 들키지 않고 뒤를 잡기가 어려웠다.
‘저 새끼는 이 산속에서 어떻게 저렇게 빨리 이동하는 거야?’
청부업자 하나가 근처에서 당하는 소리가 들렸다. 조정식이 재빨리 지형을 분석했다.
‘저기서 쐈으니까, 저 바위 뒤에 피했을 거야. 그래야 엄폐가 쉽고 다시 이동할 수도 있어. 놈은 그 후에는 저쪽으로 이동할 거다. 그러니까 내가 먼저 저쯤에 가서 매복….’
“나 찾냐?”
“헉!”
조정식이 황급히 권총을 옆으로 돌렸다. 늦었다. 선우현이 방아쇠를 당겼다. 산탄이 발사돼 조정식의 몸통을 때렸다.
“컥!”
조정식은 근거리에서 산탄에 맞아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죽지는 않았다.
총은 구하기 어렵지만, 방탄조끼는 돈만 주면 쉽게 살 수 있었다. 곽덕구는 방탄조끼를 모든 청부업자가 입을 수 있을 만큼 주문했다.
고레벨 방탄복은 몇 개밖에 주문하지 않았다. 곽덕구는 의심받지 않고 쉽게 살 수 있는 저레벨 방탄복을 주로 사들였다.
청부업자들은 대부분 그걸 옷 속에 입었다. 방어력은 떨어지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특수부대 출신인 조정식이 입은 방탄조끼는 달랐다. 그는 밀리터리 스펙의 방탄복을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는 방어력이 높은 방탄복 덕분에 정면에서 총에 맞았는데도 죽지 않았다. 하지만 워낙 근거리에서 제대로 맞아 충격을 꽤 크게 받았다.
그 충격으로 손에 든 권총을 놓쳤다.
권총이 풀숲 사이로 떨어져 사라졌다.
조정식이 뒤로 비틀거렸다.
“제, 젠장….”
선우현의 무기는 더블배럴 산탄총이다. 두 발을 쏘면 탄약을 다시 넣어줘야 한다.
선우현이 산탄총을 꺾었다. 탄피 두 개가 튀어나왔다.
선우현이 말했다.
“방탄조끼 좋은 거 쓴다?”
조정식의 눈이 번뜩였다.
‘재장전?’
조정식이 즉시 군용 컴뱃 나이프를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