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 자원 보급용 위성
CCTV 동영상에 이어 블랙박스 동영상까지 공개되면서 인터넷에는 JXK의 사장 천호균을 의심하는 글이 많이 올라왔다.
명분이 생긴 경찰이 다시 가수 기획사 JXK를 압수 수색했다.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훨씬 더 고강도로 진행됐다.
광수대 팀장이 안성준 형사와 국밥을 먹으며 말했다.
“지난번에 압수 수색할 땐 뭐 하고 또 하느냐고 욕하는 윗분이 있다더라.”
“그 윗분 의도가 의심이 가네요. 어쨌든 유력한 용의자를 찾았는데 말이죠.”
“우리가 공개 수배한 게 아니라 영상이 유출돼서 찾은 거지.”
“제가 그 밭에서 영상을 받아간 게 계기가 돼서 거기까지 된 거죠.”
“그건 그렇지. 아무도 안 알아주지만.”
안성준이 툴툴대다.
“그래서 위에서는 어쩌라는데요? 우리는 빠지래요? 그 영상 제가 찾아왔습니다. 선우현 씨와 함께였지만요.”
“그래서 우리 팀이 빠지냐 마냐로 말이 많았는데, 전호 그룹이랑 대성차 그룹에서 우리 팀을 좋게 이야기해줬나 보더라.”
안성준의 눈이 동그래졌다.
“네? 거기서 또요?”
“대놓고 도와준 건 아니고,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다가 한 마디씩 던진 정도야. 그런데 그때가 마침 위에서 이걸 다른 팀에 넘길까 말까 하던 때란 말이야.”
“그때 살짝 밀어준 거군요.”
“그래서 우리가 그냥 맡게 됐다.”
안성준이 말했다.
“살면서 대기업이 우리 수사를 도와주는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요.”
“그러게 말이다. 그러고 보면 선우현 사장은 참 대단해. 그 두 곳을 움직인 거 보면 말이야.”
“대단하긴 하죠. 돈도 많으면서 벼룩의 간도 잘 빼먹고요.”
안성준은 예전에 선우현에게 고기를 몇 번 샀다.
팀장이 말했다.
“처음 선우현이란 사람을 알았을 때는, 나쁜 놈들을 작살 내는 것만 잘하는 다혈질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혈질 과학자죠.”
“예전에는 우리가 어떻게든 덮어주고 숨겨줘야 했는데.”
“이제는 알아서 잘 덮잖아요. 물론 우리도 선우현 씨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지만요.”
팀장이 말했다.
“다 먹었으면 들어가서 일하자. 압수해 온 자료 보려면 오늘도 야근이다.”
“거기서 뭐가 나올까요? 천호균은 이미 잠수를 탔는데.”
“지금 그 사까이라는 놈이 구하니를 노렸다는 소문이 돌아서 분위기가 아주 나빠. 거기서 뭐라도 찾아내야 해.”
◈ ◈ ◈
선우현이 구하니를 만났다. 오늘은 길성의 대리이면서 스래곤의 비서실장인 박서윤도 같이 있었다.
박서윤이 선언했다.
“JXK는 망할 거예요.”
그 이유도 설명했다.
“제가 길성 계열사를 통해서 정보를 모았어요. 여론이 굉장히 나빠요. 게다가 경찰 수사에서 그 회사의 조직적인 범죄가 여럿 밝혀졌어요. 사장인 천호균 외에도 나쁜 놈이 많아요.”
경찰은 천호균은 아직 찾지 못했다. 대신에 수사 과정에서 다른 범죄들을 발견했다고 발표해 비난의 화살을 피했다.
“이제 JXK로는 방송은 물론이고 행사도 안 들어가요.”
구하니가 걱정했다.
“그럼 거기 있는 사람들은….”
박서윤이 설명했다.
“가수들은 계약을 파기하면 돼요. 계약은 상호 신의가 있어야 하는데, 계약으로 묶어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니거든요. 집단 소송으로 싹 다 정리할 수 있어요.”
구하니가 선우현을 보며 말했다.
“연습생 애들은 갈 곳이 없어요. 가수 중에도 JXK에서 나오면 다른 곳에 들어가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는데….”
선우현이 손가락을 흔들었다.
“하니 씨. 난 JXK는 인수 안 할 겁니다. JXK는 상장회사가 아니고, 회사 지분은 천호균이나 사까이 같은 놈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내 돈이 천호균에게 들어가는 건 싫으니까.”
“알죠. 저도 알아요.”
선우현이 대안을 제시했다.
“대신에 기획사를 하나 만들어볼까 합니다.”
“네?”
“연습생들은 죄가 없으니까, 잠시 기댈 곳을 만들어보려고요.”
구하니가 두 손을 모았다.
“우현 씨….”
“기존 가수들도 희망자가 있고 조건이 맞으면 계약할 수 있고요.”
“고마워요.”
“하니 씨를 도와주는 것도 아닌데 고맙기는.”
“그래도 고마워요.”
선우현이 단서를 달았다.
“거기서 하니 씨를 박대한 사람은 오고 싶다고 해도 거절해요.”
그녀가 웃었다.
“알았어요. 거절…. 네? 제가 거절해요?”
“네.”
“그건 새 기획사 경영진에서 결정해야죠.”
선우현이 손가락을 위로 세웠다.
“내 주변에 기획사를 운영해본 경력자가 딱 한 명 있습니다.”
“그게 누구….”
그 손가락을 구하니에게 향했다.
“하니 씨.”
“저는 1인 기획사인데요?”
“어쨌든 기획사잖습니까?”
“규모가 완전히 다른데….”
박서윤이 옆에서 말했다.
“우리 길성에 연예계 업무를 지원해줄 수 있는 계열사가 있어요.”
“알아요. 공연이나 전시회 같은 거 종종 주관하잖아요.”
이번에 박서윤이 정보를 수집한 것도 그 계열사를 통해서였다.
“선우현 씨가 만드는 기획사는 시스템이 갖춰질 때까지 길성에서 지원할 거예요. 이미 회장님 허락도 받았어요.”
선우현이 구하니에게 말했다.
“하니 씨가 이 조건을 받으면 기획사를 만들 거고요.”
“하지만 저는 선우현 씨가 아니라서, 회사 운영은….”
“이 조건을 안 받으면 나도 손 뗄 겁니다.”
구하니가 망설이다가 물었다.
“사장은 전문 경영인을 둬도 될까요?”
“아!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나도 그럼 스래곤에 전문 경영인을….”
박서윤이 끼어들었다.
“우현 씨는 안돼요.”
“왜 나만!”
“스래곤이 잘나가는 건 우현 씨가 있어서예요. 우현 씨가 사장을 그만두면, 전 세계 관련 업계가 혼란에 빠져요.”
“그럼 하니 씨도 사장 하는 거로 합시다. 나만 고생할 순 없지.”
구하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면 박서윤 씨가 우현 씨를 돕듯이 저도 좀 도와주면….”
박서윤이 단칼에 거절했다.
“저 지금도 두 탕 뛰고 있어요. 둘 다 그만둘 수 없어요. 안돼요.”
구하니가 망설였다.
“생각을 좀 해볼게요. 시간을 주세요.”
김수선이 끼어들었다.
- 선장님 제 노래도 이제 더 쉽게 낼 수 있겠군요.
선우현이 말했다.
“하니 씨. 기획사 만들면 수선이 노래도 거기서 발표해줘요. 이번 곡은 폴라시에서 내고, 다음부터는 직접 내면 되겠네.”
“아. 수선 씨 노래라면 언제나 좋죠. 진짜 노래 잘하시잖아요.”
- 선장님. 저는 이 거래 찬성입니다.
엠투가 옆에서 짖었다.
“멍!”
“말을 해라, 말을. 아. 너는 말을 못 하지.”
- 단답형 음성 보고 기능은 고칠 방법이 없으니까요.
“크와앙!”
“뭐라는 거야?”
◈ ◈ ◈
이튿날 선우현이 스래곤에 출근했다. 이틀만의 출근이었다.
그날 오후에 박서윤이 말했다.
“우현 씨. 손님이 찾아왔어요.”
“아는 사람인가요?”
“남미연 씨인데요. 화가 난 모습이었어요.”
“아니, 왜?”
“글쎄요?”
남미연이 비서실에서 씩씩댔다.
“흰둥아.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니?”
“멍.”
“그치. 너무했지? 너 아니었으면 나만 바보 될 뻔했어.”
비서실 직원들은 남미연을 훔쳐보았다.
“남미연 씨가 사장님하고 아는 사이였어?”
“우리는 원래 사장님 찾아오는 손님은 안 받는데, 비서실장님이 남미연 씨는 사장님께 물어본다고 하셨잖아. 진짜 아는 사이인가 본데?”
여자 직원 중에는 남미연이 아니라 엠투를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 흰둥이 실물은 처음 봐.”
“나가서 강아지 간식 사 올까?”
박서윤이 비서실로 돌아왔다.
“가시죠.”
“서윤 씨. 나 서윤 씨한테도 서운한 거 알아?”
“들어가서 말해요. 여기 보는 사람 많아요.”
남미연이 비서실 직원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머어. 여러분. 별거 아니에요. 그냥 놀러 온 거예요.”
남미연이 사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외쳤다.
“나는!”
“앞뒤 자르고 말하지 말고.”
“기획사 만들어서 하니 씨 사장 시켜준다면서요! 나는!”
“그 소문은 또 어디서 들었대?”
“우리 흰둥이가!”
“엠투는 사람 말을 못 하는데?”
“하니 씨 사진을 물고 오길래 전화 걸어 봤지! 무슨 일이 있나 하고! 그랬더니 하니 씨가 나한테 상담을 하네?”
“엠투 저 배신자.”
“멍.”
“그리고 하니 씨는 도움되는 사람과 상담해야지, 하필 남미연 씨한테….”
남미연은 당당했다.
“연예계에 선우현 씨가 스래곤 사장인 거 아는 사람은 딱 두 명이니까, 당연히 나한테 상담해야지!”
“아. 그렇겠네.”
남미연이 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나는!”
“새로 만들려는 건 가수 기획사인데?”
“배우도 키우면 되지! 그리고 요즘 아이돌이 어디 노래만 하나? 연기도 하고 그러잖아!”
“그럼 남미연 씨가 배우 기획사 하나 만들던가. 거 돈도 많은 사람이 말이야.”
남미연이 손을 옆으로 휙 저었다.
“내가 만들면 홀라당 말아먹을 거 아니까!”
“그럼 나는?”
“우현 씨는 나보다 돈이 훨씬, 훨씬 더 많으니까, 기획사가 손가락만 빨아도 안 망할걸?”
“그건 그렇긴 한데.”
지금도 외국 여러 회사에서 M 연료전지 물량 확보를 위해 선금을 넣고 있다.
핵심 부품은 이미 생산 중이지만, 본격적인 생산과 판매는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 스래곤이 공장을 더 짓고 핵심 부품과 연료전지를 본격적으로 판매하면 들어오는 돈은 더 많아진다.
그런 선우현이 만든 기획사라면 일이 안 들어와서 손가락만 빨아도 망할 수가 없다.
남미연이 제안했다.
“그러니까 투톱으로 가요. 하니 씨가 가수 파트 대장, 나는 배우 파트 대장.”
“굳이 새 기획사에 들어오겠다?”
“지금 회사랑 계약 끝나면 매니저랑 내 팀 데리고 정식으로 넘어가고, 그 전에도 대장은 하려고요.”
“사장이 두 명이면 이상하지 않나?”
남미연은 대책을 생각해왔다.
“그럼 우리는 이사 명함을 파면 되지. 우현 씨는 이름만 사장으로 걸어놓고. 그러면 우리 둘이서 알아서 잘 말아먹을 테니까.”
“사장이라니? 나는 연예계에는 딱히 관심이 없는데?”
“선우현 씨가 기획사를 만들잖아요.”
“그거야 하니 씨의 걱정도 일리가 있으니까, 이번 일에 말려든 사람들의 대피처 삼아 만드는 거고.”
“하니 씨는 이래야 맡을걸요? 지금 고민 엄청 하고 있던데.”
“음….”
선우현이 비서실장 박서윤을 보았다. 박서윤이 손을 흔들었다.
“저는 세 탕은 못 뛰어요. 근데 우현 씨는 어차피 두 분에게 다 맡겨놓고 일은 안 할 거잖아요.”
김수선도 한마디 했다.
- 선장님. 저는 제 노래를 전담할 회사를 원하는데요?
선우현이 말했다.
“난 진짜 이름만 걸어놓을 겁니다. 돈만 대고 바지사장 할 겁니다.”
박서윤이 말했다.
“우현 씨. 그건 바지사장이 아니라 물주 아닌가요?”
“아. 그런가?”
◈ ◈ ◈
선우현이 스래곤 연구소에 제작을 맡긴 위성이 완성됐다.
최 팀장이 자랑했다.
“사장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만들었습니다.”
“고생 많이 하셨네요.”
선우현이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R 크림을 한 세트씩 돌렸다.
“이건 뭐 대단한 아닌데 얼굴에도 바르고 손에도 바르고 해요.”
“아이쿠. 이런 걸 주시면, 고맙습니다.”
선우현이 물었다.
“그럼 미국 출장은 누가 갈 겁니까?”
“네? 미국이요?”
“미국 로켓에 자리를 비워놨습니다. 거기에 우리 위성을 실어서 우주로 보내야죠. 우리 위성에 나사가 보유한 추진기를 붙이는 작업도 해야 하고요.”
추진기와 더미 위성을 결합하기 위한 기술 협의는 이미 연구소와 나사 사이에서 충분히 이루어졌다. 조세핀이 중간에서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최 팀장이 말했다.
“필요한 세팅은 다 해뒀으니까, 추진기는 가서 붙이기만 하면 금방 됩니다. 그 작업은 나사에서 알아서 할 겁니다만….”
“아. 이런.”
“왜 그러십니까?”
“R 크림이 좀 남았네요. 세 개 정도?”
“제가 직접 가서 잘 붙이는지 보겠습니다! 제가 꼭 가고 싶습니다!”
◈ ◈ ◈
스래곤에서 보낸 더미 위성이 미국에 도착했다.
나사는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위성용 추진기를 더미 위성에 붙였다.
최 팀장이 말했다.
“우리 위성은 미리 설정한 방향으로 날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시간이 없으니 시험 테스트는 생략합시다.”
나사 쪽 엔지니어가 고개를 갸웃했다.
“테스트 없이 진행했다가 위성의 궤도에 오차가 생기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지구 주변을 몇 바퀴 돌다가 우주로 날려 보내는 게 목적입니다. 궤도가 크게 틀어지지만 않으면 됩니다.”
테스트는 생략했지만, 더미 위성을 로켓에 싣기 전에 이상한 게 들어 있지는 않은지 검사는 받아야 했다.
그런데 그 검사를 할 때, 미국 정부에서 나사에 사람들을 보내 참관했다.
그들은 나사 담당자에게 확실한 조사를 요구했다.
“이 위성에 신기술이 들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위성의 외부를 희귀한 원소까지 들어간 합금으로 만들긴 했는데….”
“역시! 스래곤에서는 위성용 합금 신기술을 테스트하려고 이걸 우주로….”
“이따위 가격만 비싸고 품질은 형편없는 합금을 왜 사용한 걸까요?”
“어? 뭐라고….”
“스래곤은 우주에 쓰레기를 하나 더 늘리려나 봅니다.”