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 프리미어 X8 II
태양 백화점에 전시된 차의 옆에는 매연 측정장치가 세워져 있었다. 전문적인 장비가 아니라 보기만 좋은 측정기였지만 모니터는 커다란 게 붙어 있었다.
대성차에서 나온 직원이 다가와 두 손님에게 설명했다.
“고객님. 이 차는 매연이 나오지 않습니다.”
“어머. 그래서 실내에서 시동 걸어놨나 보다.”
“진짜 매연이 안 나와요?”
직원이 측정기의 모니터를 가리켰다.
“여기 보시죠. 매연 관련 수치가 정상이라고 나오는 걸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손님이 물었다.
“매연 말고 다른 게 나올 수도 있잖아요. 이를테면 먼지라든지.”
“안 나옵니다.”
“일산화탄소?”
“안 나옵니다.”
“아황산가스?”
“안 나옵니다. 매연으로 나왔어야 하는 물질은 고체로 뭉쳐져서 따로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손님. 혹시 어디서 나오셨는지?”
여자가 남자의 옆구리를 찔렀다.
“진짠가 봐. 그러니까 백화점 한복판에 전시했겠지.”
남자가 얼른 엄지를 세웠다.
“태양 백화점은 역시 대단하네. 백화점 중에 연료전지 버전 X8을 전시한 곳은 여기밖에 없지 않나?”
“백화점 중에서는 여기뿐이고, 호텔 쪽은 전호 호텔 로비에 전시했다더라.”
두 사람이 다른 곳으로 이동한 후에 다른 직원이 다가왔다.
“어때?”
“남자의 행동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경쟁사에서 체크 하러 온 거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 ◈ ◈
태양 백화점은 지점은 없고 본점만 있다.
그런데 태양 백화점의 R 크림 구매 이벤트에 응모하려면 일정 기간 안에 볼펜 하나라도 산 적이 있어야 한다. 다른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태양 백화점의 물건을 사러 서울에 와야 했다.
고객들은 다른 지방에도 지점을 내달라고 요구했다. 태양 백화점은 그 문제는 공식적인 대답은 내놓지 않았다.
어쨌든 태양 백화점은 본점 하나뿐이라 전시된 프리미어 X8도 한 대였다.
반면에 전호 호텔은 대도시와 유명 관광지, 제주도 등에 지점을 가지고 있다.
전호 호텔은 본점과 모든 지점의 호텔 로비 한복판에 X8을 한 대씩 전시했다. 그곳에서도 로비에서 시동을 켜놓은 상태로 차량을 전시했다.
전호 호텔에 방문한 외국 손님들이 차를 보고 관심을 보였다.
“이게 그 연료전지가 적용된 차인가?”
“세계최초지?”
“이거 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한국에서 주문하면 독일로 배송해 주나?”
외국 자동차 회사 사람들도 전시된 차를 확인하러 한국에 들어왔다.
“결국 최초라는 타이틀은 대성차에서 가져갔군.”
“우리 회사도 서두르고 있지만, 대성차의 출시가 너무 빨라서 따라잡을 수가 없었어.”
“스래곤과 대성은 연구소가 가까운 곳에 있으니까 공동으로 작업하기 편했겠지.”
“한국 정부에서도 두 회사의 협업을 지원했을 테고.”
“원래는 시간이 걸리는 각종 인증과 승인을 한국 정부에서 최우선으로 처리해줬다더라.”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차를 너무 급하게 출시했어. 무슨 치명적인 문제가 있을지 몰라.”
“대성차가 바보도 아니고, 그 정도는 확인하고 내놓았겠지.”
“중요한 건 물량이야. M 연료전지 물량을 많이 받는 쪽이 승자야.”
“그거라고 우리가 대성차보다 유리하겠어? 본사에서는 스래곤 사장과 미팅조차 못 하고 있다면서?”
“그건 대성차도 마찬가지라고 들었어.”
투덜대는 사람도 나왔다.
“스래곤 사장은 도대체 왜 그렇게 만나기 어렵대?”
“그걸 알면 내가 여기 와 있겠어? 본사에서 너한테 여기 가라고 시키고 있겠지.”
◈ ◈ ◈
대성차는 연예인들에게도 X8을 협찬했다. 차량 리뷰어들에게 제공된 건 며칠 타고 돌려줘야 했다. 반면에 연예인들에게 협찬하는 건 기간이 꽤 길었다.
협찬 방식은 대성차에서 먼저 특정 연예인에게 연락해 협의 후 진행됐다.
구하니와 남미연은 X8을 한 대씩 받았다. 남미연이 1호, 구하니가 2호였다. 1호와 2호는 말만 협찬이지 기간 제한이 없었다.
두 사람은 차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남미연이 자랑했다.
“훗. 내가 전부터 선우현 씨한테 1호 차는 나 달라고 했거든? 그거 잊지 않고 이렇게 챙겨주네?”
“네. 그러네요.”
“응? 하니 씨. 왜 안 부러워해? 부러워해도 돼.”
“저는 뭐, 2호 차라도 괜찮아요. 한 대 더 있어서.”
남미연은 당황했다.
“어? 왜 더 있는데?”
“제가 타고 다니는 밴은 이미 예전에 M 연료전지 테스트용으로 개조했어요. 저는 두 대라서 괜찮아요.”
남미연이 선우현을 돌아보았다.
“선우현 씨? 이게 뭐지? 나 남미연인데? 내가 1호 차여야 할 텐데?”
선우현이 설명했다.
“테스트 차는 국내외 자동차 회사에서 이미 굴리고 있습니다. 정식 출시 예정인 차의 1호 차는 남미연 씨가 받은 그 차가 맞아요.”
“하니 씨는 준 테스트 차를 나는 왜 안 챙겨주는데?”
“하니 씨 차는 천호균이나 청부업자들을 잡아야 해서 개조한 겁니다만?”
“나 스래곤 주주인데! 주식 엄청 많은데! 난 왜 안 주는데!”
남미연이 계속 따지고 들었다. 선우현이 물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내 밴도 개조해줘요.”
“그거 남미연 씨 소속사 차 아닌가? 남의 회사 차를 개조해줄 리가 있나.”
“그러네. 그 차 당장 내가 사야겠다. 그러면 되죠?”
“소속사에서 안 팔면?”
“나 남미연인데? 내가 에이스인데?”
“계약 기간 끝나면 옮길 거 다 아는데, 그 소속사가 챙겨줄 필요가 있나?”
“그러면 뭐.”
남미연은 간단히 결론 내렸다.
“새로 한 대 뽑아야지. 그럼 됐죠? 개조해줘요.”
“연구소에 연락해둘 테니까 돈은 내고 개조 받아요. 내가 내봐서 아는데, 비용 꽤 많이 듭니다.”
“지금 비용이 문제겠어요? 당장 사야겠다.”
◈ ◈ ◈
아이돌 그룹 에이투원의 홍은성이 당황해서 물었다.
“네? 우리한테 대성차가 차를 줘요? 그것도 연료전지 X8을요? 왜요?”
소속사 사장이 말했다.
“주는 건 아니고 협찬이지.”
“아니, 그러니까 그 협찬을 왜 우리한테 해줘요? 그 차는 톱스타한테만 협찬이 들어가는 거 아니었어요?”
“내가 묻고 싶다. 너희들 대성차하고 무슨 사이냐? 왜 거기서 먼저 제안해?”
“우리 아빠 차가 대성차에서 만든 건데…. 그거 말고는 모르는데요?”
멤버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앗! 우리 삼촌이 대성차 다녀요!”
사장이 얼른 물었다.
“어? 그래? 고위층에 계시냐?”
“과장인데요.”
“홍보팀?”
“아니요.”
“혹시나 했다. 너희 삼촌은 아니야.”
◈ ◈ ◈
걸그룹 은하소녀의 오민하가 방송국에 갔다가 홍은성과 마주쳤다.
오민하가 자랑했다.
“우리 차 받았다. 프리미어 X8.”
“회사에서 샀냐?”
“아니. 대성에서 연료전지 달아서 나온 거 협찬받았지.”
“아. 그 협찬은 개나 소나 다 주는 거였구나.”
“내가 강아지야? 아니면 얼룩소야?”
“못된 송아지?”
“죽고 싶냐?”
홍은성이 두 손을 들며 말했다.
“우리만 특별히 주는 줄 알았는데 너네도 줬다고 하니까 그러지.”
“어? 우리가 떠서 협찬 들어온 줄 알았는데, 너네한테도 줬으면 진짜 아무나 주나?”
“우리가 아무나면 너네도 아무나야.”
“아무나도 수준 차이가 있지. 오늘 음원 순위 우리가 더 높은 거 못 봤어?”
“좋겠다. 너네 도토리는 키가 참 커서.”
◈ ◈ ◈
홍은성이나 오은하의 팀이 X8을 받은 건 꽤 특이한 일이었다. 훨씬 더 유명한 연예인도 협찬을 받지 못했다.
배우 소병훈이 불평했다.
“아니, 나한테는 왜 협찬이 안 들어와? 쪽팔리게 내가 먼저 연락해야 하겠어?”
그의 동생이 말했다.
“매니저 없이 혼자 다니니까 그러지.”
“내가 고성찬 그 새끼한테 당한 게 있는데, 회사가 붙여주는 매니저를 어떻게 믿어?”
“그럼 형 혼자 해결하든가. 왜 바쁜 나를 부르냐?”
“그 말을 안 했구나. 오늘 일당 오십 만원.”
“형. 내가 편안하게 모실게. 자주 좀 불러줘.”
“기왕이면 X8 협찬도 좀 받아와 봐.”
“그건 무리지.”
◈ ◈ ◈
미국 가수 제니퍼 그레이는 한국에 자주 들어온다. 공연 때문에 오는 건 아니다.
전호 호텔 투숙객은 R 크림 피부관리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 유료 서비스이지만 인기가 하도 좋아서 신청한다고 다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운이 좋아야 한다.
그런데 예외도 있다. 펜트하우스를 이용하면 매일 풀 패키지로 R 크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제니퍼가 툴툴댔다.
“내가 자본주의의 힘으로 편하게 서비스받아보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펜트하우스가 아니라 스위트룸을 빌렸다. 비용을 아끼려고 그런 건 아니다. 펜트하우스는 이미 다른 연예인이 들어와 있어서 빌릴 수가 없었다.
“거기 예전에는 항상 비어 있었잖아. 그래서 방심했어. 역시 예약을 해야겠지?”
그곳을 사전에 예약하지 않은 건 이유가 있어서다. 그녀의 비서가 말했다.
“스케줄이 어떻게 될 줄 알고 예약을 해요? 예약한 날짜에 한국에 못 들어오면 어쩌려고요?”
“일정 안 맞으면 숙박 안 하고 돈만 주면 되잖아.”
“그거 전호 호텔에 문의해 봤어요. 제니퍼 이름으로 펜트하우스를 빌려놓고 그 날짜에 본인이 안 오면, 다음부터는 예약이 어려울 수 있대요.”
“뭐야? 대우가 왜 이래? 나 제니퍼 그레이야!”
“지금 펜트하우스를 차지한 사람은 엘리자베스 켈리죠.”
미국 음악계에서 둘의 영향력은 비슷한 수준이다.
비서가 말했다.
“요즘은 거기 예약하려는 사람이 많아서, 괜히 예약만 해놓고 비워두면 욕먹어요.”
“쳇.”
“그리고 스위트룸도 R 크림 서비스는 받을 수 있잖아요.”
“풀 패키지가 아니잖아. 그리고 내가 스위트룸이라니. 이러려고 내가 스타가 돼서 돈 많이 번 줄 알아?”
비서가 말을 돌렸다.
“그래서 밥은 뭐 먹을 거예요?”
“오늘은 한국식 슈바인학센으로 할까?”
“한국에 왔으면 그냥 족발이라고 해요.”
두 사람은 로비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프리미어 X8이 전시되어 있었다.
제니퍼가 그 차를 가리켰다.
“저게 그거지? 새로 나온 M 연료전지차.”
“네. 맞아요.”
“온 김에 저거 사자. 한국에서 돌아다닐 때 쓰게 당장 사.”
“정식 출시는 아직 더 기다려야 해요.”
“너튜브 보니까 연예인 협찬이 있다던데?”
“한국 가수는 김수선만 찾아보지 않아요? 김수선이 탄대요?”
“아니. 너튜브에 김수선 연관 영상으로 무슨 걸그룹이 나왔는데, 개들이 협찬받았고 자랑하더라.”
“그래요? 그럼 대성차에 연락해 볼게요. 연예인한테 협찬하고 있다니까, 당연히 제니퍼한테도 협찬하겠죠.”
제니퍼가 손가락을 흔들었다.
“나 제니퍼 그레이야. 내가 협찬받아서 타야겠어? 그냥 살 거야.”
“대성차에 그렇게 말할게요.”
◈ ◈ ◈
대성차 회장 양중근의 손녀 양수진은 홍보팀 과장으로 일한다. 그녀가 홍보팀 일을 핑계로 선우현을 만났다.
“연예인에게 협찬이 들어가니까, 연예인 쪽에서 먼저 연락해서 협찬해달라고 하는 일이 많아졌어요.”
“알아서 해요.”
“천호성 씨는 직접 전화까지 걸어서….”
“천호성은 빼고.”
“네? 아. 혹시 천호성은 사이가 나쁘시면 앞으로 그룹 차원에서 대응….”
“그렇게 나쁜 관계는 아니니까 오버는 하지 마시고.”
“아. 네. 천호성은 협찬에서 빼기만 할게요. 그리고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 연예인 중에 구매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엘리자베스 켈리와 제니퍼 그레이 같은 사람들이요.”
“제니퍼 그레이 노래 좋죠.”
김수선이 끼어들었다.
- 저는 엘리자베스 켈리 노래가 더 좋습니다.
“그럼 정식 출시 전이지만 그 두 사람에게는 팔까요?”
“그건 아니고.”
◈ ◈ ◈
제니퍼 그레이의 비서가 말했다.
“안 된대요.”
“내 이름 말했어?”
“네. 지금 신청해도 대기가 많아서 정식으로 사려면 되게 오래 기다려야 한 대요.”
“누가 공짜로 달래? 출시하자마자 사겠다니까?”
“새치기는 안 된대요.”
“아, 진짜….”
“사지 말까요?”
“웅…. 협찬해달라고 해.”
◈ ◈ ◈
제니퍼 그레이가 차를 받았다.
협찬으로 제공된 차량이지만, 대성차는 단기간에 회수할 예정이 없었다. 그녀가 타고 다니는 기간 내내 홍보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연예인에게 차를 협찬할 때는 홍보용 기념사진 정도는 찍는다. 제니퍼도 사진 한 장은 찍기로 했다.
그녀가 말했다.
“내 사진으로 광고는 하지 말아요. 기사에 사진이 나가는 정도는 허용할게요.”
대성차 홍보팀 과장 양수진이 그녀를 만나 차를 넘겨주면서 대답했다.
“이미 다른 분들도 그러고 있어요.”
제니퍼가 물었다.
“협찬 기간은요?”
“X8을 정식으로 주문하실 거라고 들었어요. 협찬은 그 차를 받으실 때까지로 하죠.”
“그 정도면 딱 좋네요. 풀옵션이죠?”
“풀옵션이기는 한데….”
“뭐죠? 빠진 게 있나요? 나 제니퍼 그레이에요.”
“M 연료전지를 개발한 분이 제이퍼 그레이 씨의 노래를 좋아해요. 그분이 오디오를 스페셜 오더로 넣으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풀옵션보다 좋은 게 들어갔죠.”
제니퍼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어머. 진짜요?”
“네. 그래서 저희가 정말 좋은 오디오를 장착….”
“아니, 그거 말고요. 이 차를 개발한 분이 나를 좋아한다는 거죠?”
양수진이 정색했다.
“그건 아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