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268화 (268/281)

268. 김수선

망해버린 덕구파 두목 곽덕구가 전화를 끊으며 말했다.

“그 새끼에게 오늘 밤 10시까지 백억 원어치 비트코인을 준비하고 신기술도 가져오라고 했다.”

천호균이 물었다.

“10시면 겨우 몇 시간 뒤인데, 시간이 너무 부족하지 않나?”

“서울에서 9시에는 출발해야 하니까 당연히 시간이 부족하겠지. 여유를 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촉박한 시간으로 정했다.”

천호균이 슬쩍 제안했다.

“곽 사장. 그럼 백억과 신기술은 못 받는 건가? 시간을 좀 더 주는 게 낫지 않을까?”

곽덕구가 으르렁댔다.

“천 사장. 내가 말했을 텐데? 돈을 진짜로 받으려고 들면 그 새끼한테 당한단 말이다.”

천호균이 시선을 피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아까워서….”

“백억과 신기술은 그 새끼를 함정으로 유인하기 위한 미끼일 뿐이다.”

곽덕구는 처음부터 그럴 계획이었다.

“선우현은 내가 요구한 걸 서둘러 준비하다가, 아무것도 못 가져오거나 일부만 챙겨와서 협상하려고 하겠지. 나머지는 내일 주겠다고 할 거다.”

“내일?”

“그 새끼가 먼저 내일까지 돈을 구해오겠다고 제안했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 줄 알아?”

곽덕구가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내일까지 시간을 주면 우린 다 뒈진다는 뜻이다.”

“아….”

“그런데 이번에는 주도권을 내가 잡았으니까.”

곽덕구의 눈알이 번들거렸다.

“8시까지 함정을 준비하고, 9시에 연락해서, 10시에 허겁지겁 도착한 선우현을 죽인다. 그게 내 계획이다.”

◈          ◈          ◈

김수선이 물었다.

- 선장님. 10시에 오라는 건 함정인 거 아시죠?

“당연히 알지. 그래서 내가 5시를 목표로 가고 있잖아.”

- 계획이 있으신가요?

“곽덕구는 지금이 아니라 10시에 보자고 했다. 그건 아직 함정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뜻이야.”

- 선장님이 어떻게 나올지, 어떤 장소를 원할지 몰라서 함정을 미리 만들어두지 못했겠군요.

“함정은 지금부터 준비하겠지. 9시에 만날 장소를 알려준다고 했으니까, 8시까지는 함정 준비를 마칠 거다.”

- 선장님은 5시에 도착하실 테고요.

“내가 원래 약속 시각보다 일찍 가는 스타일이잖아.”

- 선장님이요? 아닐 텐데요.

“오늘은 그러려고.”

◈          ◈          ◈

곽덕구가 고용한 청부업자들은 모두 복면을 쓰고 있었다.

복면은 그들 중 누군가 나중에 입을 열었을 때를 대비한 조치였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모르는 상태라 체포돼도 자백할 게 없었다. 동료가 잡혀도 자기는 안 잡힌다고 생각해야 총을 쏠 때 망설이지 않는다.

복면 이마에는 숫자가 붙어 있었다. 그들은 그 숫자로 서로를 구분했다.

곽덕구가 지시했다.

“무장 확인하고 준비해라. 먼저 가서 함정을 파야 한다.”

그가 고용한 청부업자들은 모두 총기를 지급 받았다.

그들이 각자 받은 총을 확인했다. 총의 종류는 다양했다. 6연발 리볼버 권총도 있고, 사냥용 엽총도 있었다.

청부업자 중 한 명이 물었다.

“타깃을 제거하면 황금은 확실히 주는 거겠지?”

“물론이다. 착수금 한 개, 타깃을 제거하고 나서 한 개.”

곽덕구가 사용하는 금괴는 1kg짜리였다. 이미 모든 청부업자에게 착수금으로 금괴를 하나씩 나눠준 상태였다.

“그리고 타깃을 죽인 사람은 현상금으로 금괴 열 개.”

사람들이 입맛을 다셨다.

“죽인 놈은 십억 정도는 챙기겠군.”

불만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막타 친 사람이 다 먹는 건 좀 그렇지 않나?”

“타깃이 살아있을 때 총알을 맞힌 사람은, 확인만 되면 보너스로 금괴를 하나씩 주지.”

“그래도 막타가 너무 많이 먹는데….”

곽덕구가 말했다.

“그러면 네가 그놈을 죽여라.”

“어?”

다른 놈들이 웃었다.

“흐흐흐. 맞아. 황금을 원하면 타깃을 죽이면 되지.”

“죽인 놈이 왕건이를 먹는 거야. 나머지는 찌꺼기만 먹고.”

청부업자들은 총기를 점검하며 시시덕댔다.

곽덕구가 천호균에게 물었다.

“사까이는?”

“아까 확인했는데 괜찮았다.”

“다시 확인해라.”

천호균이 사까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까이 씨. 거긴 문제없습니까?”

- 여긴 아무 문제 없습니다. 주변은 조용합니다. 여자들도 잘 가둬놨습니다.

“잘 감시하십시오. 인질들이 우리 손에 있어야 그 새끼를 잡을 수 있으니까.”

- 여기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천 사장은 거기서 그 새끼나 확실히 잡아요.

천호균이 인상을 살짝 썼다가 전화를 끊었다. 그런 후에 곽덕구에게 말했다.

“저쪽은 아무 문제 없다.”

“이쪽에서 일이 틀어지면 거기 있는 여자들을 죽여야 한다. 거기 문제가 생기면 여기 있는 여자를 죽여야 하고.”

천호균이 물었다.

“그건 우리가 실패했을 때의 대안이잖아. 선우현은 혼자 올 거라며. 잡을 수 있는 거 맞지?”

“그놈은 상대가 총을 들었을 때도 늘 혼자서 싸워서 이겼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혼자 해결하려고 하겠지.”

곽덕구가 실실 웃었다.

“그게 그놈의 약점이다. 이곳에 총잡이가 이렇게 만다는 건 꿈에도 모를 테니까.”

◈          ◈          ◈

선우현이 경기도 펜션에 도착했다.

“외곽에 매복한 놈들이 있다.”

김수선이 보고했다.

- 선장님. 충청도 펜션 주변에 있는 놈들은 모두 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여기 있는 놈들도 전부 무장했겠네.”

- 그렇게 판단하고 대처하셔야 합니다.

“거기는 몇 놈이나 있냐?”

- 넷을 찾았습니다.

“여기는 훨씬 더 많아. 역시 여기가 적의 본진이다. 거기서는 인질만 데리고 있는 거야.”

- 구하니와 남미연을 찾았습니다. 실내에 갇혀 있습니다. 창문에 창살이 있습니다.

“두 사람의 상태는?”

- 다치지는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놈들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상태입니다.

“일단은 살려두려는 거구나.”

- 상황이 변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요.

“곽덕구가 나와 접촉하기 전까지는 살려둘 거야. 인질은 살아있어야 가치가 있으니까.”

- 어떻게 할까요?

“내가 서윤 씨의 위치를 확인할 때까지 일단 관찰만 해.”

- 선장님. 지금 상황에서는 제가 선장님을 서포트할 수 없습니다.

“여기는 내가 해결해야지.”

- 알겠습니다.

◈          ◈          ◈

구하니와 남미연은 펜션의 작은 방에 두 손이 묶인 채로 앉아있었다. 창문에는 외부 침입 방지용 창살이 설치되어 있었다. 금속으로 된 그 창살을 맨손으로 뜯어내는 건 무리였다.

이쪽 책임자인 사까이가 밖에서 창살 사이로 안쪽을 보며 작게 말했다.

“나는 그냥 구하니와 찐하게 연애하려던 것뿐인데.”

사까이는 한국말을 할 줄은 알지만 일본 억양을 숨길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구하니에게 말을 걸지는 않았다. 그는 정체를 숨기려고 얼굴을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가리고 있었다.

“그냥 구하니의 몸이 궁금했던 것뿐인데, 일이 너무 많이 꼬였어. 젠장. 일본에서처럼 쉽게 될 줄 알았는데.”

남미연이 구하니에게 말했다.

“밖에 저놈 말이야. 저놈이 대장 같은데, 너를 자꾸 쳐다본다.”

“천호균과 같이 수배된 놈 중에 일본인 사까이가 있어요. 천호균은 예전에 저한테 일본 진출을 여러 번 제안했고요. 사까이는 일본 쪽 파트너 회사 사장 아들이에요.”

“그럼 저놈이 사까이야?”

“언니는 안 보고 저만 보잖아요. 그런 느낌이 들어요.”

남미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평범한 남자라면 나한테 시선이 안 갈 수가 없지.”

“그게 서운하셨어요?”

“그럴 리가 있어? 나는 저런 뱀 같은 놈의 시선이 싫어. 그냥 상황을 파악한 것뿐이야.”

남미연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구하니가 대답했다.

“우현 씨의 납치된 사람을 찾는 능력은 세계 최고예요. 곧 우리를 찾아낼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납치됐다는 걸 알아야 찾을 수 있잖아.”

“그것도 알겠죠.”

“우현 씨를 왜 그렇게 믿는 거야?”

“납치된 사람을 구하는 거 많이 봤으니까요. 우현 씨가 언니도 구해준 적 있잖아요.”

“그렇기는 한데….”

남미연이 걱정했다.

“저놈들은 총을 가지고 있더라.”

구하니도 그 점이 걱정됐다.

“저도 봤어요.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경찰에 신고하겠죠.”

“설마 우리를 사이에 두고 경찰과 저놈들이 총격전을 벌이지는 않겠지?”

“왜 무서운 말을 하고 그러세요?”

◈          ◈          ◈

김수선이 탐사대 지원위성에서 보고했다.

“선장님. 강하 준비가 끝났습니다.”

선우현이 말했다.

- 고민 중이야.

“선장님. 선체가 고도를 유지할 수 있는 한계 지점까지 내려와 있습니다. 여기서 현재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계속 소모하고 있습니다.”

- 알아.

“적의 본진을 선장님이 공격한다면요. 그러면 여기는 제가 지상으로 내려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 역시 네가 내려오는 게 최선인가?

“유일한 방법이죠. 선장님도 그래서 선체의 고도를 한계까지 낮추라고 하셨잖습니까?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 네가 내려오더라도 결국 다시 올라가야 해.

“알고 있습니다. 선체가 쪼개지기 전에 다시 올라와야죠. 그러려면 우주왕복선이 필요하고요. 왕복선은 시간만 충분히 지나면 손에 넣을 수 있다면서요.”

- M 연료전지가 본격적으로 팔리면 결국은 그렇게 되겠지.

선우현이 말했다.

- 그때까지 선체가 너 없이 버틸 수 있어야 해.

김수선이 지원위성의 상태를 보고했다.

“현재 외부 자동 수리모듈 두 대에, 내부 수리모듈 한 대를 가동한 상태입니다.”

예전에 자동 수리모듈을 쓰지 않은 건 자원을 절약하기 위해서였다. 자동 수리모듈은 자원을 넉넉하게 사용해 튼튼하게 수리한다. 자원이 충분한 상태를 가정하고 만든 장치이기 때문이다.

“다른 중요 시스템도 점검하고 수리했습니다. 제가 없으면 고장이 좀 날 수는 있어도, 당분간은 선체가 쪼개지진 않을 겁니다.”

- 강하 캡슐 상태는?

탐사대 지원위성에는 선체가 쪼개졌을 때를 대비해 만들어둔 비상탈출용 탑승형 강하 캡슐이 하나 있다.

“탑승형 강하 캡슐에 기능 보강까지 마쳤습니다.”

- 언제?

“위성 궤도에서 토마스를 구출했을 때와 최근에 보급용 더미 위성을 받았을 때입니다. 그때 챙긴 보급품들을 분해해 캡슐 보강 작업에 썼습니다.”

◈          ◈          ◈

선우현이 펜션 주변을 조사하며 말했다.

“수선아. 너는 내려올 준비를 다 해놨구나?”

- 우주왕복선이 올라올 날만 기다리고 있으면 답이 없어서요.

“내려오기 싫으면 말해. 여기 상황은 내가 어떻게든 해결할 테니까, 네가 괜히 무리할 필요 없다.”

- 설마 내려가기 싫겠습니까?

선우현이 생각하기에도 지원위성보다는 지상이 훨씬 더 살기 좋다.

그렇다고 지원위성을 포기할 수는 없다. 지금 내려와도 다시 올라가긴 해야 한다. 다만 지금은 다시 올라갈 수단이 우주왕복선밖에 없다.

“언제 내려올 수 있냐?”

- 지금 당장, 지상으로 내리꽂힐 수 있습니다. 선체의 고도가 낮으니까요.

“그렇게 내려오면 탐지당할 위험이 클 텐데?”

- 강하 캡슐에 스텔스 기능을 조금 보강했습니다. 잠깐 탐지될 수는 있는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요. 단발성 사건이니까 뭐가 왜 탐지됐는지 모를 겁니다.

“이 방법뿐이지?”

- 적의 거점 양쪽을 동시에 공략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선우현이 결정을 내렸다.

“승인한다. 하니 씨와 미연 씨는 네가 맡아.”

◈          ◈          ◈

박서윤은 경기도 펜션에 갇혀 있었다.

그녀는 전호 호텔 주차장에서 테이저건에 맞고 납치됐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은 검은색 안대로 눈이 가려졌다.

그녀는 의자에 묶여 있었다. 그녀의 눈을 가린 안대가 벗겨졌다.

그녀는 밝은 빛 때문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가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확인했다. 시력이 빠르게 회복되었다.

거실 창문 밖에 총을 가진 사람들이 보였다. 눈앞에는 얼굴을 가린 남자가 있었다.

박서윤이 물었다.

“당신 누구야?”

곽덕구가 히죽거렸다.

“얼굴은 예쁜 년이 말이 짧구나.”

“말을 곱게 한다고 풀어줄 건 아니잖아.”

“거기다 겁도 없고. 흐흐. 아깝군. 내 밑에 있었으면 쓸모가 많았을 텐데.”

박서윤이 곽덕구를 노려보며 말했다.

“짐작은 하고 있어. 의심 가는 사람 중에 총을 가진 사람을 저렇게 많이 모을 수 있는 놈은 하나뿐이니까.”

“역시 스래곤 비서실장은 다르군.”

곽덕구는 정체가 들킨 걸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선우현은 그가 누구인지 안다.

“그렇게 똑똑한 여자가, 왜 내가 누구인지 안다는 걸 드러냈을까? 모르는 척해야 살 확률이 높아지는데.”

박서윤은 곽덕구가 그녀를 ‘스래곤 비서실장’이라고 부른 걸 떠올렸다.

‘나와 우현 씨 사이를 일로 엮인 관계라고 생각하는 느낌이 들어.’

그녀가 대답했다.

“사장님이 구해줄 테니까.”

곽덕구가 웃었다.

“크하하하. 선우현을 믿나?”

“완전히 신뢰해.”

“내가 선우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를 납치했다고 하니까, 너를 구하기 위해 오겠다더군.”

박서윤의 표정이 굳었다.

“함정을 팠어?”

“눈치도 빠르군. 정말 마음에 들어. 맞아. 그런데 말이야.”

곽덕구가 실실 웃으며 손가락으로 바깥을 가리켰다.

“그 새끼는 여기가 아니라 내가 파놓은 함정으로 달려올 거다. 거기가 함정인지도 모르고 말이야. 크하하하.”

박서윤이 말했다.

“너는 사장님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 사장님이 그 함정을 부숴버릴 거야. 너는 절대로 이길 수 없어.”

“그 새끼가 함정을 부순다 해도 여기 있는 너를 찾지는 못해. 나는 다른 함정을 파놓고 또 협박하면 돼. 아. 그걸 아직 이야기 안 했군.”

곽덕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인질은 너 말고도 둘이나 더 있어. 구하니와 남미연을 다른 곳에 잡아놨지. 선우현이 살아서 함정에서 빠져나가면, 인질 중 하나는 무조건 죽는다.”

박서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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