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266화 (266/281)

266. 분산

JHC 테크 사장 최종훈이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최민영의 작업실로 들어갔다.

최민영은 소파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선우현이 작게 말했다.

“자고 있다.”

- 하필 지금 잠이 들었다면, 이젠 가능성이 없다고는 못하겠네요.

최종훈이 최민영을 깨우려고 했다.

“얘가 아무 데서나 자는 애가 아닌데….”

선우현이 최종훈의 팔을 잡았다.

“지금은 건드리면 안 됩니다.”

“네?”

“지금 꿈을 꾸고 있습니다. 꿈에 따라서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잠시 기다리시죠.”

최민영은 눈동자가 눈꺼풀 아래에서 움직이다가, 두 사람이 내는 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아…. 또 꿈 꿨….”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뭐, 뭐야! 누구야!”

최종훈이 말했다.

“네 오빠다.”

“우현 오빠?”

“내가 앞에 있는데 나는 왜 안 보이냐?”

최민영이 눈을 깜빡이며 두 사람을 확인했다.

“내 작업실에 왜…. 앗! 내 얼굴 보지 마! 나 잠깐 화장부터….”

선우현이 말했다.

“그럴 시간이 없어.”

“네?”

“너 원래 이 시간에 자니?”

“아뇨! 그냥 갑자기 졸려서 잠깐 잔 거예요!”

“역시 그렇구나. 그러면, 네가 방금 꾼 꿈 이야기를 들어야겠다.”

“네?”

“그 꿈, 반복해서 꾸는 그런 꿈이냐?”

최민영이 선우현을 보았다. 선우현은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녀가 설명했다.

“몰라요. 오늘 처음 꾼 꿈이에요. 반복될지 그냥 꿈일지는 오늘 밤이 지나야 알아요.”

“너 최근에 서윤 씨 만난 적 있지?”

최민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병풍처럼 생긴 가림막에 붙일 그림을 좀 달라던데요. 그리다 망쳐서 버리는 그림이면 된다면서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걸 줘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

“아예 새로 그려주겠다고 했죠. 어떤 그림을 그릴지 이야기하려고 최근에 몇 번 만났어요.”

최민영이 말한 가림막은 옥탑방 옥상에서 활토 화분을 가릴 때 쓰는 것이다.

“오늘 꾼 꿈이 그 가림막과 관련이 있나?”

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거기에 그리려던 거랑은 달라요. 무슨 뜻인지 모르는 꿈인데….”

“그 그림을 지금 당장 그려봐. 가능한 한 빨리. 완성도보다는 꿈을 묘사하는 데 집중해서.”

최민영은 선우현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연필을 잡았다.

“일단 해 볼게요. 우현 오빠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          ◈          ◈

안성준 형사가 탑차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블랙박스에 찍힌 그 탑차가 맞아.”

동료 형사가 차 내부를 확인하며 말했다.

“젠장. 이미 튄 거 맞네.”

“지금부터 이 차를 조사하면 박서윤 씨는 언제 찾지?”

“놈들이 여기서 차를 또 갈아탔다면, 그리고 그 차도 버렸으면, 찾는 시간은 점점 더 오래 걸릴 거야. 그러다 놓칠 수도 있고.”

“지금 당장도 다음 차를 찾는다는 보장이 없다.”

안성준이 한숨을 쉬었다.

“젠장. 박서윤 씨를 찾으려면 굿이라도 해야 하나.”

◈          ◈          ◈

최민영이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다. 시간이 없어서 물감은 쓰지 않고 연필로 스케치만 했다.

꿈은 원래 잠에서 깨고 나면 기억에서 빠르게 사라진다.

그런데 최민영은 같은 꿈을 며칠이나 몇 주 동안 반복해서 꿀 때가 있다. 그렇게 여러 날을 꿈을 꾸다 깼을 때 조금씩 기억하다 보면, 나중에는 꿈을 다 기억할 수 있다.

그녀가 그동안 그린 꿈 그림은 그런 때에 그린 것이다. 그때는 꿈을 꽤 자세한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처음 꾼 꿈이다. 기억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연필로 급히 그리고 있지만 그림은 그리 자세하지 않았다.

선우현이 그녀가 그리는 그림을 보며 말했다.

“이쯤 되면 인정해야겠는데.”

- 상황이 어떤데 그러십니까? 마가 끼었습니까?

“그 정도는 아니야. 꿈에서 깰 때 예민하지 않았으니까, 상태가 꽤 좋아. 마가 끼었다 해도 저항하는 단계로 보여.”

- 최민영이 매일 먹는 활력 토마토는 급속성장촉진제로 키웠습니다. 그 촉진제에는 소량의 레드 포션이 들어갑니다. 그 레드 포션이 저항력을 높였을 겁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전에는 깰 때 공격성을 보였거든.”

- 상태가 안정됐으면, 최민영을 찾아간 건 실패인가요?

“아니. 지금 그리는 그림 속에 저 사람, 서윤 씨야. 이상 현상이 발현되긴 했어.”

- 점은 잘 치겠군요.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보는 거니까, 점은 못 칠 거다. 연관된 사람에게 일어난 일을 꿈을 통해 어렴풋이 보는 상태니까.”

선우현은 최민영이 꿈속에서 박서윤을 보았다는 걸 알았다. 그 꿈을 통해 박서윤의 현재 위치를 알아내고 싶었다.

그런데 그림의 배경에는 위치를 특정할 만한 게 없었다. 기억이 너무 빠르게 사라지고 있어서 배경을 자세히 그릴 수가 없었다.

선우현이 물었다.

“그게 다야?”

“아뇨. 더 있어요.”

최민영이 스케치북을 넘기더니 여자를 두 명 더 그렸다. 그런데 두 사람의 윤곽을 대충 그린 상태에서 연필을 멈추었다.

선우현이 물었다.

“민영아. 왜 그 그림 속에는 두 명이 있지? 서윤 씨와는 몸매가 달라 보이는데?”

“아. 이 꿈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여기서 깼어요. 그래서 이 꿈은 여기까지만 기억나요.”

“얼굴은?”

“기억나지 않아요. 이 두 사람도 아는 사람 같았는데….”

선우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너 혹시 최근에 서윤 씨를 만날 때, 같이 만난 사람이 있냐?”

“며칠 전에 구하니 씨랑 남미연 씨도 같이 만나서 밥 먹었어요.”

선우현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구하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휴대폰이 꺼져 있었다.

“젠장.”

그가 이번에는 남미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미연의 휴대폰도 꺼져 있었다.

- 선장님. 상황이 심각한데요?

최민영이 연필을 놓았다.

“죄송해요. 여기까지밖에 기억이 안 나요. 오늘 밤이나 내일 또 꿈을 꾸면 더 그릴 수 있을 텐데….”

“그럴 시간은 없어. 지금은 이거면 됐다.”

선우현이 스케치북을 가리켰다.

“이 그림, 내가 가져가도 되지?”

“네. 그런데….”

최민영이 선우현을 보며 물었다.

“제가 도움이 좀 됐나요?”

“아주 큰 도움이 됐다.”

“그럼 우현 오빠는 혹시….”

최민영은 어렸을 때부터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는 일을 여러 번 겪었다. 몸도 약해졌다.

그런데 그 현상은 활토를 먹으면서 많이 좋아졌다. 요즘은 반복되는 꿈을 덜 꾸고 체력도 좋아져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그런데 활력 토마토는 오직 선우현만이 키울 수 있다.

“우현 오빠는 제가 이러는 원인을 알아요?”

선우현이 스케치북을 챙기다가 멈칫했다.

“음?”

“아는 거죠? 그쵸? 저 진짜 평생 궁금했어요. 왜 저한테 이런 병이 있는지 알려주면 안 돼요?”

“그건 병이 아니라….”

“그럼 뭔데요?”

김수선이 끼어들었다.

- 선장님. 최민영에게 진실을 알려주면 안 됩니다. 마가 끼면 상황이 심각해집니다.

선우현이 말했다.

“천리안 스킬?”

- 선장님?

“네?”

“농담이다. 그냥 네 직관력이 워낙 좋아서 그런 거야. 네가 현실에서 본 모든 것, 아주 사소한 것까지 모두 포함된 정보가 무의식에서 분석돼서 꿈으로 나타나는 거야.”

“사소한 정보가 뭔데요?”

“이를테면, 네가 박서윤, 구하니, 남미연 세 사람을 만났을 때 말이야. 누군가 미행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너는 그걸 너도 모르게 눈치챈 거고.”

◈          ◈          ◈

선우현이 최민영의 작업실이 있는 건물 밖으로 나왔다.

최종훈이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따라왔다.

“선우현 씨. 제 동생의 몸에 혹시 무슨 안 좋은 거라도….”

“활력 토마토를 매일 먹으면 괜찮을 겁니다.”

“뭔가 아시는 게 있으면 말씀해주시죠. 제가 걱정돼서요.”

“나도 확실한 건 모릅니다. 짐작만 하는 단계인데, 이건 무리해서 확인하면 오히려 안 좋습니다.”

“그러면 혹시….”

최종훈이 망설이다가 물었다.

“신내림 같은 건가요?”

선우현이 스마트폰을 들어 앱을 실행하려다 최종훈을 돌아보았다.

“그런 거 믿으시는구나. 의외네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런 건 아닙니다. 민영이는 괜찮습니다. 난 지금 당면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해서.”

“아!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뭐든 말씀하십시오. 박서윤 씨를 찾는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지금 서윤 씨만 문제가 아닙니다.”

“예?”

선우현이 인상을 썼다.

“구하니 씨와 남미연 씨도 연락이 안 됩니다.”

“헉!”

구하니의 연예인용 밴에는 침입자가 강제로 문을 열면 그 모습을 촬영해 선우현의 스마트폰으로 전송하는 장치가 있다.

그런데 스마트폰에는 들어온 영상이 없었다.

선우현의 스마트폰에는 그 보안 장치를 원격으로 작동하는 앱이 설치되어 있다. 지난번에 구하니가 천호성과 함께 납치됐다가 구출한 후에 그 앱을 설치했다.

선우현이 구하니의 차 카메라를 원격으로 켰다.

영상이 들어왔다.

“여긴 주차장인데….”

차 아래쪽에서 바퀴 사이를 촬영했기 때문에 보이는 부분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그 조금 보이는 부분이 눈에 익었다.

“하니 씨의 작업실 주차장에 세워져 있구나. 차를 놔두고 갔어.”

연락이 안 되는 사람이 구하니 한 명이라면 작업실에 찾아가서 지금 그곳에 있는지 확인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연락이 끊긴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선우현이 다른 앱을 실행했다.

남미연은 구하니의 차가 이미 예전에 M 연료전지 차량으로 개조됐다는 걸 알고 똑같이 개조해달라고 요구했다. 개조 비용은 당연히 남미연이 내야 했다.

그런데 그녀의 차를 개조할 때 M 연료전지 시스템만 장착한 게 아니다. 보안 시스템도 같은 방식으로 추가했다. 남미연이 좋은 기능이라면서 꼭 넣어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남미연의 차에 달린 보안 시스템은 구하니의 것보다 훨씬 간단했다. 구하니의 밴처럼 하체 부품을 통째로 교체한 건 아니라서 숨겨서 설치할 공간이 모자랐다.

그래서 카메라는 차량 하부가 아니라 옆쪽에 설치했다. 보조배터리도 숨겨놔서 그 보안 카메라는 차량 배터리가 끊겨도 작동했다.

선우현이 남미연의 차에서 전송된 영상을 확인했다.

“여기는…. 산 근처인가?”

두 사람 다 프라이버시 때문에 차량의 현재 위치가 전송되지는 않았다. 영상만으로 현재 위치를 파악해야 했다. 영상 속에는 산이 찍혀 있었다.

일단 세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부터 찾아야 한다. 선우현이 그 영상을 최종훈에게 전송했다.

“이 화면에 찍힌 산을 찾아서, 여기가 어디인지 알아내야 합니다.”

최종훈이 스마트폰을 꺼내 영상을 확인하며 말했다.

“지리정보 시스템과 연동해서 찾아보겠습니다. 김 비서가 그런 거 잘합니다.”

◈          ◈          ◈

망해버린 덕구파의 두목 곽덕구가 말했다.

“셋 다 잡았어. 모든 건 계획대로야.”

천호균이 불안해했다.

“곽 사장. 구하니와 남미연까지 납치할 줄은 몰랐는데, 일을 너무 크게 키우는 거 아닌가?”

“미끼가 하나뿐이면 예전 실패를 반복할 뿐이다. 선우현을 상대하려면 더 많은 총과 더 많은 미끼가 필요해.”

“그래도 뒷감당이….”

곽덕구가 히죽 웃었다.

“이건 스래곤 사장을 죽이는 일이다. 뒷감당을 걱정할 때가 아닐 텐데?”

천호균이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곽 사장. 우리가 나중에 얼굴도 바꾸고 신분도 바꾸는 그거, 확실한 거지? 한국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거지?”

“돈과 권력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TV에 나갈 정도로 유명해지지만 않으면 들키지 않아. 모든 건 계획대로 될 거다.”

곽덕구가 말했다.

“이제 1단계는 끝났으니까, 다음 단계를 진행할 때가 됐다.”

◈          ◈          ◈

최종훈은 회사로 돌아가 그 영상을 김찬혁에게 넘겼다.

“이거 지리정보시스템을 이용해서 조사해봐.”

김찬혁이 무슨 상황인지 들은 후에 말했다.

“여기 찍힌 산 말입니다. 인터넷에 찍힌 사진들하고 비교해보는 것도 해야겠는데요?”

“역시 김 비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

◈          ◈          ◈

선우현이 오토바이를 길가에 세웠다. 최종훈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최종훈이 말했다.

- 선우현 씨. 남미연 씨의 차 카메라에 찍힌 장소, 찾았습니다.

“어디입니까?”

- 충청도입니다.

“확실합니까?”

- 예. 영상 속에 나온 산 말입니다. 인터넷에서 같은 산을 찾았습니다. 몇 년 전에 누가 펜션 리뷰를 올린 글에 그 산이 있더군요.

“어디에 있는 펜션입니까?”

- 충청도 산속에 있는 외딴 펜션입니다. 꽤 멀리 갔나 봅니다.

선우현은 박서윤이 전호 호텔 주차장에서 납치될 때 납치범들의 대화가 떠올랐다.

‘빨리 차에 태우기나 해. 갈 길이 멀다.’

‘우리는 가까운 거 아니었나?’

선우현이 말했다.

“충청도보다 가까운 곳. 강원도는 아니야. 그러면서 납치 장소에서 보기에는 갈 길이 먼 곳. 경기도 외곽? 젠장.”

- 왜 그러시는지….

“세 사람은 같은 곳에 갇혀 있는 게 아닙니다.서로 떨어진 곳으로 납치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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