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 자원 보급용 위성 II
미국 정부에서 나온 사람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스래곤에서 만든 인공위성용 합금인데 장점이 있을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 합금은 무게 대비 튼튼하다든지….”
나사 담당자가 말했다.
“무게 대비 튼튼함이라면, 차라리 자전거에 쓰는 흔해 빠진 알루미늄 합금이 더 나을 겁니다.”
“그럼 방사능 차폐 기능이 있다든지….”
“금속을 이 두께로 둘러놓으면 원래 차폐 효과는 조금씩은 생깁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차폐가 필요하면 납을 두르는 게 낫습니다.”
“내부식성이 강하다든지….”
“우주에서 그게 왜 중요합니까?”
미국 정부 관리는 혼란스러웠다.
“어…. 그럼 스래곤의 위성 동체는 신기술로 만든 게 아니란 겁니까?”
“신기술은 무슨. 쓰레기를 만들었습니다.”
“스래곤은 금속 부품 제작기술로도 유명한데 왜….”
“이거 실험용 위성이라던데, 돈을 어떻게 하면 낭비할 수 있는지 실험하고 싶었나 봅니다.”
미국 정부 사람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물었다.
“그럼 위성 내부에 탑재된 장비는요? M 연료전지나 다른 특별한 기술이 들어갔습니까?”
“동력은 평범한 배터리를 썼고, 탑재된 장비들은….”
관리의 눈이 번뜩였다.
“내부 장비에 뭔가 있군!”
나사 담당자가 말했다.
“진짜 이런 걸 왜 넣었나 싶은데 말이죠.”
“혹시 스파이 위성입니까? 한국 정부에서 스래곤에 맡겨서….”
“돈만 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부품들을 조립해 PC 같은 장비들을 만들었습니다.”
“예?”
“이런저런 기능이 있기는 한데, 이럴 거면 그냥 노트북을 넣어두지. 그게 더 간단하고 공간도 절약했을 텐데.”
“그 정도입니까?”
나사 담당자가 질문했다.
“나도 좀 물어봅시다. 왜 그렇게 이 위성에 관심이 많습니까?”
“스래곤에서 갑자기 위성을 만들었잖습니까?”
“그렇죠.”
“그 회사에는 새로운 소형 금속 부품 제작기술도 있고, 버드형 드론에 적용된 항공역학 기술도 개발했습니다. 그리고 M 연료전지를 만들었단 말입니다.”
“아. 그 기술들은 정말 인정합니다. 특히 M 연료전지는 혁명이죠.”
“그런 회사에서 갑자기 인공위성을 우주로 보내려고 합니다. 조용히 있을 때도 그런 대단한 기술을 펑펑 터트렸는데, 인공위성까지 쏘면서 개발하는 기술은 또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나사 담당자가 장담했다.
“스래곤의 기술력이 대단한 거 저도 압니다. 그렇지만 이건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럼 이건 뭡니까?”
“이건 그냥 돈 지랄입니다.”
“예?”
나사 담당자도 혼란스러웠다.
“이 위성에는 신기술은 없습니다. 우리도 확인해보고 이 무의미한 돈 지랄에 놀랐습니다.”
“그럼 스래곤은 이 위성을 왜 쏘는 걸까요?”
“이 위성은 궤도 계산 테스트용으로 쏘는 거라더군요. 그쪽으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숨겨진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스래곤에는 궤도 계산의 천재가 있으니까요.”
미국 정부 관리가 인상을 썼다.
“과학적 유희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사장이 또라이던지요.”
“그래서 언론 발표도 딱히 안 하는 걸까요?”
나사 담당자가 피식 웃었다.
“이런 더미 위성을 돈 들여서 쏜다고 발표해요? 그것도 로켓에 빈자리가 나자마자 서둘러서? 욕이나 먹을 겁니다.”
미국 정부 관리는 마지막까지 미련을 가졌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 위성을 어떤 부품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다 기록해 둡시다.”
◈ ◈ ◈
최 팀장이 귀국했다. 그가 김정수 이사에게 말했다.
“미국 사람들이 우리 위성을 다 뜯어보고 싶어서 난리가 났더라고요.”
“그래서?”
“부품 단위까지는 막았지만 모듈 단위는 확인하게 해줬죠. 선체 몸통을 만든 금속도 샘플로 제공했고요. 안 그러면 우주로 안 보내줄 눈치였으니까요.”
김정수가 걱정했다.
“그러면 우리 기술이 넘어갈 염려는 없지?”
최 팀장이 눈을 껌뻑였다.
“우리 인공위성에는 나사에서 탐낼 만한 기술이 들어간 게 없는데요? 그냥 우리가 사장님이 원하시는 기능이 들어간 걸 뚝딱뚝딱 만든 건데요?”
“그래도 혹시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없습니다. 부품도 대부분 용산에서 사다가 조립했습니다. 그것도 제가 직접 했습니다. 노트북을 뜯어서 붙인 것도 있는데요.”
김정수가 쩝쩝 소리를 냈다.
“그러면 그 위성을 왜 굳이 쏘시는 걸까? 사장님의 취미생활은 이해하기가 어렵네.”
“다 이유가 있으시겠죠. 저 보세요.”
최 팀장이 자랑했다.
“사장님이 시키신 일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니까 이번 일도 맡은 겁니다. 아주 쏠쏠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음하하하.”
김정수가 눈을 반짝였다.
“쏠쏠하긴 했겠다. 넌 이번에 미국 갔다 오면서 R 크림을 세 개 더 받았으니까.”
“수고했다고 주셨죠.”
“나 그거 하나만.”
“이사님도 매순이 프로젝트 때 R 크림을 받으셨잖아요.”
받기는 했다. 그때는 프로젝트 참가자 전원에게 R 크림을 하나씩 돌렸다.
“그때 받은 건 와이프가 많이 썼어. 요즘은 진짜 아껴 쓴다니까? 이럴 때 내가 와이프 앞에 새것으로 하나 더 딱 내놓으면 얼마나 기가 살겠냐?”
김정수 이사와 최 팀장은 선우현이 사장으로 오기 전에는 팀장과 팀원이었다. 김정수는 고참 팀장이었고 최 팀장도 그때는 고참 팀원이었다.
두 사람은 한 팀에서 일한 기간이 굉장히 길었다. 서로의 가족관계도 잘 알았다.
최 팀장이 투덜댔다.
“와…. 형수님을 파시네.”
“R 크림을 너처럼 많이 가진 사람은 내가 알기로는 없어. 연예인 중에도 없을걸? 좀 주라.”
“우리 와이프가 안된대요. 지금 R 크림으로 더 높은 탑을 쌓아서 동네방네 자랑하겠다고 기대에 부풀어 있더라고요.”
“와. 제수씨 너무하시네.”
“어쨌든 그건 안 되고요.”
최 팀장이 가방에서 R 크림을 하나 꺼냈다.
“대신에 이거 받으세요.”
“어? 안 된다더니?”
“이건 사장님이 김 이사님 주라고 주신 겁니다. 위성을 만들 수 있게 연구소 일정을 조정해준 건 김 이사님이니까요.”
“야이. 넌 이게 있으면서 왜 안 된다고….”
“거짓말은 안 했습니다.”
“얼른 내놔. 집에 가서 자랑하게.”
◈ ◈ ◈
지구의 위성 궤도에는 수많은 인공위성이 공전한다. 방송국 중계위성부터 인터넷 중계위성, GPS 위성에 첩보 위성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그 많은 인공위성을 우주에 띄워놓기 위해 로켓은 지상에서 수시로 발사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어지간한 로켓은 기삿거리도 되지 못한다. 그런 흔한 로켓에 실려 있는 민간 회사의 위성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그 로켓은 조용히 발사됐다.
김수선이 지원위성에서 발사기지의 상황을 관측 카메라로 지켜보며 말했다.
- 선장님. 로켓이 뜹니다!
선우현이 말했다.
“수선아. 흥분하지 말고.”
- 가속합니다!
“로켓이 우주로 올라가려면 당연히 속도를 높여야지.”
- 저 아까운 연료! 저걸 단순히 연소시켜서 쏟아내다니! 저걸 저렇게 낭비하다니! 저것만 손에 넣으면 나도 흥청망청 놀 수 있는데!
“수선아. 노는 건 나 하나로 충분해.”
- 로켓이 많이 올라왔습니다.
“이제 중간에 로켓이 폭발만 안 하면 괜찮겠네.”
- 그런 불길한 소리는 하지 마시죠. 말이 씨가 됩니다.
“로켓에 마가 낄 수도 있잖아.”
- 하지 마시라고요.
“아니면 지구 반대방향으로 날아….”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다음번 레드 포션이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는 걸 보고 싶으십니까? 사하라 사막에 가서 소형 강하 캡슐을 회수하시게요?
“그만 놀릴게.”
로켓은 예정된 코스로 비행해 대기권을 돌파했다. 그런 후에 위성 사출 궤도로 진입했다.
김수선이 다시 흥분했다.
- 선장님. 위성이 하나씩 사출됩니다!
“수선아. 나 지금 밥 먹는 중이다.”
- 제 보급품은 왜 안 나오죠?
“기다리면 나오겠지. 보급용 더미 위성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고 있지?”
- 당연하죠.
스래곤에서 만든 인공위성은 제일 마지막에 로켓에서 분리됐다.
- 나왔습니다!
“수선아. 나 지금 씻는 중이다.”
- 안 씻어도 안 죽습니다.
“더미 위성의 궤도는?”
- 설정된 궤도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우리 선체도 추적 비행을 시작하겠습니다.
“지상에 들키지 않게 조심하고.”
- 카모플라쥬 모듈은 정상 작동 중입니다.
“그거 가끔 고장 나잖아.”
- 그런 소리 하지 마시라고요.
한참 후에 김수선이 보고했다.
- 선장님. 보급품 위성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비행 궤도가 예상과 좀 다릅니다.
“수선아. 나 머리 말리는 중이야.”
- 지금 머리 말리는 게 중요합니까?
“우리가 보낸 위성에 나사에서 추진기를 붙였어. 어떻게 붙일지 미리 협의도 충분히 했고. 그런데 붙인 후에 테스트를 안 했네?”
- 그게 무슨 말이죠?
“적당히 붙여서 보냈다는 뜻이지. 대충 날아가게만 해달라고 했더니 진짜로 대충 만들었나?”
- 철저히 검증해서 만들라고 했어야죠!
“그러면 보급용 더미 위성 제작 기간이 오래 걸렸겠지? 이번 기회를 놓치면 로켓에 빈자리가 또 언제 날지도 모르고.”
- 그건 그러네요. 잘하셨습니다.
선우현이 물었다.
“그래서 문제가 뭐야? 선체 비행경로를 수정하면 더미 위성이 어디로 날아가든 쫓아가서 잡을 수 있잖아.”
- 그만큼 에너지를 낭비해야 하니까 그러죠.
“수선아. 없이 살던 거 티 내지 마라.”
- 그건 선장님한테 제가 한 이야기입니다만?
“그래서 너한테 돌려주는 거야.”
선우현이 설명했다.
“그리고 그 위성에 붙인 추진기 말이야. 연료를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쓰는 방식이야.”
- 그럼 아직 남은 게 있겠네요?
“당연하지. 그리고 내가 연료 좀 넉넉하게 넣어달라고 말해뒀어. 네가 더미 위성을 잡으면 남아 있는 연료도 같이 손에 들어올걸?”
- 에너지를 뽑아 쓰기 딱 좋은 게 들어 있단 말씀이군요.
“그러니까 에너지 아끼지 말고 날아가서 더미 위성을 잡아. 그거 내가 보내는 선물이니까.”
- 옙!
◈ ◈ ◈
김수선이 에너지를 소모해 탐사대 지원위성의 비행경로를 수정했다. 더미 위성은 예상과 조금 다른 경로로 날아가는 중이지만, 지원위성이 순식간에 따라잡았다.
김수선이 말했다.
“우리 낡은 선체가 삐걱거립니다. 지금보다 더 고속으로 기동하면 또 여기저기 고장 날 겁니다.”
선우현이 무전으로 말했다.
- 살살 해. 살살.
“보급용 더미 위성의 아래쪽에 선체의 위치를 잡았습니다.”
- 이제 지상에서는 더미 위성이 안 보이겠네. 회수해.
“회수용 기계 팔이 고장 났습니다.”
- 응? 미리 점검해둔 거 아녔어?
“아까는 멀쩡했는데, 방금 고장 났습니다.”
- 그럼 어떻게 하지? 시간을 더 끌면 위성은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 버릴 텐데.
이 보급용 위성을 만들어서 우주로 올려보내는 건 쉽지 않았다. 돈도 많이 들었지만, 로켓에 빈자리가 또 언제 날지 알 수 없다.
“제가 직접 나가서 회수해야죠.”
- 수선아. 조심해야 하는 거 알지?
“제 우주복은 확실히 점검했습니다.”
김수선이 우주복을 입고 선체 밖으로 나갔다. 바로 위에 스래곤에서 만든 위성이 비행하고 있었다. 거리도 가까웠다.
탐사대 지원위성과 보급용 더미 위성은 비슷한 경로를 고속으로 비행하는 중이다.
둘 다 같은 속도로 거의 비슷한 궤도를 비행하기 때문에, 더미 위성은 그냥 바로 위 가까운 거리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다.”
그 정도로 가깝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보였다.
김수선이 우주복의 추진기를 작동했다. 날개 두 개가 활짝 펼쳐지며 은빛을 뿌렸다. 그 상태로 위성이 있는 곳까지 비행했다.
“잡았다!”
김수선이 더미 위성을 손으로 잡은 후에 그 위쪽으로 올라갔다. 그런 후에 더미 위성을 지원위성 선체를 향해 밀며 우주복의 추진기를 작동시켰다.
날개에서 다시 은빛이 뿌려지면서 더미 위성이 천천히 탐사대 지원위성 선체 방향으로 이동했다.
갑자기 날개 한쪽에서 불꽃이 튀었다. 한쪽 날개의 출력이 줄어들었다.
“앗!”
그 여파로 더미 위성의 방향이 슬쩍 틀어졌다. 김수선이 즉시 날개의 출력을 조정했다. 위성의 이동 방향이 겨우 원래대로 돌아왔다. 대신에 날개의 출력이 약해졌다.
“이 위성을 분해하면 내 날개부터 고칠 거야!”
- 수선아. 무슨 일이냐?
“왼쪽 날개가 터질 뻔했습니다.”
- 너 설마 우주로 튕겨 나간 건 아니지?
“처음 있는 트러블도 아닌데 설마 그랬겠습니까? 우리 선체에 도착했습니다.”
선우현이 보낸 보급용 더미 위성이 지원위성의 화물칸 속으로 사라졌다.
김수선이 말했다.
“보급품,확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