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264화 (264/281)

264. 박서윤

길성 비서실에서 박서윤과 친한 여자 과장이 물었다.

“서윤 씨는 여기서 일할 때랑 스래곤에서 일할 때랑 느낌이 너무 많이 다르겠다.”

“왜요?”

“여기서는 이사님들을 위해서 일하지만, 거기서는 서윤 씨가 이사님이잖아.”

“여기 일을 더 오래 해서 이쪽도 익숙해요.”

“아무리 그래도 어색할 것 같아. 이제는 스래곤이 우리 회사보다 더 커졌는데.”

길성은 내수 위주의 기업이다. 중견기업 수준의 계열사가 몇 개 있지만, 대기업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다.

“스래곤의 비서실장님이 내 옆에서 일하는 거 보니까, 신기해서.”

박서윤이 과장을 돌아보았다.

“오늘따라 왜 이러실까요? 무슨 일인데 그래요?”

“그게 말이야. 소개팅….”

박서윤이 말을 잘랐다.

“관심 없어요.”

“상대가 미국에서 잘나가는 펀드 매니저래.”

“스래곤의 내부 정보를 캐내려는 거예요.”

“어머. 그래?”

“이미 그런 시도가 여러 번 있었어요.”

과장이 물어온 소개팅 건수는 하나가 아니었다.

“그럼 한국인은 어때? 대기업 회장 손자야. 재벌 3세.”

“어딘데요? 천산? KSX? 구철?”

과장은 당황했다.

“으응? 천산….”

“천산이면 M 연료전지 물량을 배정해달라는 거예요. 거기도 연료전지가 필요한 사업이 있거든요. 여기저기 줄을 대다가 안 되니까 과장님까지 귀찮게 하나 보네요.”

여자 과장이 눈을 껌뻑였다.

“와…. 서윤 씨 진짜 어마어마해졌구나.”

“아니에요. 물량 할당은 어차피 제 권한도 아닌데요. 천산에서 오해하는 거예요.”

“그럼 그건 누가 정하는 거야?”

“최종 결정은 사장님이요.”

“아. 그렇겠구나.”

여자 과장이 사과했다.

“미안해. 미팅 들어온 건 내가 거절할게.”

“과장님이 하시면 곤란할 테니까, 제가 스래곤을 통해서 천산에 말을 전할게요.”

과장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진짜? 고마워. 이게 남편 회사 통해서 들어온 소개팅 자리라서 나도 되게 난감했거든. 이 인간은 하다 하다 이제 이런 것까지 받아온다?”

박서윤이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회의 장소에 가서 준비 상황 확인할게요. 전호 호텔에서 빠뜨린 거 없는지 봐야죠.”

박서윤은 오늘 길성과 KSX의 임원 미팅 장소 준비를 맡았다.

과장이 말했다.

“근데 서윤 씨는 진짜 양쪽 회사에서 하는 일이 너무 다르다.”

“둘 다 제 일이에요.”

◈          ◈          ◈

박서윤이 전호 호텔을 방문했다.

오늘 두 회사의 임원 미팅은 전호 호텔 세미나실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박서윤은 현장에서 호텔 직원과 준비 상황을 확인했다.

KSX 비서실에서도 직원 두 명이 상태를 점검하러 찾아왔다.

그중 한 명이 박서윤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길성 비서실에서 오셨다고요?”

“네.”

상대가 명함을 주며 말했다.

“저는 KSX 비서실에 있습니다.”

명함에는 과장 이대현이라고 적혀 있었다.

박서윤도 명함을 꺼내주었다.

“네. 안녕하세요.”

이대성이 명함을 확인하더니 활짝 웃었다.

“아. 박서윤 대리시구나. 저는 과장인데. 제가 진급이 좀 빠릅니다. 하하하.”

“네. 그러네요.”

세미나실 점검이 마무리될 때쯤에 이대현이 제안했다.

“오늘 미팅 끝나면, 뒤풀이로 가볍게 한잔 마시겠습니까? 제가 맛있는 집 아는데.”

“괜찮아요.”

“저 진짜 괜찮은 놈인데요.”

“네. 그러시겠죠.”

슬슬 회의 시간이 다 되었다.

이대현이 자리로 돌아가 툴툴댔다.

“까였네.”

KSX 비서실 대리가 말했다.

“과장님. 저런 미녀에게 들이댄다고 해서 되겠습니까?”

“왜 안돼?”

“허들이 너무 높은데요.”

“네가 그래서 그 모양 그 꼴인 거다.”

“네? 제가 어때서요? 제 여자친구가 얼마나 귀여운데요.”

“응? 너 여친 없지 않았냐?”

“최근에 생겼죠.”

“그럼 넌 귀여운 여친하고 연애 잘해라. 난 미녀하고 할 테니까.”

“상대가 너무 넘사벽인데 가능할까요? 전 처음엔 연예인인 줄 알았는데요.”

이대현이 씩 웃으며 설명했다.

“저런 미인한테는 들이대는 사람이 오히려 없어. 너무 예쁘니까 어중이떠중이는 지레 겁먹고 접근을 안 한다고. 그러니까 적극적으로 들이대면 성공확률이 꽤 높아.”

“하지만 까이셨는데요?”

“이제 겨우 한 번 까였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잖아.”

“열 번이나 찍으면 스토킹 아닐까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정말로 열 번이나 들이대겠냐? 그리고 말이야. 조건은 내가 더 좋잖아.”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요?”

“길성보다 우리 KSX가 더 큰 회사잖아. 저기는 대리인데 나는 과장이고. 잘나가는 내가 본격적으로 들이대면 반응이 오겠지.”

“아…. 네.”

“넌 집적대지 마라. 내가 찍었다.”

“저는 여자친구가 있다니까요?”

사람들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

“전무님 오신다. 나중에 이야기하자.”

KSX의 전무가 다른 임원들과 함께 세미나실에 들어 왔다. 길성 임원들도 비슷한 시간에 도착했다.

사전 점검을 위해 먼저 온 박서윤과 이대현 등은 세미나실의 벽 쪽으로 이동해서 서 있었다.

안에 들어와 자리에 앉으려던 KSX 전무가 박서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어? 박서윤 비서실장님?”

박서윤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안녕하세요.”

“여긴 어떻게….”

“사전 점검하러 왔어요.”

“아. 길성에도 다니시지. 하하하.”

전무가 의자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자리에 앉으시지 왜 거기서….”

“오늘은 제가 길성 직원이어서요.”

“아. 그렇죠. 하하하.”

KSX의 이대현 과장과 대리가 그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당황했다.

“어? 왜 전무님이 저렇게 나오시는 거야?”

“잠깐만요. 과장님. 저 여성분은 대리라면서요.”

이대현이 박서윤의 명함을 확인했다.

“명함에는 분명히 대리인데….”

“전무님이 방금 비서실장님이라고 부르셨는데요.”

“무슨 비서실장이 저렇게 젊어. 나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지….”

전무와 같이 들어온 부장이 다가와 말했다.

“길성에서는 대리 맞아.”

“그렇죠? 제가 제대로 알고 있는 거 맞네요.”

“근데 스래곤에서는 비서실장이야.”

이대현은 화들짝 놀랐다.

“헉! 스, 스래곤 비서실장이요?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몰랐냐? 저 사람 두 회사에서 일하는 거. 어쨌든 운이 좋네. 스래곤의 실세 비서실장을 여기서 만났으니까.”

“시, 실세….”

부장이 이대현을 보며 물었다.

“뭐야? 너 표정이 왜 그래?”

“그, 그게요.”

“설마 또 들이댄 건 아니지? 네가 아무리 여자를 좋아해도 그런 사고를 치지는 않았을 거야. 여기가 클럽도 아니고. 그렇지?”

이대현이 말을 더듬었다.

“제, 제가요? 아, 아뇨. 아닌데요. 저는 저분이 누구신지도 모르는데요.”

“그래. 네가 그런 사고를 치지는…. 응? 너 손에 그 명함 뭐야?”

“예?”

“왜 감춰? 손 까봐. 그 명함 그거, 길성 명함 아냐?”

◈          ◈          ◈

박서윤은 회의가 시작된 후에 전호 호텔을 나왔다. 미팅 상대가 그녀를 아는 상황이라서 아예 빠지는 게 나았다. 그녀가 회의가 끝날 때까지 그곳에 있으면 미팅이 산으로 갈 수도 있다.

그녀가 주차장으로 향했다. 길성에서 가져온 회사 차가 서 있었다.

그녀가 차의 문을 열며 혼잣말을 했다.

“오늘 저녁은 바다 내음 가득한 해산물 요리를….”

갑자기 기둥 뒤에서 마스크를 쓴 남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차 유리에 비친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고 휙 돌아섰다.

남자가 그녀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손에는 입막음용 수건을 쥐고 있었다.

박서윤이 반사적으로 발차기를 날렸다. 구두가 상대의 턱을 올려쳤다.

“켁!”

턱을 맞은 놈이 나자빠졌다.

박서윤이 외쳤다.

“너 뭐야!”

상대는 흰자위를 보이며 자빠진 상태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급히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갑자기 다른 놈이 뒤에서 나타나 테이저건을 그녀의 등에 발사했다.

그녀는 몸이 마비되면서 주차장 바닥에 쓰러졌다. 휴대폰은 손에서 빠져나가 차 밑으로 들어갔다.

테이저건을 쏜 남자가 다가오며 턱을 맞은 놈에게 말했다.

“이 등신 새끼야. 거기서 처맞고 있냐?”

맞은 놈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옆에 세워둔 승합차의 문의 열리면서 다른 놈이 내렸다.

“갑자기 반격할 줄은 몰랐겠지. 내가 차에서 봤는데, 발차기가 날카롭더라고.”

“빨리 차에 태우기나 해. 갈 길이 멀다.”

“우리는 가까운 거 아니었나?”

두 사람은 박서윤을 옆에 세워둔 승합차에 옮겨 실었다. 유리가 모두 검은색으로 틴팅이 되어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는 차였다.

턱을 맞은 놈은 겨우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테이저건을 쏜 놈이 말했다.

“빨리 타. 등신아.”

세 사람이 차에 올라갔다. 그 차가 호텔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          ◈          ◈

선우현은 바다에 낚시를 갔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요즘 바다에는 고기가 없나.”

- 어떻게 한 마리도 못 잡으십니까?

“오늘 저녁은 회나 시켜먹어야겠다”

전화가 걸려왔다.

“서윤 씨네?”

박서윤은 선우현에게 전화를 걸자마자 습격당했다. 그녀가 테이저건에 맞았을 때 손에서 떨어진 휴대폰이 차의 밑으로 들어갔다.

선우현이 전화를 받았다.

받자마자 말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박서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 이 등신 새끼야. 거기서 처맞고 있냐?

선우현의 표정이 굳었다.

말 몇 마디가 더 오갔다. 잠시 후에 차가 출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선우현의 표정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서윤 씨가 납치당했다.”

김수선이 제안했다.

- 스마트폰의 위치부터 찾아야 합니다.

선우현이 스마트폰의 앱을 실행했다. 친구 찾기 앱은 만약을 대비해 박서윤의 스마트폰에 설치해두었다. 곧바로 스마트폰의 현재 위치가 지도에 표시되었다.

“전호 호텔. 바퀴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렸어. 지하주차장이겠지.”

- 제가 관측 카메라로 그 주변 차량을 확인하겠습니다.

선우현은 전상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호 호텔 사장 전상미가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 어머. 선우현 씨. 전화를 다 주….

선우현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호텔 빠져나가려는 차 전부 막아요!”

- 네?

“박서윤 씨가 방금 그 호텔 지하주차장에서 차량으로 납치됐습니다. 아무도 못 빠져나가게 막아요!”

- 알았어요!

선우현이 이번에는 안성준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성준이 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

- 선우현 씨. 설마 아니죠? 스래곤 사장님이 요즘도 직접 청부업자들이나 때려잡….

“박서윤 씨가 방금 납치됐습니다. 차량으로. 전호 호텔에서.”

- 즉시 출동 요청하겠습니다! 저도 현장으로 가겠습니다!

선우현은 전화를 끊고 가속페달을 깊게 밟았다. 차의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다.

“이 새끼들이 나를 노려야 하는데, 서윤 씨를 납치했어.”

- 박서윤은 전에도 집안 문제로 납치된 적이 있습니다. 선장님과 상관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 집안에서 망하고 싶어서 서윤 씨를 건드리겠냐? 이건 나를 노린 거야.”

- 그럼 적은 선장님을 유인하려고 박서윤을 미끼로 쓰겠군요.

“그러겠지.”

◈          ◈          ◈

전호 호텔 사장 전상미가 즉시 모든 차량의 호텔 출입 통제를 지시했다.

“차량은 단 한 대도 못 나가게 막아요.”

호텔 이사가 당황해서 물었다.

“사장님. 갑자기 그렇게 하면 호텔 평판이….”

“우리 호텔 주차장에서 사람이 납치됐는데, 그걸 알고서도 구경만 하면 평판은 바닥에 처박히겠죠.”

“네? 그러면 이 사건을 빨리 덮어야….”

“덮긴 뭘 덮어! 이거 덮으면 뒷감당 못 해요. 뭐 해요? 당장 막으라니까!”

“예, 예!”

곧바로 호텔 보안팀에 차단 지시가 내려갔다.

전상미가 보안팀 사무실로 가며 말했다.

“내가 지휘하겠어요. 국회의원이 와도 통과시키지 말아요.”

호텔 이사가 따라가면서 물었다.

“사장님. 혹시 부회장 쪽에서 우리 호텔의 평판을 떨어뜨리려고….”

전상미는 박서윤이 납치됐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게 없다.

그런데 납치된 박서윤은 스래곤 사장의 오른팔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다.

“만약 작은 오빠 짓이면 우리 그룹 경영권 전쟁은 오늘로 끝날 거예요. 스래곤이 정식으로 개입할 테니까.”

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니까 아니에요. 작은 오빠는 큰오빠처럼 멍청하진 않아요. 이건 외부인의 짓이에요.”

◈          ◈          ◈

전호 호텔 지하주차장은 차단기를 내리고 직원이 뛰어나와 사람들이 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주차장을 나가려던 손님이 항의했다.

“이거 호텔 서비스가 왜 이래? 내가 왜 못 나가!”

“죄송합니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감사의 뜻으로 숙박권을 드리겠습니다.”

숙박권 제공은 전상미가 지시했다.

“숙박…. 차 다시 주차하고 올 테니까 천천히 해결하세요.”

지하주차장은 차단기만 내리면 틀어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호텔 정문은 완전 개방형이라 차단기가 없었다.

보안 요원 몇 명이 정문으로 달려가서 차량 출입을 통제했다. 그들은 들어오는 차는 놔두고 나가는 차만 막았다.

전상미 사장이 보안팀에 가서 물었다.

“한 대도 나가지 못하게 한 건가요?”

보안실장이 대답했다.

“사장님의 지시를 듣자마자 보안 요원들이 즉시 움직였습니다만….”

“나간 차가 있군요.”

“통제될 때까지 정문을 나간 차가 택시를 포함해 열두 대입니다. 그리고….”

“내가 지시하기 전에 나간 차도 있겠죠. CCTV돌려서 최근 출입차량을 전부 다 찾아놔요.누가 곧 확인하러 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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