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263화 (263/281)

263. 덕구 II

망해버린 기획사 JXK의 사장 천호균은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상대는 스래곤 사장인데….”

곽덕구가 물었다.

“그래서 겁이 나나?”

“복수하면 좋긴 한데, 뒷감당을 어떻게 하냐고. 그 새끼 무서운 새끼인데.”

망해버린 덕구파 두목 곽덕구가 말했다.

“죽여버리면 돼. 죽은 놈은 무서워할 필요가 없으니까.”

“어? 어? 하지만, 그러면 진짜 우리는 끝장날 텐데….”

곽덕구가 히죽 웃었다.

“난 어차피 한국을 뜬다. 가는 길에 그냥 갈 수야 있나. 선우현 그 새끼를 처리하고 가야지.”

“하지만 나는….”

“천 사장. 어차피 밀항할 거라며. 한국에서 무슨 짓을 하든 이 나라만 떠나면 천 사장이 잡힐 일은 없어.”

천호균은 망설였다.

“그렇지만 상대가 너무 거물이 됐어.”

곽덕구가 제안했다.

“천 사장의 한국에 남은 재산은 내가 인수하지. 그 돈으로 외국에 가서 다시 성공해야지?”

JXK는 망했지만, 천호균은 횡령으로 미리 빼돌려 놓은 재산이 있다.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그 재산을 현금화할 방법이 없다.

그걸 돈으로 바꿔준다는 말을 듣자마자 천호균이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나 재산이 꽤 남았는데?”

“나 곽덕구야. 조직은 무너졌어도 돈은 남아 있어. 금괴로 보상해 주면 되겠나?”

“금괴라….”

“달러도 좀 챙겨주지. 밀항할 때 가져가서 그걸로 다시 사장이라도 하라고.”

천호균이 의심쩍은 눈으로 물었다.

“내 남은 재산을 인수해서 어떻게 하려고? 곽 사장도 한국을 뜬다며?”

곽덕구가 실실 웃었다.

“차명으로 챙겨뒀다가, 몇 년 뒤에 조용해지면 성형수술하고 신분도 바꿔 들어와서 챙기면 돼.”

“그게 가능하다는 거요?”

“들어올 때도 밀항하면 되지.”

“아니, 국내에 남겨둔 돈을 다시 써먹을 수 있냐고.”

“돈세탁은 내 전문이야. 내가 정치인 돈도 여러 번 세탁해 줬다.”

천호균이 머리를 굴려보았다.

‘이거 그럴듯한데? 신분을 완전히 바꿀 수만 있다면….’

천호균이 실실 웃었다.

“곽 사장. 그거 나도 합시다. 성형수술하고 신분 갈아탄 후에 다시 들어오는 거. 내 국내 재산은 반만 금괴와 달러로 바꿔줘. 나머지 반은 국내에 남겨뒀다가, 몇 년 뒤에 세탁해 주고.”

“원하면 대로 다 들어주지. 그런데 그러려면.”

곽덕구가 말했다.

“선우현을 죽여야 해. 그놈이 살아있으면, 나중에 한국에 돌아왔을 때 다리 뻗고 자겠냐고. 그놈은 사람 찾아내는 데 귀신이다.”

“그건 그렇지.”

둘이 작당을 하는데 옆에서 사까이가 말했다.

“나는 저기, 성형수술은 좀 곤란한데….”

곽덕구가 사까이를 돌아보았다.

“일본 친구. 당신은 일본에 가기만 하면 감방살이는 안 해도 되는 돈과 인맥이 있다고 들었는데?”

천호균도 사까이를 부추겼다.

“맞아. 사까이 씨. 당신은 내가 잡히지만 않으면 일본에서 뭉개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잡힌 청부업자들을 당신이 불렀다는 증거는 없으니까.”

“하긴. 나는 뭐, 노출된 증거는 천 사장이랑 같이 있다가 찍힌 사진 한 장뿐인데….”

천호균이 조건을 걸었다.

“물론 내가 잡히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사까이가 인상을 찌푸리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알겠습니다. 나도 뭐 금괴 좀 나눠준다면야. 일본에 가면 뇌물을 써야 하는데, 그런 일에는 금괴가 딱 좋으니까.”

곽덕구가 말했다.

“넉넉히 챙겨주지. 나도 일본에 가면 당신 도움이 좀 필요하니까.”

사까이가 밝아진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내가 여기서 할 일은 뭐요?”

곽덕구가 실실 웃었다.

“사람은 금괴를 주면 쉽게 모을 수 있어. 그런데 총이 모자라.”

“어?”

“총을 좀 밀수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아니, 잠깐만. 총이 모자란다는 말은, 이미 총이 있다는 뜻이잖아.”

“있지. 충분하지 않아서 그렇지.”

“한국에서는 총이 있기만 하면 되잖아. 왜 모자란다고….”

곽덕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새끼를 상대하려면 총이 부족해.”

“이봐.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이해하게 설명을 좀 해봐.”

곽덕구의 얼굴이 몇 번이나 일그러졌다가 펴졌다.

“지금까지 권총 한 자루를 믿고 그 새끼에게 덤빈 놈이 한둘이 아니야. 그래서 어떻게 됐을 것 같나?”

“내가 그걸 어떻게 알….”

“총 든 놈이 이겼으면 그 새끼가 살아있겠어?”

“아….”

“심지어 칼을 든 부하들까지 데리고 덤볐어도 전멸했다. 그 새끼는 그런 새끼다.”

사까이가 천호균을 돌아보며 항의했다.

“천 사장. 그러니까 그런 놈이 상대인데도 날 일본에서 불러들인 겁니까?”

천호균은 당황했다.

“아니, 나는 그런 무서운 놈인 줄은 모르고….”

천호균이 곽덕구에게 물었다.

“곽 사장. 그놈은 왜 그렇게 잘 싸우는 거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스래곤 사장인 것도 겨우 알아냈는데. 특수부대나 아니면 외국 용병 출신이겠지.”

“하긴. 그런 출신이 아니면 말이 안 되지.”

“그런데 아무리 대단한 놈도 다구리 앞에서는 못 버틴다. 총잡이 한둘로 잡을 수 없으면, 더 많은 총을 쓰면 돼. 특수부대든 용병이든 총알이 몸에 박히면 어차피 죽을 테니까.”

천호균이 물었다.

“죽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나? 스래곤 사장을 죽이면 후폭풍이 클 텐데….”

“그놈이 살아있으면, 곽 사장이 한국에 돌아올 수는 있고?”

“어…. 그렇군. 그 새끼가 죽어야 내가 사는구나.”

망해버린 덕구파 두목 곽덕구가 말했다.

“그러니까 총이 더 필요해. 나도 몇 개는 있는데, 몇 개 더 필요하다고. 일본 친구. 당신이 데려온 청부업자가 총을 썼다며. 총을 좀 더 구해봐.”

사까이는 이미 결정을 내렸다. 그가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총만 있으면 되나?”

“사람은 돈만 넉넉히 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할 놈이 많아.”

“한국인 청부업자?”

“국적 가릴 것 있나? 어차피 원화가 아니라 금괴로 청부대금을 줄 텐데.”

“무슨 말인지 알았다. 권총 몇 개 정도는 내가 구해 보겠다.”

◈          ◈          ◈

박서윤이 옥탑방 옥상에서 말했다.

“우현 씨. 사흘 뒤에 새로 완성된 공장의 테이프 커팅 행사가 있어요.”

선우현이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설마 나보고 거기 가란 건 아니지요?”

“그거 혹시 놀란 척하는 건가요?”

“그렇죠. 안 가겠다는 의지를 놀란 표정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겁니다.”

“참석 안 하실 줄은 알았어요. 혹시나 해서 물어봤어요.”

선우현이 말했다.

“내가 일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거기 방송국 카메라도 올 텐데 그게 부담스러워서 그럽니다.”

“그런 말을 낚싯대를 챙기면서 하면 설득력이 없어요.”

“서윤 씨도 같이 바다에 갈래요?”

“저는 일해야죠.”

“내가 이렇게 놀면 서윤 씨는 스래곤은 안 가고 길성에만 출근하면 되지 않나?”

“되겠어요? 요즘은 길성보다 스래곤에 더 많이 출근해요. 우현 씨가 없어도 저 혼자서요.”

“어…. 조만간 출근할 테니까, 그때 며칠 일하고 그 후에 우리 같이 휴가 씁시다.”

“같이요?”

“회사는 뭐 알아서 돌아가겠지.”

김수선이 끼어들었다.

- 선장님. 스래곤은 박서윤이 있어서 알아서 돌아가는 겁니다만?

박서윤이 웃었다.

“알았어요. 같이 휴가 써요.”

◈          ◈          ◈

4선 의원 박재곤은 요즘 밥을 먹어도 모래를 씹는 것 같았다.

“젠장. 내 꼴이 왜 이렇게 됐을까?”

박재곤은 그동안 덕구파의 돈도 받고 접대도 받고 여러 가지를 많이 받아먹었다. 그 대가로 덕구파의 뒤를 여러 번 봐주었다.

그런데 대형 사건이 연달아 터지고 증거가 쏟아지면서 경찰이 덕구파를 작정하고 갈아버렸다. 그 과정에서 박재곤과 덕구파가 얽힌 사건이 여럿 밝혀졌다.

덕구파 정 부장이나 칼잡이 박 부장, 주가조작을 맡았던 조 과장도 모두 체포됐다. 그들과 박재곤 사이에도 연결점이 있었다.

“선우현 그 새끼 때문에, 젠장.”

박재곤은 예전에는 그를 통하면 해결되지 않는 민원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강력한 권력을 휘둘렀다.

그런데 지금은 덕구파와 연루된 온갖 비리가 터지는 바람에 권력이 쪼그라들었다.

박재곤은 오늘도 예전에 같이 해먹던 정치인에게 전화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그의 기대치보다 한참 낮았다.

“내가 체포되는 걸 막는 게 한계라니….”

그동안 같이 해먹은 놈들은 박재곤이 체포되는 것만은 결사적으로 막았다. 박재곤이 아니라 그들 자신을 위해서였다.

“그놈들이 내 체포를 막아주다가 삐끗하면 나가리인데….”

박재곤이 차에서 내려 낡은 건물로 들어갔다. 안쪽에 허름한 사무실이 있었다.

그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휑했다.

4선 의원 박재곤이 물었다.

“곽 사장. 좀 더 좋은 곳은 없었나?”

망해버린 덕구파 두목 곽덕구가 사무실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곽덕구가 실실 웃었다.

“이렇게 허름해야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집니다. 좋은 곳에서 술 마시면 경찰에 찌르는 놈이 생긴단 말입니다. 박 의원님도 이제 좀 아셔야지요.”

박재곤이 짜증을 냈다.

“내가 그런 걸 뭐하러 알아!”

“요즘 상황이 좋지 않으실 텐데?”

“곽 사장. 나 아직 안 죽었어. 정치권에는 내가 망하면 같이 망할 사람 많아. 그 사람들이 나를 지켜준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곽덕구가 오랜만에 박재곤에게 연락해서 이 자리를 만들었다.

“제가 곧 한국을 뜨려고 합니다.”

“그건 내가 못 도와줘. 지금 곽 사장을 출국시키려고 하면 공항에서 체포될 거야.”

“압니다. 외국은 밀항으로 빠져나가면 됩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한국에 있다가 잡히면 우리 둘 다 곤란하니까.”

“나중에 한국에 다시 돌아와 조직을 재건하려면 박 의원님의 도움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당연히 박 의원님이 다시 권력을 되찾으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잠깐만. 다시 돌아오다니?”

“물론 얼굴도 성형수술로 바꾸고 신분도 바꿀 겁니다. 당연히 돌아올 때도 밀항으로 들어올 테고요.”

박재곤이 머리를 굴렸다. 어차피 곽덕구의 계획을 막기는 어렵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면야….”

“그런데 나가기 전에, 복수는 해야지요.”

“복수? 누구에게….”

“선우현.”

박재곤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 그 새끼를….”

박재곤은 예전에 스래곤 주가조작에 가담했다가 들킨 일이 있다. 그때 폭락한 스래곤 주식을 선우현이 쓸어담았다.

“그 새끼와 스래곤 사장은 이름이 같잖아. 그러니까 그 새끼가 그 새끼잖아.”

“의원님도 알고 계셨군요.”

“짐작만 하고 있었어.”

박재곤은 금방 시무룩해졌다.

“그 새끼는 이제는 함부로 치기엔 너무 거물이 됐단 말이다.”

곽덕구가 히죽 웃었다.

“의원님. 선우현이 의원님을 가만둘 것 같습니까? 그놈은 반드시 복수하는 놈입니다. 그놈이 지금보다 더 거물이 되면 의원님은 죽습니다.”

“젠장.”

“그리고 의원님이 직접 손을 쓰는 것도 아닌데 뭘 걱정하십니까?”

박재곤의 표정이 조금 펴졌다.

“그렇지? 나는 모르는 일이지?”

“그놈을 제끼는 일에 도움은 주셔야 하지만요.”

“어? 아니, 그건 굳이 내가 안 도와줘도 곽 사장이….”

“저도 보험이 필요합니다만?”

박재곤이 짜증이 살짝 섞인 얼굴로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았다. 도와주면 되잖아.”

곽덕구가 물었다.

“그런데 의원님. 혹시 총 가진 거 있습니까? 의원님쯤 되면 권총 한두 개는 금고에 있을 것 같은데요.”

“어? 총?”

“선우현을 잡으려면 총이 많이 필요해서 말이지요.”

◈          ◈          ◈

선우현이 바다낚시를 떠났다. 그는 배를 타지는 않고 한적한 바닷가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에 낚시하러 올 때마다 느끼는데, 여기 참 좋다. 바람도 좋고, 파도 소리도 좋고.”

- 참 좋으시겠습니다.

“옛날부터 이런 낚시가 그렇게 해보고 싶었어.”

- 할 줄은 아시고요?

“그동안 지원위성에서 본 게 있잖아. 고대의 낚시법부터 최신 낚시법까지. 그런데 말이야.”

선우현이 주변을 슬쩍 보았다.

“나를 노리는 놈들에게는 이렇게 혼자 있을 때가 기회잖아. 그런데 왜 오는 놈이 없지? 찾아오는 놈이 있으면 낚아버리려고 겸사겸사 낚시하는 건데.”

- 선장님이 거기 있다는 걸 알아야 놈들이 기회라고 판단하겠죠. 선장님을 미행하는 차는 없었습니다.

“그게 문제네. 그놈들 정보력은 왜 그 모양이냐?”

- 그 핑계로 노시잖습니까?

“유인 작전이라고 해줘라.”

-네.노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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