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 마
김수선이 보고했다.
- 선장님. 제가 확인한 시점부터 호텔에서 출입을 통제할 때까지 그곳을 벗어난 차는 스무 대입니다.
김수선의 목소리가 안 좋았다.
- 선체의 관측 카메라로 스무 대를 모두 추적할 수는 없습니다. 무리해서 가동하면 카메라의 구동계가 또 고장 납니다.
선우현이 물었다.
“사람을 납치하는 데 쓰는 차는 내부가 보이지 않는 걸 골랐겠지. 틴팅을 진하게 한 차는 몇 대야?”
- 열다섯 대입니다.
여전히 추적 대상이 너무 많았다. 더 줄일 필요가 있었다.
“앞유리까지 새까만 차는?”
- 열 대입니다.”
“그래도 많네. 구동계 상태 확인하면서 그 차들 위주로 추적해. 경찰도 움직일 거다.”
- 알겠습니다.
◈ ◈ ◈
선우현은 전호 호텔로 이동했다. 사장 전상미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전상미가 설명했다.
“CCTV를 돌려보고 있어요. 박서윤 씨의 차가 주차된 곳의 CCTV도 확인했는데, 고장이 나 있어요.”
“미리 고장을 낸 겁니다. 아마추어는 아니군요.”
“우리 직원들이 지하주차장을 돌아다니며 주차된 차를 전부 확인하는 중이에요. 그리고 그때 호텔을 벗어난 모든 차의 영상을 확보해뒀어요.”
“경찰에 넘겼습니까?”
“네. 차량을 조회하고 찾아보겠다고 했어요.”
선우현이 안성준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성준이 말했다.
- 지금 전호 호텔로 가고 있습니다.
“차량 추적 중입니까?”
- 번호판을 조회해 의심 차량부터 찾아보는 중입니다. 그중에 대포차로 의심되는 차가 있습니다.
“어떤 차입니까?”
- 회색 승합차입니다.
안성준이 차량 번호를 불러주었다.
김수선이 보고했다.
- 추적하다 놓친 차입니다. 추적 대상이 많아서 번갈아 보는 사이에 사라졌습니다.
“그 차를 놓친 위치 주변부터 다시 탐색해.”
- 알겠습니다.
선우현이 전화를 끊고 전상미에게 말했다.
“범인이 호텔에 숨어 있을지 모르니까 차량 수색은 계속해줘요. 엘리베이터나 호텔 객실 쪽 복도 CCTV도 모두 확인하고요.”
“네. 우리 호텔의 모든 CCTV를 조사할게요.”
“출입구 CCTV 영상과 출입차량의 사진을 내 스마트폰으로 전송하고요.”
선우현이 전호 호텔을 나오며 물었다.
“수선아. 승합차를 놓친 위치가 어디냐?”
- 거기서 멀지 않습니다.
◈ ◈ ◈
선우현이 승합차가 사라진 곳에 도착했다.
- 그 근처에서 사라졌습니다. 계속 탐색 중입니다.
그의 차 바로 옆에 날렵한 디자인의 오토바이가 다가와 정차했다. 배기량이 1000cc에 육박하는 고출력 오토바이였다.
선우현이 운전석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려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다가갔다.
“그 오토바이 나한테 파시죠. 지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선우현이 차 키를 넘겼다.
“대신에 내 차를 가지시고. 내가 지금 오토바이가 필요해서.”
“어? 네?”
상대는 당황했다.
선우현의 차는 대성차의 고급 승용차인 프리미어 X8이다. 그 오토바이와 선우현의 차는 신차 기준으로 가격 차이가 몇 배는 났다.
선우현이 명함도 한 장 주었다.
“내가 지금 바빠서. 문제가 있으면 여기로 연락하시죠.”
선우현은 당황한 상대를 오토바이에서 힘으로 끌어냈다. 그런 후에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헬멧도 주고요.”
남자가 손에 쥔 차 키와 옆에 세워진 차를 보더니 얼떨결에 헬멧을 넘겼다.
“여기….”
선우현이 헬멧을 받아 쓰고 출발했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아, 아니! 잠깐! 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고 차랑 오토바이를 바꿔! 이 차가 당신 차라는 증거를 보여줘야지!”
선우현은 이미 그곳을 떠나버렸다. 당황한 오토바이 운전자가 명함을 보았다.
“훔친 차를 가져와서 내 오토바이를 또 훔친 거면 어떻게 하…. 어? 스래곤 비서실?”
명함에는 선우현의 이름이 아니라 스래곤 비서실이 적혀 있었다. 그가 눈을 껌뻑이다가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곧바로 상대편에서 전화를 받았다.
- 네. 스래곤 비서실입니다.
“저기, 방금 어떤 사람이 제 오토바이랑 차를 바꿔갔는데요. 프리미어 X8이요.”
- 네. 그런데요?
“차를 바꿔간 사람이 준 명함에 스래곤 비서실이라고 적혀 있어서….”
- 차량 번호가 어떻게 되나요?
운전자가 차량 번호를 불러주었다. 상대편에서 곧바로 말했다.
- 저희 사장님 차입니다.
“네? 누구 차라고요?”
- 사장님께서 그 오토바이가 마음에 드셨나 보네요. 이제 그 차는 선생님 겁니다.
“네? 그럼 방금 그분이 스래곤 사장님….”
- 저희 직원이 가서 차량 이전에 필요한 절차를 도와드리겠습니다. 차량이 필요 없으시면 반납하고 현금을 받으셔도 됩니다.
“와…. 그럼 스래곤 사장님은 차를 몰고 가다가 오토바이가 마음에 들면 그냥 갈아타시는…. 참 터프하시네요.”
- 사장님이 그렇긴 하시죠.
◈ ◈ ◈
선우현이 오토바이를 타고 그 지역 골목을 돌아다녔다. 골목 수색을 할 때는 차보다는 오토바이가 더 빠르다.
그러다 지붕이 있는 간이 임시 주차장을 발견했다. 차량 한 대를 겨우 댈 수 있는 크기였다.
선우현이 오토바이를 몰고 그곳으로 갔다. 주차장에 회색 승합차가 한 대 서 있었다.
“찾았다.”
선우현이 승합차 앞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그런데 차의 번호판이 달랐다.
선우현이 전호 호텔에서 보내준 회색 승합차 사진을 스마트폰에 띄운 후에 눈앞의 승합차와 비교해보았다.
번호판은 다르지만, 차는 흠집이 난 부분까지 똑같았다.
“번호판에 수작을 부렸어.”
선우현이 차 문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잠겨 있었다.
선우현이 위로 가볍게 점프해 차 유리를 걷어찼다. 유리가 한 방에 떨어져 나갔다.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혹시나 했는데.”
납치에 사용된 차는 여기에 있는데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혼자서 이 주변 건물을 다 뒤질 수는 없다.
김수선이 말했다.
- 경찰이 와서 수색해야 할 겁니다.
선우현이 안성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납치에 사용된 회색 승합차를 찾았습니다.”
- 박서윤 씨는요? 무사합니까?
“여기 없습니다. 이 주변 건물 어딘가에 있거나.”
- 지원병력과 함께 가서 전부 수색하겠습니다.
“아니면, 다른 차로 갈아타고 도망쳤거나.”
- 아….
선우현이 전화를 끊고 말했다.
“수선아. 이 근처 CCTV를 찾아봐? 아니면 블랙박스 장착 차량이라도.”
- 외부에 노출된 CCTV는 찾고 있습니다만 보이지 않습니다. 블랙박스 장착 차량은 몇 대 찾았습니다만, 상시 녹화가 되는지는 여기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건 경찰이 확인하겠지.”
선우현이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나는 다른 방법을 써야겠어.”
◈ ◈ ◈
안성준 형사가 현장에 도착했다.
선우현은 이미 그곳을 떠났다. 관할 경찰서에서 먼저 도착해 현장을 조사하는 중이었다.
안성준이 형사에게 물었다.
“뭔가 나왔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장소를 촬영하는 CCTV도 없고요.”
“블랙박스는요?”
“저쪽에서 상시 녹화 블랙박스 차량을 한 대 찾았습니다.”
“그럼 혹시….”
“그런데 그 시간에 그 차 근처를 지나간 차가 수백 대입니다.”
“빨리 찾아야 합니다. 피해자가 여성분인 데다가….”
안성준이 주변을 슬쩍 보았다. 기자는 보이지 않았다.
“스래곤의 비서실장입니다.”
형사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 그 스래곤의….”
“회사 기밀을 노린 범죄일 수도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스래곤은 M 연료전지 기술을 보유한 회사입니다.”
“블랙박스에 촬영된 모든 차량을 찾아 확인하겠습니다. 지원을 더 요청해야겠군요.”
◈ ◈ ◈
선우현이 다른 장소로 가는 도중에 안성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찾았습니까?”
- 의심 가는 차량을 한 대 찾았습니다.
“의심이요?”
- 블랙박스에 찍힌 현장을 지나간 차가 수백 대입니다. 그 차들을 전수조사하는 중입니다. 그중에 탑차가 수상합니다.
“왜 수상합니까?”
- 조사 중인 수백 대의 차량 중에, 먼저 확인된 두 대의 차량 블랙박스에 그 탑차가 찍혔습니다.
“그런데요?”
- 그 두 대가 현장 근처를 지나갈 때는 1분 정도 시간 간격이 있었습니다.
“차를 세우고 짐칸에서 짐을 꺼내 어딘가에 배달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군요. 승합차를 타고 온 놈들이 바꿔 타기엔 충분한 시간이고요. 번호판이야 스티커라도 붙였다가 떼면 되니까.”
- 예. 지나가다 차를 잠깐 세우고 납치범들을 태우고 떠나기 딱 좋은 시간이지요. 확실한 건 아닙니다만, 일단 그 탑차를 찾고 있습니다.
“그 탑차가 마지막에 목격된 위치와 특징, 차 번호를 알려주시죠. 저도 찾아보겠습니다.”
안성준이 필요한 정보를 불러주었다. 선우현이 전화를 끊은 후에 김수선에게 말했다.
“수선아.”
- 찾고 있습니다.
◈ ◈ ◈
망해버린 덕구파의 두목 곽덕구가 말했다.
“전호 호텔에서 납치에 사용한 승합차는 호텔 CCTV에 찍혔을 거다. 그러니까 그 차는 중간에 버려야 해. 미리 대기하던 탑차에 타깃과 부하들이 옮겨 타고 그곳을 떠나는 거지.”
천호균이 물었다.
“그 정도면 대비는 충분하지 않나? 차를 갈아탔으면 못 쫓아올 테니까.”
“당신은 선우현이 얼마나 지독한 인간인지 모른다. 겨우 한 번 갈아타는 것으로는 그놈의 추적을 뿌리칠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곽덕구가 말했다.
“당연히 그 탑차도 버리고 또 갈아타야지.”
◈ ◈ ◈
김수선이 보고했다.
- 선장님. 탑차를 찾았습니다.
“상황은?”
- 한적한 이면도로에 세워져 있습니다. 운전석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또 갈아탔구나. 젠장.”
선우현이 안성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탑차를 찾았습니다.”
- 어디입니까!
“그런데 빈 차입니다.”
- 그 차의 위치를 알려주시면 같은 방법으로 다시 추적하겠습니다. 어딘가에 흔적이 남아 있을 겁니다!
◈ ◈ ◈
안성준이 전화를 끊고 연락받은 장소로 출발했다. 조사하던 곳에서 그렇게 멀지는 않았다.
그의 동료 형사가 물었다.
“그런데 선우현 사장은 놈들의 승합차나 탑차를 어떻게 그렇게 빨리 찾는 거지?”
“천재잖아.”
“천재인 것하고 이것하고 무슨 상관이야? 천재라고 해서 천리안이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가 모르는 대단한 추적 기술이 있겠지. 예를 들면 민간 CCTV 영상을 분석하는 기술이라거나.”
“설마 해킹해서?”
“모르지. 아니면 정찰 드론을 띄우는 방법도 있고.”
동료 형사는 관련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아. 스래곤에는 매순이라는 드론 기술이 있지. 진짜 새처럼 날아다닌다는 그거 말이야.”
“어쩌면 새와 똑같이 생긴 드론을 날려서 수색하는 거 아닐까?”
“방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기술을 쓰는 거겠네.”
안성준이 걱정했다.
“그런데도 박서윤 씨를 아직 못 찾았어. 납치사건은 시간이 생명인데, 아무리 봐도 상대는 아마추어가 아니야. 아마추어는 차를 두 대나 버리지 않아.”
◈ ◈ ◈
선우현이 최민영의 작업실 앞에 오토바이를 세우며 말했다.
“놈들은 이미 두 번이나 차를 갈아탔다. 이런 식으로 계속 꼬리만 따라가면, 중간에 놓치거나 너무 늦게 찾을 위험이 있어. 다른 방법을 시도해야 해.”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그래도 최민영을 만나서 방법을 찾는 건 무리 아닐까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거지. 그런데 그 지푸라기가 평범한 지푸라기는 아니잖아.”
- 꿈 이야기군요.
“민영이가 꿈을 반복해서 꾸고 나서 그린 그림. 그중 몇 장은 지구연합에서나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하더라.”
- 이곳과 지구연합 사이에 뚫린 포털은 오천 년 전에 닫혔는데요.
그때 선우현이 조종하는 탐사대 지원위성이 이쪽으로 넘어왔다.
- 이미 포털이 닫힌 상황에서 저쪽 세계를 꿈에서라도 볼 수 있으려면, 최민영에게 마가 끼었어야 하는데요.
“그럴지도 모르지. 아니면 우연히 그런 그림을 그렸을 수도 있고.”
- 우연이었으면 좋겠군요.
“민영이가 최근에 서윤 씨를 만났다고 들었다. 정말로 마가 끼어서 꿈을 반복해서 꾸는 거라면, 현재 상황에 대한 작은 단서라도 얻을 수 있겠지.”
- 마가 끼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시도는 해보자.”
JHC 테크 사장 최종훈이 최민영의 작업실 앞에 도착했다. 그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선우현 씨. 이게 무슨….”
“서윤 씨를 찾는 데 민영이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 동생이 박서윤 씨를 납치한 건 절대로 아닙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아. 그게 아닙니까? 그럼 혹시 민영이를 현장에서 조수로…. 차라리 제가 따라가겠습니다. 우리 김 비서가 유단자입니다.”
“그런 식으로 도움받으려는 거 아닙니다.일단 들어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