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271화 (271/281)

271. 유인

김수선이 지상에 내려와 구하니와 남미연을 구출했다.

사까이는 손목에 관통상을 입고 기절했다. 나머지 셋은 바닥에 내팽개쳐서 생사가 불분명한 상태였다.

구하니가 물었다.

“저 사람들, 설마 죽은 건 아니죠?”

김수선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운이 좋으면 살겠죠.”

“네?”

남미연은 그 문제를 파고들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 중에는 목격자를 제거해 완전범죄를 노리는 것이 있었다.

‘저놈들이 죽었으면 우리가 목격자가 되는 건데, 하니는 왜 그걸 묻는 거야?’

남미연이 얼른 말을 돌렸다.

“그런데 그 옷은 뭐예요? 전투복인가?”

김수선이 입고 있는 것은 우주복이다.

지구연합에서 만든 우주복은 슬림한 모습이었다. 나사에서 쓰는 뚱뚱한 우주복만 아는 사람은 그게 뭔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우주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지원위성의 존재는 두 사람에게도 비밀이다.

“전투복 맞아요.”

“힘이 엄청 세던데요.”

“근력 보조 기능이 있거든요.”

그 우주복에는 선체 외부 작업용 강화 슈트 기능이 들어 있다.

선우현과 김수선은 지원위성에 보관된 장비 중에 중요도가 낮은 건 대부분 뜯어서 선체 수리용으로 사용했다.

탐사대 지상 전투용 강화 슈트는 지원위성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지원위성에 보관되어 있던 지상 전투용 슈트들은 분해해 부품으로 써먹었다.

그중에서 근력 강화 부품 일부는 우주복에 옮겨 달아 선체 외부 작업에 써먹었다.

남미연이 김수선의 손을 가리켰다.

“손에서 뭐가 막 튀어나왔잖아요.”

손에서 튀어나온 것들은 무기가 아니라 수리용 장비다.

“채찍을 진짜 잘 쓰시던데요.”

그건 채찍이 아니라 견인 케이블이다. 지원위성 근처를 지나가는 물자를 잡아서 당기거나, 김수선의 몸을 선체 외부에 고정할 때 쓴다.

견인 케이블에는 김수선의 의도에 따라 이리저리 휘어지거나 목표물에 감기는 기능이 있다.

“번쩍거리는 것도 있고.”

오른손의 플라즈마 커터는 절단기로만 쓰는 게 아니다. 설정을 조정하면 간이 용접기로도 쓸 수 있다.

선체에는 프로그래밍 기능이 있는 레이저 용접기도 보관되어 있다. 용접 성능은 그게 훨씬 더 뛰어나지만, 급할 때는 플라즈마 커터로 때울 수 있다.

남미연이 땅바닥에 처박힌 놈들과 김수선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멋지다.”

김수선이 씩 웃었다.

“그런 말 많이 들어요.”

구하니가 끼어들었다.

“그럼 선우현 씨는 지금 괜찮은 거예요? 거기도 다 끝난 건가요?”

“아니요.”

김수선이 휴대폰을 귀에 댔다. 선우현 쪽 소음이 들어왔다.

“지금 한창 싸우고 있어요.”

◈          ◈          ◈

선우현이 말했다.

“파괴 천사는 나처럼 부드러운 사람이 아니야. 많이 거칠어.”

망해버린 덕구파의 두목 곽덕구가 소리를 질렀다.

“너 이 새끼! 그게 무슨 개소리야!”

“개소리는 엠투가 하는 게 개소리고.”

곽덕구가 선우현의 멘탈을 흔들 목적으로 외쳤다.

“너 때문에 남미연이 죽었단 말이다!”

곽덕구가 사까이에게 그러라고 지시했다. 그는 지금쯤이면 남미연이 죽었거나, 죽기 직전이라고 믿었다.

김수선이 보고했다.

- 선장님. 적을 모두 제압하고 구하니와 남미연을 구출했습니다.

“피해는?”

- 제가요? 설마요. 아. 보조 추진장치의 상태가 안 좋습니다. 지상에서 좀 강하게 썼더니 고장이 날 것 같긴 합니다. 우주에서처럼 살살 쓸 수가 없어서요.

“너 말고. 내가 설마 너를 물어봤겠냐?”

- 혹시나 했습니다. 구하니와 남미연은 안전합니다. 긁힌 상처 하나 없습니다. 놈들하고 싸운 건 저 혼자니까요.

선우현이 결과를 듣고 나서 곽덕구를 보며 씩 웃었다.

“남미연을 죽였다고? 명복은 빌어줘야지. 그런데 어쩌라고? 인질을 더 죽인다 해도 내가 너에게 항복하진 않아.”

“뭐? 이 새끼….”

“너도 마찬가지일 텐데? 너라면 항복하면 죽을 줄 뻔히 알면서 남을 위해 목숨을 내놓겠냐?”

곽덕구는 그럴 인간이 아니다. 그럴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다.

그런데 그는 남들을 굴복시킬 때 인질을 붙잡는 걸 좋아한다. 그 수법이 곧잘 통했기 때문이다.

곽덕구는 인질을 잡으면 선우현에게도 통할 줄 알았다.

‘이게 아닌데….’

선우현은 남미연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도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상처 하나 없이 구출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걱정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곽덕구는 충청도 펜션의 상황을 전혀 몰랐다. 그곳에 있던 놈들은 전멸해 아무도 보고하지 못했다.

지금 정보의 우위는 선우현이 가지고 있다.

곽덕구가 소리를 질렀다.

“그럼 넌 여기 왜 온 거냐! 필요도 없는 여자를 구하려고 왜 왔냔 말이다!”

선우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예쁘잖아.”

“어?”

“거기다 일도 잘하고. 그래서 구하러 왔지만, 그래도 내 목숨을 던질 정도는 아니지.”

곽덕구의 얼굴이 걸레처럼 일그러졌다.

“이 새끼가….”

곽덕구가 뒤쪽으로 고개를 돌려 박서윤을 힐끗 보았다.

박서윤은 담담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곽덕구가 머리를 굴렸다.

‘저 여자는 아직 인질로서의 가치는 있어. 그런데 저 새끼를 끌어낼 정도는 아니야.’

선우현이 갑자기 엽총을 옆으로 휙 뻗으며 방아쇠를 당겼다. 산탄이 옆으로 날아갔다. 이번에는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곽덕구의 시선은 즉시 선우현 쪽으로 돌아갔다.

선우현이 더블배럴 산탄총을 꺾었다. 탄피 두 개가 튀어나갔다. 그는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으며 바위 뒤로 이동했다.

곽덕구의 눈알이 번뜩 빛났다.

‘재장전?’

그는 사냥꾼으로 위장해 펜션 외부를 정찰하던 청부업자에게 탄약을 몇 발이나 줬는지 기억해냈다. 더블배럴 산탄총 사수에게 준 탄약에서, 지금까지 들린 총소리를 뺐다.

‘몇 발 안 남았겠는데?’

곽덕구가 청부업자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저 새끼가 재장전할 때 쳐! 몇 발 안 남았단 말이다!”

청부업자들의 사기를 높일 마법의 단어도 내뱉었다.

“저 새끼를 제일 먼저 총알을 먹이는 사람에게 금괴 열 개를 더 주겠다! 저 새끼가 로또란 말이다!”

주변에 숨어서 기회를 보던 청부업자 중 하나가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러면서 선우현이 몸을 숨긴 바위 쪽으로 견제 사격을 했다.

리볼버 권총의 총탄이 바위를 때렸다. 그런데도 반격은 없었다.

그걸 본 다른 청부업자들이 일제히 튀어나왔다.

“먼저 쏜 놈이 먹는 거야!”

“내 황금에서 손 떼!”

곽덕구가 천호균을 돌아보며 외쳤다.

“넌 저 여자 지키고 있어! 문제 생기면 그냥 쏴버려!”

곽덕구는 방탄조끼와 방탄헬멧을 다시 확인한 후에 권총을 쥐고 거실 창밖으로 뛰어나갔다.

“선우현! 넌 내가 죽인다!”

선우현은 일부러 아무도 없는 곳에 사격하고 곽덕구에게 재장전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적을 박서윤이 있는 거실에서 밖으로 유인하기 위해서였다.

선우현이 곽덕구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제일 위험한 놈을 끌어내긴 했는데.’

곽덕구를 거실에서 더 멀리 유인해야 한다. 선우현이 산탄총을 대충 한 발 쏜 후에 뒤로 물러나 산속으로 들어갔다.

김수선은 지상에 내려와 있는 상태라서 전투 지원은 받을 수 없다.

김수선의 목소리가 들렸다.

- 선장님. 지상에서 선체의 관측 카메라를 원격으로 제어하려면, 선장님의 통신 중계 팔찌가 필요합니다. 지금은 전투를 서포트할 수 없습니다.

“상관없어.”

선우현이 뒤로 물러나며 펜션을 확인했다. 곽덕구가 선우현을 쫓아왔다.

“저놈을 서윤 씨에게서 떨어뜨렸으니까.”

선우현이 산속으로 후퇴하며 산탄총을 한 발 더 발사했다.

청부업자들이 얼른 몸을 숙였다. 산탄이 날아가긴 했지만 명중탄이 없었다.

선우현이 더블배럴 산탄총을 다시 꺾었다. 탄피가 튀어나오는 소리가 청부업자들에게 들렸다.

“저 새끼가 재장전한다! 지금 전진해!”

청부업자들이 선우현을 쫓아 산으로 뛰어갔다.

선우현은 계속 후퇴하며 사격했다. 퍼져나간 작은 탄환이 약간의 피해를 주는 경우는 있지만, 제대로 된 명중탄은 나오지 않았다. 사냥용 산탄에 살짝 빗맞은 정도로는 상대를 제압하기 어려웠다.

적의 사기가 올라갔다.

“방탄조끼가 막았다!”

“별거 아니잖아!”

“겨우 한 놈이다!”

곽덕구는 선우현이 몇 발이나 사격했는지 세었다. 그가 외쳤다.

“탄약이 떨어졌을 거다! 이제 죽일 수 있단 말이다!”

청부업자들이 신이 나서 선우현을 향해 돌진했다. 그들이 쏘는 총탄이 선우현의 근처로 휙휙 지나갔다.

선우현이 청부업자들을 유인하며 뒤로 계속 물러났다. 그의 탄약이 떨어졌다고 생각한 청부업자들은 더 적극적으로 쫓아갔다.

선우현이 충분히 물러난 후에 짧게 외쳤다.

“엠투!”

청부업자들은 엠투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몰랐다.

“뭐라는 거야!”

선우현은 박서윤이 납치된 전호 호텔에 갔다가 이곳에 오기 전에 옥탑방 건물에 들렀다. 그곳에서 엠투를 데려오기 위해서였다.

엠투는 원래 탐사대의 장거리 정찰이 주 임무다.

지상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몸을 숨긴 채 조용히 움직일 줄 알아야 한다. 숲 속에서 은폐하고 움직이는 건 기본이다.

엠투가 풀을 몸에 덮은 채로 천천히 펜션으로 접근했다. 펜션 주변에 있던 놈들이 선우현을 쫓아간 후로는 이동 속도를 조금 높였다.

그러다 선우현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엠투!”

엠투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목표 지점을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          ◈          ◈

박서윤은 펜션 거실에 묶여 있었다.

그녀는 선우현이 곽덕구에게 했던 말을 하나씩 곱씹으며 분석했다.

‘미연 이모가 죽었다고?’

곽덕구가 그렇게 말했다. 선우현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아니야. 우현 씨의 반응이 너무 차분해. 이모가 진짜로 죽었으면 우현 씨가 저렇게 여유를 부릴 리 없어. 그쪽에도 대책을 세워놨을 거야.’

그녀는 선우현이 이곳에 온 이유를 말했을 때는 가슴이 조금 두근거렸다.

‘내가 예뻐서?’

그 후에 ‘일을 잘해서’라는 말을 듣고 선우현의 의도를 눈치챘다.

‘인질로서의 내 가치를 적당한 수준으로 세팅한 거야. 곽덕구가 나를 죽이지 않을 만큼, 그렇다고 나만 이용하지도 못할 만큼.’

곽덕구가 그녀를 쳐다보자마자 밖에서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곽덕구가 밖으로 뛰어나갔다.

‘우현 씨가 저놈들을 유인해서 싸우는 건가?’

총소리가 많이 들리고 환성도 들렸다. 청부업자들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청부업자들이 산으로 몰려가면서 목소리도 점점 멀어졌다.

그녀는 선우현이 강한 건 알지만, 걱정이 들었다.

‘적에게 총이 너무 많아. 정말 괜찮은 걸까?’

천호균은 이 거실에서 박서윤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가 권총을 쥔 채로 밖을 보며 말했다.

“선우현이 아무리 지독한 놈이라 해도, 혼자서 저 많은 총잡이를 상대로 살아남을 수는 없다.”

천호균이 박서윤을 돌아보며 실실 웃었다.

“저 새끼는 이제 죽는다고. 너를 구하겠다고 혼자 와서 죽는데, 감상이 어떠냐? 흐흐흐.”

그때 선우현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엠투!”

박서윤은 그 목소리를 듣고 깨달았다.

‘그런 계획이구나!’

그녀가 거실 밖을 보았다. 앞은 탁 트인 공간이라 천호균이 밖을 보고 있으면 엠투가 접근하기 어렵다.

박서윤은 천호균이 밖을 보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말을 걸었다.

“일을 너무 크게 벌였다는 생각 안 들어? 뒷감당이 되겠어?”

천호균이 멈칫했다가 권총을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씨발! 나도 이제 막다른 곳에 몰렸고! 벼랑 끝에 서 있단 말이다! 저 새끼를 죽여야 내가 살아!”

박서윤이 물었다.

“사장님을 죽이면, 나는? 살려줄 거야?”

천호균은 초조한 감정을 감추려고 일부러 크게 웃었다.

“으하하하! 너를 구하러 온 놈이 죽더라도 너는 살고 싶냐?”

“사장님은 남미연 씨가 죽어도 신경도 쓰지 않잖아.”

박서윤은 남미연이 살아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걸 내색하지는 않았다.

“내가 죽어도 마찬가지일 거야. 그러니까 나라도 살아야지.”

“흐흐흐. 스래곤 사장은 죽는데 비서실장은 산단 말이지.”

“비서실장이라지만 결국은 월급 받는 처지잖아? 사장보다는 내 목숨이 중요해.”

“하하하. 마음에 들어.”

천호균은 스래곤 사장의 돈과 신기술을 챙기고 싶었다.

‘사장이 죽어도, 비서실장을 이용하면 일부라도 빼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장한테 배신감을 느끼는 것 같으니까.’

천호균이 제안했다.

“어차피 선우현은 네 목숨 따위는 관심도 없다. 그런데 사장이 죽으면, 비서실장도 회사에 못 다니겠지. 그러니까 퇴직금이라도 넉넉히 챙기는 게 어때?”

“회사의 돈을 빼돌리라는 거야?”

“돈을 빼돌릴 수 있으면 그것도 좋은데, 신기술은 없나?”

“사장님이라면 신기술 하나쯤은 더 개발해놨겠지. 그럼 그걸 빼돌릴까? 내 몫도 챙겨주는 거지?”

천호균이 군침을 꿀꺽 삼켰다.

‘M 연료전지 같은 혁신적인 신기술을 빼내면 외국 정부와 거래할 수 있을 거야. 그럼 그 나라에서 나를 숨겨주겠지. 외국에 나가서 흥청망청 살 수 있어.’

“그래. 그런 신기술을….”

갑자기 등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천호균이 뒤를 휙 돌아보았다.

엠투가 펜션 마당에서 거실을 향해 빠르게 접근하다가,천호균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점프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