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267화 (267/281)

267. 5시

지금 단서를 찾은 건 남미연의 차 한 대뿐이다.

선우현이 최민영이 그린 그림을 보았다. 거기에는 두 여자가 같이 있었다.

“펜션 위치를 문자로 보내주시죠. 확인할 게 있습니다.”

- 바로 보내겠습니다.

선우현이 일단 전화를 끊고 방송국 예능 작가 안유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 앗! 우현 오빠. 마침 전화 잘했어요. 우리 방송에 게스트….

“시끄럽고, 하니 씨 오늘 스케줄 알아?”

- 하니 언니요? 그 언니는 요즘 노는데요? 앗! 하니 언니랑 같이 출연하게요? 대박!

옆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아니야. 안가.”

- 쳇. 안 온대요.

“그럼 하니 씨가 오늘 누구 만난다는 말은 못 들었냐?”

- 아. 맞다. 내가 밥 사달라니까 오늘은 남미연 씨랑 밥 먹는다고 했는데. 와. 남미연 씨까지 같이 출연하면 우리 예능 대박이 날….

선우현이 전화를 뚝 끊었다.

“둘이 같이 있다가 납치됐을 거야. 아니면 따로 납치돼서 같은 곳에 갇혔든지.”

- 선장님. 구하니와 남미연은 현재 위치에 관한 단서가 있는데, 박서윤은 어떻게 찾지요?

“서윤 씨가 납치된 위치는 서울 동쪽이다. 납치한 놈들의 대화로 추측해 보면, 경기도 외곽으로 이동했을 확률이 높아.”

- 외곽은 동서남북이 있습니다.

“서울을 관통하는 것보다는 동쪽으로 가는 게 빨라. 그쪽에는 산이 많아서 숨을 곳도 많으니까.”

- 선장님. 여전히 조사 범위가 너무 넓고 차량도 많습니다. 하나씩 찾아서는 답이 없습니다.

선우현이 스마트폰 지도를 띄워 최종훈이 보내준 펜션 정보와 위치를 확인했다.

“하니 씨와 미연 씨는 충청도 산속에 있는 단독 펜션으로 데려갔어. 사람이 있는 곳을 피한 거야.”

선우현은 왜 하필 펜션인지 생각해보았다.

“펜션을 통째로 빌리면 사람을 숨기기 좋겠지. 이미 예약된 펜션에는 아무도 안 올 테니까.”

- 박서윤을 데려간 곳도 비슷한 조건이겠군요.

“경기도 동쪽, 차나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 장소, 그런 곳에 있는 단독 펜션 위주로 조사해.”

◈          ◈          ◈

선우현의 오토바이가 옥탑방에 거의 도착했을 때 김수선이 보고했다.

- 선장님. 외진 곳에 있는 단독 펜션들을 여러 개 찾았습니다. 그곳으로 향하는 차량들도 추적하고 있습니다. 짐칸이 개방된 1톤 트럭은 제외했습니다. 승용차나 승합차는 틴팅이 앞유리까지 진하게 된 차만 추적하고 있습니다.

“추적 대상이 몇 대야?”

- 의심 가는 건 일곱 대입니다.

“이미 목적지에 도착했을 수 있다. 주변을 감시하는 놈들이 있는 펜션도 조사해.”

김수선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 선장님. 차량 한 대가 산속에 단독으로 있는 펜션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펜션에는 주변을 감시하는 것처럼 돌아다니는 놈들이 있습니다.

“확인해!”

- 차가 멈췄습니다. 차 문이 열립니다. 운전석에서 한 명, 뒷문에서 한 명, 세 번째…. 박서윤입니다! 찾았습니다!

“상태는?”

- 두 손을 묶인 채로 내리고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다친 곳은 없어 보입니다.

“다행이다.”

선우현이 스마트폰에서 안성준 형사의 연락처를 찾았다.

“경기도와 충청도에 인질이 분산되어 있으니까, 경찰과 함께 동시에 쳐야겠어.”

그는 안성준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그런데 통화 버튼을 누르기 직전에 그 스마트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그는 원래 모르는 번호의 전화는 잘 받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화를 받았다. 그는 상대가 먼저 말하기를 기다렸다.

상대가 입을 열었다.

- 흐흐. 선우현 사장. 직접 통화하는 건 처음이군.

“누구냐.”

- 너에게 원한이 아주 많은 사람이지.

선우현은 아직 잡지 못한 놈들을 떠올렸다.

4선 의원 박재곤의 목소리는 안다. 게다가 박재곤은 여전히 국회의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그놈은 잃을 게 남아 있으니까, 이렇게 뒷일 생각 안 하고 일을 저지를 확률은 낮아.’

천호균은 쫄딱 망해서 도망쳤다. 원한을 품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런데 목소리가 달랐다. 천호균은 방송에 몇 번 출연했기 때문에 목소리가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짓을 저지를 놈 중에, 선우현이 목소리를 모르는 놈은 하나뿐이다.

“곽덕구.”

- 사람 잘 찾는 건 알았는데, 내 목소리는 어떻게 알았지?

“천리안이 있거든.”

- 농담할 여유가 있다니. 의외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지 않나? 경찰이 쑤시고 다니던데 말이야.

“너 감당할 수 있겠냐?”

곽덕구가 웃었다.

- 크흐흐흐. 감당? 어차피 체포되면 나는 끝나. 사형이나 무기징역. 둘 중 하나가 떨어지겠지. 그런데 내가 더 감당해야 할 게 뭐가 있지?

“쥐새끼 같은 목숨이라도 건지는 게 낫잖아?”

- 이 새끼가. 아. 혹시 휴대폰 발신지를 추적하려고 시간을 끄는 건가? 스래곤 사장이니까 추적 장비가 있으려나? 소용없다. 위치 추적은 완벽하게 대비했다. 헛수고야.

“그걸 알려주려고 전화했냐?”

곽덕구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

- 경찰에 신고하면 인질들은 죽는다. 그걸 알려줘야, 다 죽는 사태를 피할 수 있겠지.

“내가 신고했는지 아닌지 알 방법이 있구나?”

- 당연히 바로 알 수 있다.

선우현은 곽덕구의 말이 허풍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박재곤?”

- 내 돈을 먹고 접대받은 놈이 어디 박 의원 하나뿐이겠나? 경찰이 알면 나도 안다는 것만 알아두라고.

“어차피 나 혼자서도 충분해. 너도 알 텐데? 네 부하가 나한테 많이 잡혔잖아.”

- 아. 나도 네가 그렇게 나올 줄 알았지. 그래서 말인데.

곽덕구가 협박했다.

- 네가 이곳을 습격하면 인질들은 죽는다. 내가 인질들을 흩어놨거든. 네가 한쪽으로 쳐들어오면 다른 쪽 인질은 그 즉시 죽는단 말이다.

선우현이 상대를 자극해보았다.

“내가 무섭나?”

통하지 않았다.

- 괴물을 상대하려면 철저히 준비하는 게 사냥꾼의 자세지. 내 요구사항은 천천히 전해줄 테니까, 이번 통화는 여기까지 하지.

전화를 끊기 전에 곽덕구가 다시 협박했다.

- 경찰에 신고하면 그 즉시 인질은 다 죽는다는 걸 꼭 기억해라.

곽덕구가 전화를 끊었다.

◈          ◈          ◈

곽덕구는 선우현의 전화번호를 박서윤의 스마트폰에서 알아냈다. 그 작업은 납치 도중에 스마트폰의 통신 기능을 차단하고 처리했다.

곽덕구가 방금 통화에 사용한 휴대폰은 대포폰이다. 게다가 이 휴대폰으로 선우현과 직접 통화한 것도 아니다. 다른 장소에 중계용 휴대폰이 따로 있었다.

“흐흐흐. 이제 선우현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경찰을 못 믿을 테니 신고도 못 하고, 혼자서 어느 한쪽으로 쳐들어갈 수도 없다.”

천호균이 욕심을 부렸다.

“곽 사장. 그 새끼는 스래곤 사장이니까 돈이 많잖아. 우리는 현금도 필요하니까, 돈도 뜯어내는 게 어떨까?”

곽덕구가 인상을 구겼다.

“그러다가 돈을 받는 현장에서 죽고 싶나?”

“어?”

“상대는 선우현이다. 돈에 욕심부리다 놈에게 기회를 주면 우리가 당해.”

“아니, 난 그냥….”

“정신 똑바로 차려. 천 사장. 놈을 우리 계획대로 움직이게 해서, 함정에 완벽하게 빠뜨려야 해. 그래야 우리가 살아.”

곽덕구가 대포폰을 흔들었다.

“하지만 천 사장 생각도 나쁘진 않아.”

“어?”

“우리가 돈이 목적인 것처럼 꾸밀 수는 있겠지. 그 새끼는 지금쯤 초조해졌을 테니까, 거액을 준비하라고 요구해 볼까? 그러면 더 혼란에 빠질 테니까.”

천호균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정말로 거액을 준비해 오면, 선우현을 죽인 후에 챙겨도 되겠지?’

천호균이 실실 웃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였다.”

◈          ◈          ◈

선우현이 인상을 썼다.

“선택을 해야겠네.”

- 누구를 구하러 가실 겁니까?

선우현이 옥탑방 건물에 도착했다.

“난 박서윤 씨에게 간다.”

- 예뻐서인가요? 구하니보다 예쁘고, 남미연보다 젊긴 하군요.

“왜 삐딱선이냐?”

- 아닌가요?

“놈들의 경기도 펜션이 충청도 펜션보다 여기서 훨씬 더 가까워.”

- 아!

“뭘 기대한 거냐.”

- 그럼 구하니와 남미연은 어떻게 할까요?

“지금 지원위성의 궤도는?”

- 통상 궤도 중 낮은 쪽에 있습니다.

“더 낮춰. 제일 낮은 궤도까지.”

- 선장님. 제일 낮은 궤도는 너무 지상과 가깝습니다. 그곳에서 정지위성처럼 움직이려면 에너지를 많이 소비해야 합니다. 통상 고도로 복귀할 때도 대량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알아. 그래도 이동해.”

- 최저 고도로 이동할 때 효율적 비행 코스를 채택하면 에너지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만….

“그러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까, 하강 속도도 최대로 높여.”

- 에너지를 펑펑 낭비해야겠군요.

“지상에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서 관측 카메라로 살펴봐.”

- 나중에 에너지 많이 채워주셔야 합니다.

“위성 발사용 로켓에 더미 위성이 들어갈 빈자리가 있나 알아보자.”

- 미국이나 유럽의 지상 로켓에 문제가 생겨야겠군요.

“출발했지?”

- 이미 하강 시작했습니다. 지구 쪽으로 가속 중입니다.

“선체 상태는 어때?”

- 외부 자동 수리모듈을 두 대 돌리고, 내부 수리모듈도 하나 돌리고 있습니다. 보급받은 자원으로 꾸준히 수리한 덕분에 이런 급격한 기동에도 선체가 쪼개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행이네.”

- 보급용 더미 위성에 있던 부품들을 활용해 관측 카메라의 보조 기능까지 수리 중입니다. 외부 견인 크레인도 고쳤습니다. 자원이 여유가 있으니까 이렇게 안정적입니다.

“빨리 내려가기나 해.”

◈          ◈          ◈

지구 바깥쪽 인공위성 궤도에 있던 탐사대 지원위성의 고도가 빠르게 낮아졌다.

탐사대 지원위성은 평소에는 궤도를 바꿀 때 지구 궤도를 나선으로 돌면서 내려가거나 올라간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탄도 미사일이 지구를 향해 날아가듯이 충청도 펜션을 향해 거의 수직으로 내리꽂히고 있었다.

에너지가 빠른 속도로 소모되었다.

김수선이 계기판을 보며 불평했다.

“이러다 금방 에너지 거지 되겠다.”

하강하는 선체 옆쪽으로 인공위성 하나가 거의 스치듯이 지나갔다.

“놀라라.”

김수선이 보고했다.

“선장님. 충청도 펜션을 향해 고속으로 하강 중입니다.”

- 나도 경기도 펜션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최저 고도로 내려가면 충청도 펜션을 자세히 관찰할 수는 있습니다.

지원위성의 고도를 최저로 낮추고 수평으로 원을 그리며 이동하면 모든 각도에서 지상의 특정 지점을 관측할 수 있다. 그러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러면 경기도 산속 펜션 쪽은 관측이 제한됩니다.”

- 지원위성으로 두 지역을 왕복하면서 조사하는 건 무리지?

“외부 자동 수리모듈을 두 대 돌리고 있긴 하지만, 그렇게 무리한 기동을 하면 선체가 못 버틸 수 있습니다.”

선우현이 결정했다.

- 경기도 쪽은 내가 알아서 해결할게.

“알겠습니다.”

◈          ◈          ◈

선우현이 경기도 펜션으로 가고 있을 때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이번에도 곽덕구였다.

곽덕구가 말했다.

- 인질들을 살리고 싶으면 네가 가져와야 할 게 있다.

“뭘 원하냐?”

- 현금 백억.

“그걸 다 차에 싣고 다닐 생각이냐?”

- 그런 문제가 있겠군. 그럼 현금 백억의 가치만큼의 비트코인으로 바꾸지. USB 하나에 담아와라.

“내가 이래서 가상화폐를 싫어해.”

- 그리고 M 연료전지 기술.

“거기 들어간 기술들은 이미 특허를 냈다. 검색하면 다 나와.”

곽덕구는 그런 쪽으로는 아는 게 없다.

- 그런가? 그러면 M 연료전지 수준의 혁신적인 신기술로 하지.

“왜 나한테 그런 기술이 있다고 생각하지?”

- 스래곤 사장 선우현. 너에 대해 알아봤다. 신기술을 연달아 뚝딱뚝딱 만들어냈다더군. 그러면 지금쯤이면 발표하지 않은 신기술 하나쯤 더 있겠지.

선우현이 경기도 펜션을 향해 가면서 말했다.

“정확하게 봤다. 네가 요구한 거 다 가져갈 테니까 장소를 정해라. 그 장소로 인질들을 다 데려와. 그럼 백억과 신기술을 넘겨줄 테니까.”

곽덕구가 실실 웃었다.

- 흐흐. 나를 바보로 아나? 인질을 살리고 싶으면 돈과 기술을 먼저 가져오라고. 칼자루는 내가 쥐고 있다는 거 잊지 말고.

“협상할 생각이 없구나.”

- 나는 세 명이나 잡고 있으니까, 협상할 필요가 없지. 네가 말을 듣지 않아서 인질 하나쯤 죽인다 해도 둘이 남아.

선우현이 제안했다.

“내일까지 준비하지.”

- 내일?

“비트코인은 하늘에서 떨어지냐? 일단 사들여야 할 거 아냐.”

- 오늘 밤 10시로 하지. 1분이라도 늦으면 셋 중 한 명은 죽는다. 9시에 문자로 장소를 보내줄 테니까 10시까지 도착해라.

전화가 뚝 끊어졌다.

선우현이 말했다.

“10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 선장님. 박서윤이 납치된 장소에는 언제 도착하십니까?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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