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 나찰
탐사대 지원위성의 격납고 문이 열렸다. 1인승 비상탈출용 강하 캡슐이 격납고에서 빠져나왔다.
그 순간에는 카모플라쥬 시스템이 선체를 완전히 숨기지는 못했다. 격납고 주변 모습이 살짝 드러났다.
누군가 그때 바로 그 지점을 고성능 천체 망원경으로 보고 있다면 격납고 문과 강하 캡슐을 볼 수는 있었다.
하지만 노출된 시간이 워낙 짧아서 발견될 확률은 극히 낮았다. 격납고 문이 닫히면서 카모플라쥬 시스템도 다시 선체를 완전히 가렸다.
김수선이 탑승한 강하 캡슐이 탐사대 지원위성을 완전히 이탈해 지상으로 하강했다.
캡슐이 목표 지점의 지표면까지 미사일처럼 수직으로 내리꽂히게 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러면 강하 캡슐의 표면이 너무 뜨거워진다. 지상의 대공 방어 시스템에 노출될 위험도 커진다.
그래서 강하 캡슐의 속도는 미사일보다는 느리고 낙하산보다는 빠른 속도를 유지하며 하강했다.
추락에 가까운 속도로 비행하던 캡슐은 지상 근처에서 하강 속도를 줄였다. 목표 지점인 펜션은 도시가 아니라 충청도 산속에 있다.
김수선이 말했다.
“적의 거점이 산속에 있으니까 목격자는 거의 없겠지.”
강하 캡슐은 지상의 레이더를 회피하는 능력이 어느 정도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내리꽂히면 노출 위험은 커진다.
강하 캡슐은 사람이 눈으로 보면 보인다. 김수선은 조금이라도 덜 보이게 하려고 강하 캡슐을 하늘색으로 칠해놓았다.
캡슐의 하강 속도가 충분히 줄어들었다가, 낙하산 정도의 속도로 감속해 산속에 꽂혔다. 강하 캡슐에 충돌한 나뭇가지들이 와장창 부러졌다.
김수선은 지상에 도착하자마자 캡슐 안쪽에서 손잡이를 당겼다. 캡슐이 쪼개지는 느낌으로 활짝 열렸다.
“지상이 이렇게 가까운데, 여기까지 오는 데 너무 오래 걸렸어.”
김수선이 선우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휴대폰은 보급형 더미 위성에 부품 형태로 들어 있었다.
김수선이 보고했다.
“선장님. 지상에 도착했습니다.”
- 수선아. 내가 그동안 지상의 법을 잘 지킨 건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선은 안 넘겼단 말이지. 그런데 저놈들이 선을 넘네?
“이번엔 저도 인정합니다. 작전명은 오퍼레이션 가드니스로 하시죠.”
- 오퍼레이션 김엔젤로 하자.
“선장님? 저 지금 지상에 와 있습니다만? 이제 선장님께 손이 닿습니다만?”
- 그래. 김엔젤.
◈ ◈ ◈
곽덕구는 선우현을 차를 타고 30분쯤 가야 나오는 산속으로 유인할 계획이다. 그는 아직 함정에 필요한 장비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곽덕구는 출발 전까지 청부업자 몇 명을 사냥꾼으로 위장시켜 주변을 순찰하게 했다. 엽총을 받은 청부업자들이 사냥꾼 역할을 맡았다. 그들은 복면 위에 모자와 마스크, 선글라스를 썼다.
펜션 외곽을 대충 돌아다니던 청부업자가 사냥용 2연발 엽총을 만지작거렸다.
“그 새끼를 제일 먼저 발견해서 쏘면 금괴가 하나 더, 막타를 쳐서 죽이면 금괴가 열 개 더. 원래 받기로 하던 것까지 더하면 열두 개.”
청부업자가 엽총으로 앞을 겨누며 말했다.
“그냥 헤드샷으로 한 방에 보내면 내가 다 먹을 수 있잖아. 이번 기회에 팔자 좀 고쳐….”
갑자기 그의 입을 선우현의 손이 틀어막았다. 당황한 청부업자가 손가락을 방아쇠에 걸려고 했다. 그 손가락이 바깥쪽으로 확 꺾였다.
“끄으….”
선우현이 청부업자의 목을 비틀었다.
“켁.”
청부업자가 짧은 신음을 내며 무너졌다.
선우현이 청부업자의 목덜미를 왼손으로 붙잡아 바닥에 넘어지는 소리가 안 나게 했다.
오른손으로는 청부업자가 놓친 엽총을 잡았다.
“더블배럴이네.”
그 엽총은 뒤쪽에 산탄 두 발을 넣고 쏘는 방식으로 총신이 2개 달려 있었다.
선우현이 엽총을 꺾어보았다.
“실탄이다.”
- 선장님. 총을 가진 놈이 많습니다.
“곽덕구가 선을 많이 넘었어.”
-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옆쪽에서 다른 청부업자가 걸어오다가 선우현을 발견했다. 선우현의 앞에 쓰러져 있는 동료의 모습도 보였다.
“어?”
당황한 적이 황급히 사냥용 엽총을 들었다.
선우현이 산탄총의 총구를 옆으로 향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요란한 총성과 함께 적의 어깨가 휙 돌아갔다.
“으아악!”
“다 쓸어버려야지. 수선아. 거기서도 시작해.”
- 오퍼레이션 가드니스. 시작합니다.
◈ ◈ ◈
곽덕구가 박서윤에게 말했다.
“그 새끼가 함정을 부숴도 나는 고용한 청부업자들만 좀 잃을 뿐이다. 손해는 이미 준 착수금 정도이지. 대신에 그 새끼는 너나 구하니, 남미연 중 하나를 잃겠….”
갑자기 총소리가 났다.
“어?”
곽덕구가 얼른 창가로 가서 커튼 사이로 밖을 확인했다.
“뭐지?”
천호균이 거실로 뛰어들어오며 외쳤다.
“총을 도대체 누가 쏜 거야!”
“확인해봐야지. 오발일 수도 있으니까.”
천호균이 불안해했다.
“설마 그 새끼가 여기로….”
바깥을 살피는 곽덕구의 눈이 가늘어졌다.
“여기를 알아낼 수는 없다. 납치 과정에서 어떠한 단서도 흘리지 않았단 말이다. 그러니까 그 새끼는 여기가 아니라 함정으로 가야 해.”
◈ ◈ ◈
선우현이 펜션을 향해 걸어갔다.
주변을 순찰하던 다른 청부업자가 총소리를 듣자마자 바닥에 엎드렸다.
‘뭐지? 오발인가? 산에서 멧돼지라도 나타나서 놀라서 쏜 건가? 아니면….’
그는 이곳은 노출되지 않았다고 들었다.
‘설마 들킨 건 아니겠지?’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젠장. 사람이다.’
그는 동료가 실수로 총을 쐈다면 저렇게 아무 말도 없이 걸어올 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오발이라는 말이라도 하면서 오겠지. 혹시 타깃이 선수 쳐서 이곳으로 온 건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불안했다.
그의 머릿속에 다른 생각도 들었다.
‘저게 타깃이면, 지금 쏘면 금괴 열 개는 내 거네? 씨발. 그냥 조지자.’
그의 무기는 사냥용 엽총이다. 그런데 그의 무기는 2연발 더블배럴이 아니라 총신이 하나뿐인 단발 엽총이다.
곽덕구는 총을 닥치는 대로 모았다. 총의 성능을 가릴 여유는 없었다. 단발 엽총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발소리가 청부업자가 숨어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한 발로 쏴서 잡아야 해. 더 가까이 왔을 때 확실하게 보내버린다.’
은근히 기대도 됐다.
‘이 한 방으로 현상금은 전부 다 내 거다.’
그는 숨을 죽이고 발소리가 가까워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충분히 가까워졌다 싶을 때 벌떡 일어났다.
“죽….”
그런데 그가 총구를 앞쪽으로 들기도 전에, 그를 향하고 있는 더블배럴 엽총이 보였다.
“어?”
선우현이 방아쇠를 당겼다. 산탄이 적의 몸을 정통으로 때렸다.
“케엑!”
적의 손가락은 이미 방아쇠에 걸려 있었다. 적이 뒤로 튕겨 나가면서 방아쇠가 움직였다. 총탄이 하늘을 향해 발사됐다.
선우현이 산탄총을 꺾었다. 탄피 두 개가 연기와 함께 튀어나왔다.
선우현이 첫 번째 놈에게서 빼앗아온 탄약 두 발을 끼워 넣고 더블배럴 산탄총을 똑바로 폈다.
◈ ◈ ◈
총소리가 거의 동시에 두 번이나 났다. 비명도 들렸다.
천호균이 펄쩍 뛰었다.
“왔잖아! 그 새끼가 여기로 쳐들어온 거라고!”
“쫄지 마. 씨발. 경찰이 왔으면 경고도 없이 총을 쏘진 않아. 그러니까 지금 여기에 경찰은 없다.”
“지, 진짜야?”
“게다가 총소리가 권총이나 자동소총이 아니야. 산탄총이다. 한국 경찰이 그런 걸 쓰겠어? 그 새끼 혼자 온 거야.”
“그, 그럼 어떻게….”
“함정이 아닌 건 아쉽지만, 우리 병력은 여기 다 모여 있다. 잡아야지. 잡을 수 있어.”
곽덕구가 천호균에게 지시했다.
“넌 저 여자나 지키고 있어. 저 새끼가 여기로 쳐들어오면 저 여자를 쏴버려.”
“어? 어?”
곽덕구가 방탄복을 입고 방탄헬멧까지 쓴 후에 거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저 새끼는 내가 잡을 테니까 인질이나 똑바로 지키란 말이다.”
박서윤은 걱정이 들었다.
‘우현 씨가 오긴 왔는데….’
총소리가 났다. 그런데 총소리가 나는 간격이 이상했다.
‘혹시 우현 씨가 놈들을 총으로 쏘고 있는 건가?’
그녀는 선우현이 적의 무기를 빼앗는 건 여러 번 봤어도 총을 쏘는 건 본적이 없다.
‘경찰의 협조를 받으려고 선을 지키신 줄 알았는데, 이번엔 왜…. 어쩌시려는 거지?’
◈ ◈ ◈
선우현이 말했다.
“일단 서윤 씨가 있는 실내에서 저놈을 끌어내야 해. 특히 곽덕구가 위험해.”
곽덕구가 거실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질렀다.
“선우현!”
총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곽덕구는 자기를 쏘는 줄 알고 움찔했다.
곽덕구가 소리를 질렀다.
“선우현! 이렇게 나오면 인질을 죽이겠다!”
선우현이 숲에서 모습을 슬쩍 드러냈다.
그는 곽덕구를 자극하려고 일부러 모습을 보여주었다. 바로 옆에 바위가 있어서 엄폐물로 삼기도 좋았다.
선우현이 말했다.
“곽덕구. 직접 보는 건 처음이네.”
“인질을 살리고 싶으면 비트코인과 신기술을 가져오라고 했을 텐데, 이게 무슨 짓이냐!”
“함정 파놓을 게 뻔히 보이는데 거기 들어갈 리가 있냐? 누굴 바보로 아나.”
“그래서 여기로 쳐들어왔나?”
“물론이지.”
곽덕구가 이를 갈았다.
‘내 계획이 틀어졌다.’
의심도 들었다.
‘정보가 샜나? 누구지? 혹시 청부업자들을 알선한 그놈?’
“여기 위치는 어떻게 알아냈지?”
선우현이 대답했다.
“그건 내 노하우인데, 잘 들어라.”
곽덕구가 귀를 기울였다.
선우현이 말했다.
“그걸 왜 가르쳐주겠냐? 진짜로 귀를 내미네? 너 좀 멍청하다?”
곽덕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씨발. 어쨌든 이 여자를 구출하러 왔잖아! 그럼 다른 두 여자는 어쩔 셈이냐! 그 여자들은 여기에 없다!”
“알아.”
선우현은 뒤쪽에 있던 놈들은 이미 정리해놨다. 그래서 뒤에서 접근하는 놈은 없었다. 그런데 옆쪽은 정리가 덜 됐다.
곽덕구가 소리를 질렀다.
“여기 있는 건 하나뿐이란 말이다!”
선우현이 산탄총을 옆으로 향하며 말했다.
“안다고.”
옆쪽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선우현이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에서 불꽃이 튀며 산탄이 적을 향해 날아갔다.
“꿰엑!”
몰래 접근하던 청부업자가 산탄에 얻어맞고 뒤로 나자빠졌다.
곽덕구가 소리를 질렀다.
“너 이 새끼! 계속 그렇게 총을 쏘면 인질들을 죽이겠다. 일단 구하니부터 죽이겠단 말이다!”
선우현이 말했다.
“그러든가.”
“뭐? 이 새끼….”
곽덕구는 당황했다.
“인질을 살리고 싶은 게 아니었나?”
“어차피 못 죽일 테니까.”
곽덕구는 그 말을 오해했다. 그는 화가 나서 시뻘게진 얼굴로 말했다.
“너 이 새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구나!”
곽덕구가 즉시 사까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상대가 전화를 받자마자 외쳤다.
“구하니를 죽여!”
사까이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 아니, 나는 구하니가 필요….
“헛소리 말고 죽이라고!”
- 그럼 기왕이면 남미연을….
“씨발! 그럼 남미연이라도 죽여!”
- 그런데 지금 저것들이 문을 안쪽에서 잠가서….
“부수고 죽여! 이 새끼야!”
곽덕구가 전화를 끊었다.
그가 명령했는데도 사까이가 즉시 행동하지 않고 이런저런 핑계를 댔다. 덕구파 두목인 곽덕구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새끼가 하필 지금 내 말에 토를 달아.”
평소 성질대로면 사까이를 찾아가 칼질이라도 하겠는데, 그는 지금은 물론이고 일본에 가서도 사까이가 필요하다.
곽덕구가 이를 갈며 선우현에게 말했다.
“선우현! 너 때문에 남미연이 죽는다!”
“말은 바로 하자. 미연 씨를 죽이라고 한 건 너잖아. 내가 아니라.”
“뭐? 이 새끼….”
“어차피 못 죽여. 이미 늦었거든.”
“뭐가 늦었다는 거냐!”
“죽는 건 네가 끌어모은 놈들이다. 파괴 천사가 지상에 강림했거든.”
◈ ◈ ◈
대학생 윤하늘은 스래곤에서 종종 알바를 한다. 윤하늘이 편의점 앞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말했다.
“천공의 주시자가 지상에 내려오면 락샤사가 된다는 예언이 있어.”
옥탑방 건물 관리인인 대학생 신나리가 물었다.
“락샤사?”
“몰라? 그럼 나찰은 들어봤지? 그게 그거야.”
“이 오빠는 또 그런 이야기구나.”
윤하늘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나리야. 이 전설에는 꽤 디테일한 부분이 있어. 어쩌면 그 전설이 사실일 수도 있다고.”
“네.네.그러시겠지.컵라면이나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